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저를 힘들게 하고, 만약 여기서 제가 뭔가를 더 하면 그다음에는 더 높은 수위의 징계를 때리겠죠.”(이양기, 이하 2024. 1. 29. 인터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걸까. 병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 공익제보자 이양기 교사(58)에게 징계가 내려졌다.
이 교사는 2019년 우촌초등학교(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 중 한 명. 이 교사는 해임됐지만, 약 2년 8개월에 걸친 소송전에서 승리하고 복직했다. 학교 측은 복직한 이 교사에게 교무실 책상 하나 내주지 않았다. 차별과 따돌림에 시달린 그에게 병까지 찾아왔고, 결국 그는 복직 1년 만에 병가를 내고 만다.
지난 22일 이 교사는 병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학교 측의 ‘징계’ 처분. ‘경고장’에 찍힌 날짜는 2023년 7월 7일이지만, 이 교사에게 징계 사실을 통지한 건 6개월도 더 지난 올해 1월 26일이었다.
왜 하필 ‘지금’ 뒤늦게 징계를 통보했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여러 언론매체가 ‘공익제보자 탄압’을 보도하고, 학교 법인을 형사고발 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지금 말이다.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공익제보의 발단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의 ‘옥중 지시’였다.
이 회장은 2001년 학교 법인을 인수하고, 2010년까지 일광학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임기를 마친 후에는 가족과 측근에게 이사장 자리를 연이어 맡기고, 이사회도 자신들의 측근으로 구성해왔다. 하지만 엄연히 학교 운영에 개입할 수 없는 ‘전’ 이사장 신분이었다.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은 3억 원 정도면 충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 회장은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렸다. 범행을 모의한 업체가 입찰에 선정되게 만든 뒤, 업체로부터 용역대금을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교비를 빼돌리려 한 것이다.
2019년 5월 최은석 당시 교장과 이양기 교감, 교직원 유현주 씨 등 공익제보자 6명은 서울시교육청에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폭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즉시 감사에 나섰고, 그 결과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은 취소됐다.
학교 법인은 공익제보자들에게 해임 등 중징계를 내렸다. 이양기 교사 역시 해임당했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라 2022년 10월 학교로 돌아갔다. 약 2년 8개월에 걸친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였다.
학교 측은 2022년 10월 복직한 이 교사를 노골적으로 괴롭혔다. 과학전담교사를 맡은 그에게 교무실 책상을 주지 않거나, 그를 감시하고 보고했다. 인사평가에서, 이 교사는 물론 그와 가까운 동료 교사들에게도 최저점을 줬다.
이 교사는 복직 이후 겪은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장애가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대상포진까지 발병했다. 결국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병가를 내고 말았다.
이 교사는 지난 22일 병가를 마치고 학교로 복귀했다. 복귀 5일째 되던 날, 교장은 이 교사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이 교사는 ‘경고’ 징계를 통보받았다. 경고장에 적힌 징계 사유는 “학교장에게 인사・수당 관련 반복 항의 등”. 그리고 날짜는 2023년 7월 7일로 적혀 있었다.
이 교사는 지난해 여름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해 6월 과학 전담교사인 자신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과학실무사를 인사이동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교장에게 항의한 적 있었다.
“저는 반복적으로 항의한 적도 없고, 한 번 교장을 찾아가서 얘기했던 건, 과학실무사 선생님이 일을 잘하고 있는데 왜 행정실로 인사이동을 시키냐고 말한 거였어요. 과학 담당교사가 그런 말도 못 합니까?”(이양기)
그날 이후, 이 교사는 학교 업무 시스템에서 자신의 이름이 담긴 문서 제목을 발견했다. 작성자는 이 회장의 측근인 교직원. 이사장에게 보고된 문서였다.
“이양기교사 교장 면담시 발언내용 파악 보고(2023.6.14.)”
“이양기 과학교사의 동향추가보고(2023.06.15.)”
경고장에 찍힌 날짜는 2023년 7월 7일. 이 교사가 통보받은 날짜는 2024년 1월 26일. 그 사이 교장도 바뀌었다. 6개월도 더 지난 지금에야 통보하는 이유가 뭘까. 이 교사는 교장에게 징계 절차에 관해 따져 물었지만, “자신에게 항의하지 말라”는 답변뿐이었다.
