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좋아하는 놈을 찾으라니까. 나는 그런 애들 좋아해. 돈 좋아하는 놈들.”(김상욱)
1500억 원대 불법대출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제아무리 ‘사채왕’일지라도 김상욱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당시 상무와 무궁화신탁 김재민 당시 대리를 공범으로 만들었다. 이들이 삼각편대를 이루고, 대출모집책-감정평가사-법무사사무소 사무장 등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삐끗했다면 ‘작업’은 성공할 수 없었다.
김상욱과 공범들은 경남 창원시에 있는 KC월드카프라자 하나를 가지고도 약 800억 원의 불법 부동산 담보대출을 일으켰다. 불법대출 규모는 총 1500억 원. 부실화된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뱅크런 사태에 휘청거렸고, 결국 문을 닫고 이웃 금고로 합병됐다. ‘서민금융’을 내세웠던 새마을금고는 부정과 부실의 오명을 뒤집어썼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의 장본인인 ‘사채왕’ 김상욱. 그는 어떻게 공범들을 포섭해서 역대급 규모의 불법대출에 성공했을까. 사채왕의 ‘비결’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입수한 900여 건의 통화 녹음 속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의 통화 녹음파일 900여 건을 빠짐없이 확인했다. 아래에 인용한 대화들은 모두 지난해 3월에서 8월 사이 두 사람이 통화한 내용이다.
김상욱 : “이 새끼(금융기관 직원 지칭) 얼마나 줄까?”
김재민 : “저는 이런 걸 줘본 적이 개념이 없습니다.”
김상욱 : “내가 줄게. 한 3000만 원 줘보고.”
김재민 : “그렇게나 많이요?”
김상욱 : “나에 대해서 대충 얘기했지? 우리나라 큰손이라고. 우리 편으로 만들지 뭐.”
김상욱은 공범이 될 만한 금융기관의 대출 담당자를 물색했다. 무궁화신탁 김재민 대리 등으로부터 “돈 좋아하는 놈”을 소개받았다. 현금만큼 확실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현금 박치기’ 수법이 늘 통하는 건 아니었다. “다음에 받겠다”며 극구 사양하거나, 애초에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만남을 피하는 금융기관 관계자들도 있었다.
“쇼핑백에 돈 3000만 원을 담아서 줬어. 근데 안 받더라고.”(김상욱)
사채왕 김상욱이 ‘내 새끼’라 부른 공범들은 정말 아버지(?)처럼 더 세심하게 챙겼다. 김상욱이 “내 새끼”라 부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당시 상무다.
“(전종남한테) 연예인 다니는 미용실 예약해줬다. 자기도 서비스 받아보니까 너무 좋거든. 유명한 애들 많이 만나고 하니까 너무 좋고.”(김상욱)
전종남은 불법대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6월 12일 자로 징계면직 처분됐다. 그럼에도 김상욱은 전종남을 살뜰히 챙겼다.
“종남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냐? 종남이 이렇게 챙긴 사람 없어. 다들 돌아서버리지. 지금도 1000만 원씩 그놈 챙겨줘. 다음주 일주일간 회장님(본인)이 (여행) 다 보내줬잖아. 방 어렵게 잡았잖아. 일주일 방값만 스위트니까 1000만 원인데.”(김상욱)
김상욱은 “내 새끼”가 되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무궁화신탁 김재민 당시 대리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서울 신천동에 있는 시그니엘서울 레스토랑으로 불러내기도 했다. 코스요리 가격이 1인당 24만 8000원이나 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주며 재력을 과시했다.
김상욱은 아들에게 출고가가 약 1억 원인 파란색 벤츠CLS300 차량을 현금으로 사줬다며 김재민을 ‘시승’시켜주는가 하면, 자신도 수억 원대의 벤츠 마이바흐 차량을 현금으로 샀다고 말했다. 그리고 명품 브랜드의 VIP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회장님(본인) 지금 신발하고 옷 다 에르메스거든. (…) 에르메스 가방 3억 원짜리 있는 거 아냐? 우리 와이프가 3억짜리 들고 있는 거야. 회장님(본인) 티셔츠도 에르메스야. 280만 원짜리.”(김상욱)
그가 공범 김재민에게 이렇게 재력을 과시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동기부여.
“너도 작은아버지(본인)랑 있으면서 같이 돈 벌어야지, 자식아.”(김상욱)
김재민이 김상욱을 부르는 호칭은 ‘회장님’에서 ‘작은아버지’로 바뀌었다. 김상욱은 김재민을 조카라, 가족이라 여기겠다며, 특별한 관계임을 각인시켰다.
“(우리) 둘이 통화할 때는 새끼야, ‘작은아버지’ 해도 돼.”(김상욱)
김상욱은 ‘조카’ 김재민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 현금과 부채 해결은 물론 자동차와 승진까지.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서, 김재민 본인의 승진뿐만 아니라 그의 여자친구까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꽂아’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회장님(본인)이 마음속으로 약속한 것이 있어. 이제 (너는) 내 조카니까 올해 안에 본부장 (자리에) 앉히는 것. 니 부채 해결해주고, 차 한 대 사주고, 한 1억 손에 쥐여줘야겠다.”(김상욱)
김상욱은 김재민을 위해 초호화 해외여행을 준비하기도 했다. 김재민의 어머니에게 1400만 원짜리 ‘프리미엄 건강검진’을 선물하기도 했다.
