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제법 선선한 저녁이었다.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만난 이규식은 저녁식사로 샤브샤브를 먹자고 했다. 더운 여름도 끝이어서 괜찮은 메뉴 선택이었으나, 내 속내는 복잡했다.
‘전동휠체어 이동이 자유로운 샤브샤브 식당은 어디에 있을까. 식당 사장이 휠체어는 곤란하다며 출입을 막으면? 이규식이 지하철에서 이동권 투쟁을 하듯이 식당 문을 막아야 하나? 그나저나 중증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은 그 뜨거운 고기-야채-면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장애인이 무슨 말만 하면 난감한 표정부터 짓는 비장애인이 익숙한지 이규식은 금방 내 속내를 간파했다.
“내가 자주 가는 데 있어요. 거기 가면 돼요.”
이규식은 오른손에 쥔 전동휠체어 레버를 움직여 먼저 출발했다. 저만치 앞서 가는 휠체어 등받이 위로 이규식의 휑한 민머리가 단호해 보였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따라오라‘는 신호 같았다. 나는 신호를 따라 뛰어갔다.
식당은 이규식의 전동휠체어가 이동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식당 노동자 역시 이규식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했다. 여전히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건 나 혼자였다.
‘뜨거운 야채와 고기를 옷에 흘리면 어쩌지….’
이규식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주면, 왼손으로 포크나 숟가락을 쥐고 음식을 먹었다. 뜨거우면 호호 불었고, 질기면 오래 씹었다. 마주 앉아 음식을 씹는 동안 우리의 눈길은 자주 부딪혔다. 내가 불안해서 살폈다면, 이규식은 안심하라는 신호를 주려는 듯 내 눈을 쳐다봤다.
사실 내 불안과 초조는 이날이 시작이 아니다. 이규식이 내게 술 한잔 하자고 처음으로 제안한 지난 5월의 서울 성산동에서도, 제주도에서 호박죽을 먹던 그 식당에서도 내 마음은 비슷했다.
그가 쓴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후마니타스, 2023. 3.)에는 중증 장애인이 일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자세히 나온다. 이규식이 혼자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은 정오쯤 배가 고파 혼자 밥집에 갔는데 주인이 안에 사람이 많다며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안을 살펴보니 손님이 거의 없었다. 자리도 있는데 왜 안 들여보내 주냐니까 주인이 못 알아들은 척하면서 1000원을 쥐여 주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빨리 사라지라는 듯 손을 내저으면서.”(≪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152쪽)
슈퍼마켓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번은 슈퍼마켓에 갔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주인을 불러서 새우깡을 달라며 돈을 드렸다. 그런데 주인이 돈은 받지도 않으면서 오징어땅콩을 가져다주었다. 뭐지? 제대로 못 들었나? 다시 새우깡을 달라고 하니 이번에는 빼빼로를 가져다주었다. 요즘 유행하는 랜덤 뽑기 게임도 아니고. 다시 또 새우깡을 달라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쌍욕을 했다. 내가 돈을 안 낸 것도 아니고 말을 못한 것도 아닌데 자기 마음대로 주고는 안 받는다고 화를 내니 황당했다. 나를 손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은 거다.”(≪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153쪽)
이런 두 사례처럼 휠체어 이동 공간이 없어 식당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왼팔만 자유로운 사람이 옆에 있다는 이유로 이상한 눈길을 받을까봐, 즉 이규식이 평생 당해온 차별이 내게로 이어질까봐 나는 걱정했던 거다.
이규식은 비장애인의 마음을 읽는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는지, 내가 난감해 할 때면 눈을 찡긋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사인을 준다.
지난 5월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서울 북콘서트 이후 이규식과 몇 차례 술을 마셨다. 나는 대개 맥주였으나, 이규식은 언제나 독주를 택했다. ‘소맥‘을 마셔도, 남들이 맥주와 소주 비율을 8:2로 섞는다면, 이규식은 반대로 ‘맥주 2 : 소주 8’의 비율로 섞었다. 이규식이 워낙 독주를 좋아하고 술이 센가 싶었다.
최근 활동지원사 없이 그와 단둘이 서울 혜화동에서 술을 마셨다. 그가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내가 맥주 두 잔쯤 마시고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뒤에야 이규식이 입을 열었다.
“박 기자님, 우리 부모님 좀 찾아서 만나주실 수 있어요?”
