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또 언제 와?”
이지연(가명, 41세) 씨는 딸아이의 질문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혼한 남편 김범수(가명, 41세) 씨는 지난해 2월 아이를 만나고, 한 해가 넘도록 연락을 받지 않았다. 물론 양육비도 주지 않았다.
남편 김 씨와 협의이혼 한 지 약 8년. 이 씨는 열 살 난 딸아이를 혼자 키운다. 그동안 제대로 받지 못한 양육비는 약 4000만 원에 달한다.
2015년 양육비 부담조서에 따르면, 김 씨는 딸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월 8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 김 씨는 이혼 직후에는 가끔씩 양육비를 보내왔다. 하지만 한두 해가 지나자 액수가 점차 줄더니, 결국 양육비가 끊겼다.
결국 이 씨는 2019년 양육비 이행명령을 신청했다. 법원은 미지급 양육비 중 2700만 원을 60개월간 분할해, 월 45만 원씩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그래도 양육비 지급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4년 동안 이 씨는 양육비 직접지급 명령 → 채무 불이행 명부 등재 → 양육비 이행명령(2차) 등 법적 조치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 김 씨에게 ‘감치 5일’ 명령이 내려졌다. 감치란, 법원의 명령에 따라 위반자를 유치장이나 교도소 등에 짧은 기간 가둬두는 제재다. 감치 집행의 유효기간은 6개월. 민사소송에 해당해 강제구인도 어렵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주소지를 이탈해 잠적이라도 하면 감치 집행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빠 보고 싶으면, 보러 갈까?”
지난 5월, 감치명령 만료까지 불과 며칠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 씨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데리고 김 씨를 만나러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모녀는 충북 청주시에서 강원 정선군까지 약 180km를 달렸다.
어느덧 날은 저물었다. 법원 서류에 적힌 김 씨의 주소지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런데 집 앞에 나타난 사람은 김 씨가 아닌, 경찰이었다. 김 씨의 가족이 ‘스토킹’으로 신고한 것이다.
“(전 남편이)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라, 조금 기다리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베란다에서 (가족이) 저를 보고 스토커로 신고했더라고요. 집 앞에 모르는 차가 계속 서 있다고, 무섭다고.”(이지연, 가명)
이 씨는 경찰에게 설명했다. 아이 아빠를 만나러 온 거라고, 아이랑 함께 왔는데 무슨 스토킹을 하냐고. 하지만 경찰은 이 씨에게 ‘100m 이내 접근 금지’ 경고장을 발부했다. 사유는 “명시적 의사에 반해 기다리기”.
다음 날, 이 씨는 결심했다. 전 남편 김 씨의 이름과 얼굴이 인쇄된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할 결심. 김 씨의 주소지 앞에 피켓을 들고 섰다. 경찰은 또 찾아왔다.
“전 남편에게 시위하는 거니까 신고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피켓을 들었죠. 그런데 경찰이 또 오더라고요. (가족들이) 스토킹으로 또 신고했대요. 난 가족과 대화하자고 한 적도 없고, 얼굴도 안 봤는데 내가 무슨 스토커예요.”(이지연, 가명)
그다음 날, 이 씨는 100m 밖에서 다시 피켓을 들었다. ‘역시나’ 세 번째 신고가 들어갔다. 총 3회에 걸친 스토킹 신고에 근거해, 김 씨의 가족은 이 씨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했다. 전 시어머니도 이 씨가 여러 차례 보낸 문자메시지를 이유로 스토킹 혐의 고소에 동참했다.
1년 넘게 연락이 끊긴 김 씨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보낸 문자메시지는 스토킹 증거로 제출됐다. 이 씨는 김 씨의 가족 두 명에게 카카오톡과 문자 메시지를 각각 11회, 17회 전송한 바 있다. “(김 씨에게) 양육비 보내라고 전해달라”, “양육비를 다 받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메시지들이었다.
