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왕’은 떨고 있었던 걸까. 조폭 출신 사채업자이자,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의 주범인 김상욱(1972년생). 그는 지난해 7월 27일 공범과 이런 통화를 나눴다.
“저것(검찰)이 종남이(전종남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아니고 회장님(본인 지칭)을 택해서 잡는 거 같아. 왜 그러냐면 이제까지 (검찰) 특수부 애들이 회장님(본인)을 단 한 번도 못 집어넣었거든.”
새마을금고 임원과 사채업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고백. 김상욱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번에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가 계속적으로 보도가 되잖아. 우리나라에서 회장님(본인)이 제일 큰 사채업자거든. 이제까지 음지에 있다가 내가 양지로 이번에 나오면서, KC월드카 때문에 지금 이런 현상이 생긴단 말이야.”
자기 때문에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터졌다는 사채왕의 자백.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경남 창원시로 가야 한다. 목적지는 창원시 양덕동에 있는 “부산·경남 최대 규모의 자동차 문화 복합쇼핑몰” KC월드카프라자(이하 KC월드카)다.
청구동새마을금고를 ‘깡통’으로 만들어 문을 닫게 한 1500억 원 규모의 불법대출. 사채왕 김상욱 일당은 그중 약 800억 원의 대출을 바로 KC월드카 한 곳에서 만들어냈다. 경남 창원시로 향하는 기자의 손에는 사채왕 일당이 만든 ‘양덕동 리스트’가 들려 있었다.
KC월드카 건물은 불법대출 규모만큼이나 거대했다. 5700평 대지 위에, 지하 2층부터 지상 7층으로 구성된 초대형 건물. 내부 상가는 중고차 매매상가 152호실, 근린생활시설 34호실로 이뤄졌다. 건물은 2021년 12월 준공 완료했다.
하지만 웅장한 외관과 달리 내부 분위기는 입구부터 썰렁했다. 1층 내부는 낮인데도 어두웠다. 상점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조차 없었다. 1층(근린생활시설)에 입점한 상점이 단 한 곳도 없기 때문. ‘부산·경남 최대 규모의 자동차 문화 복합쇼핑몰’이란 수식어가 무색했다.
2-3층은 중고차 매매상가 사무실로 이뤄졌다. 복도에 서니, 빈 사무실 수십 개가 나란히 줄지어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무실 유리창 곳곳엔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바닥엔 고지서와 광고 전단 따위만 흩어져 있었다.
확인 결과, 전체 중고차 매매상사 사무실 152곳 중 54곳만 정상적으로 운영 중이었다. 3분의 1에 불과했다. 나머지 사무실 98개는 공실이었다(22개는 미분양). ‘양덕동 리스트’에 적힌 그대로였다.
‘양덕동 리스트’에는 담보신탁 계약을 맺은 KC월드카 상가 주소 82개(중복 포함)와 각각의 수분양자 명의, 신탁계약 일자 등이 적혀 있었다. 작성자는 부동산 신탁사인 무궁화신탁 김재민 대리. 앞서 등장한 사채왕 김상욱의 ‘자백’ 통화를 들은 바로 그 사람이다.
신탁사는 위탁자의 요청으로 재산 관리와 처분 등을 전문으로 맡는 금융투자회사다. 김상욱 일당은 대출금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담보 부동산을 신탁사에 맡기는 신탁대출 방식을 사용했다.
신탁사 직원인 김재민은 김상욱의 수족처럼 움직였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주고받으며, 마치 무궁화신탁이 아니라 김상욱의 직원처럼 모든 것을 지시받고 보고했다.
이 둘의 관계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입수한 통화 녹음파일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김상욱은 불법대출이 가능한 금융기관을 구해오도록 김재민에게 여러 차례 지시한다.
김상욱 : “KC월드카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90% (불법대출) 했다가 현재 (미분양이) 10% 남아 있어. (상가) 이십몇 개가. 그거 (불법대출) 마무리할 데(금융기관 의미)가 있겠는가?”
