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유기견 대부’ 이정호의 유죄가 확정됐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그의 불법 안락사 사실을 보도한 지 약 2년 3개월 만이다.

법원은 지난달 26일, 유기견을 불법 안락사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이정호 전 군산시유기동물보호소(이하 군산보호소) 소장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유기견의 개체수가 많아져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유기견을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검찰과 이 전 소장 모두 항소하지 않아, 지난 3일 형은 확정됐다.

이정호 군산유기동물보호소 소장이 2019년 8월 8일 불법 안락사를 하는 모습. 백구는 앞날을 모른 채 꼬리를 흔들고 있다. ⓒ공익제보자 제공

2021년 9월 13일 전북 군산시 나포면의 한 동물보호소. 개 수십 마리가 짖어댔다. 상대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개 짖는 소리를 뚫고 귓가에 똑똑히 들린 말이 있었다.

“내가 구조했는데, 내 새끼를 내 손으로 (안락사)하는 게 낫잖아요?”

이정호 전 소장의 말. 그의 태연한 태도에 입이 벌어졌다. 본인이 신이라도 된다고 여기는 걸까. 자기가 구조한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다는 생각.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졌다. 셜록의 보도로 ‘비밀 안락사’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가 떠올랐다.

시작은 제보였다. 그로부터 약 한 달 전, 동물보호소 직원 4명이 기자를 찾아왔다. 그들은 가장 먼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사진 속엔 ‘주사기를 한 손에 든 채 강아지를 만지는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사진만 봐선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제보자들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2019년 한 해에만 (유기동물) 최소 80마리 이상을 직접 죽였습니다. 마취 없이 심정지약을 주사했습니다. 자기 좋아서 달려오는 아이한테 주사기를 그냥 꽂았습니다. 이후 굴착기로 땅을 파서 사체를 매장했습니다.”(제보자 A, 2021. 8. 26. 인터뷰)

동물보호소에서 대규모 불법 안락사가 은밀하게 이뤄졌다는 고백이었다.

안락사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질병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할 경우 마취 등을 통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인도적 방법에 한해서 유기동물의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 경우에도 안락사는 오직 수의사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제보에 따르면, 수의사도 아닌 일반인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동물에게 직접 심정지 약물을 투여하고 있었다. 사실상 안락사가 아니라 ‘고통사’였다.

문제가 된 곳은 ‘유기견의 천국’으로 불리던 군산보호소. 이곳은 군산시 위탁 유기동물보호소로, 2019년 당시 안락사 없는 ‘노킬(No Kill) 보호소’를 표방했다.

군산보호소는 “전국 최초 안락사 없는 유기동물 보호 활동으로 생명존중 문화 확산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2020년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군산보호소에 지원된 지자체 보조금은 연평균 6억 원이다.

당시 군산보호소 위탁 운영을 맡은 인물이 바로 이정호 소장. ‘노킬 보호소’의 수장으로서 그는 ‘유기견의 대부’로 칭송받았다. 일부 방송과 언론은 유기견 구조와 보호의 모범 사례로 그를 소개했다. 셜록은 2021년 8월부터 두 얼굴의 유기견 대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정호 군산보호소 전 소장. 일부 방송과 언론은 유기견 구조와 보호의 모범 사례로 그를 소개했다.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영상 갈무리

팩트체크부터 시작했다. 불법 안락사 전후 모습이 담긴 유기동물의 사진, 전자기록상 입양으로 조작된 개체카드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대조했다. 이 전 소장에 의해 불법 안락사를 당한 강아지가 개체카드상에는 마치 입양을 간 걸로 조작돼 있었다.

맹성규 국회의원실(더불어민주당, 인천 남동구갑)을 통해 ‘동물병원을 통한 군산보호소의 연도별 안락사 시행 개체’ 자료를 요청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수의사가 합법적으로 안락사한 개체는 단 한 마리뿐이었다.

현장도 놓치지 않았다. 군산보호소도 세 차례 직접 방문했다. 군산보호소 현 운영자들과 군산시청 담당 공무원들도 만났다. 일반인이 취급할 수 없는 심정지 약물을 이 전 소장에게 건넨 사람을 추적하기 위해, 충남 논산, 전북 익산과 정읍, 광주 등 다른 지역까지 찾아다녔다.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이 전 소장도 직접 만났다. 이 소장은 2021년 3월 31일 군산보호소 소장을 그만두고, 취재 당시 다른 사설동물보호소를 운영 중이었다. 이 전 소장은 기자에게 불법 안락사 사실을 인정했다.

기자 : “마취 없이 심정지 약물로만 안락사할 때 동물들 반응이 어땠나요?”
이 전 소장 : “솔직히 말해요? 마취하는 것보다 나아요.”
기자 : “마취를 안 하고 심정지약을 넣는 게 낫다고요?”
이 전 소장 :“제가 봤을 때는 그랬어요. 동물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어요. 마취가 빨리 되는(숨이 빨리 멎는다는 의미) 느낌이랄까요.”(2021. 9. 13. 인터뷰)

셜록은 그해 10월부터 총 14편의 기사를 보도했다. 불법 안락사 문제와 더불어, 불법 안락사에 사용된 심정지 약물 입수 경로, 유기동물 관리 미흡 및 보호비 부정수급 문제 등을 연속 보도로 다뤘다.(첫 기사 : <자기 좋아서 달려오는 개에게 주사기를 꽂았다>)

이 전 소장은 셜록의 첫 기사가 나간 지 하루 만에 사설 동물보호소 대표직을 사퇴했다. 그는 SNS를 통해 “내게 배신감과 분노, 실망한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며,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고 밝혔다.

