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텔레그램으로 날아온 디지털성폭력 파일은 장예진(가명) 씨의 삶을 흔들었다. 일명 ‘딥페이크 음란물’. 텔레그램 비밀방의 그들은 장 씨 얼굴을 보며 자위하는 영상까지 올렸다. 경찰은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며 수사를 금방 접었다. 직접 가해자 추적에 나선 장 씨 앞에 줄줄이 나타난 피해 여성들. 모두 서울대 A학과 출신이었다. 장 씨의 목소리는 자기도 모르게 높아졌다. “개새×, 넌 내가 꼭 잡는다!” 하지만 일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새로 드러난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유정희·주진희·강소윤(모두 가명). 모두 장예진(가명) 씨와 가까운 친구다. 서울대 A학과 입학 후 친하게 지냈다. 그 후로 약 10년이 흘렀다.

‘왜 하필 우리일까. 학창 시절 우리가 무심한 실수로 누군가에게 증오심이라도 심어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놈은 텔레그램으로 장 씨에게 했던 말을 주진희·구태우에게도 비슷하게 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근데, 어차피 나 못 잡아.”

체포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에, 찾을 테면 찾아보라는 도발까지. 녀석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했다. 장예진과 가까운 친구만 골라 공격한 걸 보면, 어떤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장 씨와 친구들은 그놈의 초대에 적극 응하기로 했다.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남는 건 장 씨와 친구들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신들마저 속수무책 당하면,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 여성의 피해는 훨씬 클 터였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분명한 사례를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장 씨를 짓누른 공포는 가해자가 누군지 모르는 모호함에서 왔다. 하지만 이젠 ‘서울대 A학과 출신’이라는 첫 번째 퍼즐을 맞췄다. 친구들까지 곁에 있으니 더는 위축되지 않았다.

이젠 두 번째 퍼즐을 맞출 시간. 장 씨는 세 친구와 함께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비교했다. 녀석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만으로 합성을 했으니, 분명 ‘우리 네 명과 카톡 친구를 맺은 인물’로 보였다. 당시 서울대 A학과에는 남학생 자체가 적었다. 두 번째 고개 넘기는 식은 죽 먹기로 보였다.

경찰도 수사를 포기한 텔레그램 성폭력 가해자 추적. 장예진 씨는 처음부터 벽에 막혔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오판이었다. 가해자는 남성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고, 정말 범인이 A학과 출신인지 혹은 조력자만 내부에 있는 건지, 한 명인지 두 명인지… 모든 게 모호했다. 게다가 장 씨와 세 친구의 공통된 ‘서울대 카톡 친구’는 한둘이 아니었다. 연락 없이 지낸 지 오래된 사람부터, 최근 소통한 이들까지 모두를 의심하는 건 고통스럽고 미안한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퍼즐 맞추기는 두 번째 단계 초입에서 막혔다. 우회로를 택해야 했다. 장 씨는 믿을 만한 학교 동문을 한 명씩 만나 협조를 구했다.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텔레그램 깔 수 있어? 널 의심하는 건 아니야. 혹시 그놈이 너에게도 우리 합성물을 보낼까 싶어서.”

이렇게 접촉한 친구들에게 그놈은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하나도 의심하지 않았다면 덜 미안했을 테지만, 누굴 만나든 ‘0.1%의 의구심’ 정도는 있었다. 피해자의 죄책감이란 감정이 영 어색했지만, 발로 뛰는 증거 수집을 멈출 수는 없었다. 용의자라도 좁혀지면 그 7월의 무더위가 좀 견딜만 했을까. 그것도 아니어서 장 씨는 뜨거운 한증막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놈도 언젠가부터 파일 전송을 뚝 멈췄다.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자극하더니 자취를 감춰버렸다. 장 씨와 친구들이 범인 찾기에 돌입한 걸 안다는 듯이 말이다. 저 위에서 모든 걸 지켜보며 낄낄거릴 녀석을 상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심호흡을 하며 짜증, 분노, 답답함을 가라앉혔다. 그때 문득 장 씨 머리에 한 남자가 떠올랐다.

‘유정희·주진희·강소윤의 디지털성폭력 파일을 받았다는 구태우. 가해자는 왜 하필 그에게만 파일을 보냈을까?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장 씨는 대학 시절 구태우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20대 초반의 남자에게 있을 법한 허세와 과잉행동 같은 게 구태우에겐 없었다. 늘 과묵했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장 씨는 어느 순간 그와 멀어졌고, 서로 연락 안 한 지 7~8년은 됐다.

그에게 연락하는 게 주저됐지만, 2단계에서 막힌 지금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장씨는 2022년 7월 15일 구태우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 연락보다는 그게 편했다.

