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모든 사연은 성폭력 파일을 텔레그램으로 받은 그날부터 출발한다. 장예진(가명) 씨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의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남고 싶지 않았다. 같은 피해를 겪은 친구들과 함께 범인 추적에 나섰다. 후배 최우성(가명)이 유력 용의자로 떠올랐다. 그에게 미끼를 던져 핵심 물증을 확보했고, 법원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1년 만에 범인 추적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1년 더 연장됐다. 경찰이 최우성을 풀어줬다….

이 절망과 충격을 무슨 말로 표현할까. 한 시절 가깝게 지낸 대학 후배를 고소하는 건 장예진(가명) 씨에게도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최우성(가명)이 강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순간부터 실망, 공포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오직 최우성만 볼 수 있는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사진이 허위 영상물로 제작돼 피해자에게 돌아온 상황. 관악경찰서는 스마트폰 등에서 증거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며 최우성을 체포 14시간 만에 풀어줬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그놈은 약 1개월 전에 텔레그램 ‘서울대 동문방’(서울대 재학생이나 졸업한 여성 사진을 이용해 만든 허위 영상물을 공유하는 비밀방)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진 저장을 하면 안 된다.” “포렌식을 조심해야 한다.”

신분을 위장해 비밀방에 입장한 추적단불꽃의 ‘단’에게 친절히 조언한 가해자. 전자기기에 파일을 저장하지 않거나 삭제한 건 너무 자연스런 일이 아닐까? 게다가 텔레그램으로만 허위 영상물을 합성 유포했다면 전자기기에서 흔적을 지우는 건 몇 초 만에 가능하다. 그럼에도 경찰은 별다른 조치 없이 2022년 8월 19일 오전 6시께 최우성을 풀어줬다.

우연의 일치일까? 최우성이 경찰서에 있는 동안 ‘단’이 텔레그램으로 말을 걸어도 답이 없던 그놈은 같은 날 오전 7시 33분에 답장을 보냈다.

“너무 좋아요.” (“먹고 싶다 추릊”에 대한 답장)

최우성이 관악경찰서를 나온 지 약 1시간 30분 지난 시점이었다. 그놈은 오전 8시 48분에 다시 그 짓을 시작했다.

“○○이가 님 ×× 잘 빨아주던가요?”

영원한 도돌이표의 수렁에 빠진 것처럼,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수면제 없이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장예진 씨에게 이어졌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여름의 끝이었다.

최우성이 경찰서에 있는 동안 멈췄던 ‘그놈’과의 텔레그램 대화는, 최우성이 석방되자 다시 재개됐다 ⓒunsplash

좌절과 포기로 웅크려 지낼 수 없었다. 8월 말 어느 날, 장 씨는 최우성이 일한다는 블록체인 업체 앞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사무실 앞에서 그와 마주치길 기다렸다. 장 씨는 최우성을 만나면 따져 물으려 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네가 정말 범인이 아니야? 내가 널 특정해서 고소했잖아! 그게 억울하거나 화가 나지도 않아? 넌 어떻게 나한테 묻거나 따지는 전화 한 통 안 할 수가 있어? 회사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체포돼 경찰서에서 밤샘 조사까지 받았는데,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아?”

장 씨는 회사 앞에서 최우성을 만나지 못했다. 장 씨는 최우성과의 대질을 경찰에 요구했다. 그가 자신을 보면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지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최우성이 대질을 거부해 이마저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 후에도 최우성에게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장 씨와 친구들을 무고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지도 않았다.

장 씨는 최우성에게서 혐의점을 찾지 못하는 경찰이 답답했다. 수사 진행 상황을 알려달라고 요구해도 경찰 대답은 한결 같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세요.”

안타까운 시간이 흘렀다. 최우성의 스마트폰, 노트북, 외장하드, USB에 대한 포렌식은 그해 12월에 끝났다. 이번에도 혐의를 입증할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 장 씨는 2023년 1월 24일 경찰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피의자 최우성 불송치 결정. 혐의없음.”

비참하고 절망스러웠다. 텔레그램 범죄를 추적하려면 고도의 치밀한 수사가 필요하다. 대화방을 폭파하거나 메시지를 삭제하면 증거가 남지 않는 등 보안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들을 마치 ‘평범한 몰카범’, 즉 현장에서 체포하면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바로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불법 촬영범 정도로 여기고 수사한 듯했다.  

