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연휴 다음 날(7일) 아침. 그랜드하얏트호텔이 보이는 서울 한남동은 만원버스와 승용차로 붐볐다. 바로 옆 이태원 주택가 골목길도 출근길 시민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부산스러운 거리 풍경과 달리, ‘이곳’은 마치 도심 속 외딴섬처럼 고요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고급빌라 ○○하우스. 지상 4층 건물 2개 동에 총 15개 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곳으로, 2022년 2월 준공됐다. 당시 분양가는 20억 원(펜트하우스 제외)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출입문은 자전거용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주차장 입구도 굳게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빌라 안엔 고양이 한 마리만 한가롭게 앉아 있었다.
이웃 주민 한 사람을 만나 ○○하우스에 대해 물었다.
“여기는 원래 문이 닫혀 있나요?”
“거의 (대부분 시간에) 닫혀 있어요.”
“사람이 안 사는 건가요?”
“네, (내부로 들어가려면) 부동산 같은 데 통해서 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분양가 20억 원짜리 고급빌라가 준공 2년 만에 ‘폐가’처럼 버려진 상황. 이 빌라에는 사채왕의 ‘검은 손길’이 숨겨져 있다. ‘사채왕’ 김상욱(1972년생)은 지난해 1500억 원 규모의 불법대출 사건을 일으켜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
김상욱 일당은 ○○하우스 15개 호실을 담보로, 청구동새마을금고를 비롯한 9곳의 새마을금고에서 총 200억 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대출금과 이자는 상환되지 못하고 모두 ‘부실채권’이 돼버렸다.
특히 대출금 중 147억 원가량이 단 한 사람 앞으로 나왔다. 바로 김상욱의 처제 전○○이다. 김상욱 일당은 먼저 김상욱의 처제 앞으로 147억 원의 대출을 받은 뒤, 나중에 이 빚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시도한 걸로 보인다.
불법과 편법 사이를 줄타기하는 그들의 노력(?)은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입수한 900여 개의 통화 녹음파일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김상욱은 공범인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에게, 새로운 대출 명의자를 구해오도록 여러 차례 지시했다. 김재민은 신탁사 직원이지만, 김상욱의 직원처럼 그의 지시를 따랐다.
김상욱 : “이태원 거(○○하우스) 명의자가 문제다, 지금.”
김재민 : “제가 저희 쪽 3명하고 1명을 더 구했는데요. 저까지 4명입니다. 그때 드렸던 제 것까지 포함해서 민증(주민등록증) 3개랑 하나 더 구해서 내일 받을 거예요. (…) 그래서 내일은 안○○ 대표, 저희 걸로 4개를 일단 (은행에) 뿌려볼 거예요. (김상욱이 준) 여자분 것까지해서요.”(…)
김상욱 : “최대한 구해봐라. 11명 다 해야지만 이 새끼가 쓴다고 하니까.”
김재민 : “11명…. 그럼 (현재) 7명이니까 4명 더 구해야 되잖아요.” (2023년 7월 17일 김상욱-김재민 통화)
셜록은 두 사람의 대화 중 등장하는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입수했다. 계약서 개수는 11개로, 김상욱이 구해야 한다고 말한 명의자 수와 일치했다. 계약서에는 매수인의 인감도장 대신 막도장이 찍혀 있었다. 공범 김재민이 정리해둔 폴더 안에는 일부 매수인(8명)들의 사업자등록증, 주민등록증, 소득금액증명원 등이 함께 저장돼 있었다.
계약서상 매수인에는 김상욱 일당이 섭외한 걸로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김상욱의 아들과 처제, 김재민 본인을 포함해, 절반 이상이 김상욱과 김재민의 측근들이었다.
11건의 매매계약서 모두 특약사항에 “담보신탁 금액은 매수인이 변제하는 조건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각각의 담보신탁 금액은 최소 9억 8000만 원에서 최대 26억 1000만 원(공동담보)으로, 앞서 김상욱의 처제 전○○ 씨 명의로 받은 대출금과 동일했다.
