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하고 대기 중입니다.”
지난 1월이었다. 전화통화가 늦어져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에게서 대뜸 이런 답이 왔다. ‘삭발’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외쳤다.
“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사무실. 놀란 동료들이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20분 뒤, 메신저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결연한 눈빛으로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고 있는 그의 머리에는 정말 머리카락이 없었다.
삭발의 주인공은 자유로 청소노동자 윤재남 씨. 그는 2015년 작업 중에 사망한 동료의 대체인력으로 용역업체에 입사했다. 그가 머리를 민 이유는 뭘까.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다른 신문의 인턴기자였던 나는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이 위험하다’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을 보고 취재를 시작했다.
현장에 가보니 문제가 확실하게 보였다. 청소노동자들은 차량이 시속 100km 이상으로 내달리는 도로 한가운데를 ‘맨 몸으로’ 걸어 들어갔다. ‘로드킬’ 당한 고양이 사체를 치우러. 노동자들의 안전장비는 안전모뿐이었다.
자유로에서는 이미 2015년 10월, 보름도 안 되는 사이 두 명의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고양시는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때 윤재남 씨를 처음 알게 됐다. 그는 말이 많았다. 목소리도 컸다.
“자유로를 청소할 때 어떤 점이 위험한가요?”
질문 하나만 던져도, 크고 씩씩한 목소리로 줄줄 대답이 나왔다.
“기자님, 저희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먼저 갓길 청소. 이건 그나마 덜 위험합니다. 두 번째로 ‘도로에 뭐가 떨어져 있다’는 시민 민원을 접수하면 그걸 치우러 직접 (도로에) 들어가요. 이게 얼마나 위험하냐면, 자유로에는 화물차들이 정말 많이 지나다녀요. 그런 게 뒤에서 덮칠까봐 무서운 거예요. 또⋯.”
얼마나 말이 빠른지 타자 속도 ‘300타’를 넘는 내 손가락이 그의 말을 다 받아칠 수 없을 정도였다. 말 많은 제보자, 처음 내게 윤재남 씨는 그렇게 기억됐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지난해 3월,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가 된 후다. 취재 중인 다른 사안에 대해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재남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자님. 자유로 상황 여전한데, 여긴 관심 없으세요? 더 이상 아무도 안 죽어서인지, 아무도 기사를 안 써주네요.”
통화 내내 씩씩하던 재남 씨의 목소리는 이 말을 할 때 한층 낮고 어두웠다.
“자유로 다시 와보세요. 정말 여전하거든요⋯.”
어떻게든 기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내 얼굴은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확 달아올랐다. 그날 깨달았다. 말이 많다는 건, 그만큼 간절하단 뜻이라는 걸.
그 간절함이 기자를 움직였다. 부끄러움도 한몫했다. 인턴기자 시절에 쓴 기사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유로를 다시 찾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었다.
마치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다시 찾은 자유로는 그의 말처럼 여전했다.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스피드’였다. 도로에 직접 들어갈 땐 통행량이 적은 틈을 타 재빠르게 움직여 낙하물을 수거해야 했다. ‘눈치껏’, ‘알아서’, ‘감으로’ 목숨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고양시가 관할하는 구간에서 유독 문제가 두드러졌다. 약 46km에 달하는 자유로는 고양시, 파주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나눠서 관리한다. 그중에서 고양시만 유일하게 청소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했다.
위험 직종에 속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전 매뉴얼은 주어지지 않았다. 작업할 때 뒤를 따르는 건 1t짜리 트럭이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또, 도로 위를 지나는 대형 화물차들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사례로 보였다.
취재가 시작되자 재남 씨의 말은 더 많아졌다. 그건 곧 열정이 더 커졌단 뜻이기도 했다. ‘이번만큼은 꼭 안전한 자유로를 만들겠다’는 열정이었다.
“기자님, 다시 취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언젠가는 쓸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모은 자료가 있습니다.”
“메일로 보내주세요.”
“메일로 보내드리기엔 너무 많아요. 대신 이걸 드릴게요.”
윤재남 씨가 건넨 건 1테라바이트(TB)짜리 외장 하드디스크. ‘위험 사진들’, ‘민원 제기 내역’, ‘사망사고 경위서’ 그 안엔 10개가 넘는 폴더 속에 자유로에 관련된 자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렇게 지난 1월부터 자유로 청소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다룬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관련기사 : <매일 자유로를 걷던 남자, 철조망 위에서 스러졌다>) 지금까지 11편의 기사로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함께 행동했다.
