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박지은(가명)은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직 상담사다. 그는 직장 내 군기 문화와 부조리를 지적했다가 직원들의 따돌림을 받게 된다. 육아지원 제도를 썼다는 이유로 성과평가에서 최하점을 받았다. 심지어 실적을 내기 까다로운 고령 구직자들이 자신에게만 집중 배정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갑질’ 신고를 하기에 이른다.

갑질 신고가 접수됐으니, 회사는 매뉴얼에 따라 박지은과 A 팀장을 분리해야 했다. 박지은을 다른 팀으로 보내려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도 그와 자리 바꾸기를 원치 않는 거였다. 모든 원망은 박지은을 향했다. 그들은 박지은의 “편협한 이기주의”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회사는 그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쪽보다 박지은에게 ‘유급휴가’를 주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니 자리 못 만들어주니까 그냥 회사 오지 마라, 월급은 줄게’ 이런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메일을 보냈어요. ‘내가 원하는 건 유급휴가가 아니라 자리이동이다, 내가 지금 유급휴가를 가면 다른 직원들하고 사이가 더 틀어질 거다.’”

2023년 2월부터 ‘원치 않는’ 유급휴가가 시작됐다. 석 달이 지나서야 박지은은 새로운 팀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른 팀에 왔으니 새로 배워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제 오랜만에 출근해서 보니 사무실 분위기를 알 것 같습니다. 일단은 제가 휴가 들어가기 전에도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 분들이 계셨으니 그건 저도 이미 익숙합니다. (…) (업무를 물어봐도) 잘 모른다면서 알아서 판단하고 업무를 하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23. 5. 31. 메신저 대화. 3개월 휴가 후 새로운 팀으로 복귀한 이튿날 상황.)

박지은은 관계에서도 업무에서도 완전히 혼자였다 ⓒ셜록

그 사이 대전지방보훈청은 갑질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육아시간 사용을 정성평가에 반영한 점에 대해서 갑질(직장 내 괴롭힘)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2023년 4월). 육아시간 제도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법은, 육아지원 제도 사용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공무직 A 팀장은 ‘경고’의 가벼운 조치를 받았다. 그리고 그해 7월 퇴직했다. 회사 사람들에게 이 모든 과정은 ‘박지은 때문에 팀장이 회사를 떠났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됐다. “굳이 (갑질) 신고를 해서 동료들을 괴롭혔어야 했냐”는 말이 박지은에게 돌아왔다.

그 즈음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이 있었다. 2023년 6월 어느 금요일 오후, 한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지은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세요!”

그는 소리를 지르며 박지은을 몰아붙였다. 채용정보 등을 공유하는 업무 채팅방에 박지은이 메시지를 너무 많이 올린다는 게 이유였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그 장면을 지켜봤다. 박지은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현장에 있었던 동료 안준재(가명)는 그때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 상담사가 박지은 상담사 앞에서 소리를 지르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던 박지은 상담사는 상당히 놀라는 모습이었으며 (…) 숨을 쉴 수가 없다며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울부짖었고, 제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는데 손을 무척 떨면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안준재가 고용노동청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다른 직원의 신고로 119까지 출동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동료 안준재는 이렇게 생각했다.

떨면서 울고 있는 박지은 상담사를 남의 일처럼 지켜보다가 ○○○ 상담사를 포함하여 대부분 상담사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 동료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집단 따돌림이고, 자존심을 건들거나 업무를 힘들게 하여 회사를 다니기 힘들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준재가 고용노동청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박지은은 그 뒤로 일주일간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다. 너무 무서웠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 꿈에 제가 이렇게 눕혀져 있고, 제 팔을 (위에서) 이렇게 누르고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칼을 들고 제 허벅지부터 발까지 찢는 거예요. 그 고통 때문에 잠에서 깨요. 아무리 ‘이건 꿈이야’라고 생각해도, 새벽까지 잠을 못 잤어요. 비슷한 꿈을 지금도 많이 꾸거든요.”

박지은은 말하기도, 웃기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셜록

박지은은 ‘원래’ 우울한 사람이 아니다. 말하기도 웃기도 좋아하고, 장난치기도 좋아했다. 그가 ‘미운 오리 새끼’가 되기 전 한 동료는 그에게 ‘초딩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였다.

“‘(박지은은) 왜 회의 때 대화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도 단체행동에 있어서 함께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제 의견을 말했을 때, (…) ‘(박지은이)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인사도 잘하며 소소하게 먹을 것도 나눠 먹으며 밝고 명랑했는데 몇몇 상담사들로 인해 저렇게 변했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준재가 고용노동청에 제출한 사실확인서)

출장을 나가면서도 박지은에게는 알려주지 않았고, 업무 관련 문서에는 비밀번호를 걸어서 못 보게 했다. 박지은은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철저히 혼자였다.

기업에서 채용정보가 오면 그것을 구직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발송해 알린다. 그런데 박지은이 담당하고 있는 채용 건은 문자메시지 발송도 해주지 않았다. 다른 담당자의 채용 건이 115건 발송되는 동안, 박지은이 담당한 채용 건은 고작 2건 발송됐다(2023년 8월 ~ 11월).

“여긴 회사잖아요. 더군다나 공공기관에서, 사적 배제를 넘어서 공적으로, 업무적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만약 담당자가 박지은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 연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거라면, 이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박지은 한 사람의 실적만 갉아먹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결국 구직자나 기업이 피해를 보게 됐기 때문이다. 제대군인지원센터가 국가보훈부와 보훈청 산하의 공공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심각성은 더욱 크다.