“이쯤에서 깨끗하게 정리하고 서로의 삶을 살았으면 해. 나에게 좋은 감정 있을 리 없지만 생각이라도 해주길 바란다. (…) 더 이상 진행하기가 너무 지친다. 이젠 진흙탕에서 발 좀 빼고 싶다. 똑같이 애 키우는 사람들인데 서로 한 발씩 양보하자. 나도 뭐라도 해서 ○○이(아이 이름) 키워야 한다.”(양육자 이 씨가 보낸 문자메시지 일부)
검찰도 이 씨에게 스토킹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27일 법원은 이 씨에게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과 8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내렸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300만 원은 생계를 위협하는 큰돈이다.
“(아이 키울) 돈이 없어서 1인시위까지 했는데… 차라리 집행유예형을 받고 싶어요. 벌금이 더 가혹한 벌처럼 느껴져요. 차라리 더 센 벌을 받고 싶어요.”(이지연, 가명)
이 씨는 2019년부터 약 4년간 ‘법적 절차’를 통해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감치명령을 피해 주소지를 벗어나 생활하는 김 씨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국가의 제재는 이 씨에게 양육비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 씨는 김 씨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사는 곳을 옮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연락도 되지 않는 김 씨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주소지로 찾아가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스토킹’이라는 죄가 돼서, 벌금 300만 원이라는 가혹한 벌로 돌아왔다.
벌금을 낼 여력이 없는 이 씨는 지난 6일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벌금 300만 원이면 애한테 겨울옷을 몇 배로 사줄 수 있어요. 애한테 스토킹 전과자 엄마가 있다는 게… 밝혀질 일은 거의 없겠지만, 조마조마한 거죠.”(이지연, 가명)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일 비양육자 김 씨와 두 차례 통화했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유를 묻자 김 씨는 “일이 잘못돼서 돈 줄 여력이 안 됐다”고 밝혔다.
과거 김 씨는 중장비 운전기사였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양육비를 월 30만 원으로 줄여달라는 취지의 감액소송을 걸었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감치명령이 결정된 후 서류상 주소지인 강원 정선군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프리랜서 운전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육자 이 씨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한 것은 전 남편 김 씨가 아닌 그의 가족들이다. 셜록은 지난 2일과 3일, 김 씨의 가족과 일곱 차례 통화했다. 김 씨의 가족은 “제가 (양육비를) 줘야 할 의무도 없는데, (이 씨는) 제가 줘야 할 것처럼 얘기한다. 제 입장에서는 괴롭힘”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 씨의 가족은 “그쪽(이 씨)이 가해자고 저는 피해자”라며, 양육비는 충분히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양육자 이 씨가 이혼 당시 집 보증금 5000만 원을 가져갔고, 또 김 씨 명의의 선산을 경매로 처분해 생긴 돈 약 2000만 원을 받아갔다는 것이다.
반면 이 씨는 집 보증금 5000만 원은 양육비가 아닌, 이혼 위자료 명목이라고 주장한다. 미지급 양육비 중 약 2000만 원을 선산 경매를 통해 받아낸 것은 사실이며, 이 돈으로 그동안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쌓인 빚과 밀린 보험료를 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열 살인 딸이 성년이 되기까지 필요한 양육비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아이의 성장은 어른들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난해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의 겨울옷을 새로 장만하는 일이 당장의 걱정이다.
“작년 겨울에도 문제였는데, 겨울에는 옷이 비싸잖아요.”(이지연, 가명)
여기 또 다른 사건이 있다. 이번에도 똑같이 ‘벌금 300만 원’이 등장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주인공은 6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은 엄마라는 점이다. 밀린 양육비를 받으러 갔다가 스토커로 몰린 사람도, 수년간 양육비를 떼먹은 사람도 똑같이 ‘벌금 300만 원’의 처벌을 받았다. 두 사람이 한 잘못의 무게는 과연 똑같을까.
