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비 부정 사용이 의심됩니다.”
2023년 9월 25일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에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또 ‘우촌초등학교’(학교법인 일광학원)였다. 지난 2019년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로 떠들썩했던 그 학교. 비리를 제보한 교직원들을 해고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복귀를 거부하고 있는 그 학교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2022년 기준 우촌초 1년 치 학부모 부담금은 1480만 원. 연간 총액은 75억 원이 넘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교비는 말 그대로 학생 교육에만 써야 하는 돈. 하지만 2021년 5월 우촌초는 교비로 고급 리조트 ‘아난티(Ananti)’ 회원권을 샀다. 그 가격은 무려 1억 9000만 원.
아난티는 가평, 남해, 부산, 제주 등 전국 곳곳에 위치한 휴양 리조트다. ‘프라이빗 객실, 독채 빌라, 골프클럽, 수영장 등 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곳. 회원권 가격은 1억 8000만 ~ 2억 원 수준이다.
“교직원 복지를 위해 리조트 회원권을 구매했다면, 학교 법인 돈으로 교직원 복지비용을 처리해야 합니다. 교비는 아이들 교육활동을 위한 돈이기 때문에 (교비로 리조트 회원권을 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교비로 물건 하나를 구입한다 해도 그게 왜 필요한지 구체적인 사용 목적을 밝혀야 하는데, 아난티 회원권은 (서류상에) 그저 ‘교직원 복지’, ‘리조트 구입’ 이렇게 한 줄씩만 적혀 있어요. 제 주머니 쌈짓돈 쓰듯 하는 거죠.”(김승진 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주무관, 2024.1.26. 전화 인터뷰)
초등학교에 억대 고급 리조트 회원권이 왜 필요했을까. 교비는 교육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교육 목적’의 교직원 연수 또는 복지에 관한 지출은 일부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교직원 복지’를 위해 리조트 회원권을 산다면, 교비가 아니라 학교법인 돈을 써야 한다. 그리고 교사・교직원 전체가 이용할 수 있게 공지해야 한다.
“교직원이나 교사들에게 따로 리조트 이용 공지를 내진 않았습니다.”(제보자 인터뷰)
우촌초 학교업무시스템에서는 리조트 회원권 구매에 관한 문서 제목만 확인할 수 있었다. 문서 상세 내용은 일부 이용자만 확인할 수 있도록 열람 제한이 걸려 있었다.
학교 구성원 중 ‘일부’만 리조트 회원권의 존재를 알고 비밀리에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리조트 회원권 구입 이후 약 2년 반 동안 리조트를 이용한 인원은 행정직원 8명뿐이었다(2023년 11월 10일 기준).
서울시의회 전병주 의원(더불어민주당·광진1)이 입수한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우촌초에 아난티 리조트 회원권 구매에 관한 자료를 요구했다. ▲우촌초 교직원, 학생, 학부모의 계약 콘도(리조트) 이용 내역 전체 ▲계약 목적 및 경위 ▲계약 후 이용권 이용 내역 전체(증빙 첨부) 등이다.
가. 우촌초등학교 교직원, 학생, 학부모의 콘도 이용 내역
: 행정직원 8명이 9회(13박) 이용하였음.
나. 콘도계약 목적
: 학교행사, 워크샾, 협의회 및 교직원 복지 등을 의해 구입함.
다. 계약 후 콘도 이용 내역
: 학교 구성원이 아닌 자가 이용한 적이 없음. 끝. (‘(우촌초)민원감사 답변 요구 회신의 건’, 2023. 11. 13.)
답변은 부실했다. 우촌초는 누가, 언제, 왜 리조트를 이용했는지 자세한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또한 지출품의서, 원인행위결의서, 지출결의서 등 우촌초가 제출한 자료에는 1억 9000만 원 집행에 대한 상세 날짜나 결재라인 정보는 빠져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우촌초의 리조트 회원권 구매에 관한 부패신고 민원을 접수하고 조사 중이다. 조사 결과 회계 부정 등이 의심될 경우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그런데 우촌초는, 이 짧은 답변서에서 왜 “학교 구성원이 아닌 자가 이용한 적이 없음”을 강조했을까. 다 이유가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사장의 임원취임 승인까지 취소된 ‘대형사건’이었다.
우촌초의 리조트(콘도) 회원권 구입 문제는 처음이 아니다. 우촌초는 2011~2012년 두 곳의 콘도 회원권을 학교 예산에 편성하지 않은 채 학교 돈으로 구매한 바 있다. 지출한 금액은 각각 1억 8000만 원과 7812만 원이었다.
이때도 우촌초는 ‘교직원 복리후생 및 학생복지 활동’을 목적으로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직원이 아닌 타인”이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두면서 학교 예산을 낭비했다.
