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공업고등학교는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구 한가운데에 있다. 도로명 주소는 교학로(敎學路). 학구열이 뜨거운 동네다. 이곳의 다른 고등학교들은 대개 방과 후까지 10교시 수업을 하는데, 이것도 부족한지 밤 9~10시까지 학교에 남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많이 다르다. 학교에 오는 것도, 남아 있는 것도 힘들어 한다. 내가 가르친 어느 반은 학기 초 23명으로 시작했으나, 학년 말에는 교실에 16명만 남았다. 1년간 7명이 학교를 떠났다.
공고 아이들은 왜 학교에 오지 않을까? 저마다 이유와 사정이 있을 터. 학교도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못 끄는 건 문제다. 학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지난해 우리 학교는 공고 아이들을 위한 특별 교육과정을 시행했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축구, 당구, 게임, 실용음악, 등산, 필라테스, 헬스 등 ‘체험 중심 과목’으로 개설한 것이다. 교육청 도움을 받아 만든 ‘자기성장 프로젝트’인데, 국영수처럼 정식 교과명으로 못 박았다.
수업은 매주 네 시간씩, 체험 중심으로 자아탐색반과 자아성장반으로 운영했다. 학생-교사 간 좋은 소통을 위해 한 반을 10여 명으로 작게 꾸렸다. 교사는 교실당 2명을 배정했다.
나는 헬스부를 맡았다. 국어교사가 웬 헬스냐고? 일단 헬스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이 참에 나도 운동 좀 하자는 사심도 있었다. 새해가 밝으면 동네 헬스장 며칠 다니다 말기를 반복한 수준이지만,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나는 구체적인 목표 세 가지를 적시한 학생 모집 공고를 학교에 붙였다.
<헬스부 모집>
– 자신 있는 사람만 들어올 것
목표1 : 바디프로필 촬영
선명한 복근 장착해 전문 사진가에게 바디프로필 한 번 찍읍시다!
목표2 : 보디빌딩 대회 출전
입상 못 해도 좋습니다.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서는 게 목표입니다!
목표3 : 트레이너 자격증 획득!
자격증 갖고 있으면 세상살이에 도움이 됩니다! (자격증 취득은 3학년만 가능)
모집 당일 12명 모집에 약 30명이 지원했다.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1차 관문은 인내력 테스트. 팔굽혀펴기 10세트, 스쿼트 500개를 체육관에서 시행한 후 다음 날 근육통을 즐길(?) 수 있으면 2차 테스트에 오라고 했다. 여기에서 10명이 자진 포기했다.
2차 관문은 성실성과 끈기. 우리 학교 아이들은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싫어한다. 의도적으로 방과 후 30분 뒤인 오후 5시로 2차 테스트 시간을 잡아 30분간 오래달리기를 했다. 이 과정에서 7명이 탈락, 최종 13명이 살아 남았다. 정원 초과였지만 모두 헬스부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부 구성은 완료. 그 다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저질렀지만 앞이 막막했다. 대구의 모 대학 교수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교수님께서 아이들을 위해 흔쾌히 5주간 기본 수업을 해주셨다,.
이제 본격적으로 운동할 시간. 기구도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그야말로 산 너머 산. 헬스부 부장 동연(가명)이가 나섰다. 녀석은 자신이 다니는 헬스장 대표님을 설득해 큰일을 해냈다. 대구에서만 10개의 헬스 체인점을 운영하는 대표님은 알고 보니 우리 공고 졸업생이었다.
대표님은 ‘대구에서 가장 좋은’ 헬스장을 우리 학생들에게 무료 개방했다. 직접 운동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학교는 대표님을 산학겸임교사로 채용을 했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 그 다음엔 뭘 해야 하는 거지? 무작정 역기만 든다고 몸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책과 유튜브로 공부하며 무모한 도전을 이어갔지만, 국어교사의 한계는 금방 드러났다. 벌써 4개월이 흘렀다. 나와 아이들은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동네 체조 수준에서 끝나면 어쩌지?’
마음속 걱정이 근육보다 크게 불어날 즈음, 가까운 선생님이 이런 조언을 해줬다.
“헬스부 목표를 다시 환기하고, 아이들한테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보라고 해보세요.”
“우리 공고 애들이 그걸 할 수 있겠어요? 늘 무기력하고 잘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인데….”
