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매체가 ‘중앙대병원’과 ‘이상훈 교수’를 가리고 보도했기 때문일까?
타인 정자로 시험관 시술을 하고 이를 은폐한 중앙대병원의 거짓말이 또 드러났다. 이번엔 꽤 대담한 수준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
하늘색 조끼를 맞춰 입고 “파이팅”을 외치는 듯한 포즈를 취한 사람들. 사진 속 현수막 문구대로 베트남으로 의료봉사를 떠난 중앙대학교병원 소속 의료진들이다. 앞줄 왼쪽에서부터 다섯 번째 인물, 바로 이상훈 전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다.
김연희(가명)-장현수(가명) 난임 부부에게 1996년 시험관 시술을 해 이듬해 아들을 낳게 해준 의사. 김 씨 부부가 2002년께 “우리는 모두 혈액형이 B형인데, 아들이 A형이다”라고 문제제기를 하자, “시험관 시술을 하면 종종 혈액형 돌연변이가 나온다”고 속인 사람.
김 씨 부부가 2022년 유전자 검사를 해 ‘아들-아버지 유전자 불일치’를 밝혀내자 연락을 끊고 잠적한 사람이 바로 이상훈 전 교수다. 그는 정년으로 2018년 중앙대병원을 떠났다.(관련기사 : <“엉뚱한 정자로 시술” 20년 속인 산부인과 의사 ‘잠적’>)
김 씨 부부는 2021년께부터 중앙대병원에 ‘혈액형 불일치’와 ‘유전자 불일치’에 대한 해명과 책임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병원 측은 부부에게 말했다.
“이상훈 교수와 연락이 안 된다.”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보내도 이상훈 교수가 답이 없다.”
“김연희 씨 의무기록이 없어서 사실확인이 어렵다.”
3년간 이 말을 반복해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달 21일 중앙대병원 홍보팀장과 통화했을 때도, 같은 달 28일 병원을 찾아가 원무과장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훈 교수와 전혀 연락이 안 된다.”
그런데 중앙대병원은 지난 1월 13일부터 20일까지 7박 8일간 이상훈 전 교수와 함께 베트남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떠났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이상훈 전 교수와 사진도 찍었다.
몰래 진행한 활동이 아니다. 중앙대병원은 저 사진이 포함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보도했고, 문제의 사진도 실었다. 보도자료는 중앙대병원 홈페이지, 공식 블로그에도 올라와 있다. 한 대목은 이렇다.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미 교수를 단장으로 의사,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및 중앙대 의과대-간호대-약학대학 학생으로 구성된 18명의 베트남 의료봉사단은 베트남 빈 슨(Binh son) 지역과 짜 봉(Tra Bong) 지역 보건소에서 현지 주민 1,500여 명을 대상으로 내과,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진료를 하며 의약품을 전달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문제의 활동과 사진은 또 있다. 아래를 보자.
중앙대병원 의료진이 지난해 11월 17일부터 25일까지 네팔 라수와(Rasuwa) 지역에서 진행한 의료봉사 활동. “도무지 연락이 안 된다”는 이상훈 전 교수는 여기에도 있다. 사진의 가운데 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남자가 이 전 교수다.
이 활동 역시 비밀이 아니다. 중앙대병원 공식 블로그에 사진과 내용이 모두 올라와 있다. 그럼에도 중앙대병원은 최근까지 “이상훈 전 교수와 전혀 연락이 안 된다”고 공식으로 밝혀왔다.(관련기사 : <“잠적 의사 연락 안된다” 중앙대병원의 들통난 거짓말>)
시험관 시술로 낳은 아들 유전자가 아버지와 불일치 한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김연희-장현수 부부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아버지인 장 씨는 작년 12월 25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김 씨 부부가 겪은 ‘시험관 시술 사고’ 소식은 2022년 8월부터 세상에 알려졌다. JTBC를 포함해 많은 매체가 해당 소식을 전했다. 김 씨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매체는 병원과 담당의사의 이름을 익명으로 보도했다. ‘중앙대병원’과 ‘이상훈 교수’를 공개한 매체는 없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뒤 중앙대병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상훈 전 교수 사진이 포함된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여러 언론은 중앙대병원 봉사활동 보도자료를 ‘복사-붙여넣기’ 해서 그대로 보도했다.
셜록은 18일 중앙대병원 홍보팀에 전화해 ‘이상훈 전 교수 봉사활동’에 대해서 물었다. 홍보팀장은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는 게 없어서 드릴 말씀도 없습니다.”
시험관 시술 사고 피해자 김연희 씨는 “의료사고 피해자를 갖고 노는 듯한 중앙대병원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앙대병원이 김 씨 부부에게 불쾌감을 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씨 부부가 중앙대병원과 이상훈 전 교수를 상대로 지난 2022년 12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 민사 제18부에 의견서를 내며 이렇게 주장했다.
“시험관아기 시술 과정에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자연임신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으며, 의료진으로서도 시험관아기 시술 중 배아이식 후 추가로 자연임신 시도를 권유하여 임신율을 높이기도 합니다.”
“자연임신의 가능성”이라. 아버지와 유전자가 다른 아이를 ‘자연임신’ 했다? 한마디로 아내 김연희 씨가 시험관 시술을 받으면서 다른 남자와 외도를 했다는 뜻이다. 아내 김연희 씨는 크게 반발했다.
“외도요? 자기들(중앙대병원 측과 이상훈 교수)은 그렇게 살았나부죠!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면 혈액 수치로 임신을 확인하는 등 계속 병원 측의 검진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외도라니!”
남편 장현수 씨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6년간 임신을 못해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았는데) 꼭 그 시기에 바람을 피워서 임신을 했다? 제 기억에 아내는 (시술 후) 3일간 배가 아파서 찜질을 받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자연임신을 했다? 중앙대병원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주장하는 걸 보면, 솔직히 세상 살 맛이 안 납니다.”
외도 가능성을 제기해 여성에게 책임을 넘긴 중앙대병원은 지난 15일 셜록에 메일 하나를 보냈다. 기본적인 인사말조차 없는 메일의 전문은 이렇다.
“귀 언론매체에서 기사화한 과거 본원에서의 시험관(인공수정) 시술로 인한 아들의 유전자 불일치 논란 관련해서,
해당 내용은 사실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민원인 측의 주장으로서, 사건이 법원 소송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 병원과 관련 의료진의 실명이 거론된 것은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기사 내용을 정정해 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드립니다.
본원의 요청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시, 귀 매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셜록은 인사말을 넣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떤 점을 허위라고 판단하시는지 알려주시면, 저희도 관련해서 잘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8일 오후 현재, 중앙대병원의 답변은 없다. 셜록이 프로젝트 ‘중앙대병원 산부인과의 비밀’을 통해 ‘시험관 시술 사고’를 보도한 이후, 많은 매체가 인용 및 후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중앙대병원’과 ‘이상훈 교수’라는 이름을 공개한 매체는 거의 없다. 중앙대병원은 오늘도 거짓말과 책임 회피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외도 가능성’ 주장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