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부인과 의사는 신이었다.
결혼 후 6년간 노력해도 생기지 않던 아이가, 임신에 좋다는 온갖 음식과 약을 먹어도 소식 없던 생명이, 그 의사를 만나자 순식간에 생겼다. 마음고생을 하던 아내는 임신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 종갓집 장손을 챙기는 노부모는 “만세”를 외쳤다.
한국에서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생긴 아이. 의사는 “유산 우려가 있다”며 임신 직후 입원을 권유했다. 누구 말씀이라고 안 따를까.
남편은 아내가 입원한 1인실 병동으로 날마다 출퇴근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의사는 오전 6시께부터 후배 의사들과 간호사를 이끌고 회진을 했다. 부지런한 의사를 볼 때마다 남편은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아내의 배는 조금씩 불러왔다. 남편의 기쁨은 저 하늘의 애드벌룬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다. 1997년 봄, 아들이 태어났다.
시험관 시술 국가 지원이 없던 시절. 임신과 출산, 입원비로 수천 만 원을 썼다.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아이는 모든 가족에게 축복이었다.
둘째 아이도 갖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다시 그 의사를 찾아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어김없이 임신에 성공, 건강한 딸을 낳았다.
장현수(가명, 50대 후반), 김연희(가명, 50대 중반) 부부에게 두 아이를 선물한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이상훈 교수는 그야말로 신이었다.
출산 후에도 자궁 쪽이 좋지 않던 아내는 이 교수에게 계속 진료를 받았다. 그림을 그리고, 와인과 음악을 좋아하며, 마라톤을 하는 이상훈 교수는 살가운 사람이었다. 건강정보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주는가 하면,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떠나면 현지 사진도 전송하곤 했다.
첫째 아들이 다섯 살이 된 2002년께, 간염 항체 검사를 위해 부부는 소아과를 찾았다. 아들의 혈액형은 A형으로 나왔다. 부부는 모두 B형, 자녀 혈액형은 B형이나 O형인 게 일반적이다. 근데 아들이 A형이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부모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아이는 분명 A형이에요. 부모님께서 혈액형 검사를 다시 해보는 게 어때요?”
소아과 의사의 조언대로 부부는 임상의학과를 찾아 혈액형 검사를 했다. 역시 B형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아내는 이상훈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항상 유쾌하고 당당한 이상훈 교수의 목소리가 이전과 다르게 떨렸다.
“아…. 혈액형 검사를 해보셨어요? 일단, 병원으로 한번 오시지요. 제 진료실에서 따로 이야길 나누면 좋겠습니다.”
며칠 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이상훈 교수 진료실을 찾았다. 이 교수는 항상 진료실에서 있던 간호사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냈다. 이 교수는 부부에게 영어로 된 문서 하나를 내밀었다.
“자, 여기 보이시죠? 시험관 시술을 하면 종종 혈액형 돌연변이로 부모와 다른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태어납니다. 학계에도 다 보고되는 사례입니다. 하나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자연스러운 태도와 친절한 설명. 누구 말씀이라고 이걸 안 믿을까. 영어로 된 의학 문서는 어렵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만 귀에 쏙쏙 박혔다.
자기 아이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장현수-김연희 부부도 그랬다. 무엇보다 다섯 살 아들은 아빠와 붕어빵이었다.
아들은 건강하고 영민하게 자랐다. 학교에선 늘 1등을 했고, 부모님이 평생 받은 걸 합친 것보다 많은 상을 초중고 내내 휩쓸었다. 다만, 아빠와 닮았던 얼굴은 유년기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스무 살. 아들은 단박에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어렵게 낳은 아들이 공부까지 잘해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니 그야말로 경사였다. 아내 김연희 씨는 이상훈 교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께서 힘들게 만들어주신 아들이 잘 커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 교수는 곧바로 전화 연락을 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원래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아이 중에는 천재들이 많습니다.(웃음)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시험관 시술부터 임신과 출산까지, 아들을 갖도록 도와준 산부인과 의사와의 특별한 인연은 오래 이어졌다. 아내는 20년째 이상훈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고, 사춘기에 들어서며 생리불순을 겪은 딸 역시 이 교수가 진료했다.
