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검사 윤석열은 ‘주옥같은’ 말로 몇 차례 눈길을 끌었다. 뉴스를 장식한 그의 말에는 이런 것도 있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에 임명되면서 했던 말.
시간이 흘러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바야흐로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하지만 ‘검사 대통령’ 시대에, 헌정 사상 최초의 검사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제1호 탄핵 검사’ 안동완(53·현 부산지검 2차장검사)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는 헌법재판소에서 20일부터 진행된다.
대다수 시민에게 검사 안동완은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다. 그는 굵직한 사건을 수사해 세상에 이름을 떨친 검사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관여한 사건은 검찰의 치욕스런 일과 직결돼 있는데,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그것이다.
많은 독자들은 “그 사건 다 끝나지 않았나?”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검찰은 “죄송하다”며 양지에선 고개를 숙였지만, 음지에선 보복을 기획했다. 끝내 검사 탄핵까지 이어진 사건의 내막은 간첩 조작 사건의 주인공 유우성에게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재북 화교 부모 밑에서 태어난 유우성(1980년생)은 북한을 탈출해 중국-라오스-태국을 거쳐 2004년 4월 25일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에서 의대를 다닌 유우성은 2011년부터 계약직으로 서울시청 복지정책과에서 일했다.
국정원은 2006년부터 유우성에 대한 내사를 시작해 2013년 1월 간첩 혐의로 그를 긴급체포했다. 유우성이 공무원으로 일하며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게 국정원의 주장.
서울중앙지검은 같은 해 2월 “북한 보위부 공작원 유우성이 서울시 공무원으로 위장 침투해 탈북자 신원 정보를 북쪽에 넘겼다”며 유우성을 구속기소했다. 공무원 조직에 침투한 간첩이라니.
세상은 놀랐으나 결과가 더 충격적이었다. 1심 재판부는 유우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8년간 내사했다는 국정원은 물론, 검찰도 유우성이 간첩이라는 걸 입증 못했다.
2013년 9월 국정원은 판을 뒤집을 만한 증거라는 듯 유우성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을 검사에게 전달했다. 검사는 이 증거를 재판부에 냈다.
수습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해를 넘겨 항소심 공판이 이어진 2014년 2월, 중국 당국은 “국정원이 냈다는 해당 출입경기록은 위조된 것”이라고 공식 밝혔다. 이제 사건의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증거물 조작에 관련된 국정원 직원들은 모해위증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대법원은 2015년,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해 최대 징역 4년 등 유죄를 확정했다.
그에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4월 25일 유우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공판 담당 검사들은 5월 1일 대검찰청으로부터 감봉, 정직의 징계를 받았다.
검찰의 완벽한 패배. 간첩조작 막장극에 국정원과 검찰이 각각 주연과 조연을 맡았다는 사실이 거의 실시간으로 세상에 중계된 셈이니, 검찰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대로 고개 숙일 검찰이 아니었다. 검찰이 위기에 처한 그 순간, 검찰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항소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검찰의 완패가 거의 기정사실화 됐던 2014년 3월 14일. 세계일보에는 아래와 같은 제목의 ‘단독’ 기사 하나가 실렸다.
“[단독] ‘평범한 사람‘이라던 유우성, 대북 송금 브로커였다”
기사는 검찰·법원발 정보라면서 이런 내용을 전했다.
“유씨는 2005년 무렵부터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들의 대북 송금을 주선해 주는 불법 금융거래인 일명 ‘프로돈’ 사업에 종사했다. 이 사업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 등으로부터 북한 내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주는 일이다.”
사흘 뒤인 2014년 3월 17일 조선일보 역시 검찰발 소식으로 <유우성은 대복송금 브로커? 북에 26억 송금하고, 中 고급 아파트 소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 대목은 이렇다.
