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안인득 사건’으로 알려진 진주 방화・살인 사건에 국가 책임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5일 진주 방화・살인 사건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범죄 사건에 국가 책임이 인정된 사례는 많지 않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해 7월~8월 진주 방화・살인 사건에는 안인득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찰의 책임이 있다고 보도했다.(관련기사 : <살해 협박-흉기 소지-인분 투척.. 경찰, 왜 안인득 봐줬나>)

셜록은 진주 방화・살인 사건 국가 손배소 판결문을 입수해 이번 판결의 주요 쟁점을 살펴봤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42)이 병원을 가기 위해 2019년 4월 19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주 방화・살인 사건은 경남 진주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안인득이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을 칼로 찌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상해를 입었다. 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은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지 약 2년 만에 아파트 주민을 상대로 이상 행동을 보였고 결국 범죄를 저질렀다.

재판부는 안인득에게 가족을 잃은 원고 4명에게 국가가 총 4억 8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금대훈(가명) 씨는 안인득에게 어머니 A 씨와 딸 B 양을 잃었다. 안인득은 B 양(사망 당시 12세)을 먼저 칼로 찌른 뒤 손녀의 비명을 듣고 뛰쳐나온 A 씨(사망 당시 65세)에게도 칼을 휘둘렀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이 금대훈 씨와 그의 아내 차문홍(가명) 씨, A 씨의 자녀인 금서희(가명) 씨, 금서진(가명) 씨에게 각각 약 1억 7800여만 원, 1억 6500여만 원, 2740여만 원, 304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쟁점 하나. ‘경찰이 범행 전 안인득의 상황에 개입할 필요가 있었는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그렇다’고 봤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경찰은 자신과 타인을 해칠 위험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행정입원・응급입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이번 재판에서 가장 주요한 쟁점은 ‘경찰이 안인득의 입원을 신청해야 했는지’였다. 사진은 사건 현장과 도보 5분 거리에 떨어진 경찰서 ⓒ셜록

안인득은 2010년 지나가는 사람에게 칼을 휘둘러 형사처벌을 받았다. 같은 해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대표적 증상은 환청과 망상이었다. 특히 실제로는 근거가 없지만 주위 사물이나 사람이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피해망상과 관계 망상이 심했다. 

안인득은 2011년 진주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서 약 10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15~2016년 사이에는 통원 치료를 하면서 병을 관리했다. 2015년 겨울에는 자신과 사회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고 사회생활에 대한 의지를 갖는 등 병이 호전되는 경향도 보였다. 그러나 2016년 7월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다.

치료가 중단된 지 약 2년 뒤에 안인득은 아파트 주민을 상대로 살해 협박, 흉기 소지, 인분 투척 등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 행동의 주된 표적은 바로 안인득의 집 바로 위층에 살던 강선정(가명, 당시 54세) 씨와 그의 조카 최실화(사망 당시 19세) 양이었다. 이들은 안인득을 다섯 차례나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자, 2019년 3월 중순 강선정 씨와 최실화 양은 직접 경찰서로 찾아가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안인득은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는 최실화 양을 쫓았다. ⓒ오지원

3월 중순이라는 시기가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때가 안인득의 형이 경찰에 직접 입원을 문의한 때다. 그러나 행정입원・응급입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약 한 달 뒤인 2019년 4월 19일 최실화 양은 안인득이 휘두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직접 경찰서로 갔겠어요? 저는 안인득한테도 화가 나지만 경찰에게 더 분노합니다. 경찰이 왜 있어요? 위험한 사람한테서 국민을 지켜주려고 있는 거잖아요. 누가 봐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위협적 행동을 하는데 아무 조치 없이 갔다는 게….” (故 최실화 양의 오빠 최고건 씨 인터뷰 2022. 6. 8.)

재판부는 경찰이 적어도 3월 중순에는 안인득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고 봤다.

“(경찰이) 안인득에 대한 진단・보호 신청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아가지 아니한 것은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판단되고, 따라서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 (…) 안인득과 그 가족들(형)을 통해 정신질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반복되는 신고 이력을 검토했다면 타인에 대한 위협이 반복되고 있고 심각함을 인식하여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높았다.”(2021가합580851, 서울중앙지방법원)

피고 대한민국은 ‘전문가가 아닌 경찰이 정신질환자에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이 사건 전에 이미 고위험 정신질환자의 입원 신청 여부를 판단할 때 참고할 매뉴얼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다.

