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 자리에서 몇 마디 말로 타인의 주머니에서 수억 원을 빼내는 유혹의 기술은 타고나는 걸까,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30대 시절 1500만 원 사기로 시작해, 50대에 1500억 원대 불법대출로 금융기관 하나 문을 닫게 한 ‘사채왕’ 김상욱(52)의 화려한 범죄이력을 보면서 떠오른 의문이다. 그의 과거 판결문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목포오거리파 조직폭력배로 자신을 소개한 김상욱. 다섯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30대 때 전남 목포시에서 입시학원도 운영했다. 그는 이 학원을 범죄의 도구로 이용했고, 사기 피해자를 영업사원처럼 조종해 다른 ‘먹잇감’을 물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현직 여교사가 김상욱에게 약 2억 원을 뜯기고도, 다시 김상욱을 위해 자기 남편과 동생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도 있었다. 김상욱은 혼인과 사실혼 관계를 동시에 유지했는데, 아내와 내연녀는 김상욱과 함께 사기를 쳤다. 아내가 체포돼 구속됐을 때, 김상욱은 혼자 도망쳐 내연녀와 또 사기를 쳤다.
김상욱은 2002년부터 신용불량자여서 은행 거래도 제대로 못했지만, 사기 행각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는 타인을 속여 얻어낸 신용카드를 펑펑 긁고 다녔다. 그의 ‘말발’은 불량한 신용을 넘는 도구였다.
목포에서 고물상과 입시학원을 하던 김상욱은 어떻게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를 집어 삼켰을까? 김상욱 일당의 1500억 원대 불법대출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게 아니다. 김상욱은 거리의 폐지와 빈병을 모으듯이, 2000년대 후반부터 범죄 이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청소년 시절, 김상욱은 교회에 다녔다. 교회 친구 A(여성)는 훗날 목포에서 교사가 됐고, 김상욱은 선대의 사업을 물려받아 고물상을 운영했다. 김상욱이 2009년 6월 A에게 말했다.
“거래처에서 돈이 안 들어와서 자금 회전이 어려운데, 1500만 원 빌려주면 바로 갚을게.”
시작은 1500만 원이었다. 신용이 불량해 통장 거래도 할 수 없던 김상욱은 아내 전○○의 계좌로 돈을 받았다. 교회 친구 김상욱에 속은 A는 이때부터 6회에 걸쳐 약 2억 원을 빌려줬고,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다.
김상욱은 아내와 함께 2011년 1월부터 목포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했다. 이미 약 2억 원을 빚진 A에게 김상욱이 말했다.
“네 남편 몰래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그 돈으로 학원을 잘 운영하면 대출금 바로 갚을 수 있고, 너한테 빌린 돈 2억 원도 돌려줄 수 있는데.”
A는 남편 몰래 남편 이름으로 휴대폰 하나를 개통했다. 이 전화기와 남편 신분증, 통장 계좌번호, 인적사항 등을 김상욱에게 건넸다.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제품 하나를 여러 방면으로 활용한다는 이 비즈니스 용어는 김상욱의 사기 행각에 딱 들어맞는다. 친구 남편의 휴대폰과 개인정보를 쥔 김상욱은 허기진 모기처럼 ‘피’를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카드론을 신청해 편취했으며, 마지막엔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렸다. A의 남편에겐 빚 1억 4000만 원이 생겼다. A는 친동생도 속였다.
“김상욱이 운영하는 학원에 강사로 등록해 경력을 쌓게 해줄 테니, 형식적으로 급여통장으로 사용할 은행계좌를 만들자.”
A는 동생 이름으로 된 휴대폰과 개인정보를 다시 김상욱에게 넘겼다. 김상욱은 이걸 활용해 대부업체에서 400만 원을 대출받아 편취했다. ‘교회 친구’ 김상욱과 A의 범행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다시 김상욱이 A에게 말했다.
“너한테 빌린 돈 갚으려면, 다른 사람 명의로 대출받아서 학원을 잘 운영해야 하는데….”
2011년 여름. A는 같은 학교 동료 교사 B(남성)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B는 1급 시각장애인이었다. A는 B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교직원공제회에서 500만 원을 대출받게 했다. 이 과정에서 A는 B의 주민등록증과 통장을 손에 넣었고, 이걸 ‘역시나’ 김상욱에게 넘겼다.
