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순진한 믿음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었을까. 밤마다 불을 끄고 누우면 어김없이 머릿속에 의문이 밀려왔다. 한참을 뒤척여도 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그날의 진료실 풍경과 의사의 태연한 말만 다시 떠올랐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 종종 혈액형 돌연변이로 부모와 다른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태어납니다. 하나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우리 장도윤(가명), 두 분 아들 맞잖아요!”
자신과 아내의 혈액형은 모두 B형인데, 시험관 시술로 태어나 벌써 다섯 살이 된 아들은 A형이라니. 부부가 모두 B형이라면 자녀의 혈액형은 B형 또는 O형인 게 일반적이다. 시술 책임자였던 이상훈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2002년 어느 날, 장현수(가명) 씨와 아내 김연희(가명) 씨를 불러 저렇게 말했다.
바보처럼 저 말을 믿었다니…. 밤새 자책하다보면 어느새 아침이었다.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야 한다며 다짐하고 아침상 앞에 앉으면, 이번엔 억울함과 분함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아니, 대학병원 의사가 하는 말을 의심하는 환자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 더군다나 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아이들을 선물해주신 고마운 분인데. 그런데… 이게 다 나와 아내 책임이라고?’
자책의 밤과 원망의 아침이 반복되는 나날.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오늘도 식사는 포기. 장현수 씨의 몸무게는 순식간에 10kg이 빠졌다.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아들 장도윤(당시 25세)의 유전자가 아버지인 자신과 일치하는 게 없다는 결과를 안 2022년 7월 29일부터 일상은 지옥이 됐다. 갑자기 아들이 싫어진 게 아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25년간 이어진 부모-자식 관계를 무너뜨릴 리 없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상훈 교수가 사과를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상훈 교수는 종적을 감췄다. 중앙대병원이 적절한 조치를 할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병원 측은 “자연임신 가능성”을 운운하며 장 씨를 괴롭게 했다. 자연임신이란 말은 곧 아내의 ‘외도’를 뜻하는 거였다. 답답한 장현수 씨는 중앙대병원을 배회하기도 했다.
“거길 왜 갔냐구요? 내가 거기서 죽어야 중앙대병원이 우리 가족의 말을 들어줄까…, 너무 답답해서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장 씨는 지난해 12월 25일, 중앙대병원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기도했다. 딸의 신고로 겨우 최악을 면했다.
장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는 3년간 이어진 중앙대병원의 거짓말과 ‘모르쇠’ 전략이 있다.
아내 김연희 씨는 2021년 8월 10일부터 시험관 시술 사고 관련 민원을 제기했다. 시술 책임자 이상훈 교수가 정년퇴직으로 2018년 병원을 떠난 상황. 이 교수가 말한 ‘혈액형 돌연변이’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있던 김 씨는 산부인과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당시 H 교수는 이런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상당히 예민한 문제라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당시 시술을 맡았던 이상훈 교수님에게 직접 연락해 답을 듣는 게 좋을 텐데… 일단은 제가 먼저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이게 끝이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는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병원 민원실에 정식으로 민원을 접수해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이상훈 교수에게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습니다. 우리도 연락이 안 돼 답답합니다. 민원인 김연희 씨 의무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사실확인도 어렵습니다.”
출산 후에도 자궁 쪽이 좋지 않던 아내는 이 교수에게 계속 진료를 받았다. 건강정보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주거나, 해외 의료봉사 활동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던 살가운 의사 선생님. 하지만 이 교수는 김 씨의 입에서 ‘돌연변이’ 자료 얘기가 나오자, 한순간 연락을 끊었다.
아내 김 씨는 2022년 3월 중앙대병원에 따졌다.
“이 교수와 연락이 안 돼 너무 답답해요. 중앙대병원도 도의적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요?”
당시 병원 원무과장은 웃음을 섞으며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저렇게 말씀을 (웃음) 드려도 도움 되는 게 없을 거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시는 대로 (경찰 고소든) 진행하시면 됩니다. (김연희 씨) 억울함에 대해서 (상부에) 보고를 했고, 진료과장님에게도 전달했습니다. 내용을 간과한 것도 없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안내 드렸습니다. 안타깝지만 (웃음) 방법이 없습니다.”
김 씨는 “세상에 그런 잡상인 취급도 없을 것”이라며, “피해자는 명백히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는 병원 측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난다”고 불쾌해 했다.