“소식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나 지금 그 범인을 찾고 있거든. 좀 도와줄 수 있어?”

장 씨는 구태우에게 위장을 당부했다. 그놈이 다시 텔레그램으로 음란 합성물을 보내면 즐기는 척 호응을 하면서 단서가 될 만한 대화를 유도해달라고 말이다. 근 10년 만에 연락한 대학 동기의 부탁 치고는 고약했지만, 구태우는 거부하지 않았다. 장 씨는 하나를 간곡히 부탁했다.

“한밤이든 새벽이든 다 괜찮으니까, 그놈에게 메시지가 오면 그 순간에 꼭 알려주면 좋겠어.”

카카오톡 메시지여서 표정은 볼 수 없었으나, 구태우는 주저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10여 년 전 대학 시절처럼 구태우는 여전히 우직한 듯했다. 그렇게 새 함정을 팠다. 곧바로 그놈에게 신호가 왔다.

조력자 구태우의 도움으로 드디어 ‘그놈’을 잡을 함정을 팠다 ⓒunsplash

“일베에도 돌려짐.”
“양놈들도 환장하고 먹더라.”

7월 17일 오전 6시 43분, 그놈은 유정희의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자위하는 남성의 신체 사진을 구태우에게 보냈다. 일베를 비롯해 인터넷 공간 곳곳에 사진을 뿌린 듯했다. 주진희의 얼굴 사진도 자위 사진의 배경이 돼 있었다.

구태우는 즐기는 척을 하며 “더 센 거 없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놈은 구태우가 반응하자 신이 난 듯했다. 1년 전 장예진 씨를 괴롭힌 파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구태우가 장 씨 사진을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중딩도 좋아하네 ㅋ.”

구태우는 곧바로 장예진에게 카톡으로 알렸다.

“이젠 어떻게 할까?”

그놈이 미끼를 물자 장예진 씨도 마음이 급해졌다. 장 씨는 “능욕방 링크를 달라고 요청해보라”고 구태우에게 말했다. 구태우는 그대로 따랐다. 그놈은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구태우를 자극했다.

“너 취향은 뭔데? 썰 풀면 (능욕방 링크) 줄게.”

구태우는 적당히 둘러댔다.

“그럼 한 × 있잖아. ××이 젖소만 한 애.”

그놈은 서울대 A학과 출신 여성 이름을 언급했다.

“서울대 ×들이 맛있어!”

그놈은 합성 파일을 줄줄이 구태우에게 보냈다. 구태우도 실시간으로 장예진에게 파일을 전달했다. 낯선 여성 피해자 얼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만날 다리 벌리고 춤추는 애.”

그놈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다시 보니 전혀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녀석 말대로, 대학 시절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후배였다. 녀석은 장 씨의 퍼즐 맞추기 노고를 덜어주려는 듯 자기가 아는 정보를 줄줄이 나열했다.

“얘는 작년에 결혼했어.”
“○○학번, 똘똘했던 애.”
“알지? 얘는 ○○○이랑 연애했고.”

피해자는 늘어났으나 서울대 A학과를 벗어나진 않았다. 증거를 수집해 용의자를 좁히려 시작한 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장예진 씨의 머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메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놈은 분명 구태우에게 파일과 메시지를 보냈고, 구태우는 이걸 나한테 전달하는 거다. 근데… 왜 녀석이 나한테 직접 말을 하는 듯하지?’

구태우는 조력자일까 용의자일까. 추적은 미궁에 빠졌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장 씨는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기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진 듯했다. 눈앞은 캄캄했으나, 차가워진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퍼즐이 처음부터 다시 맞춰지기 시작했다.

  • 그놈은 분명 서울대 A학과 출신이다.
  • 나·유정희·주진희·강소윤을 잘 아는 놈이다.
  • 우리 모두와 카카오톡 친구다.
  • 유정희·주진희·강소윤 사진을 처음 받은 건 구태우다.
  • 그 사진을 구태우가 우리에게 전했다.
  • 그놈은 우리의 범인 찾기를 훤히 꿰고 있다.
  • 내가 구태우에게 함정을 부탁한 날은 7월 15일, 그놈이 반응한 날은 7월 17일. 고작 이틀 만에….

이 모든 단서에 들어 맞는 인물은 딱 한 명, 구태우였다. 

해빙기를 맞은 저수지의 얼음판처럼 굳건했던 믿음과 생각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장 씨는 얼음 밑 차가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장 씨는 그놈에게 처음 메시지를 받았던 작년의 그 책상에 앉아 있었다.

(*4화 <서울대 로스쿨도 딥페이크 표적… ‘용의자 2호’의 등장>로 이어집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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