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의 카카오톡 메시지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성폭력 사건 관련 서면을 쓸 때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서연우 변호사님. 저는 서울대학교 A 학과를 졸업한 장예진(가명)이라고 합니다. 많이 놀라시겠지만, 아셔야 할 거 같아서 전달해 드립니다.”

텔레그램 대화방을 캡처한 사진 파일 두 개가 곧바로 날아왔다. 먼저 도착한 걸 클릭해 확대하자, 서울대 로스쿨 시절에 찍은 자신의 증명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얘가 서연우야.”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익명의 인물 ‘TR’은 서연우(가명)를 아는 걸 과시하듯이 말했다. 서연우는 두 번째 파일을 클릭 했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눈앞에 펼쳐진 건 자신의 오래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이용한 허위영상물, 딥페이크 성폭력 파일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자신의 얼굴을 이용한 딥페이크 성폭력 파일이었다. 일러스트 오지원 ⓒ셜록

‘TR’은 서연우의 허위영상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려놓고 상스러운 말을 떠벌리며 낄낄거렸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풍경. 서연우는 사진 파일과 카카오톡 대화창을 닫고, 자기 책상을 바라봤다.

높이 쌓인 성폭력 사건 기록과, 모니터 속 아직 완성하지 못한 서면이 보였다. “성폭력은 인격을 말살하는 범죄”라며 가해자 엄벌을 호소하던 피해자들의 무수한 탄원서도 떠올랐다. 서연우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떨어졌다.

변호사 서연우는 로스쿨 졸업 이후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리 업무를 주로 해왔다. 성폭력 전문 변호사가 성폭력 피해자가 된 이 기막힌 상황. 분노, 답답함, 억울함이 서연우의 몸과 마음을 덮쳤다. 2022년 7월의 일이다.

텔레그램 성폭력 가해자는 잡기 어려우니 그냥 참자는 식으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피해자로서도, 법을 다루는 사람으로서도 그건 정도가 아니었다. 서연우는 정신을 가다듬고 장예진과 대화를 이어갔다.

장예진 역시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자였다. 장 씨와 함께 서울대 A 학과를 다닌 유정희, 주진희, 강소윤(모두 가명) 모두 같은 놈에게 피해를 겪었다고 했다. 서연우 본인이 졸업한 서울대 B 학과로 피해자가 범위가 넓어진 상황. 장예진 씨가 물었다.

“혹시, 최우성(가명) 씨 아세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학원에서 처음 만난 붙임성 좋던 친구 최우성. 모를 리 없다. 2010년대 중반 어느 봄날, 서울대 B 학과가 있는 단과대학 건물 앞에서도 만났다. 그때 최우성은 고교 때처럼 붙임성 좋게 인사했다.

“오, 서연우! 여기서 다시 만나네. 나 A 학과 다니다 B 학과로 전과했어.”

그렇게 학원 친구 최우성은 서연우와 같은 과 동기가 됐다. 장예진 씨는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같은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를 겪은 친구들과 1년째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데, 최우성이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데, 최우성이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unsplash

A, B 학과에 모두 관련이 있고, 모든 피해자와 카카오톡 친구인 사람은 최우성뿐이라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은 며칠 뒤 ‘역시나’가 됐다.

A 학과 출신 피해자 유정희 씨가 카카오톡 멀티프로필 기능으로 최우성만 볼 수 있는 사진을 설정했는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해당 사진은 딥페이크 허위영상물로 제작돼 당사자에게 돌아왔다. 이렇게 된 이상, 유력한 용의자는 최우성이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텔레그램 대화명 ‘TR’이 최우성이라면, 그가 어떻게 서연우의 증명사진을 갖고 있는 걸까. 해당 사진은 로스쿨 졸업 앨범 제작을 위해 찍은 것으로, SNS는 물론이고 외부에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다.

그 사진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서연우 자신과 서울대 로스쿨 동기들뿐이었다. 최우성은 로스쿨을 다니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증명사진은 로스쿨 졸업앨범 제작업체에서 서버에 올렸던 거예요. 사람별로 폴더를 만들어 사진을 담은 다음, 앨범에 쓸 사진을 각자 선택하게 했거든요. 그 폴더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와 로스쿨 동기들뿐입니다.”

‘TR’이 텔레그램에 올린 서연우의 증명사진은 그때 폴더에 있던 원본 파일이었다.

