이름과 나이는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세 명의 사회복무요원 청년이 있습니다. 이 셋은 모두 복무기관에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업무를 수행했고, 그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졌고, 마음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벼랑 끝의 요원들’ 3화에서는 세 명 중 마지막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과거 사회복무요원일 때 받은 상처를 당사자로서 어떻게 기억하는지 기록한 박상혁 씨의 글입니다. <편집자 주>
2018년 3월, 나는 광주의 한 주민센터에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치됐다. 22살 때였다. 처음 마주한 사회복무요원 담당자는 직원 소개, 업무 설명에 이어 조언 겸 당부의 말을 건넸다.
”민원인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사회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주민센터에 방문하는 민원인들이 많았다. 이들의 불만을 샀다간 문제가 커지기 쉬우니 요구사항을 되도록 들어주라는 뜻이다.
사회복무요원은 병역판정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고 보충역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불렸다.
내가 4급 판정을 받은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2017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에서 병역판정검사를 받았다. 병무청에 제출한 진단서에는 ‘만성 우울장애’라는 병명이 적혀 있었다. 유년 시절 가정불화와 학교폭력으로 찾아온 우울증은 점차 증세가 나빠져 자살 충동, 무기력증, 공황, 환청 등 복합질환으로 발전했다.
”증상만 보면 5급(전시근로역)이에요. 그런데 진료기록이 적어서 4급(보충역)밖에 못 줘요. 어차피 더 진료받아도 5급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냥 4급 받고 사회복무요원 하시는 게 어때요?“
조용히 내 진단서를 읽던 직원은 위와 같이 권유했다.
5급은 사회에서의 의무복무도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민방위 훈련만 받는 전시근로역이다. 4급을 받아 일상생활조차 버거운 상태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과, 5급을 받아 의무복무 없이 치료에 전념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있어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4급으로 할게요.“
순순히 그의 권유에 따랐다. 병무청은 제출한 진료기록을 요구하고 심사할 뿐, 진료에 필요한 비용은 전혀 지원하지 않는다. 지난 1년간 갖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심리 검사비와 약값, 상담비로 수백만 원을 지출했는데, 병무청이 요구하는 양의 진료기록을 만들기 위해 또 다시 막대한 시간과 돈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했다.
잠깐의 업무 숙지 기간을 거쳐 배정받은 내 자리는 주민센터 입구와 다섯 걸음 떨어진 안내 창구. 모든 민원인과 가장 먼저 마주치는 ‘최전방’이었다.
최전방에 있는 동안 대기표 발급, 무인 발급기 보조, 팩스 전송 등 민원인을 보조해야 할 업무라면 뭐든지 도맡았다. 문화바우처나 공공일자리 신청을 받을 땐 수백 명의 신청자들을 감당하느라 숨이 턱 막혔다.
주민센터의 사회복무요원은 난동을 피우는 민원인을 제압하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 민원인이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책상을 뒤엎거나 ”이렇게 사느니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소란을 피우면 공무원과 사회복무요원이 달라붙어 경찰이 올 때까지 붙잡아 두는 식이다.
대인관계로 인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내게 물밀듯이 밀려오는 민원을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정신이 갉아 먹히는 느낌에 악성 민원으로 충격을 받으면 좀처럼 헤어 나오질 못했다. 민원 응대가 버겁다고 호소하면 잠시 다른 사회복무요원과 업무를 교체해 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안내 창구로 돌려보내기를 반복했다.
복무 초기에는 우울증 치료제인 ‘푸로작’을 복용하며 겨우 버텼다. 그러나 복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효과가 떨어져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우울감과 자살 충동은 기본에, 나도 모르게 잠들고,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는 등 감당할 수 없는 증상들로 정상적인 근무가 어려워졌다.
”너, 내가 만만해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니?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복무기간 연장시킬 거니 알아서 해.“
사회복무요원 관리담당자는 근태가 엉망이 된 나를 불러 전 직원 앞에서 면박을 줬다. 왜 근태가 나빠지는지, 치료는 잘 받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당연하다. 공무원 사회에서 사회복무요원은 동등한 인격체라기보다 업무에 쓰는 부품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팀장님, 저 밖에서 일해야 하는데 공익(사회복무요원) 좀 가져다 쓸게요.“
공무원들은 인력이 필요한 외부 행사에 사회복무요원을 동원할 때 이따금씩 ”가져다 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동료 공무원에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면전에서 도구 취급을 받으니 모멸감이 들지만, 공무원에게 대든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낙인을 피하려면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침묵 속에 이리저리 쓰이다 보면 목숨을 위협받는 일도 생긴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민원이 들어오면 주거지로 방문 상담을 가곤 한다. 혼자 갔다간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몰라 2인 1조로 가는 게 원칙이다. 주민센터는 ‘방문 상담에 공무원 둘이나 보내기는 아까워서’ 공무원 한 명에 사회복무요원을 붙여서 보낸다.
