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원복이(가명)는 학교를 마치면 주점, 마사지방 등이 밀집한 유흥가인 충북 청주시 ○○동으로 향한다. 이 동네 어느 건물 꼭대기층에 자리한 한 라이브주점. 손님 누구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 주점의 구석엔 흰색 텐트가 설치돼 있다. 채 한 평이 안 되는 이 좁은 공간이 원복이의 거처다.
친구들이 학원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배울 시각. 원복이는 텐트 안에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린다.
원복이 엄마 함수진(가명) 씨는 이 주점에서 건반을 친다. 좁은 텐트에서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들에게 쇼팽이나 바흐의 곡을 들려주면 덜 미안할까. 깊은 밤 2차, 3차로 라이브주점을 찾는 손님들은 그런 곡을 주문하지 않는다.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에서 히트를 친 ‘뽕짝’이 손님들의 애창곡이다.
술 취한 손님 옆에서 건반을 칠 때면, 엄마는 눈앞의 악보보다 저 끄트머리의 흰색 텐트를 더 자주 살핀다. 아들이 텐트에서 나오지 않길, 소음 속에서도 깊이 잠들어 이 풍경을 보지 않길… 엄마는 바라고 또 바란다.
엄마의 노동은 새벽 2~3시께 끝난다. 모든 일을 마치고 텐트의 지퍼를 열면 아들은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다. 잠들길 바랐으면서도, 막상 잠든 아들 모습을 보면 엄마 마음은 그렇게 아플 수가 없다.
이 새벽에 “집에 가자”고 아들을 깨울 때마다, 몇 번을 흔들어도 깨지 않는 아들을 기어코 일으켜 세울 때마다, 엄마의 두 다리는 죄책감에 후들거린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때 그런 판단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엄마는 그날의 실수와 잘못을 수없이 돌아보곤 했다. 지난해 봄까지 엄마는 집에서 살림을 했다. 원복이는 친구들과 학원에서 저녁을 보냈다. 둘의 일상은 ‘명동 사채왕’ 김상욱과 그 밑에서 일하는 ‘넘버2’ 이○○ 일당을 만나면서 달라졌다.
“사채 하는 김상욱 회장, 이○○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봐요. 대책 없이 돈 갖다 쓴 사람으로 보는 거죠. 근데, 저는 그 사람한테 돈을 빌린 적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제 명의를 가져간 거죠.”
애초 라이브주점은 남편이 2017년께부터 혼자 운영했다. 우여곡절은 있어도 먹고는 살만 했던 시절은 코로나19가 퍼지면서 끝났다. 집합금지 명령에 따라 가게를 닫아도 월세 200만 원은 다달이 내야 했다. 직원을 내보내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도 버티기 힘들 시절. 남편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여기저기서 빚독촉을 해와도 원복이 학원만은 끊지 않았다. 훗날 아들은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좋은 직장에 다니길 바랐다. 그렇게 하려면 가르쳐야 한다는 걸, 많이 못 배운 함 씨 부부도 진즉에 알았다.
‘우리가 굶어도 아들 학원은 보낸다. 학원 닫으면 과외라도 시킨다.’
자영업자 함 씨 부부는 이런 다짐으로 팬데믹을 버텼다. 원복이 학원비를 종종 밀렸지만, 꾸역꾸역 갚으며 나아갔다.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 사채왕 김상욱은 구원자의 모습으로 함 씨 부부 앞에 나타났다. 남편과 가깝게 지내는 K가 남편에게 속삭였다.
“서울에 김상욱이란 회장이 있는데, 건설업을 크게 하는 분이에요. 그 사람 밑에서 일하는 이○○은 저랑 친한 선배구요. 그 사람들한테 명의만 빌려주면 바로 2500만 원을 줍니다.”
구조는 간단했다. 남편을 채무자로 하여, 무궁화신탁에 맡겨진 부동산을 담보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을 일으킨다는 것. 그 후 3개월 내에 해당 부동산을 매각해 대출·채무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주겠다고 했다.
명의 대여는 불법이지만, 남편은 흔들렸다. 2500만 원이면 밀린 가게 월세와 원복이 학원비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었다. 남편은 신용불량자여서 나설 수 없었다. 남편은 신용이 괜찮은 아내 함수진 씨를 설득했다. 아내는 망설였다. 그때 바람잡이가 등장했다.
