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안마방 업계의 ‘큰손’이었다. 그가 운영한 불법 안마방은 모두 16곳. 사장님은 태국 여성들을 안마사로 고용했다.
사장님은 안마방 운영에 ‘진심’이었다. 직접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은 물론, 한 곳의 안마사가 부족한 날엔 다른 곳에서 안마사들을 부지런히 ‘공수’해주기도 했다. 단속 스케줄도 수시로 체크하며 안마방을 성실히(?) 운영했다.
그가 4년 동안 안마방에서 벌어들인 돈은 모두 약 38억 원. 불법 안마방 사업(?)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사장님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그의 이름은 밤낮으로 달라졌다. 밤에는 안마방 사장님으로 일하고, 해가 뜨면 새로운 일터로 출근했다. 낮이면 그가 하얀 가운을 입고 새로운 이름으로 일하는 그곳은, ‘병원’이었다. 그의 본업은 바로 의사다.
그의 비밀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의사가 불법 안마방을 운영했으니,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한 수순. 그는 의료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의사면허 취소’ 대상이 됐다.
하지만 반전은 여기서 일어난다. 검찰은 ‘죽어가는 의사면허’에 숨을 불어넣어 줬다. 검찰 덕분에(?) 취소되지 않은 면허를 이용해서 의사는 계속 돈을 벌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9월부터 ‘검사가 살려준 의사들’을 추적했다. 일부 검사들이 면허취소 위기에 놓인 의사들에게 ‘생명연장’의 기적을 선물한 사건들.
셜록은 감사원 보고서에 공개된 재판 확정일자, 혐의, 선고 형량 등을 통해, 현직 의사의 불법 안마방 운영 사건 판결문을 입수할 수 있었다. 판결문에 드러난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2012년 6월 의사 이석민(가명)은 동업자들과 함께 경북 김천시에 불법 안마시술소를 차렸다. 그리고 태국 국적 여성들을 안마사로 고용했다. 현행법상 안마시술소 개설은 관할관청으로부터 안마사 자격을 인정받은 시각장애인만 가능하다.
그는 안마방 사장으로서 인사관리(?)에도 충실했다. 안마사들이 급히 부족할 경우, 직접 다른 안마사들을 업소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자신도 안마를 받으며 안마사들의 실력을 테스트했다. 안마사 숙소 사진을 휴대전화로 전달받으며 직접 관리하기도 했다.
그는 안마방 운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안마방 청소 상태나 영업장부 등을 수시로 체크하고, 직원 등에게 전달받은 애로 사항도 해결했다. 단속 사실도 보고받았다.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안마방 사장으로, 이석민의 ‘이중생활’은 2016년 6월까지 약 4년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16개 불법 안마방을 운영하면서 약 38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석민은 안마방 수익금을 고모 명의의 계좌로 이체받았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결국 이석민은 법의 심판대에 섰다. 검찰은 2017년 3월 의료법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 씨를 기소했다. 그리고 그해 8월 23일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판사 이준영)은 이석민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약 5억 4700만 원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의사로서 의료관련 법규를 솔선수범하여 준수하여야 한다. (중략) 불법 안마시술소의 경우 성매매로 발전되기 쉽고 실제로 피고인이 개설, 운영한 안마시술소의 태국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손님에게 성매매 행위를 하려다가 성추행으로 신고까지 되는 등 불법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는 점, 그럼에도 피고인은 의료법 위반 범행을 부인하며 그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 (…)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참작(했다).”(법원의 양형이유 중)
이석민의 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 형량은 징역 1년으로 감형됐다. 항소심 재판 결과는 2017년 12월 22일 확정됐다. 공모자들도 모두 처벌받았다. 유죄 판결이 확정된 ‘2017년 12월 22일’. 이 날짜가 중요하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법원에서 징역형 판결을 확정받은 상황. 이제 검찰청의 주임검사가 재판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하면, 보건복지부가 이석민의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게 수순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검찰이 이석민의 재판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의사면허 취소 처분도 이뤄지지 않았다. 16곳의 불법 안마방을 운영하다 적발된 의사가, 징역형을 받고도 의사면허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석민은 ‘취소되지 않은’ 의사면허를 가지고 계속 의사로 일했다. 당연히 월급도 받았다. 그의 한 달 급여는 2276만 원(2020년 7월 기준). 여기엔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병원비 일부가 포함된다.
‘안마방 투잡 의사’ 이석민에 대한 면허취소 처분은 2년 7개월이 지나서야 ‘우연히’ 이뤄졌다. 셜록은 류호정 국회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검찰의 미통보로 인한 의료면허 취소 지연 기간을 확인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2월 5일에야 이석민의 재판 결과를 인지했다. 최종심 선고일자(2017년 12월 22일)로부터 약 2년 2개월이 지난 때다.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2020년 6월 1일에야 이석민에게 의료면허 취소 처분을 통지했다.