이런, 교사로서 해선 안 될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폄훼 의도는 없다고 해명하려는데, 동료 선생님은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선생이 안 믿으면 누가 아이들을 믿겠어요.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세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어졌다. 조언대로 나는 헬스부 아이들에게 활동지를 나눠주고, 목표, 헬스부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것 등을 작성하게 했다. 그걸 바탕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형준(가명)이가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건데요. 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했어요. 그런데 제가 헬스를 시작하고 덩치가 커지자 더는 아이들이 저를 건드리지 않았어요. 저는 헬스를 해서 저처럼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도하고 싶습니다.”
늘 씩씩했던 형준이가 의외의 고백을 하자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남호(가명)도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110kg입니다. 뚱뚱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새 삶을 살고 싶습니다.”
헬스부 부장인 동연이가 말을 이었다.
“저는 대회에 나갈 수 있다고 해서 헬스부에 들어왔어요. 언젠가는 꼭 무대 위에 서보고 싶은데… 우리, 대회는 나갈 수 있을까요? 지금 이 몸으로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요.“
동연이 말대로 이대로는 불가능했다. 적당한 운동으로 지방을 뺄 순 있어도 대회는 어림없었다. 식단을 관리하고, 근육을 극대화하는 피 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샘, 동연이 말이 맞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애초에 우리는 대회 나갈 결심으로 모였으니까, 도전은 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보디빌딩 대회 출전은 모집 공고문에 내가 직접 쓴 것이다. 나는 두둑해진 ‘40대의 뱃살’을 쓰다듬으며 아이들의 말을 들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절실했고, 목표도 뚜렷했다. 문제는 공고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인 나였다.
머리를 세게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100일 챌린지’를 시작하기로 했다. 각자 목표를 설정하고, 운동과 식단, 시간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웠다. 운동뿐만 아니라 헬스부에서 즐겁게 지내기 위한 나름의 미션도 만들었다. 고기 무한 리필로 먹기, 바다 가기, 캠핑 가서 라면 먹기 등, 목표에 이르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어렵게 정비한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게 동연이와 나는 가장 가까운 때에 열리는 보디빌딩 대회를 찾아 접수했다. WNC(World Natural Championship) 보디빌딩 대회가 7월 22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배 나온 아저씨와 17살 고등학교 1학년들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교사인 내가 모범을 보여야 했다.
나는 일단 하루 끼니를 닭가슴살 150g, 탄수화물 150g(밥 또는 고구마), 사과 1개, 야채로 구성했다. 운동은 새벽과 저녁으로 2회를 잡았고, 시간이 지나자 이마저도 불안해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어느 날 동연이가 말했다.
“선생님, 죽겠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지방이 안 빠져요.“
가장 불안한 건 나였다. 40년을 쌓아온 뱃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축 처진 배를 바라보다가 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국어교사인지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운동선수인지 헷갈린 적도 있다. 학교의 많은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힘은 동나지 않았다. 몸의 변화는 더뎠다.
“샘, 우리 이러다가 보디빌딩 대회에서 입상은커녕 웃음거리만 되겠어요.”
다시 동연이가 불안감을 토로했다. 어느새 살짝 들어간 배를 쓰다듬으며 내가 위로했다.
“우리 목표는 어차피 무대에 서는 거잖아. 입상보다 완주가 의미가 더 크니까, 입상은 못해도 괜찮지 않을까? 대신 복근은 남겠지.“
확신에 차서 말했지만, 사실 불안감은 지방처럼 좀처럼 줄지 않았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운동을 더 강하게 했고, 체중은 매주 2~3kg씩 빠졌다. 84kg이었던 몸무게는 두 달 만에 74kg이 되었다.
드라마틱하게 아름다운 몸이 되면 좋겠지만, 키 185cm에 몸무게 74kg은 아무리 봐도 40대 아저씨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볼은 야위고, 광대뼈는 더욱 돌출됐다. 운동 시간에 비례해 눈가 주름도 많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어디 아파? 건강검진은 빠짐없이 받고 있지? 조심해라. 40대는 한 방에 훅 가는 나이다.”
대회가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탄수화물을 150g에서 100g으로 줄였다. 100g은 밥 반 공기도 안 되는 양이다. 유산소 운동을 더욱 늘렸다. 등과 배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태였다.