김재민 : “○○○새마을금고 괜찮겠는데요? ○○신협도 제가 바로 얘기를 해볼게요.” (2023년 4월 25일 통화)
김상욱 : “너 계속 대출하고 있어? ○○에다가?”
김재민 : “네, (옆 팀 사람에게) ○○농협하고 ○○수협 위주로 (대출 연결) 나오면 바로 연락 좀 해달라고 그랬고요.” (2023년 6월 12일 통화)
셜록은 신탁원부를 통해 ‘양덕동 리스트’와 녹음파일 속 대화 내용을 직접 검증했다. ‘양덕동 리스트’에 명시된 상가 82건(중복 포함) 중 76건에서 수상한 공통점을 확인했다.
공통점은 크게 네 가지다. ▲해당 상가를 분양받은 76명 모두 KC월드카 상가를 담보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최대 9억 6000만 원의 대출을 받았다는 점. ▲담보신탁 계약은 모두 무궁화신탁이 맡았다는 점. ▲분양(매매)일자가 2020년 4월 17일로 모두 같다는 점. ▲창원시 세무과에서 지난해 11월경 상가 대부분(57건)을 일괄 압류했다는 점.
‘페이퍼컴퍼니’들도 해당 상가를 분양받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 6곳 모두 이사회 구성원으로 시행사(청안홀딩스) 대표가 들어가 있었다. 또 이들 회사는 모두 등기부등본상 주소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공유오피스로 일치했다. 직접 공유오피스를 방문해 확인한 결과, 6곳 모두 짧은 기간 그곳을 사용하다 한꺼번에 사무실을 뺀 지 오래였다.
셜록은 KC월드카 상가를 담보로 대출사기를 당한 피해자 4명을 직접 접촉했다. 이들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3월 사이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최대 9억 6000만 원가량의 담보대출을 했다. 본인은 물론 가족과 지인까지 연루된 사람도 있었다.
“김상욱 일당이 1년간 명의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매달 대출 이자와 200만 원의 임대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계약기간 1년만 지나면 김 회장 일당이 운영하는 법인으로 소유자 명의를 이전해 채무를 가져가겠다고 말했습니다.”(피해자 A)
이들은 투자금 없이 매달 월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모집책들의 말에 속아 넘어갔다. 불법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모집책들은 ‘김상욱 회장이 본인 돈 800억 원을 청구동새마을금고에 예금하면 그 돈으로 대출을 해주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피해자들이 청구동새마을금고와 대출 계약을 맺은 곳은 서울 신설동에 있는 한 카페였다. 금고 직원들이 카페로 나와서 서류를 처리했고, 그 자리에는 김상욱도 함께 있었다.
“김상욱 회장 아들이 운영하는 카페 하타○○에서 담보대출을 위한 ‘자서’(자필서명)를 했습니다. 청구동새마을금고 직원들이 카페로 출장까지 나와서 업무를 보길래, 김 회장이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대출계약 서류 뭉치에 서명하라고 해서 잘 모른 채 서명만 했습니다.”(피해자 B)
셜록은 피해자들을 통해 부동산 매매계약서, 타행 송금의뢰 확인증, 감정평가서 등 대출 관련 서류들을 입수했다.
대출약정서와 현금인출 신청서 등 서류에서는 피해자의 ‘자기 서명’과 다른 글씨체가 확인됐다. 명의자들에게는 서류 서명란에 서명만 직접 하게 하고, 나머지 부분은 김상욱 일당들이 마음대로 작성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요런 것(서명 이외 부분)도 다 쟤네들이(김상욱 일당) 쓴 거예요. 나는 여기다(서명란에다) 내 이름만 적은 겁니다. 나머지는 (내가 쓴 게) 아니에요.“(피해자 C)
대출 당시 KC월드카 상가 152곳 중 절반 이상이 미분양 상태였다. 분양가는 7억 5000만 원. 하지만 청구동새마을금고의 의뢰를 받은 감정평가사는 감정평가액을 12억 원으로 부풀렸다.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상무는 감정평가액이 부풀려진 사실을 알면서도 부동산 담보 대출을 실행해줬다. 명의자들의 대출금 상환 의사나 경제적 능력에 대한 고려는 일체 없었다.
