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떨어져서 광주에 있다 보니까 서울에서 있었던 일은 잊게 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모르겠어요.”(최은석, 이하 2023. 12. 5. 인터뷰)
서울 성북구에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 초등학교가 있다. 연간 학부모 부담금이 약 1500만 원(2022년 기준)이나 되는, 아무나 못 가는 학교. 최은석(55)은 그 ‘알아주는’ 학교의 교장이었다. 4년 전까지는 그랬다.
그는 지금 광주에서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한다. 가족들은 서울에 남겨두고 혼자 광주로 왔다. 처음에는 혼자 방을 얻어 지내다가, 지금은 친누나 집에서 살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가족을 만나러 서울에 간다. 그는 교장이 될 때부터 언젠가 평교사로 돌아갈 생각은 했지만 ‘이런 방식’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 교사는 2002년부터 우촌초등학교(학교법인 일광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2016년부터 학교 법인은 그에게 교장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해 교장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정년까지 13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교장 임기가 끝난 뒤에도 평교사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학교 법인은 그를 배려해 정관 변경을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휴지 조각이 됐다. 2019년 5월 ‘사건’이 터졌다. 최은석 당시 교장이 학교 측이 추진하던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폭로해버린 것. 그는 당시 교감이었던 이양기, 교직원 유현주, 박선유 등 5명과 함께 공익제보자가 됐다.
“2017년에 교실 전체를 리모델링하면서 전자칠판으로 바꾸고, 무선 랜까지 다 설치했어요. 스마트기기만 있으면 됐는데, 거창한 것도 아니고 태블릿PC 정도만 있으면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제작비를 말도 안 되게 책정한 거죠.”(최은석)
통상 3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는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이 24억 원으로 부풀려져 있었다. 누군가 교비를 빼돌리려 하는 게 분명했다. 그 ‘누군가’는 놀랍게도 이미 감옥에 갇혀 있었다. ‘옥중 지시’로 교비 횡령을 명령한 사람, 이규태(74) 일광그룹 회장이었다.
사실 이 회장은 학교에 관해 지시할 권한이 없는 ‘전’ 이사장에 불과했다. 그는 학교 법인을 인수한 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일광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이사장 임기가 끝난 뒤로도 가족과 측근에게 이사장 자리를 연이어 맡기고, 이사회도 자신의 측근으로 구성했다.
무기중개상이 본업(?)인 이 회장은 국군기무사령부 군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2015년 구속 수감됐다. 그렇게 수감된 상태에서 학교에 있는 교직원에게 편지와 음성 녹음, 영상 파일 등을 보내 스마트스쿨 사업 강행을 지시했다.
2018년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10개월과 벌금 14억 원의 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이 회장은 가석방됐다. 그는 옥중에서부터 지시해온 ‘스마트스쿨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이 회장은 종종 이런 비유를 했어요. ‘야 니가 나한테 만 원을 줬어. 그럼 그 만 원을 니 허락 받고 써야 되냐? 이미 니 손을 떠났으니까 이 돈은 내 돈이야.’”(최은석)
교장이었던 최 교사는 만약 자신이 스마트스쿨 사업 계획을 결재하면, 나중에 모든 책임을 자신이 ‘덮어써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서울시교육청에 모든 것을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즉시 감사에 나섰다. 그 결과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은 취소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회장의 강압에 의한 추진’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공익제보 이후, 학교 법인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타깃’은 최은석 당시 교장을 비롯한 공익제보자들이었다. 그들은 최은석 교장을 직위해제 한 뒤, 해임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성 징계라며 시정을 요구하자, 해임을 취소했다. 하지만 곧바로 ‘임용기간 만료’를 이유로 직권면직 처분을 내렸다. 2020년 4월이었다.
“(최은석은) 정년 전에 교장임기가 만료되어도 교원으로 재임용될 수 있다는 규정을 정관에 신설해 주겠다는 법인 측의 약속을 받고 교장직을 수락한 것이다 (…) 갑자기 임기만료로 인한 당연퇴직을 통보한 것은 부패행위 신고로 인한 불이익조치에 해당한다.”(국민권익위원회 신분보장조치 결정문, 2020. 4. 20.)
