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물’을 거슬러 올라가니, ‘검은 세력’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난 7월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경기 시흥시 은계 공공주택지구 아파트 단지의 ‘검은물’ 사태에 대한 사과였다.

LH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 수돗물에서 검은 이물질이 떨어져 나오는 문제. LH 조사 결과, 이물질의 정체는 상수도관이 녹슬지 않도록 내부에 코팅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이었다.

2023년 7월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 아파트 상수도관 수돗물 거름망에서 나온 검은색 이물질 ⓒ서성민 변호사 제공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회사는 이미 3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업체. 공정위는 2020년 3월 13개의 상수도관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공정위 조사에서,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담합을 성사하기 위해 ‘수요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해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여기서 ‘수요기관’은 LH, 한국수자원공사 및 지자체 등 공사 계약을 체결한 공공기관을 말한다.

하지만 공정위의 발표로부터 3년이 지난 최근까지,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등 수요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 모두 부정 청탁 문제로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결국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가 나섰다. 이들은 12일 LH 등 수요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과,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을 고발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김보경 기자(왼쪽)와 서성민 변호사는 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검은물’ 상수도관 업체와 수요기관 사이 유착 의혹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셜록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3월 상수도관 입찰 업체 13곳의 담합 문제를 발표했다. 당시 공정위는 LH, 한국수자원공사 및 지자체 등이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구매한 230건의 상수도관 입찰에서, 13개의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혔다.

13개 입찰 담합 업체들이 230건의 입찰을 통해 편취한 규모는 약 1300억 원.

담합 수법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A 업체가 낙찰됐다면, 함께 담합을 도모한 나머지 업체들도 자사의 물품을 함께 끼워 넣는 방식이다. 어떤 업체가 낙찰이 되더라도, 사전에 합의된 기준에 따라 담합 업체 전체가 물량을 배분해 이윤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업체들의 담합으로 검증되지 않은 물품이 공공기관 등에 공급됐다는 점이다. 수요기관이 낙찰받은 업체의 상수도관 외에, 다른 담합 업체의 물품이 공급된 건 사실상 ‘허위 납품’ 문제로 볼 수 있다.

조달청의 ‘물품다수공급자계약특수조건’은 계약 체결 업체의 직접 생산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계약 체결 업체가 다른 업체의 제품을 납품할 경우는 거래 정지 사유에도 해당한다.

실제 담합 업체들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물품(상수도관) 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위원 ○○○) : “그다음에 제품 간에 어떤 품질 차이도 거의 없는 겁니까? 이렇게 단순….”
(피심인 대리인 ○○○)  : “아, 품질은 차이가 있습니다.”
(위원 ○○○) : “아, 그래요?”
(피심인 대리인 ○○○) : “예예.”

–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 제6회 전원회의 심의속기록 중

사실상 담합 업체들이 품질이 제각각 다른 업체의 물품을 허위 납품해 수요기관과 조달청을 속인 채, 1300억 원 규모의 큰 수익을 얻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의결서(사건번호 2019입담1496)에 첨부된 <표 15>이 사건 합의에 따른 입찰 참가 내역. (단위: 건) 독자적 참가로 판단된 1건을 제외하고 낙찰 건수 229건이 인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의결서

13개 담합 업체들이 공급한 상수도관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걸로 예상된다. 문제로 밝혀진 시흥 은계지구 외에도 ▲7개 시·군(세종, 청주, 천안, 아산, 서산, 당진, 예산)에 급수하는 대청댐 계통 광역 상수도사업 시설공사 현장 ▲대단위 농업개발사업지구인 영산강지구 일대 ▲각 지역의 정수장, 배수지 등이 포함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월 ‘검은물’ 사태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사진은 지난 7월 30일 LH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 참석한 모습. ⓒ국토교통부

그렇다면, 상수도관 입찰 업체들은 어떻게 불법 담합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당시 공정위 조사에서 공공기관-상수도관 입찰 업체의 유착을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을 발견했다. 담합 업체 중 한 곳인 건일스틸(주)의 이○○ 이사는 2018년 7월 11일 이렇게 증언했다.

“영업추진업체들은 수요기관을 통해 누가 입찰 참여사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은 입찰 참여자에 포함되도록 수요기관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공정위 의결서 2019입담1496 발췌)

한마디로,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담합을 성사하기 위해 수요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해왔다는 이야기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 담합 업체 10개(폐업 3곳 제외)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61억 9000만 원 부과를 결정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지점은 남아 있다. 공정위의 발표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등 수요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은 모두 부정 청탁 문제로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더 이상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징계나 처벌로 이어지지도 않은 상황.

고발에 앞서 셜록의 김보경 기자가 손에 들고 있던 피켓. “사기혐의 엄정히 수사하라!” ⓒ셜록

이에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을 사기 혐의로, 그리고 이들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공공기관 등 성명불상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을 뇌물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늦었지만 ‘지연된 정의’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서 변호사는 2021년 LH 공직자 광명·시흥 부동산 투기 문제를 최초로 폭로한 인물이다. 서 변호사는 7월 26일 시흥 주민 6638명과 함께 ‘검은물’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시흥시 등 지자체와 LH 등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익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접수하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12일 “(수요기관에 대한) 영업을 추진하고 내부 정보를 받은 업체들은 더 큰 수익을 볼 수 있는 구조로 수익을 가져갔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책임 기관들은) 별다른 사후 대책이 없었다”면서, “검찰은 문제의 중대성을 인지하고, 지금이라도 담합 업체 임직원과 공공기관 등 임직원 및 공무원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