고영준(가명, 37세) 씨는 전 부인 정효진(가명, 35세) 씨와 2018년 협의이혼했다. 이들 사이에는 두 딸이 있다. 아이들은 각각 두 살, 네 살이 되던 해부터 6년 동안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애들한테 엄마 교통사고 나서 하늘나라 갔다고, 찾지 말라고 둘러댔어요. (이혼하고) 6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연락해온 적도, 찾아온 적도 없어요.”(고영준, 가명)
전 부인 정 씨는 지금까지 양육비를 준 적이 없다. 2018년 7월 양육비부담조서에 따르면, 정 씨는 두 딸이 성년이 될 때까지 양육비를 매월 10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
고 씨는 2020년 양육비를 받기 위해 법적 대응에 뛰어들었다. 2018년 7월부터 2020년 11월까지를 기준으로, 정 씨가 미지급한 양육비는 2800만 원.
법원은 2021년 정 씨에게, 미지급 양육비 중 2400만 원을 매월 80만 원씩 분할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럼에도 양육비를 보내지 않은 정 씨는 이행명령 위반으로 ‘감치 7일’의 판결을 받았다. 정 씨는 감치 결정에 대한 항고에 나섰다.
정 씨는 재혼 후 세 자녀를 연이어 출산했다. 정 씨는 세 아이를 양육하느라 소득활동을 하지 못해 양육비를 지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양육비를 단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고, 2021년 결정된 양육비 이행명령은 미지급 양육비 ‘일부’를 지급하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양육자 고 씨는 전 부인 정 씨를 형사고소 했다. 법적 절차에 들어간 지 약 3년 만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정 씨를 법정에 세우지 않고 약식기소 했다. ‘벌금 300만 원’. 6년간 양육비를 한 푼도 주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지도 않은 정 씨는 그렇게 재판을 피했다.
양육자 고 씨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다시 3년 전으로 돌아가, 양육비 이행명령부터 법적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종전과가 있으니까 다음에는 현실적인 처벌이 나오지 않겠나, 그걸 기대하고 저는 또 (이행명령부터) 해보려고요.” (고영준, 가명)
국가가 정한 법적 절차를 통해서 손쉽게 양육비를 받아낼 수 있었다면, 양육자 이지연 씨가 ‘스토킹’ 신고를 감수하고 전 남편의 집을 찾아갈 필요가 있었을까. 현행 양육비 이행 절차는 이행명령 – 감치명령 – 형사고소로 축약할 수 있다. 세 가지 절차를 단계적으로 거치는 데만 평균 3~4년이 걸린다.
특히 감치명령 소송 단계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비양육자가 위장전입을 하거나, 주소지를 벗어나 잠적이라도 하면 소송서류 송달이 어렵다. 비양육자가 서류를 송달받지 않으면 사건이 기각될 수 있다. 다만, 비양육자가 의도적으로 송달의 회피하거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다는 사실이 소명되면 ‘공시송달’로 감치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감치명령 이후 1년 이내에 양육비를 받지 못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형사고소로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고소를 당한다 해도 실제로 정식재판이 열리는 경우는 드물다. 정 씨의 사례처럼 벌금형의 약식명령으로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
최근 이례적으로 정식재판까지 이어진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판결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아직 양육비 미지급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없다.(관련기사 : <4년 만에 법정 세웠는데… 양육비 안준 배드파더 ‘집행유예’>)
형사고소까지 진행한 양육자가 다시 양육비 이행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또 다시 3~4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양육자들은 ‘이행명령 간소화’를 주장해왔다.
“더 이상 양육비이행법(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양육비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물어본다면 답이 없다. (…) 또 4년 동안 절차를 밟아서 법정에 세워야만 그때 가서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면, 그게 아이들 생존권을 보호하는 법이 되겠나.”(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지난 8일 양육비 미지급 형사재판 선고 후)
지난 7월 양경숙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감치명령 이후 1년 뒤에야 형사고소를 할 수 있다’는 현행 규정을 삭제한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양육비는 아동 생존권이다. 길고 복잡한 양육비 이행 절차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매일 자란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날 권리는 유예될 수 없다.
“(2023년 8월 기준) 형사기소 된 대상자는 895명 중 총 14명뿐입니다. 그만큼 양육비 사건이 형사 기소되기까지의 과정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이 너무나 험난한 데 반해, 양육비 채무자들에게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어 법의 효력이 사실상 상실된 상황입니다.”(2023. 11. 6. ‘양육비 이행법위반 사건, 첫 실형 선고 나올까’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보도자료)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