장예진 씨가 텔레그램 성폭력 메시지를 받은 2021년 7월 이후, 도대체 경찰은 범인 검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앞서 피해자 각각의 고소장을 접수했던 서대문경찰서·강남경찰서·세종경찰서는 용의자를 제대로 추적하지 않고 같은 이유로 수사를 멈췄다.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수사를 중지합니다.”

피해자들이 최우성을 특정해 다시 고소한 뒤에도 경찰은 포렌식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이끌어낸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증거물도 피해자들이 만들어서 갖다 줬다. 가해자의 끈질긴 성폭력만큼이나 경찰의 한없는 무기력이 장예진 씨와 친구들의 분노를 키웠다.

경찰은 유력 용의자 최우성(가명)을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했다.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간 셈이다. ⓒpixabay

장 씨는 겨울산을 다니며 답답함과 분노를 삭였다. 얼마 뒤, 최우성이 장 씨와 친구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거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자신감을 얻은 최우성이  반격을 하나 싶었다.

‘그래, 차라리 고소를 해라. 누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제대로 붙어보자.’

단단히 마음 먹은 장 씨와 친구들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맞서 이의신청부터 했다. 경찰의 불송치가 과연 합당한지 검찰에 판단을 구한 것이다. 사건은 2023년 4월 20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됐다.

검찰은 경찰보다 한술 더 떴다. 송치 나흘 뒤인 4월 24일, 서울중앙지검은 최우성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들의 이의신청 사유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송치 나흘 만에 불기소라니. 검사는 사건기록을 제대로 살피기나 했을까? 아니, 나와 친구들이 갖다 바친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증거’를 한번 보기는 했을까?’

장 씨는 불기소 결정에 불복해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중앙지검의 불기소 결정이 적절한지 다시 살펴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고검 역시 같은 결론, 항고를 기각했다.

장예진 씨와 친구들은 약 2년간 범인을 추적했는데, 경찰과 검찰은 ‘최우성은 용의자가 아니다’라고 순식간에 결론 내렸다. 지난 노력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졌다.

이제 장예진 씨와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검찰의 최우성 불기소 결정이 과연 정당한지 살펴봐달라고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모든 절차를 밟는 게 도리라고 봤다.

피해자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이런 고통을 겪는 게 아니란 걸, 끝까지 말하고 싶었다. 돈을 바란 것도, 세상 사람들의 박수를 기대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장 씨와 친구들은 “텔레그램 성범죄 가해자는 꼭 잡힌다”는 사례를 남기고 싶었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싶었던 그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서울고등법원 제30형사부(재판장 강민구)는 2023년 11월 21일, 장 씨의 재정신청을 인용했다. 

“이 사건의 공소제기를 결정한다.”

최우성을 기소해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는 것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허위영상물 편집·반포·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 재판부는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피고인(최우성)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글, 그림, 영상을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하였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허위 영상물들을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불상의 SNS 대화방에 게시했다.”

장 씨는 미국에서 박사 논문을 쓰던 중에 이 소식을 들었다. 장예진 씨는 자신을 도와준, 공동법률사무소 이채에서 일하는 조윤희 변호사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2년 5개월 걸린 텔레그램 성폭력 가해자 추적. 벽에 부딪힐 때마다 장예진(가명) 씨는 산에 다니며 분노를 다스렸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범인 추적 2년 5개월 만에 뭔가를 해낸 느낌이 들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왔다.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 오래 참아온 눈물이었다.

그놈과의 대결에서 허망하게 패했구나 하는 순간, 동점골이 터져 연장전이 열리게 된 셈이다. 이제 대결 장소는 법정이다. 최우성의 유·무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결론을 예단할 순 없어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서대문경찰서·강남경찰서·세종경찰서·관악경찰서는 여러 여성 피해자들이 고소를 했음에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용의자도 특정 못했다. 검찰 역시 증거를 갖다 줘도 기소하지 않았다.

장예진, 유정희, 주진희, 강소윤, 서연우(이상 모두 가명) 등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디지털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끝내 핵심 용의자를 법정에 세웠다. 오직 이 하나가 분명한 팩트다.

최우성의 첫 공판은 오는 2월 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추적기는 두 번째 출발선에 서 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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