대회 일주일을 앞두고는 아예 탄수화물을 끊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닭가슴살과 과일, 채소뿐이었다. 위기는 대회 전날 찾아왔다. 수분을 조절해야 해서 500ml 물통을 들고 다니며, 그걸로 버텼다. 오후 8시, 사우나에서 그나마 몸에 남은 수분을 모두 증발시키는데 어지러움을 느꼈다. 뜨거운 몸을 식히기 위해서 찬물 탕에 들어갔을 때, 그 물을 모두 마시고 싶을 만큼 갈증이 심했다.
드디어 대회 당일, 대회장에는 그야말로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각미남들과 헐크들로 가득했다. 상대적으로 나의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대회 당일 몸무게는 68kg이었다. 약 세 달간 16kg 감량했다. 키에 비해서 몸무게가 너무 적은 바람에 볼륨감이 없어 보였다.
반면, 동연이는 멋진 몸을 만들었다. 첫 대회임에도 운동과 식단이 조화를 잘 이뤄 훌륭한 몸을 완성했다.
“선수 번호 213번, 무대로 나와주세요!”
강렬한 빛이 무대 위로 쏟아지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뿌연 연기 너머에서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다잡고 순서를 기억하려 애를 썼다.
‘광배는 펼치고, 어깨는 내리자. 하체에 힘 빼지 말고, 여유 있는 미소로 심사위원을 응시하자. 그 다음은….’
나는 학생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열심히 포즈를 잡았다. 온몸에 갈색탄을 바르고, 까만 팬티(?) 하나만 달랑 입은 채, 마흔을 넘긴 아저씨 교사는 숨을 가다듬었다. 온몸의 미세한 근육까지 크게 보이도록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었다.
동연이는 보디빌딩 고등부 1위를 차지했다. 나는 마스터즈 스포츠모델 3위를 했다. 첫 대회였지만, 우리 모두 입상을 했다. 1위부터 3위까지는 트로피를, 4위부터 7위까지는 메달을 주는데 우리는 보기 좋게 금색과 동색 트로피를 하나씩 받았다.
주최 측은 “교사와 학생의 도전이 아름답다”며 우리를 무대 위로 불러 큰 박수를 유도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우리 학생들을 향한 박수였다.
“공고 애들은 안 돼”라는 노골적인 괄시 속에서 우리는 함께 노력했고 무대에서 같이 박수를 받았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다’는 옛말은 교육열 뜨거운 한국에선 언제나 무기력했다. 그 한복판에서 우린 어쨌든 몸으로 무언가를 해냈다.
나는 무대 위의 이 박수와 환호를 아이들이 머리가 아닌 몸으로 오래 기억하길 바랐다. 그 순간 내 마음은 울고 있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도 그랬다. 전날에 온몸의 수분을 다 날려버린 탓이지 싶었다.
이 한 번의 도전과 성취, 무대의 박수는 이후의 많은 걸 바꿨다.
110kg이었던 남호는 25kg 감량에 성공했다. 앞으로 10kg을 더 감량해 바디프로필 찍을 꿈에 부풀어 있다. 헬스 지도자가 꿈인 형준이는 몸이 더욱 커졌다. 벌크업에 성공했고, 2024년 첫 보디빌딩 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나와 함께 대회에 참여했던 동연이는 대구의 고등부 전국체전 감독님과 선수들을 만났다. 감독님은 동연이를 보고 최근 5년간 만난 고등학교 1학년 중에서 가장 몸이 좋다고 말했다. 동연이는 올해 전국체전 출전을 목표로 운동을 하고 있다.
벌써 2024년 1월이다. 최근 학교로 반가운 전화가 왔다. 1년간 우리 헬스부의 선생님이자 모교 선배로서 학생들을 길러 준 헬스장의 대표님이었다. 대표님은 “학교 밖에서 운동하는 후배들이 마음에 걸렸다”며 고가의 헬스기구를 학교에 기증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올해 우리 공고생들을 위해 어떤 걸 할까.’
오랜 버릇대로 배를 만지며 궁리하는데, 손끝에 식스팩이 느껴졌다. 아이들과 함께 한 ‘100일 챌린지’가 떠올랐다.
역시 몸은 머리보다 오래 기억한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