경찰청은 안인득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1년 전인 2018년 9월 ‘정신건강복지법 Q&A’를 발간했다. 사건발생 한 달 전인 2019년 3월에는 ‘고위험 정신질환자 112신고가 들어왔어요’ 등의 내부 업무지침을 만들어 행정입원에 관한 경찰의 의무를 구체화했다. 경상남도경찰청에서는 진주경찰서 등 지역 경찰을 대상으로 정신질환자 현장 대응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경찰은 정신건강복지법과 내용, 경찰 내부 업무지침과 매뉴얼, 경찰청의 교육 현황 등을 고려해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해 행정입원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짚었다.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혐의로 구속된 안인득(42)이 병원을 가기 위해 2019년 4월 19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 내 경찰차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 쟁점은 ‘경찰이 나섰다면 안인득은 입원됐을 것인가’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경찰의 입원 신청 이후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진단 의뢰,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의 진단 등이 필요하다. 입원이 의뢰된 정신질환자는 입원일로부터 1개월 내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 입원이 적합했는지도 확인받아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경찰이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행정입원 신청을 요청했다면 안인득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적 개입이 이루어졌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2019년 당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의 증언이 있었다.

판결문에는 이영렬 센터장의 주장이 약 두 쪽에 걸쳐 인용됐다.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이영렬은 만약 경찰이 당시(2018. 9.부터 2019. 3.) ‘안인득을 정신의료기관으로 호송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게 하면서 그간 주민들의 112신고 내용을 알려주었더라면 안인득에 대한 비자의 입원(행정입원 또는 응급입원)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이후 입원적합성 심사에서도 적합하다고 판단되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 전문가들로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비자의 입원이 필요하고 적합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라고 서면증언하였다.”(2021가합580851,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영렬 센터장은 16일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서면으로 제출한 증언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져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경찰이 입원에 소극적인 모습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적이 많았다”고 증언에 나선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참사 이전에 수차례 안인득을 경찰에 신고했다. 오물 투척, 욕설, 위협 등 그의 이상행동은 참사의 전조였다. 하지만 경찰은 응급입원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지원

마지막 쟁점. ‘입원이 됐어도 안인득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것.

재판부는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이유는 안인득의 과거에 있다. 안인득은 2011년 1월 증상이 심해져 경남 진주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후 한 달이 지나자 산책이 허용될 정도로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완화됐다.

원고 측은 “초기 한 달 정도 치료만으로도 안인득은 자・타해 위험이 소실돼 병동 바깥출입이 가능한 ‘비교적 안전한 환자’가 된 적이 있다”며 “만약 2019년 3월경 입원 치료가 이뤄졌다면 적어도 살인・방화를 저지를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안인득에 대한 적기의 정신과적 진단과 충분한 기간의 치료가 이뤄졌다면 공격적 행동이 점차 호전돼 퇴원하더라도 과거처럼 외래 치료를 받으면서 타인의 생명・신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했을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2021가합580851,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판결문 말미에 진주 방화・살인 사건으로 ▲국가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하된 점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화된 점을 들어 “범행으로 인한 손해가 심각하다”고 적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주용성

[전상용 변호사 인터뷰] “단순히 잘잘못 가리는 게 아니라 고통에 귀 기울이는 과정”

법원이 범죄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국가의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로 범죄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어려운 탓이다.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일까. 16일 셜록이 유족을 법률 대리한 전상용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에게 들어봤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이번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국가에겐 범죄를 예방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것이 ‘위법하다’는 결론이 나온 사례는 많지 않죠. 사실, 국가에 법적 책임을 묻는 시도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번 판결은 유족 분들의 용기로 소송이 제기됐고, 1심 법원의 판단으로 그 위법성까지 명확히 인정된 사례라는 점에서 뜻깊습니다.”

– 이번 판결이 가지는 구체적 의미에 대해 말해주시죠.

“일단 인정된 배상액이 큽니다. 선고된 금액은 총 4억 원 정도지만 재판부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5%의 지연손해금까지 인정됐거든요. 다 합치면 유족이 받게 될 금액이 5억 원 정도입니다. 배상액이 이렇게까지 높게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일상을 이어가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유족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배상액이 크다는 점 외에도 이번 판결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이 많습니다.”

–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셨나요.

“판결문이 약 37쪽에 달하는데요. 법원이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충실한 판결을 내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더 중요한 건 판결문의 내용입니다.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이유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적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변론기일 때도 재판부가 유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그때 재판부의 태도가 어땠습니까.

“최후 변론이 끝나고 원고 두 분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말하다 보니 좀 먹먹해지는데… 유가족 분들은 본인들의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안인득이란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 두 명을 잃은 경험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진술이, 원고 분들이 칼에 찔린 가족들을 구조대원들이 심폐소생 하는 장면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피가 솟구치고, 치솟고,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구조대원에게) 묻고, 또 물었다고 합니다. ‘이게 진짜 맞냐’고.

사건 이후 피를 보지도 못하고 일상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 재판부는 끝까지 잘 들어주셨습니다. 담당 변호사로서, 또 한 명의 국민으로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 재판부가 유가족의 말을 끝까지 다 듣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재판은 누구에게나 다 길고 힘든 과정입니다. 유족 분들에게는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을 직시한 것, 그것을 재판부가 경청한 것, 결국 국가의 잘못이 분명하게 인정된 것이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재판을 거치면서치유적 사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잘잘못을 가리고, ‘누가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지급하라’는 결론에 그치지 않고, 당사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고 느꼈습니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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