그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면서, 채용정보 문자메시지 발송을 고르게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다만, 그 행동이 ‘업무상 배제’나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위에서는)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야 되니까 그렇게(개선 지시) 한 거래요. 그게 그 말이잖아요! 단체로 그냥 저 하나 바보 만들면 끝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해요. 아무도요.”

박지은은 사무실의 투명인간이 됐다 ⓒ셜록

박지은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이 한 대사를 떠올렸다.

“대체 너희들은 날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사람들은 박지은의 약점을 잘 알았다. 대신 싸워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내가 가장 밟기 쉬웠을 거다, 그냥 괴롭혀도 되는 사람이었을 거다’ 박지은은 그렇게 생각한다.

B 팀장과의 악연이 시작된 건 2022년 봄. 그는 공무직이 아닌 여성 공무원이다. 그는 박지은에게 계속 술자리를 요구했다. 박지은은 내키지 않았지만 대놓고 거절하자니 눈치가 보였다. B 팀장이 인사 관리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박지은의 약점을 잘 알았다. 그는 ‘육아시간을 계속 쓰도록 다른 직원들의 반대를 막아주겠다’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주변 사람이, 제일 옆에 있는 동료가, (육아시간 사용이) 제일 싫은 건 옆에 있는 사람이야. 그리고 담당팀장이고.” (B 팀장 대화 녹취록)

이런저런 핑계로 계속 술자리를 피하던 2022년 8월 어느 날 저녁, B 팀장이 술을 사들고 박지은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혼자 연태고량주 한 병을 다 마셨다. 술을 마시는 동안 남자친구 자랑, 몸매 자랑, 박지은은 아무 관심도 없는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래도 그런 건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B 팀장이 술에 취해서 박지은의 세 살배기 딸에게 입을 맞춘 거였다. 딸아이 얼굴을 손으로 잡고 몇 번이나…. 너무나도 불쾌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 자리에서 제지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혹시 그날 박지은이 좁은 집에서 넉넉하지 못하게 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그날 이후 B 팀장은 사람들 앞에서 박지은의 가난을 조롱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아침에 애기 업고 지하철역 앞에서 김밥 팔아봐. 사람들이 불쌍해서 사주지 않겠어?”

또 다른 날. 전 직원이 모여 간식으로 빵을 먹고 있었다. 박지은도 그 자리에 꼈지만 편하게 빵을 먹을 수가 없었다. 빵을 조금씩만 떼어먹고 내려놓는 모습을 본 B 팀장이 말했다.

“왜 빵을 그렇게 먹어? 그거 남겨서 집에 있는 애기 가져다 주려고 그래?”

그리고 B 팀장은 박지은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마음대로 다른 직원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박지은이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 부탁했던 건 안중에 없었다.

박지은의 가난은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됐다. 알리고 싶지 않았던 사정도 모두 알려졌다. 그는 2022년 12월 정신과 치료를 재개했다. 우울, 불안, 불면 증상이 다시 악화되고 자살사고까지…. 그때부터 하루 네 번 약을 먹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015년에 결혼하고, 아이는 2019년에 낳았거든요. 1년에 한 번씩 유산을 했어요.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임신 7개월 때 유산을 했어요. 충격이었죠. 임신 7개월이면 배도 많이 나오고 태동도 느껴지거든요. 죽은 아이를 밖으로 나오게 했는데, 아이 낳는 느낌을 다 느꼈어요. 그때도 정말 굉장히 우울하고 힘들었지만 정신과를 다니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국가보훈부 공무원 노조와 공무직 노조는 B 팀장과 박지은의 합의를 중재했다. 합의서에는 B 팀장의 잘못된 언행에 대한 인정과 함께,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라고 적혔다.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공무직 노조는, 박지은이 법적 대응을 한다면 변호사비를 지원하려 했다. 하지만 박지은과 같이 일하는 공무직 직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노동조합비를 그런 일에 쓰지 말라’며 집단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후 그들은 함께 공무직 노조를 탈퇴했다.

“한 사무실에 두 개의 계절이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바스라지고, 메마르고, 아무것도 피어나지 못하는 겨울인데, 저들은 저렇게 웃고, 화창하고, 꽃이 피어나는 봄인 것 같은….

박지은에겐 늘 “바스라지고, 메마르고, 아무것도 피어나지 못하는 겨울”뿐이다. 그에게 오지 못한 봄. ⓒ셜록

지난 1월 박지은은 그동안 자신이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50여 쪽의 문서에 담아,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2월부터는 무급 병가에 들어갔다.

무급휴가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혼자 벌어서 아이와 둘이 먹고살아야 하는 처지. 당장 월급이 끊기면 생계가 불안해지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회사에 있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를 ‘투명인간’으로 여겼고, 우울증상은 그만큼 더 심해졌다.

아무도 저한테 말을 안 걸어요. 눈도 안 마주치거든요. 한 달 넘게, 하루에 한 마디도 뻥긋하지 않고 보냈어요. 업무상 저한테 꼭 해야 되는 말은 메신저로만…. 사무실에서 늘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요.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될지도 모르겠고, 누가 날 보는 것도 무섭고….”

하루하루 마음은 늘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어떤 날은 활화산 같은 전의(戰意)가 그를 휘감았고, 또 어떤 날은 ‘내가 죽어 없어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늪처럼 빠져들었다.

“직장 내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우울, 불안, 불면 증상이 다시 악화되고 자살사고도 동반되어 상기 진단하에 2022년 12월 2일부터 2024년 1월 31일 현재까지 본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외래 치료를 받아오고 있는 상태로서….” (박지은 진단서 일부)

☞ 다음 이야기 <“나는 죽은 자처럼 출근하고, 투명인간처럼 퇴근한다”>로 이어집니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