서울행정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학교장은 “각 리조트 회원권 구입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구입한 이후에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교감도 “누구의 지시로 리조트 회원권을 구매했는지 아는 바가 없고, A 리조트에 교직원 연수를 한 번 간 적이 있으나 사용신청을 한 교사가 있는지 여부는 모르고, B 리조트는 이용한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학교법인 일광학원 이사장은 유순남(73) 씨였다. 여기서 또 다시 ‘그분’의 이름이 등장한다. 우촌초 스마트스쿨 비리 사건의 출발점에 서 있던 사람. 바로 이규태(74) 일광그룹 회장이다. 당시 이사장 유 씨는 바로 이 회장의 배우자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이 회장이 일광학원 이사장을 지냈고, 그의 뒤를 이어 배우자 유 씨가 이사장에 취임했다.
2013년 8~9월 서울시교육청이 우촌초를 상대로 실시한 종합감사에서, 콘도(리조트) 회원권 구입 문제 등 7개 지적사항이 적발됐다.
서울시교육청은 그와 관련해 2015년 3월 학교 법인 전 이사장 이규태와 유순남의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이들은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18년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학교 회계로 거액의 리조트 회원권을 구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재산으로 보고하지 않고 교직원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부당한 회계집행에 해당한다.”(서울행정법원 판결문, 2018. 6. 12.)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의 판결 이후 약 3년밖에 지나지 않아 우촌초는 또 다시 억대의 고급 리조트 회원권을 학교 돈으로 샀다.
지난해 9월 우촌초의 리조트 회원권 구입 제보를 접수한 서울시교육청은 감사를 위해 추가적인 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우촌초는 2021년 하반기부터 서울시교육청의 모든 감사를 거부하고 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교육감과 ‘임원취임승인취소 관련 소송 중’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촌초의 감사 거부는 2019년 5월에 터진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사건. 당시 우촌초 교장 최은석, 교감 이양기, 교직원 유현주・박선유 등 공익제보자 6명은 비리 의혹을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고, 결국 스마트스쿨 사업은 철회됐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야 니가 나한테 만 원을 줬어. 그럼 그 만 원을 니 허락 받고 써야 되냐? 이미 니 손을 떠났으니까 이 돈은 내 돈이야.”
이규태 회장은 최은석 당시 교장을 불러 종종 이런 비유를 들었다. 당시 이 회장은 이미 학교 법인에서 물러난 ‘전’ 이사장일 뿐인데도, 약 3억 원 정도면 충분한 것으로 알려진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약 24억 원까지 부풀리라고 지시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이 회장이 함께 범행을 모의한 업체가 입찰에 선정되도록 만들고, 용역대금 일부를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교비 횡령을 계획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듬해인 2020년 8월,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승인을 취소했고, 학교 법인 측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3년 6개월째 소송이 진행 중이다.(관련기사 : <피 말리는 3년 6개월… ‘역주행’ 재판에 사학재단만 웃는다>)
우촌초는 현재 네 건의 감사를 거부하고 있다. ▲리조트 회원권 구매 건 ▲학교회계 약 48억 원 지출 건 ▲학부모 불법찬조금 모금 의혹 건 ▲종합감사 건이다.
2021년 우촌초는 리조트 회원권 구매 대금을 포함해, 학교 이월금 약 48억 원을 써버렸다. ‘교실 증개축’ 항목에만 38억 원을 지출했다. 이월금 50억 8952만 원 중 남은 금액은 2억 3615만 원뿐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우촌초 현장 감사에 나섰다. 하지만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감사관들은 30분가량 교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우촌초는 감사 전날 늦은 오후, ‘감사 거부’ 공문을 보냈다고 뒤늦게 알렸다. 이후에도 몇 차례 감사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학교 측은 ‘행정소송 중이라 감사를 받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학부모 불법찬조금 모금 의혹’에 관한 감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서울시교육청 성북강북교육지원청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우촌초의 불법찬조금 의혹 민원을 접수했다. 성북강북교육지원청은 감사를 시도했으나, 우촌초는 ‘감사의 타당성’을 문제 삼으며 네 차례나 불응했다.
우촌초는 해마다 실시하는 종합감사도 거부하는 중이다. 지난해 3월 우촌초는 학교 여건 등을 이유로 감사 연기를 요청해, 7월로 감사 일정을 변경했다. 하지만 우촌초는 감사 일주일 전까지 제출해야 하는 자료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한 차례 자료 제출 기회를 더 줬지만, 우촌초는 끝내 공문으로 감사를 거부했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죠. 관할 교육청의 감사를 이렇게까지 거부하는 학교는 처음입니다.”(김승진 전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 주무관, 2024. 1. 26. 전화 인터뷰)
“공공성이 있는 교육기관을, 감사를 거부하며 운영할 거라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을 했어야 합니다.”(서울시교육청 행정소송 대리인 손영실 변호사, 2024. 2. 14. 전화 인터뷰)
사립재단이 운영하는 초・중・고등학교, 유치원 등 교육기관은 관할 교육감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한다. 우촌초와 같이 감사를 거부하면, 사립학교법 제48조 ‘보고징수 등’ 위반으로 형사고발 할 수 있다. 혐의가 인정되면 사립학교 법인의 이사장 또는 경영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14일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감사부 관계자는 “(감사 거부) 형사고발 관련된 사안은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자는 지난달 2~3일 우촌초 측에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리조트 회원권 구매 등을 질문했지만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지난달 4일 등기우편으로 서면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아무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