김상욱과 아내 전○○은 B 명의로 휴대폰부터 개통했다. 김상욱이 타인 명의 휴대폰을 쥐는 순간, 그야말로 게임 끝이다. 이때부터 김상욱의 ‘원소스 멀티유즈’ 플레이가 시작된다.
김상욱과 아내는 어렵지 않게 여러 은행에서 B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했다. 공인인증서도 발급받았다. 사기 대출은 캐피탈업체에서부터 시작했다. 금방 4298만 원이 입금됐다.
김상욱은 이어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고, 카드사에 카드론도 신청했다. 뿐만 아니라 김상욱은 공인인증서만으로 사학 교원 대출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B 명의로 1770만 원을 대출 받았다. 순식간에 B 앞으로 빚이 약 1억 3000만 원 생겼다.
이 과정에서 김상욱과 A는 영화 같은 사기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한 저축은행이 대출을 실행할 때의 일이다. 저축은행은 B가 정말 해당 학교에 근무하는지 확인하려 교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이를 미리 알고 있던 김상욱은 학교 교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저축은행의 전화를 받아서 B 행세를 했다.
A는 한 걸음 더 들어갔다. 그는 B가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가방을 뒤져 B의 신용카드 정보를 알아내 김상욱에게 넘겼다. 며칠 뒤 A는 아예 B의 신용카드 하나를 훔쳐 김상욱에게 건넸다. 김상욱은 이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 210만 원을 받고, 22회에 걸쳐 약 1200만 원을 마음대로 결제하고 다녔다.
B의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을 때, 김상욱은 사건 조작을 도모했다. 2012년 봄, 그는 경찰 출석을 앞둔 A에게 지시했다.
“모든 대출사기는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거야. 경찰에서 그렇게 진술해. 알았지? B 이름으로 받은 대출은 어떻게 하냐고? 그건 ‘B가 당신을 새벽에 불러 성관계를 요구했고, 성관계 대가로 대출받도록 허락해줬다’ 이렇게 진술해.”
A는 김상욱의 지시대로 진술했다. 이 거짓말 때문에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 사이, 김상욱은 수사망을 피해 도주했다.
A는 2012년 11월 27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으로부터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에 앞서 4월에는 학교에서 파면됐다. A교사는 항소했지만, 2심에서 원심보다 높은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김상욱의 아내 전○○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다섯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점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자기 아내와 교회 친구가 재판을 받는 동안에도 김상욱은 쉬지 않았다. 도주 중이던 그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C와 함께 2012년 10월부터 부동산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김상욱은 목포를 떠나 서울로 진출했다. 그는 서울의 한 카페에 지인을 앉혀놓고 다시 ‘말발’을 풀기 시작했다.
“누님, 제가 서울 근교에 아파트 수십 채를 사놓은 게 있어요. 이 아파트를 최근에 팔았는데, 주민들이 싸게 팔았다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법적인 문제가 좀 생겼어요. 그걸로 돈줄이 막혔는데, 사업자금 좀 빌려주세요. 두세 달 내에 아파트 처분해 갚겠습니다!”
지인은 돈이 없다고 거절했다. 김상욱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누님이 차량을 할부로 구입하세요. 그 다음 차를 매각해 그 돈을 빌려주면, 사업을 잘 일으켜서 차 할부금은 우리가 다 갚을게요. 어때요?”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김상욱은 아파트를 한 채도 소유한 적이 없다. 그는 재산이 하나도 없었고, 내연녀 C 역시 재산은커녕 은행 채무만 3700만 원이었다.
그럼에도 카페의 ‘누님’은 김상욱에게 속았다. 그는 자신과 아들 명의로 제네시스 차량 두 대를 할부로 구입해 담보로 제공하거나 팔아서 김상욱에게 7300만 원을 건넸다. 물론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김상욱의 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서도 사기를 쳤다. 김상욱은 2012년 11월, 지인을 차에 태워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 앞으로 갔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말했다.
“이 카페가 매물로 나왔어요. (인수하면) 월 500만~600만 원 수익을 볼 수 있는데, 3억 원만 있으면 제가 가져올 수 있습니다. 돈 좀 빌려주세요.”
지인은 돈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김상욱이 아니었다.
“정말 좋은 기회예요! 서울 성북구에 아파트 한 채 있죠? 내가 아는 사채업자가 있는데, 이자는 내가 부담할 테니 아파트 담보로 사채 좀 끌어다 씁시다. 저 카페, 우리가 삽시다!”