“뭘 망설여요! 저도 명의 빌려줬는데, 바로 3개월 만에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됐어요. 어려운 시절에 2500만 원이면 얼마나 큰 돈입니까! 도움 준다는 사람 나타났을 때 기회를 잡으세요.”
함수진 씨는 넘어가고 말았다. 함 씨는 2022년 10월 7일, 인감증명서 등 서류를 준비해 남편과 차를 타고 서울 신설동 하타○○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배가 남산처럼 나온” 김상욱 회장과 이○○ 씨를 처음 만났다. 청구동새마음금고 전종남 상무도 직접 카페로 왔다.
함 씨는 금융기관이 아닌 카페에서 대출신청서를 작성했다. 어떤 용도의 서류인지도 모른 채 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서류 빈칸에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적고 도장을 찍었다. 대출 금액은 무려 8억 7000만 원. 금리는 연 7.2%에 3개월마다 변동이었다.
“저는 8억 7000이란 숫자를 그때 태어나서 처음 적어봤어요. 동그라미를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아주 까마득하더라구요.”
대출금과 이자가 높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3개월 내에 모든 게 해결된다는 그들의 말을 굳게 믿었다. 대출 서류 작성 며칠 뒤, 정말로 2500만 원이 계좌로 입금돼 믿음은 더욱 커졌다.
함 씨의 남편은 마냥 좋은 일로만 여기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자영업자를 김상욱 일당에게 소개했다. 일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출금 8억 7000만 원은 그해 10월 11일 오전 10시 21분 함 씨의 새마을금고 계좌에 입금됐다. 정확히 2분 뒤부터 일이 터졌다. 누군가 함수진 씨 동의도 구하지 않고 계좌에서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내역은 이렇다.
오전 10시 23분 – 김○○ 법무사에게 440,630,706원 출금
오전 10시 38분 – 김○○에게 153,790,894원 출금
오전 10시 40분 – 전○○에게 35,000,000원 출금
오전 10시 42분 – 김상욱에게 10,000,000원 출금
오전 10시 47분 – 한도약정수수료 17,400,000원 출금
오전 11시 09분 – (주)아이비엘 195,325,000원 출금
순식간에 돈이 뭉텅이로 빠져나가 함수진 씨 계좌에는 1720만 원만 남았다. 이 돈마저 대출금 3개월치 이자로 다 빠져 나갔다. 이로써 함 씨 명의를 이용한 대출사기는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함 씨 계좌는 텅 빈 깡통이 됐다.
김상욱 일당은 세상 무서울 게 없는지 자신들의 흔적을 함 씨 계좌에 남겼다. 함 씨 계좌에서 돈을 빼간 전○○은 김상욱의 부인이다. (주)아이비엘은 김상욱 일당이 사기 대출금을 우회로 편취하는 데 이용하는 회사로 보인다. “아이비엘(IBL)”이란 회사 이름은 김상욱의 “오른팔”인 이○○ 이름의 영문 약자와 같고, 이○○은 그 회사의 고문으로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불법대출에 담보로 사용된 건물은 충남 태안군에 있는 펜션 겸 식당. 이곳 역시 이○○의 이름을 딴 “○○이네”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전화번호 역시 이○○의 것과 같고, 간판에 그려진 로고 역시 “IBL”이다.
사채왕 김상욱과 “오른팔” 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입수한 김상욱의 통화녹음 파일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아까 이○○ 봤지? 걔가 담양 애거든. 옛날부터 그쪽 동네 깡패야. 현재 회장님(김상욱 본인) 오른팔로 일하고 있는데, 이 새끼가 (담보가 될 부동산) 물건을 싸게 잘 잡아서 와. 뭔 말인지 알지? 걔는 우리가 돈을 좀 만들어줘야 돼, 지금.”(김상욱)
함 씨는 자신이 수렁에 빠졌다는 걸 지난해 5월에야 깨달았다. 김상욱과 이○○은 “3개월 내에 대출·채무 관계를 정리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남편 지인 K와 바람잡이들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모두 사채왕 김상욱과 한 패로 보였다.
