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성북경찰서 수사과에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메일을 열어보니, 이규태(74) 일광그룹 회장이 기자를 고소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이 회장은 ‘우촌초등학교의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행위를 지시하고, 이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들을 5년간 괴롭히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한 진실탐사그룹 셜록 조아영 기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규태 회장은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에 대한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셜록

한 달 전, 이규태 회장을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사건 재판이 열리던 날이다. 이 회장은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부풀리고, 교비 횡령을 시도했다는 혐의를 받아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이 회장은 서울 성북구 소재 사립초등학교인 우촌초 인수자이자,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이다.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로 유명하다. 2022년 기준 학부모 부담금은 연간 1468만 원에 달한다

이규태 회장의 본업(?)은 일광공영(현 아이지지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한 1세대 무기중개상. 2018년 대법원은 이 회장에게 징역 3년 10개월과 벌금 14억 원의 형을 확정한 바 있다. 범죄수익은닉, 조세포탈,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가 인정됐다.

그는 일광학원에서도 2015년 이미 회계 부정으로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상태였다. 이후, 일광학원의 이사회는 이 회장의 지인으로 채워졌다. ‘공식적으로는’ 학교 운영에 아무 권한도 없는 이 회장은 스마트스쿨 사업을 지시해 교비 횡령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규태 회장은 약 200억 원의 세금을 체납해 ‘고액 체납자’ 명단에 이름으로 올렸으나, 억대의 벤츠-마이바흐 차량을 직접 몰고 다닌다 ⓒ셜록

“(도를) 지나치지 마세요. 후회하지 마시고.”

법원에서 만난 이 회장은 온몸으로 기자를 막아섰다. 기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출입문을 잡고 놔주지 않거나,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기자를 몸으로 가로막는 식이었다. 그는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기자의 코 앞에서 삿대질을 하며 ‘경고’했다.

“사진 찍지 마세요. 경고했어요. 대한민국은 법률이 있어!”

이규태 회장은 ‘법’을 들먹였다. 맞다. 그는 법이라는 무기로 자신을 지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기자님, 기사가 나가면 이규태 회장은 분명 고소할 겁니다.”

이 회장의 경고 속 의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해 말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입을 모아 전했던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

지난 17일 서대문경찰서에 이규태 회장이 고소한 사건의 ‘피의자’로 출석해 조사받았다. 조사는 약 3시간 뒤 끝났다.

이 회장이 주장하는 핵심은 이렇다. 지난 1월 17일 보도한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프로젝트 1화 (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가 이 회장 자신을 비방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돼,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교비 횡령을 시도하려고 생각한 적 없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는 다르다. 스마트스쿨 사업을 지시했던 2017~2018년 이 회장은 교비 횡령 등으로 이미 임원취임을 취소당한 ‘전’ 이사장에 불과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보도자료를 통해 ‘3억 원이면 충분한 스마트스쿨 사업비를 24억 원으로 부풀렸다’고 알렸다.

당시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이 회장은 옥중 편지와 음성 녹음 파일을 변호사에게 전하고, 그것을 다시 당시 우촌초 행정실장 직무대리로 근무하던 유현주 씨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부당한 지시를 해왔음이 밝혀졌다. 범죄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 모두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 보고서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2021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내용을 근거로 이 회장을 포함한 11명을 기소했다. 이 회장은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에 관해 업무상 횡령, 강요, 입찰방해,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셜록의 기사가 공익제보자 5명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작성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 주장은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보고서와 검찰의 공소장 등에서도 일관적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 셜록은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의 반론을 듣기 위해 전화, 문자메시지, 우편, 방문 등 23차례나 시도했지만,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이규태 회장은 셜록 기사 속 해당 예배 장면도 문제 삼았다 ⓒ셜록

“이규태 회장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원로 장로로서 대표 기도를 했다. 주제는 ‘반성’이었다.”

이 회장은 기사 속 자신의 예배 장면을 문제 삼기도 했다. 사진 속 이 회장은 당시 교회에서 ‘반성’을 주제로 대표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 문장이 마치,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게 작성된 것이라고 꼬투리를 잡았다. 반성하지 않는데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라는 것.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 회장과 일광학원이 언론인을 상대로 고소장을 날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우촌초등학교 공익제보자들은 이 회장과 일광학원이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부풀려 교비를 횡령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해당 내용을 보도한 방송사의 기자 4명은 명예훼손 고소장을 받아야 했다.

언론뿐만 아니라 서울시교육청 감사관들에게도 고소장이 날아갔다. 이 회장과 일광학원은 재판에서 한 감사관이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이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 우촌초의 스마트스쿨 사업 계약은 파기됐다. 일광학원은 계약 파기가 서울시교육청의 무리한 감사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감사관들과 제보자들에게 6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소송은 일광학원의 패소로 끝났다.

2019년 당시 우촌초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교직원 유현주, 박선유 등 6명은 이규태 회장과 일광학원의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공익 제보했다.ⓒ셜록

공익제보자들도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이 휘두르는 ‘법’이라는 무기에 5년째 시달리고 있다. 이 회장의 처조카이자, 우촌초 행정실장 직무대리로 일했던 유현주 씨. 그는 공익제보자 허위신고 등으로 이 회장과 일광학원에게 고소당했다. 5년째 수사기관과 법원에 불려다니는 게 일이다.

일광학원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내려 학교에서 쫓아냈다. 공익제보 5년이 지난 현재, 우촌초로 돌아간 사람은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복직 과정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일광학원에서 해임된 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신분보장조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일광학원은 ‘면직’ 카드를 꺼냈다. 교원소청위원회에서 면직 취소 결정을 내렸으나, 일광학원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2019년 10월부터 2022년 6월 이양기 전 교감이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기자에게후회하지 말고”, “지나치지 말라던 이규태 회장. 자기 잘못을 덮기 위해 아무리 ‘입막음용’ 고소를 남발해도, 이미 저지른 잘못은 사라지지 않는다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고, 고소장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릴 수도 없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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