이규식은 부모님과 헤어져 따로 살고 있다. 그런 지 한참 됐다. 서로 연락과 왕래가 없으니, 남남이 됐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자식과 인연이 끊긴 부모를 무슨 수로 만날까.
“박 기자는 다리가 건강하니까 찾을 수 있잖아요. 부모님에게 궁금한 게 정말 많아. 그걸 나 대신 꼭 물어봐 주면 고맙겠어요.”
이규식은 날 보며 눈을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보낸 사인과는 많이 다른, 물기 맺힌 눈빛이었다.
“내가 장애인이란 걸 처음 알았을 때 부모님 마음은 어땠는지, 내가 직접 ‘날 시설에 버려달라‘고 말한 적 있는데 그때의 심정은 어땠는지, 여동생 네 명은 다 학교 다니게 했으면서 왜 나는 안 보냈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이런 걸 부모님께 물어봐 줘요. 응?”
뭉개지고 모호한 이규식의 목소리는 그의 눈빛만큼이나 흔들렸다. 온갖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며 비장애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키웠건만, 이규식은 정작 부모님의 내면은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서로 왕래가 없어도 이규식의 부모님은 TV 뉴스에서 장애인권 ‘투사’가 된 아들 이규식의 활약을 봤을 거다. 그 순간에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 역시 궁금해졌다. 이규식에게 “어떻게든 찾아서 만나보겠다“고 답했다. 내 맥줏잔을 알코올 40도의 술이 담긴 그의 작은 잔에 부딪혔다. 나는 다시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다 문득 깨달았다.
‘화장실 이용이 불편해서 이규식은 일부러 독주를 마시는구나. 그도 분명 맥주를 마시고 싶어할 텐데….’
용기(?)를 내 이규식에게 정말 독주가 좋아서 마시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맥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화장실 이용을 도와줄 활동지원사가 없어서, 있더라도 활동지원사를 귀찮게 하는 게 미안해서, 독주를 즐겨 마시는 거라고 했다.
이규식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낯섦에서 비롯된 어색함, 난감함 등은 많이 줄었다. 내가 배려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일상에서 비장애인을 배려하는 건 그였다.
독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규식은 “가을 바람이 좋아 대중교통 이용 안 하고 이거(전동휠체어) 타고 쭉 가겠다“고 말했다. 그와 지하철 타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내 속내를 또 들킨 걸까? 이규식은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정말 바람이 좋아서 그래요. 전동휠체어 타면 1시간이면 가니 문제 없어요. 걱정 마세요.”
이규식은 이 말을 남기고 전동휠체어를 조작해 벌써 저 멀리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출구 인근까지 갔다. 그곳은 이규식이 추락함으로써 투사로 다시 태어난 현장이다.
이규식은 1999년 6월 28일 혜화역 2번출구에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다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였다. 이 사고를 시작으로 장애인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혜화역에는 전국 최초로 양방향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2번출구 앞 바닥에는 당시 사고와 이동권투쟁의 시작을 기념하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이규식은 자기로부터 비롯된 역사적 현장, 자기가 만들어낸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인도 위를 달려갔다. 전동휠체어 등받이 위로 솟은 그의 휑한 민머리가 멀리서도 신호등처럼 보였다. 이규식의 머리 위 밤하늘을 보니 달이 유난히 크고 붉었다.
슈퍼문이 뜬 지난 8월 31일 밤의 일이다.
장애인권 활동가 이규식은 할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전국 순회 북콘서트. 서울, 광주에 이어 이번엔 부산으로 갑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부산 북콘서트에 참여하시는 왓슨 여러분에게는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를 무료로 드립니다. 물론 왓슨이 아닌 모든 시민 여러분도 참여가 가능합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 일시 : 2023년 10월 10일(화요일) 오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 장소 :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공개홀(부산 해운대구 센텀중앙로 42, 부산지하철 2호선 센텀시티역 4번출구에서 약 350미터)
- 내용 :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저자 이규식 강연, 북토크, 참여자 질의응답, 사인회 등
- 참여 대상 :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과 시민 누구나 가능.
(현장에 참여하시는 왓슨에겐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책 한 권을 무료로 드립니다) - 참여 방법 : 아래 링크로 들어가서 신청.
▶ https://forms.gle/FGRNPmvTdAHfwVmK7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