이 과정에서 김상욱 일당이 당사자들도 모르게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작성한 정황이 확인됐다. 셜록은 계약서상 명의자 11명 모두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김상욱 일당의 측근으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었다. 기자와 연락이 닿은 사람은 4명. 그들은 “○○하우스 매매계약서를 직접 작성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우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가본 적도 없습니다. (…) 저는 새마을금고 계좌도 없는 사람입니다.”(명의자 A)
“○○하우스와 김재민 대리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일반 직장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랑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명의자 B)
“(○○하우스 매매계약서상) 매수인에 제 이름이 적혀 있다고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이 집을 왜 삽니까?”(명의자 C)
이에 대해 서성민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는 “당사자들 모르게 명의를 도용해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사문서위조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며, “만약 해당 계약서로 금융기관에 대출까지 시도했다면 사기미수 혐의에도 해당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통화녹음에서는 구체적으로 특정 피해자의 명의를 이용해 대출을 시도한 정황도 확인된다.
김재민 : “우선 청구동새마을금고에 명의자 A (앞으로 대출) 가능 금액이 10억 3000만 원 나오거든요.”
김상욱 : “그거는 원래 13억 나와야 하는데. 그걸(○○하우스) 18억에 파는데 (대출금을) 10억 받으면 되겠냐?”
김재민 : “그래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명의자 A 씨에 대해 요청하는 게, 소득 자료 줄 수 있는 거 다 달라고 하더라고요.” (2023년 7월 31일 김상욱-김재민 통화)
셜록이 신탁원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김상욱 처제 전○○ 씨는 2022년 8월 1일 ○○하우스 11개 호실을 담보로 새마을금고 9곳에서 총 147억 원의 대출을 받았다. 담보신탁 계약은 김재민 전 대리가 근무하던 무궁화신탁이 맡았다.
나머지 4개 호실만 다른 사람에게 분양이 이뤄졌는데, 이들 역시 김상욱 일당과 관련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은 모두 2023년 3월경 ○○하우스를 담보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각각 12억 5000만 원씩 대출받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대출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김상욱 일당의 또 다른 불법대출 현장인 경남 창원 ‘KC월드카프라자’(이하 KC월드카) 사건에 등장하는 D 씨의 이름도 보인다.
김상욱 일당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일으킨 약 1500억 원의 불법대출 중 약 800억 원을 KC월드카 한 곳에서 만들어냈다. 2022년 “부산·경남 최대 규모의 자동차 문화 복합쇼핑몰”을 표방하며 문을 연 KC월드카는, 김상욱 일당의 대출사기 여파로 현재 상가 절반 이상이 공실이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D 씨는 작년 1월경 KC월드카 상가 하나를 담보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9억 6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같은 해 3월경 본인의 가족들 명의로 ○○하우스 2개 호실을 각각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기자는 D 씨와 직접 소통했다.
“김상욱 쪽이 ○○하우스로 어떻게 (부당) 수익을 어떻게 얻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김상욱이 ‘1가구 1주택 제재 때문에 취득세 아껴야 하니까 명의를 빌려달라’고 해서 명의를 빌려준 겁니다.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통장 등 관련 서류 모두 청구동새마을금고 쪽이 갖고 있어서, 내역조차 알지 못합니다.”(지난달 25일 기자와 D 씨의 전화통화)
그렇다면 김상욱의 처제 전○○ 씨 한 명 앞으로 무려 147억 원이나 대출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들은 동일인 대출 한도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으로 나눠서 담보 대출을 받았다.
새마을금고 9곳에서 ‘쪼개기 대출’이 이뤄지는 데는 공범의 역할이 컸다.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는 자신이 일하는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물론, 다른 새마을금고 8곳을 ‘섭외’해 대출을 실행해줬다.
