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박지은(가명)은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공무직 상담사다. ‘갑질’ 신고 이후 그를 향한 따돌림은 더 심해졌다. 계속 술자리를 강요하던 팀장은 갑자기 술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고, 술에 취해 박지은의 딸아이에게 입을 맞췄다. 공개된 자리에서 박지은의 가난을 조롱했다. 모두가 그를 투명인간으로 여겼고, 우울증은 그만큼 깊어졌다.
박지은이 겪은 일들을 ‘사적 갈등’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출발에는 조직 내 부조리와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군기’를 잡든 ‘짬밥’을 내세우든 ‘대세’에 순응하면서 살았어야 하는데, 박지은은 고분고분 숙이고 들어가지 않았다는 게 이유 아니었나.
심지어 그렇게 출발한 갈등이 ‘공적 업무’에 지장을 주는 지경까지 왔다는 사실을 회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지은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을 때,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이렇게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질문의 방향이 틀렸다. 회사는 똑같은 질문을, 박지은을 3년간 따돌리고 괴롭혀온 사람들에게 했어야 한다.
“부서장은 ‘나는 (다른 부서로) 갈 사람이니까 10:1로 괴롭히더라도 그 10에 수긍하면서 살라’고 했다. ‘나는 그럴 권한이 없어서’, ‘그건 내 담당이 아니라서’ 눈 뜨고 보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방임하고 방관했다. 사적으로 10:1로 따돌리고, 공적으로 나의 업무에 협조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수차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지은 비망록)
‘갈 사람’이라는 말이 맞았다. 2021년 5월 박지은이 입사한 뒤로 현재까지 약 3년 동안 센터장은 네 번 바뀌었다. 그중 세 명은 1년도 되기 전에 바뀌었고, 짧게는 석 달 만에 바뀌기도 했다. 행정팀장 역시 짧게는 두 달 만에 바뀌었고, 1년 이상 일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공무직 상담사들은 계속 이곳에서 일해야 하지만, 공무원 관리자들은 몇 달마다 계속 바뀌었다. 두 달 만에 ‘스쳐가는’ 자리에서,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설 사람이 있었겠나.
누구라도 자신을 좀 도와주길 바랐다. 온라인 전국 공무직 카페에 글을 올렸다. 다행히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가 해고당한 C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그는 회사를 상대로 변호사도 없이 혼자 소송을 하고 있었다.
C는 나이는 어렸지만, 박지은은 그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박지은에게 전해줬다. 박지은을 ‘누나’라 부르며 살가운 응원과 지지를 보내줬다.
그런데, 어느 날 C가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연봉 1억을 벌면 누나를 가질 수 있을까요?”
C에게는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박지은이 ‘이런 얘기는 불편하다’고 답하자, C는 ‘실언을 했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또 비슷한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냐면, 마음이 너무 불편한데 (그 사람을) 끊어내지 못하겠는 거예요. 왜냐면 ‘내가 끝까지 도와줄게’라고 말한 사람이 그 사람이 처음이어서, 아무데도 기댈 데가 없으니까 그 몇 마디라도 듣고 싶어서, 확 끊어내지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공손하게 ‘이런 말씀은 너무 불편합니다’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배신감. 절망감. 비참함. 사람들은 어째서 누군가의 약점을 보면 짓밟거나 이용하려고만 할까. 믿었던 사람의 뱃속에 시커먼 욕망이 있었단 걸 알게 됐지만, 그 손을 단칼에 끊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박지은은 인터뷰 도중 이 대목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솔직히 누나도 처음부터 나한테 마음 있었던 거 아니에요?”
C는 집요했다. 아이와 함께 외출했다 돌아온 어느 날, 현관 문고리에 뭔가가 걸려 있었다. C의 편지였다. 물어 물어 박지은의 집까지 알아낸 거였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도움을 받는 대가로 어떤 감정적인 걸 지불해야 한다면, 저는 당신 도움 안 받겠습니다.”