이 교수는 한결같이 친절했다. 진료차 병원을 찾으면 아들의 안부를 묻고 “병원에 한번 데려오라”는 말을 몇 번씩 했다. 진료실 간호사에겐 민망할 정도로 김연희 씨 아들 자랑을 했다.
“글쎄, 이 집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다닌다니까! 천재예요, 천재!”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부부는 아이의 독립을 생각했다. 자신은 왜 부모님과 일치하지 않는 혈액형을 가졌는지, 부부는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고 싶었다. 그래야 아들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출생의 비밀’ 따위로 고민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상훈 교수는 2018년 정년퇴직으로 중앙대병원을 떠났다. 아내 김연희 씨는 여전히 중앙대병원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담당의사는 H 교수로 바뀌었다. 아내는 그동안 얼굴을 익힌 간호사를 한쪽으로 불러 말했다.
“우리 부부 혈액형은 B형인데, 아들은 A형이거든요. 오래전에 이상훈 교수님이 저희에게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종종 그런 돌연변이 혈액형이 나온다고 했거든요. 그때 이 교수님이 우리한테 보여주신 자료가 있는데, 그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간호사는 어색하게 웃더니 이내 차갑게 얼굴이 굳었다.
“부모님은 다 B형인데, 아들이 A형이라구요? 그게 말이 됩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간호사는 곧바로 H 교수 진료실로 들어가 방금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내 김연희 씨가 진료실로 불려 들어갔다. H 교수는 무척 곤란한 얼굴이었다.
“상당히 예민한 문제라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당시 시술을 맡았던 이상훈 교수님에게 직접 연락해 답을 듣는 게 좋을 텐데… 일단은 제가 먼저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간호사는 “이 교수님과 논의해 연락하겠다”고 김연희 씨에게 말했다. 하루를 기다리고 이틀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답답한 김연희 씨는 이상훈 교수에게 직접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예전에 저희 아들 혈액형 관련 돌연변이 자료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 자료 지금이라도 받아볼 수 있을까요?”
이상훈 교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 김연희 씨는 전화를 걸어봤다. 아예 신호가 가지 않았다. 번호가 차단된 것이다. 남편 장현수 씨가 연락을 해봤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장 씨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차단, 신호 자체가 가지 않았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부부는 고개를 저었다. 신처럼 생각한 사람, 병원에서 정년퇴직 한 후에도 건강정보를 알려주던 이상훈 교수가 거짓말 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아내와 딸을 진료하며, 약 25년이나 가깝게 지냈다.
남편 장현수 씨는 이 교수가 외국에 나갔거나, 사정이 있어 연락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마음도 편했다. 2021년 8월의 일이다.
6개월을 기다려도 이상훈 교수는 연락하지 않았다. 김연희 씨는 아들의 대학 졸업식이 열린 2022년 2월 어느 날, 중앙대병원 민원실을 찾아 ‘혈액형 돌연변이 자료’를 요청했다. 병원 측은 난감해하며 “이 교수와 접촉한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병원 역시 연락하지 않았다. 몇 차례 항의를 하자 겨우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전화, 문자, 이메일을 보내도 이상훈 교수와 연락이 안 됩니다. 저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시험관 시술을 책임진 이상훈 교수는 잠적해 연락을 끊었고, 중앙대병원은 “알아서 하시라”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 고의든 실수든 의료사고 따위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신을 향한 믿음이 반토막 났다. 병원은 김연희 씨를 “잡상인 취급”했다.
아내 김연희 씨는 남편과 자신의 머리카락을 채취했다. 아들은 외국에 있어 머리카락을 채취할 수 없었다. 대신 아들이 쓰던 칫솔을 챙겼다. 이때까지도 남편 장현수 씨는 신을 믿으며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뭘 또 유전자 검사까지…. 설마 이 교수님이 우리한테 거짓말을 했겠어?”
