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장 뒤쪽에서 시작된 웅성거림은 하필이면 교장선생님이 축사를 할 때 절정에 달했다. 공고 신입생들의 시선은 앞의 강단이 아닌 뒤쪽으로 쏠렸다. 교복 대신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화 대신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아이들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나타났다.
신입생 보러 애써 폼(?) 잡고 나타난 2학년 학생은 모두 네 명. 교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동네 깡패들도 아니고, 저것들이… 야, 느그들 뭐야!”
학생부장 선생님이 네 명을 데리고 나가면서, 소란은 정리됐다. 매년 반복되는 ‘2학년 선배들의 진부한 이벤트’는, 입학식 끄트머리에서 특별한 일이 되고 말았다.
강당에서 잠시 빠져나오자, 문제의 네 학생이 주변을 배회하는 게 보였다. 작년에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들이어서 낯이 익었다. 나는 ‘리더급’으로 통하는 두 아이의 손을 잡았다.
“신입생 보고 싶어서 왔나? 오늘은 그만 하고, 샘하고 교실 드가자.”
순순히 따라오는 정우(가명)와 달리 정민(가명)이가 손을 황급히 뺐다. 아이들 모두 당황한 눈치였다.
“샘, 저 자퇴했는데요?”
갑작스런 말에 내 눈이 커졌다. 옆에 있던 정우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정민이는 교실로 안 가서 좋겠네.”
정민이는 자퇴가 별일도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묻고 확인할 게 많았으나 친구들 앞에서 할 일은 아니었다. 세 학생을 교실로 보내고, 나는 정민이와 다시 입학식장으로 들어갔다.
“자퇴도 한 놈이 후배가 보고 싶어서 왔나? 샘이 지켜줄 거니까 맘껏 봐라.”
아까 등장할 때와는 달리 정민이 얼굴은 어두워졌다.
“샘, 저 그냥 갈게요. 그냥… 이제 재미가 없네요. 건강하시고, 담에 봬요. 샘!”
친구들 없이 입학식장에 선 정민이는 금세 현실을 자각한 듯했다. 학교에 있지만 더는 학생이 아니고, 신입생들의 선배라고 하기엔 뭔가 어정쩡한 존재가 됐다는 걸 말이다. 뒤돌아 도망치듯 강당을 떠나려는 정민이의 손을 나는 다시 잡아끌었다.
녀석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작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얼마간의 반항기가 섞인 뭔가 아슬아슬한 눈빛이었다.
지난해 3월, 입학식 즈음의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출근하는데, 교복을 입진 않았지만 왠지 우리 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학교와 가까운 곳이었다.
“니, ○○공고 다니지? 따라와!”
아이는 반항심 가득한 눈으로 날 쏘아봤다.
“아저씨 누군데요?”
“느그 학교 선생님이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냥 가시던 길 가세요. 저, 그 학교 안 다녀요.”
아이는 이런 대립에서 어떻게 하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 잘 아는 듯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담배 사는 게 불법이지 피우는 건 불법 아닌데요? 자꾸 이라시면 아동학대로 신고할 거예요.”
담배 피우는 아동이라… 엉성한 논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출근길에 아이와 계속 다툴 수 없어,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래, 니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닌데 미안하다. 아저씨는 갈 길 간다!”
다음 날, 한 커피 전문점 앞에서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 세 명이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내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황급히 담뱃불을 껐다. 명찰 색깔을 보니 신입생들이었는데, 어제 길에서 만난 아이도 거기 있었다. 명찰에 새겨진 이름은 ‘한정민’이었다.
“한정민… 니 우리 학교 안 다닌다면서?”
“거짓말한 건데요? 거짓말 좀 한 거 가지고 왜 소리는 지르세요?”
어제와 똑같은 태도. 열일곱 살에 벌써 세상을 다 안다는 듯한 과잉된 반항심과 적개심이 정민의 말투와 눈빛에서 뚝뚝 떨어졌다.