“이사회 결정이든 뭐든 절차 자체가 잘못된 거고, 저한테 (징계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 통보도 안 한 건 잘못된 거죠.”(이양기)
학교법인 일광학원은 ‘경고’ 처분을 받은 교원에게 10개월간 사학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이 교사는 사학수당을 정상적으로 받아왔다. 그러니 본인이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더더욱 알 수 없었다. 학교 측은 지난 25일까지 징계에 관해 일언반구조차 없었고, 소명 기회 역시 당연히 주지 않았다.
이 교사의 징계 절차는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대개 징계 원인이 발생하면 대상자에게 사전 통지 후 소명의 기회를 줘야 한다. 징계 여부는 그 후에 판단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다.
“신분상 불이익 처분이면 소명의 기회를 줘야 한다. 이사회 결정이라면 당사자에게 사전 통지 후 이사회에 불러서 소명 기회를 줘야 한다. 모든 불이익처분에 당연한 절차”(김승진 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주무관, 2023. 1. 29. 인터뷰)
학교 법인은 ‘주의’와 ‘경고’ 수준의 징계는 이사회 의결로 결정한다. 그 이상의 처분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의결해야 한다. 홈페이지상 지난해 마지막 이사회 기록은 6월 23일. 하지만 경고장에 적힌 날짜는 7월 7일이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학교 법인은 지난해 이사회를 세 차례 개최했다. 홈페이지에는 지난해 6월 23일 개최된 제200회 이사회 회의록까지 공개돼 있다. 지난해 열린 세 차례 이사회 회의록을 모두 확인했지만 징계 안건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22년 3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제191회부터 제200회까지 이사회 개최 공지는 빠짐없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해 6월 23일 제200회 이사회 이후로 이사회 개최 공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경고장에는 지난해 7월 7일로 날짜가 적혀 있지만, 해당 징계를 결정한 이사회가 언제 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혹시라도 지난해 6월 23일 이후 홈페이지 공지 없이 이사회가 개최됐는지 학교 측에 확인을 시도했지만, 학교 측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통보 시점에 대한 또 다른 의심도 있다. 지난 16일 셜록은 공익제보자인 이양기 교사가 복직 이후 겪은 지속적인 불이익에 대해 보도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다음 날 셜록과 참여연대는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을 괴롭히는 학교 법인 전・현직 이사장을 고발했고, 그 주에는 MBC, KBS 등 언론매체의 관련 보도도 이어졌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성 징계인 것 같아요. 학교에 있는 모든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다른) 선생님들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말 한마디 잘못해도 경고 받으니까 한마디 말도 할 수 없겠죠. 무슨 재갈 물리는 것도 아니고.”(이양기)
이 교사는 지난 29일 국민권익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에 징계 사실을 신고했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을 향한 학교 법인의 괴롭힘은 5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공익제보 직후 해임・면직 등을 당해 학교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현재 복직한 제보자는 이 교사가 유일하다. 학교 법인은 최은석, 유현주 등 공익제보자 4명의 복직을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복직을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학교 법인과 이 회장은 공익제보자들에게 고소・고발과 민사소송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일부 사건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제보자들이 승소했고, 나머지 사건들은 아직도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편, 지난 29일과 30일 양일간 셜록은 학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우촌초에 6차례 전화를 걸었다. 이 교사를 징계하기 전에 소명 절차가 있었는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징계를 통지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사회를 소집해서 의결한 게 맞는지 물었다. 하지만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 “메모를 전달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학교 법인 쪽과 연결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학교 법인 사무실은 따로 전화번호가 없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상 정보로는, 학교 법인 사무실 위치와 대표번호는 우촌초와 일치했다. 셜록이 확인한 결과, 실제 학교 법인 사무실은 우촌초 바로 옆 1분 거리에 있는 상가 건물 안에 있었다.
셜록은 이달 초에도 전화, 우편, 방문 등을 통해 우촌초와 학교 법인 측의 반론을 들으려 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