함 씨 남편이 소개한 여러 자영업자도 똑같은 모양새로 당했다. 청주시 인근에만 피해자가 약 10명에 이른다. 함 씨 남편은 “주변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대출사기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김상욱 일당에게 소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자책하고 원망해도 이미 늦었다.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돈 8억 7000만 원이 고스란히 함 씨 빚으로 남았다. 새마을금고는 이자납부를 독촉하는 문자메시지를 함 씨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연체 이자는 나날이 몸집을 불렸고, 지난해 12월 연체액은 무려 9600만 원을 넘어섰다. 지금은 도대체 얼마를 내야 하는지, 함 씨는 무서워서 계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에게 죄가 없다는 게 아니에요. 명의를 빌려준 책임을 묻는다면 (벌을) 달게 받을 수 있어요. 근데, 8억 7000만 원 대출이 온전히 제 잘못이라고 하면 억울해요. 새마을금고는 명의도용이란 걸 알면서 대출을 해줬고, 계좌 주인인 저도 모르게 돈을 빼갔잖아요! 자기들은 사기꾼 김상욱이랑 공모했으면서, 나한테 돈을 다 갚으라는 게 말이 됩니까?”
함 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신용불량자가 됐다. 부부 모두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없고, 대출 등 금융거래는 모두 막혔다. ‘부모는 굶더라도 아들 학원은 보낸다’는 함 씨 부부의 철칙은 이때부터 깨졌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기에 앞서, 당장 내일의 차비, 쌀값, 가스비 해결도 벅찼다.
남편은 “노가다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라이브주점은 아내 함 씨가 맡게 됐다. 학원을 갈 수 없어 저녁이면 오갈 데가 없어진 아들은 부모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원복이를 맡길 데도 없었다. 결국 열세 살 원복이는 엄마가 일하는 라이브주점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주점 안에 작은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전기장판을 깔아주는 것뿐이었다. 명의대여라는 함 씨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잘못, 김상욱 일당과 청구동새마을금고의 사기 공모는 이렇게 큰 상처로 돌아왔다.
함 씨는 지난해 9월 청주상당경찰서에 김상욱 일당을 고소했다. 경기북부경찰청에서 사건을 맡았다. 함 씨 부부도 한 차례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수사관은 “김상욱 일당에게 당한 피해자가 전국에 7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김상욱 일당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만 1500억 원대의 불법대출을 일으켰다. 함 씨의 피해 금액 8억 7000만 원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결국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고 큰 부실을 떠안은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인근 지점과 통폐합 됐다. 김상욱 일당의 공범으로 불법대출을 실행한 전종남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는 면직 처리됐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함 씨는 피해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많은 만큼 사건이 빨리 해결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 중”이란 말을 7개월째 반복하고 있다. 그 덕에(?) 사채왕 김상욱은 하타○○ 카페를 아지트처럼 이용하며 여전히 별 일 없이 지내고 있다.
지난 14일 저녁, 함 씨의 라이브주점을 다시 찾았다. 건반이 설치된 무대에는 철 지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반짝 빛을 뿜었다. 무대 천장에 설치된 조명에서도 푸르고 붉은 빛이 교대로 뿜어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주점 구석의 원복이 텐트도 카멜레온처럼 색이 변했다.
주점 스피커에서 가수 여진의 ‘그리움만 쌓이네’, 이문세의 ‘빗속에서’, 고 이선균 버전의 ‘아득히 먼 곳’이 몇 차례 반복해 흘러 나오는 동안 손님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손님이 없다고 가게 문을 일찍 닫으면 안 돼요. 언제든 손님이 올 수 있으니까, 항상 문을 열어둬야죠. (잠시 침묵)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김상욱과 새마을금고가 망가뜨린 거예요. 그런 게 정말 분하고, 답답해요.”
그날 손님은 끝내 기자 한 명이었다. 엄마는 새벽 3시에 주점의 간판 불을 끄고 텐트로 가서 잠든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들은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원복이는 한참 만에 일어났다.
엄마와 초등학생 아들이 함께 나선 4월 15일 새벽 퇴근길, ○○노래방, ○○주점, ○○마사지 간판 불빛이 별처럼 쏟아져 내렸다. 엄마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다음달에는 원복이를 학원에 보낼 수 있을지, 가게 월세는 낼 수 있을지, 새마을금고에서 별것 없는 살림살이에 압류 딱지를 붙이는 건 아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함 씨의 사기 피해에 대해 반론을 듣고자 지난 16일 사채왕 김상욱에게 연락을 했다. 김상욱은 “관련자들의 허위 주장과 모함으로 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그는 곧바로 기자의 번호를 차단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측은 “(주)아이비엘은 ‘미등록 대출모집법인’으로, 새마을금고중앙회에 등록되지 않은 대출모집법인을 통한 거래는 모두 제재 대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불법대출) 책임자를 지난해 형사 고발했다”며, “고발 결과에 따라 민사 손해배상도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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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