“내가 소리 질렀나?”
“방금 질렀잖아요. 소리 지르는 것도 언어폭력인 거 모르세요?”
다른 학생이 상황을 정리하려고 나섰다.
“샘, 저희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안 피울게요. 담배 피우다 걸리면 무조건 선도위원회 회부된다 카던데, 3월부터 부모님을 학교에 오시게 할 순 없어요.”
10여 년간 공고 교사로 일하며 담배 피우는 학생을 학생부에 넘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적당한 엄포와 훈계로 상황을 끝냈다.
며칠 뒤, 한 1학년 교실에 수업을 들어갔더니 맨 뒷줄에 앉은 정민이가 보였다. 눈이 마주친 정민이는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특별히 알은 척을 하지 않았다.
한 달 뒤, 정민이와 함께 담배를 피웠던 아이 한 명이 학교를 떠났다. 정민이도 교권침해, 흡연, 고(高)벌점 등으로 역시 징계 위기였다. 학교를 가장 먼저 그만둘 법했던 정민이는 학교에 꾸준히 나왔다. 비록 점심때쯤 왔다가 한두 시간 놀고 가는 듯했지만.
알고 보니 정민이는 비행사건으로 보호관찰 중이었고, 그나마 학생이어서 ‘보호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학생이 아니었으면 소년원에 갈 수도 있었다고 하니, 어쨌든 학교라는 울타리는 정민이에게 보호막인 셈이었다.
학교 밖에서 나와 두 차례 대립으로 인연을 맺은 정민이는 내가 가르치는 국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정민의 첫 질문은 다소 엉뚱했다.
“샘, 어떻게 하면 어깨를 넓힐 수 있어요?”
일전에 날 아저씨라 부른 정민이가 이번엔 “샘~”이라 불러주다니. 먼저 말을 걸어준 것 자체가 고마웠다. 정민이는 권투를 배웠고, 나는 학교에서 헬스부를 운영하고 있었다. 운동이라는 연결고리 덕분에 정민이가 내게 먼저 다가온 것. 이 기회를 잘 살리고 싶었다.
“니, 팔굽혀펴기 잘하나? 그거 하면 어깨 넓어지는데.”
정민이는 “팔굽혀펴기로 친구들에게 진 적이 없다”며 아이들 앞에서 으스댔다. 내가 정민이 속을 살짝 긁었다.
“그래? 그래도 샘은 못 이길걸? 샘이 마흔이 넘었어도 니 정도는 쉽게 이긴다.”
정민이는 길거리에서 그랬듯이 발끈했다.
“샘, 컵밥 내기 해요. 제가 지면 샘이 시키는 거 다 할게요.”
“그래. 그럼 샘이 지면 느그 반 전체에게 컵밥을 돌리고, 샘이 이기면 니는 샘하고 국어 공부 좀 하자. 콜?”
정민이는 자기 덕에 반 아이들 전체가 컵밥을 먹게 됐다며 벌써 축제의 주인공처럼 굴었다. 우리는 ‘20초 팔굽혀펴기-20초 휴식’으로 총 10세트 대결을 하기로 했다. 늘 그 방식으로 운동을 했기에 나는 자신 있었다. 교실에서 학생과 팔굽혀펴기 내기를 한다는 게 다소 우스꽝스러웠으나, 정민이 방식으로 친밀감을 높이고 싶었다.
정민이는 첫 세트를 가볍게 통과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세트도 쉽게 통과했다. 다섯 세트를 넘기자 정민이의 호흡이 가빠졌다. 세트가 끝날 때마다 별거 아니라며 큰소리치던 정민이의 숨소리가 더 커졌다. 7세트쯤 됐을 때,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이 X발, 개빡시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8세트쯤 되자 정민이의 몸은 더는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차분하게 10세트까지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승! 정민의 ‘빡센’ 국어 공부는 다음 수업부터 시작됐다.