“결국 로스쿨 동기 중 누군가 제 사진을 다운받아 최우성에게 전달했다는 뜻이잖아요. 서울대 로스쿨에 딥페이크 성폭력 조력자나 공범이 있다는 뜻이죠. 저에게는 이게 절망적이었습니다.”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에서 기자와 만난 서연우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저는 법조인이라는 제 직업과 정체성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로스쿨에 있던) 그 공범도 지금 변호사일 가능성이 높고, 나중에 판사나 검사가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이게 너무 싫어요. 로스쿨 동기들과는 친하게 지냈거든요. 그들 중 누군가가 앞에선 웃으면서, 뒤에서는 저를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하고 이용했다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근데, 이런 가해자들을 잡을 수가 없다고요? 그렇게 둘 수는 없죠.”

“서울대 로스쿨에 딥페이크 성폭력 조력자나 공범이 있다는 뜻이죠” ⓒ연합뉴스

서연우는 2022년 7월 20일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 최우성을 고소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수사 결과에 따라 로스쿨 동기이자 동료 법조인이 공범으로 드러날 수도 있어 부담은 더욱 컸다.

그렇다고 멈출 일도 아니었다. 훗날 판사가 되는 게 꿈인 자신이, 게다가 성폭력 피해자를 주로 대리하는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모른 척 넘길 순 없었다. 텔레그램 속에서 ‘TR’은 “나 절대로 못 잡는다”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널 못 잡는다고? 난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두고 봐. 난 끝까지 널 추적할 거야. 로스쿨에 있던 공범도 꼭 잡을 거야.’

현실은 결심과 반대로 흘렀다. 법원은 장예진 씨와 친구들이 수집한 증거물을 토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서울관악경찰서는 증거불충분으로 그를 풀어줬다. 경찰과 검찰은 별다른 수사도 없이 “(최우성의 범죄 입증은) 어려울 거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관련기사 : <피해자가 잡은 ‘서울대 딥페이크’ 용의자, 경찰이 풀어줬다>)

수사기관은 의지가 없어 보였다. 서연우는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날마다 자신이 맡은 성폭력 사건 기록을 보고 서면을 쓰는데, 정작 자신이 겪은 피해에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었다. 무기력과 허무가 몸과 마음을 집어삼켰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이 쓴 탄원서를 많이 봤거든요. 내가 직접 범죄 피해자가 돼보니까, 그분들의 말이 더 와닿더라구요. 딥페이크 성폭력 가해자들은 나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나를 같은 인간이 아니라, 어떤 수단으로만 생각한 거죠.”

최우성은 경찰에선 불송치, 검찰에선 불기소 결정을 받았다. 장예진과 서연우 등은 포기하지 않고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서울고등법원 제30형사부(재판장 강민구)는 지난해 11월 21일, 재정신청을 인용해 최우성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피해자들이 범인을 추적한 지 약 3년 만에 반전이 일어난 셈이다.(관련기사 : <경찰이 풀어주고 검찰이 봐준 ‘그놈’, 결국 법정에 선다>)

앞에선 웃으면서 피해 여성들을 대하고, 뒤에선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즐긴’ 그놈들. 재판에서 모두 밝힐 수 있을까. ⓒunsplash

서연우는 최우성에게 한 번쯤은 연락이 올 거라 생각했다. 한 시절 친구로 지낸 여성 여러 명이 자신을 동시에 고소하고, 끝내 피고인으로 만든 거 아닌가. 하지만 최우성은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친구를 성폭력 가해자로 몰 수 있느냐고 따질 법도 한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썩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 날아왔다. 최우성은 자신의 대리인으로 변호사 문정호(가명)를 선임했다. 서연우는 문정호를 잘 안다. 서울대 학부생 시절, 서연우는 선배 문정호를 “오빠”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 문정호는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선배였다. 그는 비수도권의 한 로스쿨을 졸업했다.

서연우는 친했던 그 선배와 이제 법정에서 다퉈야 한다. 서연우는 피해자로서 증인석에 설 테고, 변호사 문정호는 최우성의 무죄 입증을 위해 ‘증인 서연우’를 몰아붙일 거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내가 피해자로서 증인석에 서고, 선배 문정호가 나를 신문하다니. 정말 기분 묘합니다. 하지만, 저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최우성이 범인이 아닐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 서울대 로스쿨 공범도 꼭 잡고 싶어요.”

서울대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피고인 최우성에 대한 첫 공판이 3월 2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만 10명이 넘는다.

피고인 최우성과 그를 대리하는 문정호 변호사, 그리고 피해자 서연우·장예진·유정희·주진희·강소윤. 한 시절 서울대에서 친구와 선후배로 친하게 지냈던 이들은 이제 법정에서 충돌한다.(관련기사 : <꼬리를 무는 딥페이크 피해자, 그들은 모두 ‘서울대’였다>)

최우성을 대리하는 문정호 변호사는 25일 셜록과의 전화통화에서 “피고인은 공소사실 전부를 부인한다”고 밝혔다.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한 셈이다. 피해자들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서울대 입시만큼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듯하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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