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따뜻한 눈빛과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3년이 지나도 변함없었다. 지난 천 일 동안 한 가지 바람을 간직해온 한결같은 그 모습처럼.

김성화(가명) 씨는 2008년 5월 아들 박수민(가명) 군을 낳았다. 아이는 왼쪽 신장 없이 태어났다. 선천적 식도폐쇄증도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아이 날개뼈 쪽 등을 열어, 식도끼리 연결하는 큰 수술을 해야만 했다.

“가족력 때문에 아이가 아픈 걸까 고민했죠. 저나 남편한테서 원인을 찾고, 서로 자책하는 걸 반복했어요. 그런데 저랑 남편은 둘 다 너무 건강하거든요. 주변에 알아보니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본인이 아프거나 혹은 유산한 사례가 참 많더라고요. ‘정말 회사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그때 생각이 바뀌었어요.”(2021. 6. 23. 인터뷰)

김성화 씨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였다.

2024년 2월 14일은 김성화(가명) 씨가 근로복지공단에 ‘태아산재’를 신청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다 ⓒ주용성

김 씨는 2021년 5월 20일, 삼성반도체 출신 노동자 2명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태아산재’를 신청했다. 아이의 선천적 질병이 엄마 탓이 아닌, 업무에서 비롯된 산업재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서다.

2024년 2월 14일은 김 씨가 태아산재를 신청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다. 천 일의 기다림 사이, 김 씨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작년, 위암을 앓던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렸다. 현재는 홀로 남아 있는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아버지는 10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다.

수빈 군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3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김 씨는 수빈 군을 ‘느린 아이’라고 표현한다. 아이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발달장애 증상을 보였다. 여섯 살 때 오른쪽 시력 발달이 늦다는 진단을 받았다. 달팽이관 협착으로 청력 이상을 보이기도 했다.

수빈 군은 중학교 때부터 특수반 수업을 들었다. 올해 진학할 고등학교에서도 특수학급에 배정됐다. 김 씨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차로 수빈이 등하교 픽업을 해주고 있어요. 하교할 때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으면, 수빈이는 거의 매일 혼자 걸어와요. 다른 아이들은 두세 명씩 무리 지어서 나오는데 말이죠.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그래요….”

수빈 군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김 씨는 수빈 군을 ‘느린 아이’라고 표현한다. ⓒ주용성

2012년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낳은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자녀의 질환에 대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부모의 유해한 노동환경 탓에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때부터 ‘태아산재’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공단은 보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엄마들은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약 6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2020년 대법원은 엄마들의 손을 들어줬다. 엄마 배 속 태아는 ‘엄마와 한 몸’이라는 논리. 대법원은 “태아는 엄마의 업무 환경상 위험성을 함께 공유한다”고 봤다.

그로부터 약 2년이 흐른 2021년 12월에야 ‘태아산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명 ‘태아산재법’은 임신 중 업무상 유해환경에 의해 태어난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건강질환에 대한 산재보상을 해주는 법으로, 지난해 1월 12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법안 통과 후 약 2년 동안 승인 사례가 없어 ‘희망고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올해 1월 기준 공단에 접수된 태아산재 신청은 총 6건이다. 이 중 3건이 삼성반도체 여성노동자들이 신청한 사례다.

‘태아산재법’ 시행 이후 약 1년 만에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가 나왔다 ⓒ셜록

아이의 선천적 아픔이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동안에도 수빈 군은 자랐다. 그리고 천 일 사이, ‘태아산재법’ 시행 이후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가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12월 15일, 임신 중 유해환경에 노출된 간호사 A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환(무뇌이랑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A는 2013년 임신 중 투석액 믹스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고농도의 초산이 공기 중으로 노출됐고, A는 이로 인해 숨을 쉬기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역학조사를 맡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근로자 자녀의 상병이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태아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의 첫 마디는 간단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대를 하거나 희망을 품는 게 아니고, 남의 일이라 받아들였다니. 무슨 의미일까.

“다른 사람들은 저희 아이보다 솔직히 더 많이 아프더라고요. 병원을 계속 다닐 정도로 아프거나, 누구는 죽기도 하더라고요. 그 정도는 돼야 (산재) 인정이 되나 보다 싶은 거죠. 우리 아들 같은 경우는 그나마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어서 다행인데…. 그래서 오히려 ‘(이 정도 아픈 걸로 산재 인정이)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게(산재 인정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되면 참 좋지만….