그리고 김상욱 일당은 이 대출금 일부를 빼돌린 걸로 보인다. 새마을금고중앙회는 KC월드카 사건에서 불법 대출모집인으로 지목된 대출 브로커들이 ○○하우스 사건에서도 똑같이 활약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우스를 담보로 새마을금고에서 실행된 대출금 총 200억 원은 현재 상환되지 않고 있다. 김상욱 처제 전○○ 씨 이름으로 대출이 실행된 11개 호실 중 8개는 지난해 12월부터 공매 물건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감정가 약 25억 원에서 공매를 시작한 한 호실의 경우, 7번의 유찰 끝에 현재 입찰가가 약 13억 원까지 떨어졌다. KB부동산 사이트에서 조회되는 ○○하우스의 추정시세는 최소 6억 원에서 최대 9억 원이다.
“이거(○○하우스) 일 안 되면 회장님, 이 삼촌(본인) 얼굴이 똥 되는 거야. 이거 정신 차리고 해야 돼. 이태원(○○하우스)은 실수하면 안 되니까.”(2023년 7월 28일 김상욱 통화녹음)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은 지난해 7~8월 집중적으로 통화를 주고받았다. 김상욱 일당은 처제 전○○ 앞으로 남아 있는 약 150억 원의 빚을 다른 명의자들 앞으로 돌리려 했다. 김상욱은 이 일에 실패하면 “내 얼굴이 똥 된다”며 강조했지만, 결국 그들의 시도는 미완에 그쳤다.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시기’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청구동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 사건이 알려지면서 뱅크런 사태가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대출이 가능한 금융기관 섭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김상욱 일당은 뜻을 이루지 못한 걸로 보인다.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선 전종남 상무를 징계면직 처리했다. 징계사유는 ▲대출금 편취 및 브로커 부당지급 ▲감정가격 과다평가 대출 ▲동일인 대출한도 초과 ▲부적정 담보물(유치물) 대출 ▲CTR(고액현금거래보고) 허위보고 ▲구속성 공제계약 등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언론홍보실 담당자는 지난달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하우스를 담보로 실행된 대출에 문제가 있었음을 일부 시인했다.
“채무자 전○○ 씨의 상환능력을 적정하게 평가하지 않고 소홀한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김상욱 일당이 대출금을 편취할 걸 알면서도 (청구동새마을금고를 제외한 8개 새마을금고에서) 묵인하에 협력한 건 아닙니다.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선 채무자 전○○ 씨가 김상욱의 처제인 줄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새마을금고중앙회 언론홍보실 담당자)
한편,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 전종남은 지난달 23일 구속됐다. 경기북부경찰청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업무상배임‧수재‧증재) 위반 혐의로, 지난 2일 이들을 의정부지방검찰청 고양지청으로 송치했다. 이들은 송치와 동시에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됐다.(관련기사 : <[해결] 셜록 보도 6일 만에 ‘사채왕’ 김상욱 전격 구속>)
경찰은 김상욱 일당이 KC월드카 한 곳에서 약 718억 원 상당의 부당대출을 일으킨 걸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 금액 중 약 85억 원 상당이 알선 수수료 명목으로 김상욱에게 지급됐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김상욱이 고급 외제차 등 약 3억 4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해 전종남을 매수한 걸로 파악했다.
덧붙여 “청탁 대가 및 대출 알선 수수료 등 범죄수익금을 추적하여 기소 전에 적극 환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지난 2일 김상욱의 처제 전○○ 씨에게 연락했다. “새마을금고 대출금 총액 147억을 갚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김상욱 일당과 함께 대출금 중 일부를 부당 수익으로 나누었는지” 등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사채왕 김상욱과 전종남 전 상무에게도 반론을 요청했다. 김상욱은 지난달 16일 셜록과 한 전화 통화에서 “나도 피해자다, 불법대출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여러 번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후 문자메시지로 재차 취재 협조를 요청하자 김상욱은 “관련자들의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그리고 만약 취재진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내온 바 있다.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에게도 연락을 시도했다. 세 번째 통화 시도 만에 그와 1분가량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좀 바쁘다”, “아니다”라는 답변만 남긴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그에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는 셜록의 취재 연락을 받지 않다가, 보도가 시작된 후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이후 기자가 그를 찾아갔을 때도 “김상욱을 잘 모른다”며 “수사 중인 사건이라 말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