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2시.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 두 번째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유우성의 탄원서’를 언급했다. 그는 재판부에서 유우성 씨가 제출한 탄원서를 검토했다며, ‘5분 정도의 진술 기회를 달라’는 유 씨의 요청을 전했다.
재판부는 국회 측과 안동완 검사 측의 의견을 번갈아 물었다. 국회 측은 당연히(?) 동의. 그때 안 검사 측 대리인 이동흡 변호사(전 헌법재판관)가 손을 들었다.
“피청구인(안동완 검사) 측에서는 이의가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일반 사인(私人)이 변론 참여자로 나서는 것은 헌법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유우성에게 진술 기회를 주는 것을 거부했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방청석을 둘러봤다.
“유우성 씨 나오셨나요?”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우성 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 진술 기회를 주려는 건가?’ 유 씨는 작은 기대를 품으며 준비했던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현실은 냉정했다. ‘진술 기회를 줄 수는 없지만 탄원서를 통해 유 씨의 마음을 헤아리겠다’는 헌법재판소장의 목소리. 다시 자리에 앉은 유 씨가 입을 굳게 닫았다. 그는 한동안 지친 얼굴로 정면만 응시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재판에서, 고작 5분조차 그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유우성과 안동완, 두 남자의 ‘악연’은 2014년 5월 시작된다. 안동완 검사는 유우성 씨를 외국환거래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의자였던 유우성. 하지만 그를 간첩으로 몰고 간 증거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건의 이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바뀌었다.
국정원과 검찰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유우성에 대한 간첩죄 ‘무죄’ 판결이 기정사실화 되던 때, 안동완 검사가 등장했다. 그는 몇 년 전 검찰 스스로 ‘기소유예’로 마무리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유 씨를 기소했다.
보수단체의 고발부터 유 씨에 대한 기소까지 그 모든 게 불과 50일 만에 이뤄졌다. 유례 없는 ‘초스피드’ 서비스. 특별히 새로운 증거가 드러난 것도 아니었다. 보수단체가 고발장에 첨부한 증거는, 언론이 ‘검찰발’ 정보를 바탕으로 보도한 기사밖에 없었다. 검찰이 간첩 조작 사건으로 체면을 구긴 것에 대해 ‘보복기소’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지만, 반전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항소심 재판부는 안동완 검사의 기소에는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지적하며, 검사의 ‘공소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2021년 10월 14일 최초의 ‘공소권 남용’ 확정판결이 나왔다.(관련기사 : <간첩조작 막장극에 보복기소 복수극… 검사를 탄핵하라>)
12일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 변론에서 국회 측은, 바로 이 대법원 판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공소권 남용을 인정하는 데 엄격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다가, 2021년에 이르러 최초로 공소권 남용을 인정했다. 안 검사의 기소 행위는 엄중한 대법원마저 공소권 남용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안 검사 측은 공소권 남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1심 재판부의 판결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소권 남용’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안 검사 측은 당시 배심원 다수가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과 달리 유 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배심원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고 의견을 달리하는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었다.
양측은 ‘공무원으로서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것인가’를 두고도 주장이 엇갈렸다.
국회 측은 검사 역시 공무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회 측 대리인 김유정 변호사는 “검사가 아닌 공무원인 경우에는 직권을 남용해 타인 권리를 침해했을 때, 성실 의무 위반으로 파면에 처해질 수 있다”며, “검사라고 해서 다른 공무원들과 판단을 달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즉, 공무원은 국가공무법상의 징계 절차를 통해, 검사의 경우에는 탄핵 절차를 통해 파면되는 것으로 절차적 차이만 있을 뿐, 직책에 따라 파면 사유가 달리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에 안 검사 측은 “오히려 일반 공무원이었다면 징계 시효 3년이 도과했을 사안”이라며, “(국회 측이) 검사가 특혜를 누리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측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 행위가 탄핵 등의 법적 제재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검찰의 권한 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수는 없을 것”이라 우려했다. 그리고 “유우성과 같은 ‘보복기소’의 피해자가 또 다시 등장하지 않도록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통제하고, 헌법질서를 회복해달라”고 호소했다.
안 검사 측도 헌재에 ‘정의구현’을 요구했다. 이들은 검찰에 대한 위축 효과를 목적으로 한 ‘정치탄핵’을 강하게 의심했다. 이어 “법원의 확정판결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 사건 탄핵소추 사유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적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2일 헌법재판소는 국회 측과 안 검사 측의 최종의견 진술을 듣는 것으로 변론 절차를 종결했다. 이날 국회 측에서는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국민의힘, 부산 북구강서구을)이, 안 검사 측에서는 안동완 검사 본인이 각각 불출석했다.