박지은은 지금까지 C가 보낸 메시지를 다 인쇄해서 아내에게 보내겠다고 말했다. C의 집요함도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사람의 선의를 믿었던 박지은에게는 또 깊은 상처만 남았다.
그래도 박지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고마운 사람들도 존재했다. C 말고도 전국 공무직 카페에서 조언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국가보훈부 공무직 노조 역시 박지은의 편에서 목소리를 내줬다. 특히 ‘사실확인서’를 써준 동료 안준재의 존재는 큰 힘이 됐다.
“제가 봤을 때도 저건 너무 심한 거다, 하는 마음에 (사실확인서를) 써드렸어요. 그렇게 힘들어하고 살려달라고 계속 요청을 했으면, 나 같으면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아요. 리더는 사람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하잖아요. 센터장이나 지청장(대전지방보훈청장)이 그렇게 무관심하면 안 된다 이거죠. 키는 그들이 들고 있다, 저는 생각이 그렇습니다.” (안준재 인터뷰)
박지은은 그동안 법률적 조력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신고에 필요한 서류들도 모두 손수 작성했다. 그런 그를 위해 최근 이팝노동법률사무소의 박공식 노무사가 무료로 사건을 맡았다.
몇 번의 유산 끝에 어렵게 얻은 소중한 딸. 그리고 그 아이와의 소박한 삶을 지탱해주는 안정적인 일자리. 이 두 가지를 얻기까지, 박지은은 참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일할 생각 하지 말고 집에서 애 낳고 애국할 생각을 해라.’ 면접에서 대놓고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민간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때) 계속 임신하고 유산하고 병가 쓰고 이러니까 계약 연장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이 직장이 정말 소중한 거예요.”
박지은은 취업을 위해서 악착같이 자격증을 모았다. 직업상담사 2급, 사회복지사 1급, MBTI 전문강사, 창업보육매니저, 정보처리기사. 대전제대군인지원센터에 취업한 뒤에도, 역량강화비를 지원받아 직업상담사 1급과 임상심리사 2급 자격증도 땄다.
다른 공무직 상담사들은 박지은을 “직업상담사로서 구직자와 구직을 희망하지 않는 대상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비판했었다. 육아시간 제도 사용을 이유로 박지은에게 평가 ‘최하점’을 준 팀장도 ‘박지은은 원래 업무 실적이 떨어지는데 직접적인 말은 상처를 줄까봐 에둘러 말하면서 육아시간 사용 부분을 언급한 것’이라 해명한 바 있다.
“살면서 다른 건 몰라도 내 분수만큼은 잘 알고 살았어요. 제가 마흔넷인데, 평생 단 한 번도 명품 가방이 갖고 싶다 생각한 적도 없고, 못 가져서 속상하다 생각한 적도 없어요. 스무 살 이후로 부모님 도움은 받은 적 없지만,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나마 제 힘으로 이만큼 살게 된 것에 만족해요. 제가 견딜 수 없는 건, 내가 내 힘으로 이뤄놓은 것들, 내 일, 내 커리어가 짓밟히는 거였어요. 내가 살아온 시간을 다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박지은의 ‘능력’을 비판한 사람들 중에는 직업상담사 2급 자격증도 없는 사람도 있었다.
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들의 전문성 문제는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적도 있다. 이용우 국회의원(경기 고양시정,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국가보훈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 98명 중 14명, 약 15%가 자격증이 없었다.
이 의원은 “현재는 상담사로 채용되거나 승급을 하려면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소지해야 하지만 (2019년) 공무직 전환된 이들 중 일부는 교육비를 받으면서도 5년 가까이 자격증을 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능력’을 비판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게 힘들면 니가 회사를 나가면 되잖아.”
익명게시판에 댓글로 남겨진 말들은 참 냉정했다. 박지은이 일을 ‘시끄럽게’ 만들수록 돌아오는 비난도 거세졌다. 날카로운 말에 상처받고 다치는 쪽은 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피투성이가 돼서 고통스러운 것보다,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게 더 두렵다.