국민권익위원회는 학교 법인의 직권면직 처분이 공익제보자를 향한 불이익 조치라고 결론지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역시 최 교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학교 법인은 그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6월 대법원은 학교 측에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학교 법인의 직권면직 처분이 공익제보자를 향한 불이익 조치라고 결론지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역시 최 교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학교 법인은 국민권익위원회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모두 불복해 각각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두 소송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학교 법인은 전부 패소했다.
그럼에도 최 교사는 지금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은 여전히 교장 임용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그의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학교 법인은 최 교사에게 6건의 고소・고발 및 소송도 제기했다(지난해 연말 기준). 그중 2건은 최 교사의 승소 또는 종결처분으로 끝났고, 나머지는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가족에게 제일 미안하죠. 남편이,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 집에만 있는 모습이 너무 안 좋잖아요. 처음에는 아는 동생이 사업을 해서 그걸 도와주면서 그렇게 버텼어요. 그러다 다행히 기간제 교사를 할 수 있었죠. 손 놓고 있었으면 저도 (정신질환으로) 입원했을 것 같아요.”(최은석)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언제쯤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 달, 두 달 하던 것이 1년, 2년이 됐고, 복직을 기다리는 시간은 어느새 3년을 넘겼다. 학교 법인과 법적 다툼도 길어지면서 생활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졌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은 상황. 결국 그는 지난해 5월부터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9년 5월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학교 교비는 개인 돈이 아니잖아요. 내가 문제제기를 안 했으면 (당장은)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언젠가 드러날 문제였어요. 제가 그때 (스마트스쿨 사업 계획을) 결재했으면, 감사에서 밝혀졌을 거예요. 그러면 이규태 회장은 지금처럼 발뺌하면 끝이고.”(최은석)
다음 달이면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의 기간제 계약 기간도 끝난다. 새로운 기간제 교사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지난 19일 최 교사는 우촌초 공익제보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다.
“기자님, (저희 누나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때 또 취재하러 오세요.”(최은석, 2024. 1. 19.)
“예, 회장님!”
지난해 12월 17일 일요일 오전 9시쯤, 서울 성북구의 한 교회 주차장. 주차관리인으로 보이는 노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깍듯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검은색 외투에 노란색 어깨띠를 두른 주차관리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교회 출입문 바로 앞 ‘주차 명당’ 자리에 주황색 고깔이 세워졌다. 오전 10시가 다 될 때쯤, 길고 검은 세단 차량이 주차장에 진입했다. 벤츠-마이바흐 S클래스 2023년형. 출고가가 4억 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승용차다.
고깔로 미리 ‘확보’해둔 주차 자리에 마이바흐가 세워졌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이규태 회장. 그는 주차관리인과 인사를 나눈 뒤, 교회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이규태 회장을 만나러 갔던 지난 7일에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마이바흐의 소유자는 이 회장도, 그의 부인도 아니었다. 이 차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이 회장은 대체 어떻게 이 차를 몰고 다니는 걸까. 사실 이 회장은 그럴 돈이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2015년 국세청은 서울 성북동에 있는 한 고액체납자가 사는 주택으로 현장조사를 나갔다. 국세청은 그곳에서 “고급 와인 1200병, 명품가방 30개, 그림 2점, 골프채 2세트, 거북선 모양의 금장식 1점, 외화(약 150만 원 상당) 등을 압류”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그 집이 바로 이 회장이 사는 집이었다.
그는 현재까지도 국세청 홈페이지 ‘고액체납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 체납액은 무려 199억 원.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에게도 그 집에 얽힌 추억(?)이 있다.
“집 지하에 와인 창고가 있어요. 세무감사나 압류 들어올 때 와인병 나른다고 제 동생까지 투입됐거든요.”(공익제보자 유현주 인터뷰, 2024. 1. 17.)
“학교 인수하고 몇 년 후에 성북동으로 (이규태 회장이) 이사를 했거든요. 이사할 때 저희(유현주와 박선유)는 학교에서 근무 안 하고 불려가서 집 정리했어요.”(공익제보자 박선유 인터뷰, 2024. 1. 17.)
