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아버지를 간병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가명) 씨가 가석방 심사 대상자가 된다고 합니다. 강 씨는 최근 진실탐사그룹 셜록에 편지를 보내 이 소식을 전하며 가석방 심사에 도움이 될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석방 후 안정적으로 체류할 곳이 있다’는 일종의 보증 서류였습니다.
셜록은 출소 후 삶을 지원하겠다고 강도영 씨와 약속했습니다. 이 내용은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미 밝혔습니다. 셜록은 강 씨의 가석방에 보탬이 되도록 같은 취지의 내용을 적어 교정 당국에 보냈습니다. 해당 편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공개합니다.
강 씨는 지난 2021년 5월, 뇌출혈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그의 사연은 같은 해 11월 셜록이 보도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지금 3년째 수감 중입니다.
<가석방을 심사하는 교정 당국 관계자 님에게>
안녕하세요. 탐사보도 전문 매체 진실탐사그룹 셜록 박상규 대표기자입니다. 존속살해 혐의로 2024년 1월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중인 강도영(가명) 씨의 출소 후 생활 관련 의견을 교정 당국 관계자님에게 전합니다.
강도영 씨와 관계를 맺은 사정부터 기술하겠습니다.
강 씨의 사연은 2021년 8월 13일 자 조선일보 기사 <“아들아” 소리도 외면… 중병 아버지 굶겨 사망케 한 20대 아들>을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강 씨의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강도영 씨는 구속 상태여서 취재가 쉽지 않았습니다. 강 씨의 변호인, 이웃, 친구, 병원 관계자를 통해 기사에 담기지 않은 사건 이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 씨의 사정을 알아가고, 사건의 퍼즐을 맞출수록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의 범죄는 패륜보다는 우리 사회 복지체계와 관련 있는 ‘간병살인’으로 보였습니다.
수감된 강도영 씨와는 편지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약 3개월에 이르는 심층취재를 통해 강 씨의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전한 2021년 11월 1일 자 기사 제목은 이렇습니다.
<“쌀 사먹게 2만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많은 시민이 이 기사에 관심과 호응을 보였습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간병의 고통과 영케어러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조차 최대한 국가가 자신들에게 다가온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 못한 것은 저희들의 책임”이라며 정책 점검을 다짐했습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이런 사건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여러 복지제도가 있었음에도 5년 내에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어서 안타깝다”고 말하는 등 책임을 통감했습니다.
시민 6000여 명은 강도영 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서명했습니다. 저는 강도영 씨의 사연을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라는 제목으로 심층 기획보도를 이어 갔습니다. 기사를 총 17개 썼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3월 2일, 강도영 씨 사연을 전한 저에게 인권보도상 본상을 줬습니다. 상금은 150만 원이었습니다. 시상식 자리에서 저는 이런 소감을 밝혔습니다.
“강도영 씨가 혼자 아버지를 돌볼 때, 곁에 어른 한 사람만 있었어도 비극적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수감 생활을 하는 지금도 강도영 씨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셜록이 곁에서 돕고 보살피겠습니다. 셜록은 강도영 씨가 교도소에서 나오면 살 집을 마련해줄 예정입니다. 오늘 주시는 상금은 그 집을 구하는 데 보태겠습니다.”
강 씨 사연을 보도하는 내내 ‘어른 딱 한 명의 부재’가 안타까웠습니다. 그의 곁에 도와주는 사람 한 명만 있었다면, 행정기관에서 강 씨의 사정을 먼저 알았다면, 아들이 아버지를 사망케 한다는 존속살해는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강 씨의 사연만이 아닙니다. 기자로 약 20년 일하면서 “도와주는 사람 한 명만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안타까운 사건사고의 주인공을 숱하게 만났습니다.
아버지 사망으로 강도영 씨에게는 가족이라 부를 사람이 더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빈 몸입니다. 저는 강 씨가 수감된 직후부터 편지로 소통하며 책과 영치금을 넣어주고 있습니다.
인권보도상 시상식 때 밝힌 대로, “출소 후 살아갈 집을 마련해주겠다”고 이미 강도영 씨에게 약속했습니다. 물론 집을 사주겠다는 건 아닙니다. 강도영 씨는 수감 전에 살았던 대구광역시 ○동에 계속 거주하길 희망합니다. 저는 그가 원하는 지역에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하고 기본적인 생활 필수품(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마련해줄 예정입니다.
강도영 씨가 자립할 수 있도록 출소 후 3개월간 기본 생계비도 지원할 생각입니다. 그와 함께 행정기관을 방문해 정부 지원을 연계하고, 퇴학 처리된 대학교의 재입학도 알아볼 예정입니다. 그밖에도 강 씨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살펴보고 도울 생각입니다.
제가 일하는 셜록은 문제해결까지 지향하는 매체입니다. 복지제도나 법을 바꾸진 못했지만, 강도영 씨 출소 후에 그의 삶에 버팀목이 돼주려고 합니다.
강도영 씨는 그동안 제가 보내준 책을 꾸준히 읽었고, 과체중이던 몸을 운동으로 감량해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해졌습니다. 교도소에서 규칙을 잘 지키는 등 모범적인 생활을 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강도영 씨가 가석방 심사에서 좋은 결과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더는 불행한 일에 빠지지 않도록 저와 셜록이 좋은 이웃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어른 딱 한 명’의 역할을 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