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그놈의 텔레그램 성폭력 메시지는 뜨거운 한낮에 도착했다. “너도 이런 거 좋아하지?” 딥페이크 음란물로 돌아온 자신의 얼굴. 그놈은 장예진(가명) 씨 사진을 보며 자위하는 영상까지 보냈다. “누나, 연구하지 마요. 어차피 나 못 잡아.” 그놈은 다 지켜본다는 듯, 장예진 씨가 고소장을 쓸 때도 메시지를 보냈다. 그놈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전화번호 교체로 스마트폰 진동은 멈췄으나, 심장의 요동은 계속됐다. 성폭력 사진을 줄줄이 본 탓에 구토가 쏟아질 듯이 속이 울렁거렸다.
‘그놈은 내 얼굴을 넣은 합성 사진을 텔레그램 이 방 저 방에 올리고 있겠지…. 그 방의 무리들은 낄낄거리며 음담패설을 나눌 테고…. 어떤 놈은 또 그 짓을 하며 영상을 찍겠지….’
서대문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한 후에도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장예진(가명, 30대 초반) 씨의 마음은 계속 추락했다.
‘범인은 도대체 누굴까. 왜 내가 이런 고통에 빠져야 하지…?’
가해자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이것은 날카로운 통증이자 정밀한 타격이었다. 그날 밤, 퇴근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한없이 가라앉은 딸 장예진 씨에게 말했다.
“그거 못 잡는다.”
높은 보안 기능에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방침까지, 장예진 씨도 텔레그램 범죄 수사가 어렵다는 건 안다. 그렇다고 고소를 접을 순 없었다. 고소는 자신에게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이니까. 비슷한 피해자가 나왔을 때 가해자를 잡는 단서가 될 수도 있고.
경찰에 이어 가족에게도 무기력한 말을 들으니 힘이 빠졌다. “어려워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보자”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한국 메신저에서 벌어지는 일도 해결 못할 때가 많은데, 텔레그램에서 활개치는 놈들을 어떻게 잡아. 전화번호 바꾸고 그러는 게 오히려 그놈한테 말리는 거야.”
“아빠, 나도 알아요! 아니까, 그만 하시라구요!”
아버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IT 기업에서 일해 누구보다 메신저의 세계를 잘 안다. 딸의 디지털성폭력 피해와 생애 첫 고소장 접수 노력을 가볍게 본 건 아니다. 다만, 그 순간 아버지의 말이 위로보다는 포기를 종용하는 훈계로 들려 장예진 씨의 말도 뾰족해졌다.
대화는 싸움으로 번졌다. 장예진 씨는 집밖으로 나와버렸다. 7월 서울의 밤은 한낮처럼 숨이 막혔다.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어 집 주변을 걸었다. 그놈이 주변을 맴도는 건 아닌지, 자주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살폈다. 익숙한 동네마저 이젠 편하지 않았다.
번호를 바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전화기가 갑자기 진동했다. 장 씨의 심장 박동이 다시 빨라졌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장문의 문자 메시지로 딸에게 사과했다.
이날의 경험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장 씨는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외출을 하면 대중교통 대신 부모님 차를 이용했다. 모든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울리면 심장부터 떨렸다.
줄지 않는 불안과 공포, 장 씨는 결국 정신과에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장 씨의 세계는 확 쪼그라들었다.
서대문경찰서에서 고소인 진술을 요청했다. 아버지와 함께 8월 11일 경찰서에 갔다. 정확히 한 달이 지났으니, 경찰은 뭘 좀 알아냈을까? 경찰이 장 씨에게 물었다.
경찰 : “고소인(장예진)의 얼굴에 합성되어 있는 여성 나체 사진의 출처를 아나요?”
장예진 : “전혀 모릅니다. 제 얼굴에 타인의 나체 사진이 합성되어 있는 걸 보자마자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하고 너무 수치스러웠습니다.”
경찰 : “피고소인(가해자)을 특정할 만한 다른 단서가 있나요?”
장예진 : “아니오. 텔레그램 아이디 @tttttttttyyyyyyu, 상대방이 스스로 입력한 대화명 ‘rtyu’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경찰 : “상대방을 특정할 다른 단서가 현재 제출한 자료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장예진 : “네 그렇습니다.” (2021. 8. 11. 고소인 진술조서 인용)
경찰이 가해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를 찾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경찰은 1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장 씨도 알고 아버지도 아는 “텔레그램 수사는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경찰도 반복했다.
시간이 흘러 8월 말이 됐다. 박사학위 과정에 있던 장 씨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해 12월, 경찰은 ‘단서가 부족해 수사를 중지한다’는 통지문을 장 씨 부모님 집으로 보냈다. 그럴 줄 알았지만 허무함도 컸다.