2022년 11월 28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제대로 된 태아산재법 시행령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셜록

김 씨의 걱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2년 6개월 만에 나온 역학조사 결과가 그를 실망하게 했다. 김 씨와 함께 태아산재를 신청한 삼성반도체 여성노동자 3명의 역학조사 결과는 지난해 11월 나왔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근로자(삼성반도체 여성노동자 3명 모두 해당) 자녀의 상병에서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생식보건 역학 연구에 초점을 맞추어 선행문헌을 고찰하였는데, 반도체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근로자에서 자녀의 선천성 기형 위험이 증가한다는 간접적인 증거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 반도체 연구들에 따르면 2010년 이전의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더 많은 유해 물질(벤젠, 기타 유기용제 등)에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있다.“(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역학조사 보고서 중)

김 씨는 1995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2007년 아이를 가진 후 ‘임신 7개월’ 때까지 근무했다. 임신 당시 그는 ‘확산 공정’을 맡고 있었다. 확산 공정은 반도체에 일부분만 전기가 통하도록 불순물을 통해 전도 형태를 변화시키는 공정이다.

두통은 일상이었다. 그의 주된 작업은 장비에서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 묶음이 담긴 ‘런 캐리어‘(약 4.22kg)를 빼서 다음 공정에 넣는 일. 그때마다 장비 내부의 열감과 화학물질 냄새가 그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웨이퍼 계측도 김 씨 업무였다. 공정이 완료된 웨이퍼는 불량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측을 해야 하는데, 이때 전리방사선이 발생하는 특수장비가 공정에 사용됐다.

김 씨는 일반 마스크와 방진복만 입고 특수장비 옆에서 일했다. 방사선에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개인용 방사선 측정기나 방사선 차폐 앞치마 등의 특수 보호장비는 지급된 적 없었다.

김 씨와 같은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 중 한쪽 신장이 없는 아이를 출산한 사례는 또 있다. 김 씨도 수빈 군을 낳기 전 2006년 이미 한 차례 유산을 경험했다.

지난달 29일 충남 태안군에서 김성화(가명) 씨를 만났다. 3년 만의 인터뷰였다. ⓒ셜록

역학조사 결과는 아쉽지만, 산재 인정의 문이 아예 닫힌 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 소속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가 이제 업무상 질병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아이가 아픈 게 내 책임이 아니라 회사 때문이었구나,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는데, 아이가 선천적으로 아픈 게 저만의 일이 아닐 수 있잖아요. 제가 산재를 인정받으면, 저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2021. 6. 23. 인터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함께 활동하는 조승규 공인노무사(노무사사무소 씨앗)는 이번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 “자녀의 선천성 기형과 엄마의 업무상 환경에 과학적 관련성이 높다고 말하기 어려워도, 간접적 증거를 고려할 때 충분히 업무상 질병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노무사는 “2월 중으로 질판위를 거쳐 삼성반도체 여성노동자들이 신청한 태아산재 판정 결과가 조만간 나올 걸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김성화 씨는 천 일이 지나도록 태아산재 인정 여부를 듣지 못했다 ⓒ주용성

김성화 씨는 천 일이 지나도록 태아산재 인정 여부를 듣지 못했다. 천 일이란 시간은 충분했다. 기다리다 지치고, 실낱같은 기대를 체념으로 바꾸는 데 말이다.

“아이가 약해서 ‘어디 아프다’ 이러면, 오만 생각이 들어요. ‘신장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가’, ‘등을 여는 수술을 해서 그런가’ 별별 생각이 드는 거죠. 다행히 물 흐르듯이 이제 지나가고 아이가 잘 커주고 있으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 그런지 ‘그래, (산재 인정) 안 돼도 상관없겠다’, ‘그냥 신경을 안 쓰고 싶다’ 그런 마음이에요.“

일상에 파묻혀 지내야 오히려 버틸 수 있는 마음. 질판위 위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김 씨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왕이면 아이를 위해 산재가 인정되면 좋겠다.’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지 않을까요? 다른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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