보도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자유로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재남 씨의 삭발 소식을 접한 게 바로 이때다.
그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말을 ‘시원하게’ 외치기 위해 ‘시원하게’ 머리부터 밀었다. 그는 ‘해야 할 말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문제 제기했다고 불이익을 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으로 (머리를) 밀었습니다.”
윤재남 씨는 2019년 안전-보건 총괄을 맡은 용역업체 A 소장에게 위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자 A 소장은 윤재남 씨의 보직을 변경했다. 윤재남 씨는 본래 팀장으로서 청소차 운전업무를 담당했으나, 하루아침에 수거원으로 일하게 됐다. 회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A 소장은 주변 동료들에게 “윤재남은 무슨 일만 생기면 회사에 전화를 한다, 다들 윤재남처럼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일 크게 만들지 말라’, ‘입 다물라’ 이거죠. 제가 하지도 않은 행동이 소문으로 돌고, 주변 동료들도 어쩔 수 없이 저와 거리를 뒀습니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결국 정신과 진료까지 받게 됐죠.”
결국 윤재남 씨는 A 소장을 고소하고, ‘직장내괴롭힘’을 사유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셜록이 보도를 시작했다는 건, 다시 한 번 불이익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한 번 겪은 일이 있으니 이런 때일수록 소심해질 법도 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삭발은 ‘불이익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 자체였다.
지난 2월, 그의 소원대로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고양시장을 향해 시원하게 외쳤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 셜록,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고양지부,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가 함께 개최했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 확보하라!”
“노동자도 고양시민이다!”
청소노동자들이 든 피켓 중에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바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회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호다. 이유를 물었더니 ‘고마워서’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홍보라도 좀 해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을 듣는 순간, 추위를 잠깐 잊을 만큼 가슴이 훈훈해졌다.
기자회견에서 윤재남 씨는 짧은 머리를 드러낸 채 마이크를 쥐었다. 아직 겨울 추위가 채 물러나지 않은 2월. 그가 말할 때마다 입에선 하얀 김이 나왔다.
“더 이상 죽을 뻔한 위험을 넘기며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안전하게, 사람답게 일하고 싶습니다. 고양시청은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그의 간절함이 또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셜록의 보도와 기자회견 이후 고양시의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의원은 간담회를 열고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3월엔 이동환 고양시장이 고양시의회 임시회에서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그 결과 자유로에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8월부터 청소노동자들의 뒤에는 후방 보호용 ‘안전지원차‘ 2대가 따라 붙는다. 기존 1톤짜리 ‘작업용’ 트럭과는 별개다. 최후방에 배치되는 안전지원차에는 사고를 대비해 충격흡수장치가 부착됐다. 충격흡수장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청소차 운전자와 시민 운전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고양시는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된 안전매뉴얼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노동자들에게 배포했다. 윤재남 씨의 제보로 셜록이 집중 보도에 나선 지 약 6개월 만에 생긴 변화다.
‘말 많은 제보자’ 윤재남 씨는 상을 받았다. 참여연대에서 주는 ‘2023 올해의 공익제보자상’. 참여연대는 윤재남 씨에게 상을 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윤재남 씨는 용역회사 직원 신분으로 해고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도 6년간 당연한 전제인 ‘안전’을 쟁취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대해 ‘안전지원차’ 도입 등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공익제보를 통해 답답한 현실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공익제보의 긍정적 영향력을 확인시켜줬다.“(참여연대 홈페이지, 2023. 11. 29.)
시상식은 지난 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수상자로 호명된 윤재남 씨는 사회자가 선정 이유를 설명하자 고개를 떨구고 팔꿈치로 눈물을 훔쳤다.
그에게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건넬 땐 기자도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았다.
윤재남 씨는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단상 위에 서서 수상 소감을 말했다.
“‘변할 수 있을까?’보다는 ‘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유로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이곳저곳 찾아다녔습니다. 불이익을 당해도 ‘누군가는 해야 된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틀린 게 아니라 옳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지난 시간이 후회가 아닌 추억으로 남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유로는 달라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 드립니다.”
1년 사이 재남 씨의 머리카락은 많이 자랐다. 그 사이, 재남 씨의 마음에는 희망도 함께 자랐다. ‘끊임없이 외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다.
나도 말하고 싶다. 당신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이었다고. 세상은 당신처럼 말 많은 사람의 ‘간절함’이 바꾼다고.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