아내는 남편과 아들의 유전자 샘플을 들고 서울의 한 유전자정보 조사업체로 향했다. 엄마가 자기 아들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고 검증에 나서야 하다니. 불지옥에 떨어진 것마냥 김 씨의 몸은 타는 듯이 아팠다.
결과는 이틀 만에 나왔다. 유전자 조사업체는 전화로 먼저 결과를 알려줬다. 그때 남편은 고속도로에서 운전하고 있었다. 아내의 연락을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유전자 확인이 끝났다고 했다. 아내가 물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 거 같애?”
운전하던 장 씨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여전히 “설마” 하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당신과 일치하는 유전자 정보가 하나도 없대.”
순간 장현수 씨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기 차도, 반대편 도로의 차도 모두 멈춘 듯했다. 장 씨는 “다시 말해 달라”고 작게 말했다.
“우리 아들이 나랑은 유전자가 일치하는데, 당신과는 일치하는 정보가 하나도 없대.”
장현수 씨는 고속도로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웠다. 온몸에서 피가 줄줄 새는 기분이 들어 운전대 쥘 힘도 없었다. 잠시 운전석에 앉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나’를 곱씹어봤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속았네. 이상훈 교수… 이거 완전히 개○끼네!”
아내를 만난 지 30여 년. 아내 입에서 욕설이 처음으로 튀어나왔다. 비로소 정신이 들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내의 욕설 때문이 아니다. 이상훈 교수의 거짓말과 그에게 속아온 20년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곧바로 남편은 울기 시작했다. 분노, 억울함, 답답함, 상실감이 뒤섞인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그 뒤로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상훈 교수는 여전히 연락두절, 중앙대병원은 아직도 ‘모르쇠’. 부부는 2022년 12월 병원과 이 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었다. 어떤 배상보다도 진심 어린 사과와 진실규명을 원했다. 하지만 중앙대병원은 이런 답변으로 부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시험관 시술 후 아내 분이 자연임신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처럼 여긴 교수와 대학병원이 이렇게 답변하다니. 아내 김연희 씨가 외도했다는 뜻 아닌가. 시험관 시술 직후 건강 문제와 유산 우려로 곧바로 입원했는데, 그 순간에 외도를 해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고? 중앙대병원 측은 변호사를 통해 두 번째 비수를 날렸다.
“합의금으로 1000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처참하고 굴욕적이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이상훈 교수가 약 20년간 김연희-장현수 부부를 속였다는 사실.
“아들 혈액형이 우리 부부와 일치하지 않아 찾아간 2002년께부터 이 교수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 후 20년간 우리 가족을 갖고 논 거잖아요! 혹시라도 우리가 진실을 알아차릴까봐 그동안 감시했던 거고. 이런 상황인데, 중앙대병원은 아무 책임도 안 지고…. 정말 미칠 거 같습니다.”
남편 장현수 씨의 말이다. 아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군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묻고 따지고 싶은데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보다 진실을 알고 있을 이상훈 교수는 3년째 잠수를 타며 연락두절이다.
2023년 연말 진실탐사그룹 셜록 사무실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장현수 씨였다.
“저 많이 지쳤습니다. 가족들에게 표현은 못했지만 유전자 검사가 나온 날 이후로 하루하루를 무슨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앙대병원과 이상훈 교수의 안일하고 뻔뻔한 태도에 너무도 화가 납니다. 억울하고 분합니다. 미치게 답답합니다. 지금까지 그들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치가 떨립니다. 저의 마지막 선택이 중앙대병원과 이상훈에게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돌아가길 바랍니다.”
불길한 편지였다. 바로 그날 새벽 1시, 아내 김연희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님, 큰일 났습니다! 남편이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지금 응급실 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2023년 12월 25일의 일이다. 셜록이 이상훈 교수를 추적한 지 6개월째, 사태는 더 커져가고 있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