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검은물’ 담합 사태에 대한 감사를 결정했다.
LH가 발주한 아파트에서, 입주 직후부터 검은 이물질이 섞인 수돗물이 나왔다. 이른바 ‘검은물’ 사태의 시작. 이후 시민 약 7000명이 공익감사청구에 참여했고, 그에 따라 감사원이 일부 감사에 나선다.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에서는 2018년 4월부터 수돗물에서 검은색 이물질이 나온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입주 5개월 만에 발생한 일이다. LH의 조사 결과, 검출된 이물질은 상수도관 내부에 코팅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로 드러났다.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업체는 ‘담합’ 행위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적발된 곳. 공정위는 2020년 3월 상수도관 업체 13곳의 담합 사실을 밝혀냈다.(관련기사 : <식당서 만나 ‘검은 약속’… 1300억 나눠먹은 그들의 수법>)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들은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총 230건의 입찰에 가담했다. 이들은 “입찰에서 가격 경쟁을 하지 말자”며, 사전에 낙찰 예정 업체 및 투찰 가격(경매 시 제출하는 희망 낙찰 가격)을 합의하고 실행했다.
이어 낙찰받은 물량은 참여한 업체간에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배분하고 이윤을 나눠 가졌다. 예를 들어 한 업체가 낙찰됐다면, 함께 담합을 도모한 ‘들러리 업체’들도 자사의 상수도관을 함께 끼워 넣는 방식이다.
문제는 업체들의 ‘검은 담합’으로 검증되지 않은 물품이 공급됐다는 것. 실제 담합 업체들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물품(상수도관) 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또한,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수요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담합 업체 중 한 곳의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영업추진업체들은 수요기관을 통해 누가 입찰 참여사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은 입찰 참여자에 포함되도록 수요기관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공정위 의결서 2019입담1496 발췌)
여기서 ‘수요기관’은 LH, 한국수자원공사 및 지방자치단체 등 공사 계약을 체결한 공공기관을 말한다. 이러한 수법으로 13개 입찰 담합 업체들이 편취한 금액은 약 1300억 원이다.
“피해상황이 5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음에도,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시흥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기계적·형식적 민원대응을 할 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시민들이 직접 이러한 원인을 파악하고자 (…) 명확한 조사를 통하여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처분을 하여 주실 것을 요청하기 위한 것입니다.”(공익감사청구서 일부)
‘검은물’로 시작된 사태의 배경에는 ‘검은 담합’이 존재했다. ‘검은물’ 피해로 고통받은 시흥시 주민들은 지난 7월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접수했다. 담합 업체에 대한 마땅한 조치를 취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LH 등 공공기관 ▲조달청 ▲시흥시 등 지자체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조사를 요청한 것.
공익감사청구 내용은 크게 아홉 개 항목으로 구분되지만, 그중 특히 주목해야 할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담합 업체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수요기관들이 바로 소송에 나서지 않은 점이다. 조달청은 2020년 9월 LH, 한국수자원공사 및 지자체 등 수요기관에 상수도관 입찰 담합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통보했다. 그러나 수요기관은 즉각 소송에 나서지 않았다.
예컨대 경찰이 도둑을 잡아서 집주인에게 알려줬는데, 집주인이 도둑 맞은 물건 찾을 생각도 안 하고 뭉그적거리기만 한 셈. 수요기관들은 약 2년이 지난 2022년 5월이 돼서야 뒤늦게 상수도관 업체 등에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하나는 수요기관 임직원 등이 업체들의 입찰 담합에 ‘가담’했는지에 대한 조사다. 즉, 수요기관 임직원 등이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의 청탁을 받고 정보를 유출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지 조사해달라는 취지다.
감사원은 공익감사청구에 대해 일부 감사실시를 결정했다. 공익감사 청구인은 지난 19일 감사원의 결정서를 송달받았다.
감사원이 감사를 결정한 사항은 ‘LH 등 수요기관이 조달청으로부터 담합 업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도록 통보받고도 방치한 건’이다. 그 외 8건에 대해서는 서면조사 또는 실지조사를 통해 조사가 종결되거나, 감사청구기간 5년이 지나 조사종결 처리 됐다고 밝혔다.
공익감사청구 대표자인 서성민 변호사는 “공익감사청구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에 대한 감사실시가 결정돼 다행”이라면서, 한편으로는 “기한이 도과하여 수요기관 임직원들이 입찰 담합에 가담한 정황에 대한 감사가 실시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쉽다“고 전했다.
이어 “시흥시가 상수도관 담합 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있었던 2020년 3월, 아무리 늦어도 조달청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 통보를 받은 2020년 9월에는 상수도관 업체들의 불법행위를 알았으면서도, 이를 시민에게 알리거나 관계기관에 문제제기 하지 않고 ‘수질에 문제 없다’는 식의 소극적 대응만 한 것에 다시 한번 분노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상수도관 담합 업체들의 ‘검은 손’을 잡고 그들과 한통속이 된 자들을 밝혀낼 길이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직접 이들의 고발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지난 9월 12일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당한 이들은 LH 등 수요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과,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들.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은 사기 혐의로, 그리고 이들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공공기관 등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을 뇌물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에 대한 형사 처벌 공소시효는 10년이다.
공정위 발표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상수도관 입찰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임직원 모두 ‘부정 청탁’ 문제로는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의 조사는 없었고, 징계나 처벌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셜록이 고발한 사건의 수사 결과가 더 중요해졌다. ‘검은물’을 통해 드러난 ‘검은 세력’. 그리고 그들의 담합 뒤에는 정부기관과의 ‘검은 유착’이 숨어 있었다. 과연 그 책임자들이 응당한 처분을 받는 그날이 올까.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