KC월드카 상가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은 무려 9억 6천만 원. 대출금이 분양가보다 2억 원가량 더 많이 나온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분양가를 치르고도 남는 대출금 차액 총 114억 원가량이 김상욱 일당에게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의자들의 통장에서 약 1억 3000만~1억 5000만 원이 현금으로 각각 인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명의자들 본인도 모르게 빠져나간 돈. 공범 전종남 상무가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실무책임자로서 ‘고액 현금 인출’을 승인했다.
피해자들은 하루아침에 10억 원에 가까운 빚더미 위에 앉았다.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돈. 약속했던 대출금 이자 상환과 월 200만 원 상당의 임대수익은 받지 못했다. ‘1년만 지나면 채무를 해결해주겠다’던 사채왕 일당의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연 대출 금리는 무려 11.45%. 매달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최대 6000만 원가량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피해자들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아니면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 돈으로 이자를 갚아야 했다.
“작년에는 이자만 상환하면 돼서 매월 1000만 원씩 갚아야 했죠. 올해부터는 원금까지 갚아야 해서 매달 5400만 원씩 청구되더라고요. 알고 보니 김상욱 일당들이 9억 원이 넘는 대출금을 3년 안에 상환하도록 설정해놓은 거예요.
(운영 중인) 사업 때문에 카드를 못 쓰면 안 되니까 작년에는 이자만 몇 번 내면서 일단 (연체를) 막았어요. 지금은 신용불량자가 돼서 카드도 못 쓰고, 재산세도 못 내서 (상가를) 압류당해버린 겁니다.”(피해자 D)
청구동새마을금고는 지난해 6월 전종남 상무를 징계면직 조치했다. 징계사유는 ▲대출금 편취 및 브로커 부당지급 ▲감정가격 과다평가 대출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 ▲부적정 담보물(유치물) 대출 ▲CTR(고액현금거래보고) 허위보고 ▲구속성 공제계약 등. 당시 이사장과 다른 직원들도 직무정지와 감봉 등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징계는 새마을금고 부실화까지 막진 못했다. 결국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발생한 청구동새마을금고는 지난해 7월 13일 문을 닫고, 신당1·2·3동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부실채권은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넘어갔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언론홍보실 담당자는 지난 16일 기자를 만나 “(불법대출) 책임자를 지난해 형사 고발했다”며, “고발 결과에 따라 민사 손해배상도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당1·2·3동새마을금고는 지난해 사채왕 김상욱과 감정평가사 등 5명을 형사 고발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선 전종남 상무를 경기북부경찰청에 고발했다. 대출사기 피해자 여러 명도 김상욱 일당을 고소했다. 하지만 경기북부경찰청의 수사 결과는 약 1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1500억 원대 불법대출을 일으켜 새마을금고 하나를 무너트리고, 대출사기 피해자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만든 사채왕 김상욱. 셜록은 지난 16일 김상욱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대출사기 피해자들을 언급한 기자를 향해 그는 “나도 피해자”라며 언성을 높였다.
“누가 피해자입니까? 저도 피해자입니다. 기자님, 누가 제 전화번호 알려줬습니까? 저는 1500억 원 불법 대출한 적도 없고요. 정확하게 어떤 라인을 타고 (연락을 해)왔는가 얘기를 해주세요. 거기에 대해서 내가 정확하게 알고 보도자료 내드릴게요. (…) 운전 중이니까 말하지 마세요!”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기자가 다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셜록은 전종남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에게도 반론을 요청했다. 전 상무는 “김상욱 회장과 요즘도 연락하는지”, “불법대출 업무를 혼자 처리한 건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는 대답만 반복한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현재 그는 신당1·2·3동새마을금고를 상대로 징계면직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무궁화신탁의 김재민 대리는 횡령과 사문서 위조 등의 이유로 직권면직 당했다. 그는 셜록의 취재 연락을 받지 않다가, 17일 1화 기사가 발행된 후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