공익제보자들이 말하는 ‘성북동 그 집’은 약 430평 규모의 지상 2층, 지하 1층 단독주택이다. 2004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하발산 INC’라는 회사가 사들였다. 이 회장의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라는 의혹이 있었던 회사다.
“이 장로의 인생은 ○교회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01년 건축위원장을 맡아 130억원이 넘는 규모의 공사를 진행했다. 30억원이 넘는 건축헌금을 내고도 건축비가 모자라자 회사를 전세형태로 교회 사무실로 옮기기도 했다.”(국민일보 <“사글셋방 시절부터 교회를 1순위로.. 사업은 하나님이 이끌어”>, 백상현 기자, 2020. 11. 17.)
이 회장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 교회의 ‘원로장로’다. 그는 지난해 12월 교인들 앞에서 대표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기도의 주제는 ‘교만과 욕심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보냅니다. 돌이켜보면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았고, 남보다는 나의 생각과 주장을 앞세운 한 해였습니다. 매년 반성하고 또 다시 후회하면서도 반복하는 잘못된 습관과 정신을 바르게 잡아주시옵소서. (…) 시간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교만하고 욕심스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이규태 회장의 대표기도 중, 2023. 12. 10.)
2020년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법인 임원 13명에게 이규태 회장의 전횡을 묵인하고 동조한 책임을 물었다. 임원 전원에 대한 승인 취소 처분을 내린 것. 하지만 학교 법인은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걸었다. 현재도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2021년 12월 검찰은 스마트스쿨 사업을 강행한 이 회장과 그의 측근, 학교 관계자 등 12명을 기소했다. 업무상횡령, 강요, 입찰방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 하지만 이 역시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직 그들은 아무도 벌을 받지 않았다. 이 회장은 여전히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교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고, 그의 편에 섰던 교직원들은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생계를 걱정하고, 기나긴 법적 다툼에 시달리는 건 오직 공익제보자들뿐이다.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은 존재한다. 바로 서울시교육청의 ‘구조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특별시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10조에 따라 공익제보자에게 임금 상당금액, 소송비용, 병원비 등 구조금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구조금 지급 기한은 최대 36개월까지다. 그 때문에 최은석 교사는 지난해 4월부터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 함께 스마트스쿨 비리를 제보한 교직원 유현주 씨와 박선유 씨도 올해 5월이면 구조금 지급이 끝난다.
물론 이들을 구제해야 할 근본적인 책임은 학교 측에 있다. 학교에서 쫓겨난 공익제보자들을 전부 복직시키고, 이들을 향한 무더기 고소・고발을 철회하는 것. 하지만 학교 법인은 복직을 계속 거부하고 있고, 심지어 법원 판결을 통해 복직한 교사에게 교무실 책상을 내주지 않는 등 괴롭힘을 계속하고 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지난 17일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참여연대가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현직 이사장들을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권익위법)’ 위반으로 고발한 것도 그 때문이다.(관련기사 : <[액션] 공익제보자 괴롭힌 사학재단, 셜록이 고발했습니다>)
구조금은 공익제보자들을 향해 최소한의 ‘사회적 지지’를 보여주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학교 측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 서울시교육청의 구조금마저 끊긴다면 공익제보자들은 당장의 생계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게 된다. 공익제보자들은 우선 조례 개정으로 구조금 지급 기한을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례를 빨리 개정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유현주, 박선유)은 구조금이 끊기는 상황이죠. 공익제보를 하면 신분상 불이익이 너무 심하잖아요. 공익제보를 해서 잘못된 걸 바꾸려는 사람들을 생활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내버려둔다면, 그건 제도의 문제가 심각한 거죠.”(공익제보자 이양기 인터뷰, 2023. 11. 28.)
한편, 셜록은 지난 2일부터 학교법인 일광학원, 우촌초, 이규태 회장에게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 문자 메시지, 우편, 직접 방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5일에는 우촌초와 학교법인 일광학원에 대한 질의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이 회장에 대한 질의서는 일광그룹 주소지 건물 경비원에게 전달했다.
지난 7일에는 서울 성북구의 한 교회 주차장에서 이 회장을 만나 질의서와 명함을 건넸지만, 그는 취재를 거부하고 교회 안으로 사라졌다. 현재까지도 학교 법인과 이 회장 측에서는 아무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