셜록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하 동변)’과 함께 이 전 소장 등을 동물보호법 위반 등으로 형사고발했다.

이정호 소장은 2021년 9월 13일 인터뷰에서 불법 안락사 문제에 대해 “내가 구조한 내 새끼들을 내 손으로 (안락사하는) 게 낫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셜록 영상 갈무리

경찰은 이 전 소장의 불법 안락사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전 소장은 2019년 9월경부터 같은 해 12월경까지 군산보호소에서 보호 중이던 유기견들에 직접 심정지약 ‘썩시팜(Succipharm)’을 주사로 투여해 불법 안락사시키고, 보호소 내 공터에 굴착기를 이용해 매립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다만 제보자들은 불법 안락사당한 유기견 수를 최소 80마리로 주장한 반면, 이 전 소장은 20마리만 인정했다.

경찰은 이 전 소장의 자백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나섰다. 직접 군산보호소 내 땅을 파고 유기견 사체를 찾아냈다. 경찰은 그곳에서 유기견의 뼈와 신체 조직, 털들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 전 소장의 혐의를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그리고 2024년 1월 26일, 재판 결과가 나왔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법관 지창구)은 동물보호법 위반, 사기, 지방재정법 위반,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를 받는 이 전 소장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2019년 6월 2일 군산보호소에서 유기견의 개체수가 많아져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백구 4마리에게 썩시팜을 투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비롯해 2019년 8월 8일까지 총 8마리의 유기견을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 안락사 유기견 수를 제보자의 주장이나 이 전 소장의 자백에 비해 훨씬 적게 인정했다.

이 전 소장과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형은 2월 3일 확정됐다.

불법 안락사 혐의를 받는 이정호 전 소장은 2024년 2월 3일 유죄를 확정받았다.  ⓒ셜록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된 건 불과 1년도 안 됐다. 기존 동물보호법에선 법에 명시된 행위만 처벌했다. 예를 들어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 또는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등을 처벌했다.

지난해 4월 27일 법이 개정되면서, ‘정당한 사유’를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명시했다.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 ▲허가·면허 등에 따른 행위를 하는 경우 ▲동물의 처리에 관한 명령·처분 등을 이행하기 위한 경우로 한정한다(동물보호법 제10조 제1항 제4호). 이외의 죽음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처벌할 수 있다.

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로 유죄가 확정된 사례는 3건이다(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 기준).

주방 벽면에 개를 집어던져 죽인 사례(2023. 11. 10.)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여자친구가 기르던 강아지를 발로 걷어차 죽인 사례(2023. 8. 18.)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전 소장 사례도 올해 3일 징역형이 확정돼 여기에 포함된다.

이 전 소장의 행위는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마취제도 사용하지 않고 심정지 약물을 투여한 그의 행위는 ‘독살’에 가까지만, 수사기관은 해당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변 소속 김도희 변호사는 “설령 잔인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자체로도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동물보호법 외에도 여러 위법행위가 있었음에도 형량이 집행유예와 벌금에 그쳐 여전히 동물 대상 범죄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태도를 알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소장에게는 동물보호법 위반 외에도 사기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이 전 소장이 “근무상황부를 위조, 행사하는 방법으로 피해자(군산시청)를 기망하여 1350만 원을 송금”받고, “거짓 신청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지방보조금을 교부받음과 동시에 피해자를 기망해 피해자로부터 근로자보상금 명목의 돈을 편취”한 사실을 확인했다.

군산보호소 전·현직 운영진들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군산시청은 현 운영진인 사단법인 리턴이 지자체 위탁 동물보호소 지정 취소 대상에 해당하는지 알아보고 있다. ⓒ셜록

현재 군산보호소를 위탁운영 하고 있는 ‘사단법인 리턴’ 소속 김○○ 실장도 이 전 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20년 1월부터 이 전 소장과 함께 일했다.

김 실장은 이 전 소장의 지시에 따라 근로자보상금을 허위 청구한 후 군산보호소 운영비로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법원은 김 실장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김 실장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사단법인 리턴은 올해 새롭게 군산시와 위탁계약을 맺어, 2026년까지 군산보호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제보자 B씨는 이정호 전 소장과 김 실장의 유죄 판결을 두고 이런 소감을 밝혔다.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만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군산보호소 전·현직 운영진들이 사기, 지방재정법 위반, 사문서 위조 등으로 재판 중인데도, 군산시는 현 운영진과 다시 위탁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유죄 판결이 나왔으니 군산시에서 적절한 조치를 하기 바랍니다.”

군산시청 유기동물보호소 담당자는 지난 14일 통화에서 “군산보호소 관계자들의 1심 유죄 판결과 관련해서 동물보호센터 지정 취소 대상에 해당하는지 법률 자문을 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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