“오늘은 ‘죽음의 방 탈출’ 게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공고생들이 가장 잘 틀리는 맞춤법 문제 20개를 준비했는데, 100점을 맞을 때까지 교실을 나갈 수 없습니다.”
국어에 통 관심이 없는 정민이를 위한 수업이었다. 복잡하고 긴 호흡의 수업은 정민이에게 무리였다. 단순해 보일지라도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나는 이런 문제를 냈다.
“‘안 돼’와 ‘안 되’ 중 맞는 말은?”
“‘안 돼’요.”
“이유는?”
정답을 맞혀 좋아하던 정민이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
“5초 준다. 5, 4, 3, 2….”
“생각났어요! 합쳐져서 그런 거예요. ‘되’와 ‘어’가 합쳐졌어요!”
내가 “통과!”를 외치자 정민이는 활짝 웃었다. 정민이는 금세 ‘맞춤법 테스트’에서 100점을 맞았다. 고교 1학년에게 국어 맞춤법 100점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문제아로 지적받고 선도위원회에 불려다니는 아이에겐 작은 칭찬이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나는 정민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정민이를 지도하는 국어교사 지한구라고 합니다. 오늘 정민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습니다! 수업 시간 내내 정민이가 친구들을 가르쳐주는데, 제가 오늘 정말 감동스러워서 전화드렸습니다.”
담배에, 오토바이에, 온갖 ‘사고’ 관련 전화만 받던 어머니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내 옆에 서 있던 정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선생님의 배려와 노력으로 정민이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문제집을 직접 사는가 하면 ‘대학에 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정민의 ‘바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부 선생님과 충돌했고, 흡연과 무단이탈 등으로 선도위원회에 회부됐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정민이는 학교에서 1년을 버텼다. 하지만 끝내 스스로 학교를 떠나는 선택을 내리고 말았다.
더는 학생이 아닌 정민이는 후배들의 입학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잡을 땐 기어코 떠나더니, 왜 다시 학교를 찾아왔을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강당에서 나오며 정민이의 손을 꼭 잡았다.
“정민아, 학교로 돌아올 생각 없나? 12월까지 잘 버텼는데, 자퇴했다는 말을 들으니까 샘 맘이 안 좋다.”
“자퇴해도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어요?”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알려줬다. 나는 진심으로 정민이가 학교로 돌아오길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아, 사고뭉치들이 빨리 학교를 떠나야 면학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문제아, 사고뭉치일수록 학교에 와야 하고, 또 학교가 필요하다는 게 ‘공고에서 보낸 10년’이 내게 심어준 교육철학이다. 이들을 학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계몽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나중에 밥은 먹고 산다’는 옛말을 되풀이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 중에는 사회 취약계층 출신이 많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제대로 돌봄을 못 받은 아이들에게 교문마저 닫힌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래도 학교에 오면 친구가 있고, 교사가 있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전인교육에 실패하고, 입시교육에서도 학원에 밀리는 대한민국 학교가 이 정도 역할이라도 하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학교로 돌아오라는 내 제안에 정민이는 “다시 1학년부터 다닐 자신이 없다”는 말은 남기고 돌아섰다. 나는 다시 정민을 불러세웠다.
“샘이 명함 하나 줄 테니까,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라. 길에서 만나면 이 ‘아저씨’한테 알은 척이라도 해주면 고맙고. 알았제?”
그렇게 정민이는 학교를 떠났다. 정민이처럼 자퇴 후에 학교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수학여행 떠나는 날 요란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관광버스 앞에 나타나거나, 체육대회 날 체육복을 차려 입고 놀러 오거나….
학교를 떠난 이유는 다 달라도, 다들 비슷한 이유로 학교를 그리워하는 거다. 학교에는 친구가 있고, 아는 선생님이 있고, 때로는 밥도 주고, 운동할 수 있는 운동장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한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은 그게 섭섭하기도 하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