“유씨는 과거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2년 반 동안 26억원을 북한에 송금하고 4억원을 벌었으며 중국에 고급 아파트를 구입한 사실이 포착됐다. 검찰은 중국과 북한 국경을 수시로 출입해야 하는 송금 브로커 사업이 북한 보위부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두 기사는 검찰에게 뉴스도 아니었다. 당시로부터 4년 전인 2010년 초,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유우성을 상대로 이미 외국환거래법위반 혐의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중국에 거주하는 브로커에게 통장을 빌려주는 등 유우성의 위법행위를 밝혔지만, 아래 이유로 기소유예를 처분했다.
“초범이고, (먼 친척인) ‘연길삼촌‘의 부탁으로 예금계좌를 빌려줘 환치기 영업을 하도록 도와준 것으로 가담 정도가 경미하고 그 경위가 참작할 만하며 범행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유우성이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자, 자신들이 기소유예한 사건을 4년 만에 언론에 흘린 검찰. 보수 성향 탈북자 단체인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박광일 대표는 두 기사를 토대로 유우성을 3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새로운 증거? 그런 건 없었다. 세계일보와 조선일보의 두 기사를 고발장에 첨부한 게 전부였다. 검찰이 흘리고-언론이 받아쓰고-고발장 첨부자료로 다시 검찰로 돌아온 기사, 딱 일주일 걸렸다. 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제2형사부에 배당했다. 이때부터 새로운 ‘칼잡이’ 안동완 검사가 전면에 나선다.
안 검사는 고발장 접수 나흘 만인 3월 25일 박광일 대표를 불러 고발인 조사를 했다. 대한민국 국민 절대 다수가 받아보지 못한 ‘초스피드’ 민원 서비스였다.
바로 다음 날, 안동완 검사는 서울동부지검에 2010년에 기소유예한 사건을 살려서 이송할 것을 요청했다. 동부지검은 이튿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
안동완 검사는 2014년 5월 9일 외국환거래법위반 등의 혐의로 유우성을 기소했다. 그가 간첩 누명을 벗은 지 보름 만에 벌어진 일, 검찰-언론-보수단체 삼각편대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다. 유우성을 대리했던 김자연 변호사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국가보안법 위반) 무죄 선고를 받고 그 이후로 언론에서 추가기소를 할 것이다, 보복기소를 할 것이다, 등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저희는 ‘설마 기소를 할까’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검찰이 보름 만에 기소했습니다. 간첩이 안 되면 최소한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권력의 오만함 앞에서 정말 높은 벽을 실감했습니다.”(2015년 7월 국민참여재판 최후진술)
가까스로 간첩 누명을 벗은 뒤 다시 법정에 선 유우성.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핵심 쟁점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 즉 ‘보복기소’ 여부였다. 변호인단은 이렇게 주장했다.
“검찰은 피고인(유우성)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추락한 자신들의 위신을 세우고 피고인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기 위하여 과거에 기소유예한 외국환거래법위반 혐의로 피고인을 보복기소 하였습니다.”
검사가 이미 불기소한 사건은 재차 고소·고발이 있더라도 각하한다는 검찰사건사무규칙을 어겼다는 지적. 더불어 “검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검찰청법 제4조 제2항도 어겼다는 것이다.
반면 안동완 검사는 “새로운 사실 또는 증거가 발견된 경우에는 기소유예처분 사건을 다시 공제제기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통상적인 절차”임을 거듭 강조했다.
“탈북자 단체의 별도 고발장이 접수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형사2부에 배당되어 수사가 진행된 것입니다. 검찰은 통상적인 수사절차의 결과에 따라서 피고인을 기소한 것이지 변호인의 주장처럼 자의적, 차별적, 보복적으로 이 사건 공소를 제기한 것은 아닙니다.”
