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추적하는 정보공개 소송이 시작됐다. 재판 시작과 동시에 판사의 깜짝 제안으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를 공개하라며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24일 진행된 첫 재판에서 재판장은 “법무부 측이 비공개 처리한 검사 국외훈련 연구논문 전체를 열람ㆍ심사하겠다“고 결정했다. 재판부가 직접 기록물을 확인해 비공개 정보인지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셜록의 정보공개 청구 기간(2016년 1월~2022년 10월)에 해당하는 논문 전체 수는 약 500편에 이른다. 법무부 측은 이중 절반 이상을 비공개하고 있다.
셜록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프로젝트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을 보도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표절로 의심되는 부정·부실 논문을 쓴 검사들의 문제를 기사 9편을 통해 보도했다.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에서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확인했다. 셜록은 해당 검사들이 쓴 연구논문의 표절률과 국외훈련비를 하나씩 분석해 집중 보도했다. 5건의 부정·부실 의심 논문에 지원된 세금은 총 1억 9040만 원에 달한다.
셜록은 취재 과정에서 숨겨진 진실을 발견했다.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올라온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이 원본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들의 연구논문은 449건이다.
하지만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공개된 연구논문 개수는 같은 기간 184건, 약 41%밖에 되지 않는다. 절반 이상이 ‘비공개’ 처리돼 있어서 투명한 검증이 불가능하다. 공개되지 않은 연구논문에는 얼마나 더 많은 문제가 숨어 있을지 현재로선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셜록은 지난 3월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크게 3가지 내용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① 2016년~2022년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가 작성한 연구논문 중 법무연수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논문 전체
② 해당 기간 동안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들의 학위취득 현황
③ 검사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성명, 소속 등
하지만 두 기관 모두 공개를 거부했다. 법무부는 답변서를 통해 전체 국외훈련 연구논문이 모두 공개될 경우 “논문을 통해 수사기관의 수사방법이나 관행 등을 유추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범죄자가 수사를 회피할 우려가 있다”고 거부 사유를 설명했다. 학위취득 현황과 검사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다“고 덧붙였다.
셜록은 지난 6월 1일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 소속 운영위원 박지환 변호사(법무법인 혁신)가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대리했다.(관련기사 : <[액션] 셜록이 소송을 시작한다… 검사들 ‘표절논문’ 잡으러>)
서울행정법원 제8행정부(이정희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2시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 재판장은 원고 셜록 측 소송 제기 취지와 피고 법무부 측 답변 요지를 설명한 후, 법무부 대리인을 향해 깜짝 제안을 했다.
“논문의 연구 결과가 성과물로서 충분히 (가치)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면 비공개될 필요가 있죠. 법원도 재판 자료를 다 공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피고 측 주장대로) 수사 진행과 관련해서 공개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경우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해당 논문을 제출받아서 비공개 열람·심사를 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정보공개법 제20조(행정소송)에는 “재판장은 필요시 당사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제출된 공개 청구 정보를 비공개로 열람ㆍ심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공공기관이 비공개 결정한 정보가 소송 과정에서 청구인에게 유출되는 걸 방지하는 대신, 재판부가 직접 기록물을 확인해 비공개 결정이 적절했는지 판단하는 절차다.
법무부 측 대리인 : “원고가 청구한 기간 내에 비공개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재판장 : “피고 측이 주장하는 부분이 타당하지 확인할 수밖에 없어서 (논문) 전체를 받아서 비공개 여부를 따져봐야 할 듯합니다. 양이 상당할 테지만 재판부에서 비공개 열람ㆍ심사를 할 수 있도록 다음 기일까지 (논문 전체를) 출력물 형태 혹은 파일로 갖고 나오세요.”
법무부 측 대리인 : “(법무부) 소관부서에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를) 준비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알 수 없어서 조금 여유 있게….”
재판장 : “그게 두 달이잖아요. (다음 재판 기일이) 12월이니까요. 두 달이면 제가 보기에는 짧은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변론기일은 12월 19일 오전 10시 3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셜록을 대리한 박지환 변호사는 재판 직후 기자를 만나 “다음 변론기일 때까지 법무부가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를) 가져오면 그날 이후부터 재판부가 비공개 열람 심사를 진행할 듯 하다”면서, “재판부가 직접 자료를 보겠다고 결정한 건 합리적으로 판단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셜록은 지난 5년간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서 표절로 의심되는 연구논문을 작성한 검사 5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 최지현, 오○○)에 대한 부패행위 및 공익침해행위 신고서를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했다.
권익위는 7월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베낀 걸로 보이는 표절 의심 검사 3명(박건영, 김형걸, 진현일)에 대해 “공익신고 검토 결과 표절로 볼 수 있다”면서도, 검사의 연구부정행위 검증 책임주체는 법무부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도 결정하지 않았다.(관련기사 : <“표절은 맞지만…” 검사들, 황당논리로 조치 피했다>)
셜록은 지난 7월 19일 권익위의 조사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을 진행했다. 권익위가 ▲공익침해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은 점 ▲사적규제 책임이 있는 소속기관(법무부)에 ‘표절 검사’들에 대한 징계 등을 요청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권익위는 지난 9월 셜록의 이의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권익위는 이의신청 기각 통지서를 통해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면 조사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조사결과 또는 수사 결과를 이의신청 대상으로 하고 있어 신고자가 제기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