“니 놀러 가는 거 새끼야, 방콕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라더라. 전용차로 해서, 이것만 1200만 원이야. 음식도 최고로 좋은 것만 해놨어. 디너 크루즈도 있고, (비행기로) 갈 때부터 일등석으로 해서 호텔도 그중에서 제일 비싼 방.”(김상욱)
김상욱은 때로는 달콤한 약속들을 늘어놓지만, 때로는 “목포오거리파” 출신답게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어둠의 세계’에서 자신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사람인지 과시하며 공범들에게 겁을 주는 방식이었다.
김상욱 : “그 ○○장(부동산 물건을 의미) 사람 매달아서 (가져온 거야). 이게 한 30억 원 돼. 니만 알아.”
김재민 : “진짜 (사람을) 매달은 거예요?”
김상욱 : “응. (사람을) 매달아서 (30억 원짜리를) 15억 원에 갖고 온 거야. (소유자에게) 돈 1억 원 빌려주고 이자 밀렸다고 매달아버린 거야. 상가를 실제로 뺏어버린 거야.”
김상욱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공범들에게 상세히 알려줬다. 김상욱을 배신한 A에 관한 이야기.
“A는 매달고 혼났으니까. 오줌 질질 싸고 똥까지 쌌으니까. 애들이 사진을 다 찍었는가 보더라고.”(김상욱)
김재민에게 지시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김상욱은 분노를 참지 않았다. 금융기관 담당자를 불러 해코지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수협(금융기관) 폭발시켜불라다 지금 참고 있는데, 장난하고 있어, 씨. 재민아 이 새끼(금융기관 담당자) 좀 불러내봐라. 하타○○로 데리고 와, 씨팔. 내가 매달아버릴라니까. 애들(건달들을 의미) 오라고 해서 매달아버려야지.”(김상욱)
‘하타○○’는 겉으로는 카페지만 실제로는 김상욱 일당이 사무실로 쓰고 있는 ‘아지트’였다. 김재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로는 김재민을 향해서도 서늘한 말을 내뱉었다.
“재민아, 널 조카로 생각하니까 내가 이러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매달아버렸다, 재민아. 삼촌 진짜 무서운 사람이야.”(김상욱)
“진짜 우리 재민이 웃겨 죽겠어. 내가 진짜, 이 새끼, 니를 내가 죽여야 되냐?”(김상욱)
달콤한 회유와 살벌한 협박 사이에서, 김재민은 김상욱의 수족처럼 일했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업무를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통화를 주고받았다. 이른 새벽부터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하루에 많게는 44통의 통화를 한 날도 있었다. 김재민은 마치 무궁화신탁 직원이 아니라, 김상욱에게 고용된 직원처럼 움직였다.
김재민은 불법대출이 가능한 금융기관을 섭외하는 역할을 맡았다. “돈 좋아하는” 금융기관 대출 담당자를 물색하고, 대출에 필요한 서류들을 손수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재민은 ‘가짜’ 명의자인 척, 금융기관 대출담당자와 거짓으로 통화하며 그를 속이기도 했다.
김상욱과 김재민의 통화에서는, 이들 일당이 약 800억 원의 불법대출을 일으킨 KC월드카프라자 외에도 여러 현장이 언급됐다. ▲서울 이태원 ▲평택 ▲파주 ▲안성 ▲화성 ▲양평 ▲용인 ▲대전 ▲계룡 ▲금산 ▲영암 ▲전주 ▲담양 ▲태안 ▲포항 ▲부산 등. 주로 지역명으로 거론되는 전국의 수많은 현장들에서 이들은 불법대출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재민은 횡령과 사문서 위조 등의 이유로 무궁화신탁에서 직권면직 처분됐다.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상무는 당시 대출실무 책임자였다. 그는 대출 담보의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을 알고도 대출서류에 도장을 찍어줬다. 김상욱이 섭외한 ‘가짜’ 명의자의 상환 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김상욱 일당이 명의자의 통장에서 억대의 현금을 인출해갈 때도, 그것을 승인한 것은 전종남이었다.
고액 인출금액을 허위로 보고하고, 심지어 대출 명의자들에게 강제로 보험을 체결해 실적도 챙겼다. 전종남은 그 대가로 대출금을 나눠 가졌다는 것이 새마을금고가 그를 ‘징계면직’ 처분하며 밝힌 이유들이다. 그는 현재 징계면직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김재민 전 대리는 셜록의 취재 연락을 받지 않다가, 1화 기사가 발행된 후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전종남 전 상무에게도 연락을 시도했다. 세 번째 통화 시도 만에 그와 1분가량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좀 바쁘다”, “아니다”라는 답변만 남긴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김상욱과도 통화는 이뤄졌지만, 그는 “누가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느냐”며 기자에게 따져 묻다가 “운전 중이니까 말하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여러 차례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