이마저도 검찰이 알려준 게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방자치단체 등이 요양급여비 환수 등을 사유로 재판 확정 여부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재판 결과를 확인한 것. 이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하면서 뒤늦게 의료면허가 취소된 경우다. 사실상 다른 기관에서 늦게라도 통보해주지 않았다면, 이석민의 의사면허는 영영 취소되지 않을 뻔했다.
문제의 발단에는 검찰이 있다. 재판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알려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그 결과 보건복지부는 2년 7개월이 더 지나는 동안 이석민의 의사면허를 취소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 이석민은 여전히 의사로 일하면서 한 달에 약 2300만 원의 급여를 ‘합법적으로’ 챙길 수 있었다.
의료 전문 변호사인 신현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는 의사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상태를 운전면허에 비유해 설명했다. 만약 ‘면허취소’ 수준의 음주운전으로 단속에 적발된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 사람의 운전면허는 적발 즉시 취소되지는 않는다. 경찰청에서 행정적으로 면허취소 처분을 해야 그때부터 ‘무면허’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의사면허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면허 정지 혹은 취소 처분을 받기 전까지는 무면허 상태가 아닌 겁니다. 검찰에서 형 확정 통보를 안 해주거나 보건복지부에서 의료면허 취소 결정을 안 하면 의사면허는 계속 살아 있는 거죠.”
검찰은 의료인이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 형을 확정받을 경우, 재판 결과를 보건복지부에 통보해야 한다.(11월 20일부터 ‘의료사고를 제외한 모든 범죄’로 확대)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의사면허 취소 처분을 내린다. 하지만 검찰의 잘못으로 ‘취소되지 않은 의사면허’를 가지고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이어간다 해도 불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의사 생명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의사들에게 ‘생명연장의 꿈’을 선물한 검사들. 감사원은 2021년 3월 대검찰청 정기감사에서, 검찰의 재판결과 미통보로 인해 의료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의료인 15명(간호사, 의사, 한의사 등)의 사건을 지적했다. 재판결과를 통보하지 않은 관할 검찰청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 총 9곳이다.
이중 법원의 확정판결 이후에도 ‘취소되지 않은 의료면허’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의료인은 10명이다. 이들의 월 평균 소득은 1587만 원.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병원비가 일부 포함된다.
대검찰청은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의료법 위반을 비롯한 인허가 관련 범죄 통보업무가 적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선 검찰청에 지시 공문을 시행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현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3년 감사원의 정기감사에서도 같은 문제가 또 지적됐다. 감사원이 확인한 사건에 등장하는 의료인은 32명으로, 2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아졌다. 검찰이 ‘살려준’ 의료면허로 돈을 번 의료인도 15명으로 더 늘었다.
그렇다면 ‘안마방 투잡 의사’ 이석민 사건의 담당 주임검사는 검찰 내부 징계라도 받았을까. 당시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 소속으로 해당 사건을 맡은 A 검사는 현재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에서 근무 중이다.
기자는 지난달 9일 A 검사와 통화했다. A 검사는 “감사원이 지적한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놨다. 기자가 피고인의 이름과 불법 안마방 사건에 대해 설명했지만, A 검사는 “많은 사건을 처리해서 정확하게 어떤 사건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누락과 미흡한 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달 (재판 결과 통보 누락을) 점검할 수 있도록 죄명별로 나눠서 점검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검찰이 아예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아마도 그 당시엔 그 부분이 부족했었나 봅니다. 제가 부족했을 수도 있고요. 사실 검사들이 (사건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챙기는 게 쉽진 않습니다.”
A 검사는 대검찰청 차원의 징계나 감사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기자는 지난달 8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대검찰청에도 질의했다. ▲감사원이 지적한 미통보 사건 담당 주임검사들에 대한 징계 여부와 ▲감찰 계획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지난달 26일 “관련 법령 확인 및 검토에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답변처리 기한을 연장했다.
‘검사가 살려준 의사들’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도 이어진다. 짧게 예고하자면, ‘영적인 힘’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한 의료인 이야기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기사 수정 : 12월 8일 오후 3시] 최초 기사에서 인포그래픽을 통해 ‘취소되지 않은 의료면허’로 돈벌이 한 의료인 총 25명의 월 평균 수입이 1569만 원이라고 서술했으나, 다시 확인한 결과 평균값이 1402만 원으로 확인돼 수정했습니다.
※ [기사 수정 : 2024년 2월 21일 오후 4시] 최초 보도에서 법원 판결문상으로 확인된 기소 담당검사를 실명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검사가 확정판결 통보의무자(주임검사)가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후 확인돼 익명으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