그날은 출발 전부터 공무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상대가 악성 민원인인 줄 알면서도 그를 설득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민원 현장인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민원인의 집은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밖으로 민원인이 볼륨을 최대로 높인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댔다.
공무원 : “선생님.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안 돼요”
민원인 : “위층에서 내는 층간소음 때문에 죽겠다고 해도 안 도와줬잖아! 그럼 나도 시끄럽게 해야지. 나를 말리고 싶으면 위층 먼저 가서 소리 좀 줄여보라고.”
위층에 올라가도, 이웃과 경비원의 증언을 들어봐도 위층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공무원이 그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공무원 : “위층 가봤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아요. 일단 스피커 좀 끄고 대화 좀 해요.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민원인 : “무슨 소리야. 지금도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데 왜 나한테만 하지 말라고 해? 공무원이 이래도 되는 거야?”
흥분한 민원인은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가 옷걸이를 가져왔다. 그는 옷걸이로 공무원을 쿡쿡 찌르며 비아냥댔다.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공무원은 팀장에게 보고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민원인은 그사이 사라졌다. 집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문 앞에서 대기했다. 공무원을 대신해, 민원인이 이상행동을 하는지 지켜봐야 했다. 복도에서 공무원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였다. 집 안으로 사라졌던 민원인은 갑자기 뛰어나왔다. 그의 손엔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는 식칼을 내 배에 겨눴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민원인이 하는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몇 초 뒤 상황을 파악한 공무원은 화들짝 놀라 민원인을 말렸다.
“선생님 잠시만요! 얘는 공무원 아니고 도우러 나온 학생이에요. 애한테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 제발 칼 내려놓으세요.”
수차례 사정한 끝에 민원인은 칼을 내려놨다. 우리는 금방 다시 올 테니 잠시만 집에서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뒤, 아파트 공동현관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앉아 잠시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후진을 하려고 백미러를 봤다. 거울엔 야구방망이를 들고 차 뒤를 서성이는 민원인의 모습이 비쳤다. 그대로 30분쯤 대치했을까. 긴장을 푼 민원인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급하게 차를 몰아 도망쳤다.
주민센터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사느니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소란을 피우던 민원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언젠가 그중 한 명이 정말 사람을 죽일 각오를 하고 주민센터 맨 앞에서 대기하는 나를 칼로 찌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민원 업무에 대한 부담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주민센터는 상황을 듣고도 어떤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나는 민원인의 칼에 찔릴 뻔한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안내 창구에서 민원인들을 응대해야 했다. 이후로도 공무원들의 필요에 따라 흉기 난동이 있었던 아파트에 보내졌다.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남은 복무기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소집해제 3년이 지난 2023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우울증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엔 사회복무요원 시절 우울증이 치료되기는커녕 증세가 악화된 영향이 크다. 민원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우울증이 몸집을 키운 셈이다.
나를 더 취약하게 만든 건 국가다. 하지만 그 결과와 책임은 나 혼자 짊어지고 있다. 사회에서 사회복무요원이란 경력은 아픈 와중에 병역의 의무를 마친 ‘강인한 청년’이 아닌, 어딘가 문제가 있는 ‘나약한 이’로 여겨진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보도한 고(故) 최준 씨의 사례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울증으로 대인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민원 업무를 맡게 됐고, 업무 과정에서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복무기관은 사회복무요원에 필요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준 씨는 2016년 6월, 민원인의 폭언을 듣고 복무기관을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관련기사 : <스물한살 최준이 남긴, 한 번도 신지 못한 운동화>)
사람들은 조용히 죽어가는 정신질환 사회복무요원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복무 중 이상행동을 보이는 요원들에게 “저거 완전 정신병자네”, “저러니 군대를 못 갔지”라며 손가락질할 뿐이다.
사회복무요원은 심신에 문제가 있어 군대에 가지 못한 청년에게 의무를 이유로 강제로 일을 시키는 제도다. 그들에게 낙인에 앞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복무기간 동안 국가와 복무기관이 증세가 호전되는지 악화되는지 관찰하거나, 치료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를 지원해 주거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업무를 배제해 주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지난 5월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이 발표한 ‘사회복무요원 복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 64%은 복무 중 폭언·폭행, 갑질, 부당업무지시 등의 괴롭힘을 겪었으며 28%는 ‘괴롭힘으로 인해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 있다’고 답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와 비교하면, 사회복무요원의 ‘복무 중 괴롭힘’ 응답 비율은 직장인 괴롭힘 응답 비율(30.1%)의 2배를 넘는다. 또한 ‘폭행·폭언’ 경험은 3.1배, ‘부당지시’는 2.9배, ‘따돌림·차별’은 2.8배에 달했다.
“남들 군대 가는 동안 꿀 빠네(편하게 지내네)”라고 조롱당하는 동안 사회복무요원들은 감당할 수 없는 괴롭힘에 신음하고 있다. 청년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언젠가 사회복무요원에게도 적용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