배심원단의 평결은 4:3,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유우성의 두 번째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제24형사부(재판장 유남근)는 배심원단의 평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검사가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피고인 유우성에게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반전은 2심에서 벌어졌다. 2016년 9월 1일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윤준)는 원심을 파기하고 외국환거래법위반 혐의의 공소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재판부는 안동완 검사의 기소에는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2014년 4월 25일 (유우성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관련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하였고, 위 사건의 공판 관여 검사들이 2014년 5월 1일경 위 증거 위조와 관련하여 징계를 받는 일련의 사건이 발생하였는 바, 현재 사건이 그 직후인 2014년 5월 9일 기소된 점”
즉, 2010년에 기소유예한 사건을 4년 만에 다시 기소한 것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판부는 박광일 대표의 고발에 이은 재수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못 박았다.
“박광일이 고발장에 첨부한 기사의 내용(환치기로 4억 원을 벌었다 등)은 추측성 보도에 불과하므로 이를 ‘새로이 중요한 증거가 발견된 경우’로 볼 수 없다. 박광일이 고발인 조사에서 ‘고발 사실을 입증할 다른 자료는 없다’고 진술(한 점) (…) 등에 비추어 보면, 박광일의 고발에 대하여는 검찰사건사무규칙에 따라 각하 처분을 함이 원칙이라 할 것이다.”
판결문은 이렇게 귀결된다.
“검사가 현재 사건을 기소한 것은 (…)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지므로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함이 상당하다. 또한 이로 인하여 피고인이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았음이 명백하므로 현재 사건에 대한 기소는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된다.”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21년 10월 14일 이를 기각했다. 검사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헌정 사상 최초의 확정 판결은 이렇게 나왔다.
같은 날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과거 유우성을 대리했던 김용민 변호사는 이제 국회의원 자격으로 이두봉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물었다. 이 검사장은 ‘보복기소’ 사건을 지휘한 책임자 중 하나다.
김용민 의원(이하 김) : “(유우성 씨에게) 사과할 생각 없으시죠?”
이두봉 검사장(이하 이) :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서….”
김 : “(판결) 존중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요, 사과할 생각 없으시죠?”
이 : “업무 처리에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 : “당연히 각하했어야 될 사안을 이렇게 기소까지 해서 결국에 지금 이 사달이 난 것 아닙니까. 여전히 사과할 생각이 없으세요?”
이 : “업무 처리에 주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검찰의 입에서 ‘사과’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국회만 검찰에 사과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 피해 당사자인 유우성도 직접 나섰다. 유 씨는 2021년 1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안동완 검사를 포함한 ‘보복기소’ 책임자들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돌아온 공수처의 답변은 ‘불기소’. 이유는 공소시효가 2021년 5월로 이미 지났다는 거였다. 대법원 판결은 그보다 5개월이 더 지난 2021년 10월에 나왔지만, 공수처의 논리대로라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고소장을 접수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수처의 ‘면죄부’는 검찰에게 용기를 줬다. 검찰은 국회의 사과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 대검찰청은 2022년 6월 국회에 전년도 국정감사 처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1심에서는 공소권 남용 주장이 배척됐다’는 등의 이유로 사과를 거부했다. 그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다시 한번 사과를 요구받았지만, 검찰은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이 사건은 국정원의 인권침해로 시작해 국정원과 검찰이 협업한 간첩 조작을 거쳐 검찰의 위법한 권한남용으로 끝났다. 책임의 무게중심이 국정원에서 검찰로 선명하게 이동했다.”(≪누가 죄인인가≫ 김용민, 돌베개, 2023년)
국회는 최후의 검을 빼들었다. 다름 아닌 검사 탄핵. 2023년 9월 21일 국회는 안동완 검사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곧바로 직무가 정지된 안동완 검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청구인(국회)는 보복기소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입증이 안 됐습니다.”
과거 국정감사 현장에서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했던 검찰. 하지만 안 검사는 대법원 판결도, 과거 검찰의 입장도 부정한 채 “(보복기소는) 전혀 입증이 안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우성은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간첩으로 내몰렸다. 힘겹게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은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그를 또 괴롭혔다. 대법원의 ‘공소권 남용’ 판결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보복기소’에 대해 유우성과 국민 앞에 고개 숙인 검사는 아무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오래된 말씀을 이쯤에서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