역시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지인은 정말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3900만 원을 빌렸다. 그는 이 돈 포함 총 7960만 원을 김상욱에게 건넸다.
김상욱이 사기에 이용한 부동산은 아파트, 카페만이 아니다. 그는 자기 돈 한 푼 없이 경기 화성시의 미분양 오피스텔 13채를 매입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오피스텔 한 채를 구입해 전세를 놓고 여기에 은행대출까지 일으켜 연쇄적으로 다른 오피스텔을 구입한다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상욱은 다시 지인을 앉혀놓고 ‘썰’을 풀었다.
“동탄에 28평형 미분양 집이 몇 채 있는데, 남들보다 싸게 살 수 있어요. 누님 명의로 융자 끼고 구입한 후 월세를 받으면 크게 수익이 납니다. 우리가 대신 구입할 테니, 돈을 좀….”
이 누님도 김상욱에게 속아, 자기 소유의 경기 포천시 임야를 담보로 약 1억 원을 대출받았다. 물론 이 돈은 김상욱 주머니로 들어갔다. 김상욱은 이렇게 부인이 수사와 재판을 받을 땐 내연녀와 함께 사기 행각을 이어갔고, 그가 편취한 돈은 총 11억 원이 넘는다.
도주 행각을 이어간 김상욱은 2015년에 체포됐다. 그는 사기, 사문서위조,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 등 13개 혐의로 2016년 서울고법으로부터 징역 6년, 벌금 12억 원을 선고받았다.
여기에는 고물상을 통한 허위 세금계산서 수취에 따른 40억 원대 탈세 혐의도 포함됐다. 김상욱이 자신의 고물상을 일명 ‘자료상’, 즉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수취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고물상마저 ‘원소스 멀티유즈’로 이용한 셈이다.
김상욱의 사기 수법은 일관적이다. 타인 명의로 대출을 일으켜 편취하거나, 허위 사업을 내세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는 방식. 특히 타인 명의 대출은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례에서 보듯이 규모와 내용 면에서 크게 진화(?)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입시학원 운영 시절,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김상욱의 아내 전○○ 역시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에 일부 연루돼 있다. 처음 교회 친구 A를 속여서 받아낸 1500만 원을 아내 명의 통장으로 받았듯, 김상욱은 최근까지도 아내 명의 통장을 통해 돈을 주고받았다.
“2억만 우리 와이프 계좌로 넣어줘. 전○○이 5억 7000만 원 돼 있지, 투자협약서? 거기서 3억 7000(만 원)은 그쪽으로 넣고, 2억은 와이프 넣어주고.”(2023. 7. 21. 김상욱 통화녹음)
김상욱 일당에게 대출사기를 당한 한 피해자의 통장내역에도, 김상욱 아내 전○○ 계좌로 돈이 인출된 흔적이 남아 있다. 물론 피해자는 그 돈이 왜 빠져나갔는지 알지 못한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아내뿐 아니라 처제도 등장한다. 서울 이태원 고급빌라 ‘○○하우스’ 사건. 이 빌라를 담보로 받은 약 200억 원의 대출금 중 약 150억 원이 처제 전○○ 한 사람 앞으로 나왔다.(관련기사 : <150억 대출금이 사채왕 처제에게… 이태원 고급빌라 ‘텅텅’>)
그리고 김상욱 일당이 아지트처럼 사용하는 서울 신설동 하타○○ 카페는 그의 20대 아들이 사장으로 있는 곳이다. 과거 탈세 혐의로 처벌받은 고물상 운영에는 김상욱의 동생과 사촌동생도 가담돼 있었다. 그들 역시 김상욱과 함께 처벌받았다. ‘가족 범죄’는 김상욱의 오래된 특징이다.
사실혼 관계의 내연녀와 부동산 사기를 쳤을 때, 김상욱은 자신이 한 일을 두고 “부동산 컨설팅”이라고 수사기관에 주장했다.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로 구속된 지금, 그의 변호인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김상욱은 새마을금고에 대출 컨설팅을 했고, 그 대가로 수수료 일부를 받았을 뿐입니다.”
이 지독한 일관성은 단련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타고난 걸까.
김상욱은 지난달 16일 셜록과 한 전화 통화에서 “나도 피해자다, 불법대출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후 문자메시지로 재차 취재 협조를 요청하자 김상욱은 “관련자들의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그리고 만약 취재진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내온 바 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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