장예진 씨는 미국에서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그날의 기억을 끊어내려, 증거 사진과 경찰에 자료 보낼 때 사용한 메일 계정까지 삭제했다. 인터넷 공간에 합성 사진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2021년 가을과 겨울이 가고 이듬해 봄이 왔다. 그놈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그놈도 이젠 그 짓을 끝냈지 싶었다. 착각이었다.
장예진 씨는 2022년 6월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친구 유정희(가명, 여성)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커피 한 잔을 다 비울 때쯤 정희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할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얼마 전에 이런 사진을 받았어.”
유정희는 스마트폰을 장 씨에게 내밀었다. 유정희를 비롯해 또 다른 친구 주진희(가명, 여성), 강소윤(가명, 여성)의 얼굴이 나체 여성의 몸에 합성된 사진, 친구들 얼굴을 태블릿PC에 띄워놓고 남성 성기를 들이댄 모습까지…. 조잡한 합성과 비슷한 낄낄거림, 그놈이었다.
애써 잊은 작년 여름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심장은 내려앉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손발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직접 받은 사진은 아니야.”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럼 이런 파일을 어떻게 갖고 있는 거지?
“구태우(가명, 남성) 알지? 태우가 텔레그램 메시지로 받았대. 모른 척하고 넘어갈까 하다가 우리한테 알려줬어. 누군가한테서 이런 사진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왔다고.”
구태우… 거의 10년 만에 이름을 들어보는 옛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로 연락 없이 지낸 지가 언젠데, 왜 하필 그가 장 씨 친구들의 디지털성범죄 파일을 갖고 있었을까.
장예진 씨가 미국에 있던 그해 2월 28일 새벽 4시 17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없이 이어지는 텔레그램 도착음이 구태우의 새벽잠을 깨웠다.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졌나 싶어 구태우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
유정희·주진희·강소윤의 사진이 대화창을 가득 채웠다. 포르노 배우 몸에 친구들 얼굴이 합성된 사진부터, 친구들 얼굴 사진 앞에서 자위하는 영상까지…. 그놈의 파일 전송은 오전 6시 13분까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같이 즐기자. 좋지?”
녀석이 말을 걸었다. 별 대꾸를 하지 않자, 그놈은 구태우가 물 법한 미끼를 던졌다.
“너 강소윤이랑 같은 동아리 활동하지 하지 않았나? 한 1년 정도….”
10여 년 전 사생활까지 거론하는 걸 보니, 녀석은 꽤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이 분명했다. 구태우는 세 친구들에게 디지털성폭력이 진행되는 사실을 알렸다. 주진희는 소식을 듣고 설마 하는 마음에 텔레그램을 직접 설치했다.
“저 때문에 오신 거 맞죠?”
초대장 보낸 손님을 맞이하듯 녀석은 곧바로 말을 걸었다. 이어 구역질 나는 사진을 주진희에게 줄줄이 보냈다. 구태우가 받았다는 파일과 동일했다. 지방 공기업에서 일하는 주진희는 3월 초 세종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유정희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장 씨를 포함하면 세 친구가 각각 다른 경찰서에 고소한 상황. 공조나 합동수사?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 경찰서는 서대문경찰서처럼 별 수사도 하지 않고 ‘수사중지’를 결정했다. 같은 이유였다.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수사를 중지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친구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가해. 경찰서에서 겪은 판박이 경험. 장 씨는 친구들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을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
첫 피해자인 자신과 유정희, 주진희, 강소윤 그리고 사진을 전달한 구태우…. 다섯 친구는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모두 2010년대 초반에 서울대 인문대학 A학과에 입학한 동기들이다. 공통분모는 서울대 A학과, 그렇다면….
“이 새× 잡을 수 있겠는데….”
장예진 씨는 작게 혼잣말을 했다. 공포가 있던 자리에 어떤 의지가 꿈틀거렸다. 카페에 없던 주진희, 강소윤에게 연락해, 합성에 이용된 사진의 출처를 물었다. 공통점이 더 나왔다. 장 씨는 처음부터 다시 정리했다.
- 피해자는 모두 서울대 A학과 출신이다.
- 가해자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사진을 이용하지 않았다.
-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만으로 음란 합성물을 만들었다.
- 가해자는 장예진·유정희·주진희·강소윤·구태우와 함께 서울대에 다녔다.
- 그놈은 이 다섯 명 모두와 카카오톡 친구다.
장 씨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공포와는 다른 떨림이었다. 경찰서 세 곳이 수사를 접었고, IT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도 체포가 어렵다고 한 가해자. 장 씨는 왠지 그놈을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이 개새×… 두고 봐, 넌 내가 꼭 잡는다!”
장 씨의 목소리는 이전과 다르게 크고 높았다.
(*3화 <“일베에도 돌려짐”… 그놈은 범죄를 게임처럼 즐겼다>로 이어집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