김 씨 부부의 시험관 시술 사고에 대한 중앙대병원의 공식 응답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이상훈 교수와 전혀 연락이 안 된다.
② 김연희 씨 시험관 시술 관련 의무기록이 없다. 그 탓에 사실확인이 어렵다.
둘 다 거짓말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상훈 전 교수를 지난해 8월부터 추적했다. 중앙대병원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지만, 셜록은 이 교수를 찾았다.
이 교수는 서울 도봉구에 있는 자택에서 ‘별일 없이’ 지내고 있었다. 셜록은 지난달 28일 이상훈 전 교수를 자택 앞에서 직접 만났다. 이 교수는 정말 병원과 소통을 안 했을까?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병원을 방문해 과거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만납니다. 김연희 씨가 민원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병원한테 들었습니다. 김연희 씨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래 진료를 봤는데, 좋은 분입니다.”(이상훈 교수 상세 인터뷰는 추후 공개 예정)
중앙대병원의 거짓말을 뒷받침하는 증언은 또 있다. 부부는 2022년 12월 중앙대병원과 이 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었다. 소송에서 중앙대병원과 이 교수를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태신의 성용배 변호사는 지난달 21일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송에 대응하면서 당연히 이상훈 교수와 연락하고 만났습니다. 법원에 낸 피고 병원의 답변서는 이 교수가 다 말해준 겁니다.”
‘김연희 씨 의무기록이 없어 사실 검증이 어렵다’는 중앙대병원의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셜록은 김연희 씨의 의무기록을 이미 갖고 있다. 김 씨가 2021년 8월 10일 직접 발급받아 전달한 것이다.
의무기록에 따르면 김연희 씨는 1996년 1월 9일부터 중앙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기록에는 ‘특진교수 : 이상훈’이 적시돼 있다. 김 씨의 기록이 존재하는 만큼, 같은 날 이상훈 교수에게 시험관 시술을 받은 다른 사람들의 의무기록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장현수 씨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가족이 겪은 일이 정자가 바뀌어 벌어진 사고라면,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은 꼭 필요합니다.”
김 씨 부부와 같은 날 시험관 시술을 받은 사람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중앙대병원이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 기록을 폐기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셜록은 지난달 28일 김 씨의 딸과 함께 중앙대병원을 찾았다. 딸 역시 이상훈 교수에게 시험관 시술을 받고 얻었다.
셜록은 딸과 함께 다시 한번 중앙대병원 측의 입장을 물었다. 원무과장은 “전화로 말했듯이, 이 교수와는 전혀 연락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에게 말했다.
“저희는 지금 이상훈 교수 만나고 왔는데요, 이 교수는 병원에 한 달에 한 번씩 온다고….”
원무과장은 기자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갔다. 김연희 씨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중앙대병원은 3년 내내 늘 그런 식이었습니다. 일개 시민이 대학병원과 싸우는 게 너무 힘듭니다.”
기자 : “이상훈 교수가 시험관 시술 책임자였는데, 설명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홍보팀장 : “아닙니다.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
기자 : “병원 측에선 시술 책임자였던 이상훈 교수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나요?”
홍보팀장 : “환자가 그렇게 주장하지만 사실관계가 ‘맞다-틀리다’가 나온 건 아니지 않나요?”
기자 :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와 유전자가 안 맞는 건 사실 아닌가요?”
홍보팀장 : “그게 법적으로 증명이 됐나요?” (지난달 21일 중앙대병원 홍보팀장과 전화통화 일부)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아들과 아버지의 유전자가 ‘불일치’로 확인됐다. ‘신’이라 믿었던 의사는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렸고, 병원은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중앙대병원 측은 변호사를 통해 1000만 원의 합의금을 제안했다.(관련기사 : <“엉뚱한 정자로 시술” 20년 속인 산부인과 의사 ‘잠적’>)
장현수 씨에게 지난해 성탄절은 영광도 평화도 없는 절망의 날이었다. 그날 새벽 장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딸의 신고로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기억상실 등 후유증이 생겼다.
다음 날인 12월 26일 고압산소치료를 받은 장 씨를 경기 화성시의 한 병원에서 만났다. 장 씨는 이 말을 반복하며 고개 숙여 울었다.
“답답하고. 분하고. 억울하고. 정말 제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미치겠습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