“당연히 (진술을 승인)해줄 줄 알았어요.”
유우성 씨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간첩조작과 보복기소의 피해자인 그에게는 끝내 단 5분의 진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변론은 모두 끝났다.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단뿐이다. 유 씨는 아쉬운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5분’을 위해 준비했던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았다.(관련기사 : <유우성을 악몽에 가둔 검사들, ‘탄핵’마저 피해갈까>)
지난달 20일 첫 번째 변론기일, 유우성 씨가 기자들 앞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피해자로서 발언권 없이 방청석에 앉아서 (변론을) 들으며 너무 많이 힘들었습니다.”
유 씨는 이날 두 번째 변론을 앞두고 밤을 꼬박 새워 9쪽에 달하는 탄원서를 작성했다. 탄원서 일부를 여기 옮긴다. 그가 헌법재판소에서, 안동완 검사 앞에서 꼭 하고 싶었던 말들이다.
<유우성 탄원서 일부>
저는 지난 2024년 2월 20일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을 방청석에서 앉아 지켜봤습니다. 또 다시 안동완 검사와 변론인들은 제가 하지도 않은 일을 마치 검찰 조사를 통하여 대북송금 사업을 확인한 것처럼 꾸며 거짓 진술을 하였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사건 내용을 들으며 이를 악물고 뼈를 깎는 아픔을 참으며 변론인들의 저에 대한 거짓내용과 명예훼손을 청취해야만 했습니다.
피해 당사자로서 이러한 거짓 행위를 지켜볼 수만 없어 존경하는 판사(헌법재판관)님들께 사건에 대하여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04년경 입국 당시 국정원은 제가 독립유가족이며 재북화교 출신이라는 것을 저의 동창생들과 동네 주민들을 통해 충분히 확인했음에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2010년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조사한 이후 국정원에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 분들이 재북화교 출신이므로 비교적 중국과 북한을 편하게 드나들 수가 있어 국가정보원 정보활동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북한에서 영어를 제대로 못 배워 결국 (한국에서) 의대는 못 가게 되었지만, 다른 전공으로 학부를 다니다 졸업을 앞두고 서울시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상대로 대한민국 최초로 공무원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 다른 탈북자들과 공모에 응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 저는 최초로 서울시 복지정책과 공무원으로 2011년 5월경 채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2013년 1월, 저는 하루아침에 “북한 특수간첩”으로 둔갑되어 긴급체포가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대학생들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알고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 장학금 신청서를 작성했는데, 이를 북한에 넘겼다는 혐의를 받은 것입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이 댓글공작을 하였다고 비난을 받던 때였는데, 서울시공무원인 제가 간첩이라며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간첩이 정부기관까지 침투에 들어왔다’는 기사로 도배를 하였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을 잡았다는 기사로 시끄러웠지만 저는 그런 소식을 전혀 모른 채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했습니다. 저는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몸무게가 12킬로 이상 빠져 혈액응고질환으로 중앙대병원 응급실에까지 실려갔고 중환자 병실에서 치료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변호사님을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노력해주셔서 기적같이 억울함을 벗어내고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조작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2014년 5월경 이미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간첩조작 사건”의 항소심이 선고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안동완 검사의 기소로 인해) 또 다시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되어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증거 위조를 밝힌 저를 검찰은 이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시켜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공소권 남용” 판결을 받았을 때도 간첩사건과 마찬가지로 저는 그 누구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과거 보도들로 인하여 ‘북한 송금 브로커’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많은 탈북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삽니다. 특히 그 사람들은 검찰의 말만 믿고 간첩 조작사건의 진실을 외면하고 ‘북한 송금 브로커를 했으면 당연히 간첩이 맞다’면서 욕을 합니다.
만약 공소권 남용사건을 검찰과 공수처에서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했으면 이 사건은 헌재까지 올 사항이 아니었지만, 결국 이 사회에서 검사를 처벌하는 곳이 없어 여기 대한민국 최고의 법기관, 헌재 탄핵 사건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 과정은 너무나 많은 의혹과 실망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권력과 돈 앞에서는 법도 무력하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개인이 선택의 여지 없이 무력하게 당할 수는 있지만 역사는 그것을 기록하고 그 만행을 평가할거라 믿습니다. 대한민국의 최고 법기관인 헌재에서 무너진 법 기강을 다시 세워주시고 저 같은 힘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잃지 않고 법의 보호를 받고 권력 남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게 지켜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며 공정한 판단으로 사건을 보시고 결론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2024. 3. 12. 제2회 변론기일 진행과 관련하여, 변론 종결 전에, 제가 참고인의 지위에서 간략히 (약 5분 상당) 저의 입장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