안다. 박지은 한 사람만 참고 넘어가거나, 박지은 한 사람만 없어지면 그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하지만 박지은이 포기한다면, 그건 곧 그들이 옳았다는 뜻이 된다.
“지금도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은데, 이걸 멈춘다고 생각하면 그게 더 힘든 것 같아요.”
박지은의 고통은 매일매일의 현실로 존재하지만, 아무도 자기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았고 아무도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에 접수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인정되면, 박지은은 정신질병 산업재해 신청까지 진행해볼 생각이다.
박지은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그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이 지켜야 할 일상과, 아이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 직장이 나의 생계유지수단이라서, 그리고 두 번째는 잘못한 게 없는데 당당하게 입사한 내 직장을 내가 나갈 이유가 전혀 없어서 나는 버티고 있다.” (박지은 비망록)
박지은은 2024년 5월 현재, 두 달 간의 병가를 끝내고 근무를 재개했다. 대전지방보훈청은 앞으로 “지속적 면담 등으로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21일 서면으로 열 가지 질문을 보냈고, 4월 2일 답변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많은 답변들은 박지은의 주장과 엇갈렸다. 점심 보안근무 차별 주장에 대해서는 “공식적 문제제기 없었음”이라 답변했고, 육아시간 제도를 쓰던 박지은이 동료들과 갈등이 유발될 수 있는 민원상담 업무로 변경된 이유에 대해서는 “직업상담사 간 판단으로 업무 조정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당시 원만하게 협의하여 처리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답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박지은의 팀 변경이 여의치 않자 3개월 유급휴가를 부여한 것은 “신고인(박지은) 요청에 따라” 부여한 것으로 완전히 상반된 답변을 내놨다.
그리고 박지은과 다른 공무직들 간 갈등에 대해 “업무분장 조정, 업무 협조 방식 조정, 복무상황 조율, 신고 조사 후 후속 조치, 정부청사 마음센터 연계 상담, 마음건강 프로그램 실시 등”으로 “지속적 면담 및 필요시 업무 조치” 했다고 밝히며, 책임 있는 개입과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에 반박했다.
몇 가지 사실은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박지은에게 60세 이상, 대령 이상 구직자가 많이 배정된 것은 “일부 편중되었으나 특정한 사유 여부 확인 불가”하다며, “문제제기 이후 균등하게 조치 완료”했다고 답했다. 또 박지은 담당 건만 문자메시지가 발송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조사하였으나 (다른 공무직 상담사들의) 의도적 비협조 확인 불가”하다고 밝혔다.
그밖에 자격증 보유 현황과 징계위 관련 질의에는 “개인정보”를 이유로 답변하지 않았다.
처방받은 약들을 한곳에 모아 입에 털어넣고 물을 마시려는 순간,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엄마, 아파?”
그 작은 손의 온기가 어찌나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나는 그만 주저앉아 그 아이를 품에 안고 들키지 않으려 울음을 힘주어 삼켰다. (박지은 비망록)
아이의 존재는 그가 이 순간들을 버티고 싸우는 가장 큰 이유다. 보금자리 곳곳에 보이는 두 사람의 소중한 흔적들. 하지만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해야 할 그곳에 아픔과 불안도 서려 있었다. 아이의 장난감 블록 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박지은의 정신과 약 봉지들처럼.
“내가 가진 게 없으니까 아이가 나처럼 성인이 됐을 때, 또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하고 마주하면서 상처받는 순간들이 올 거잖아요. 그게 제일 미안해요. 왜 나 같은 엄마한테 태어나서…. 내가 좋은 걸 물려주진 못하지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이거보단 나았으면 좋겠다…. 저는 완벽한 엄마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터뷰는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쯤에야 그는 옅은 웃음을 보였다.
“사람이랑 이렇게 얘기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그가 앉았던 자리에는 세 시간 동안 흘린 눈물을 닦은 휴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끝>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