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험담을 시작한다. 내 욕을 하는 게 확실하다. 다 들리니까. 그렇다고 사무실에 다 들릴 정도는 아니다. 세 사람뿐인 부서에 같은 줄에 앉은 두 사람이 욕하는 걸 매일 듣다 보면, 키보드 소리에 묻힌 목소리 톤만 들어도 ‘아, 또 내 욕이구나’ 알게 된다.

“쟤 7시 59분에 왔다.”
“8시 1분에 자리에 앉았다.”
“또 나댄다.”
“쟤 요즘에 무슨 책 읽는다.”
“쇼하네.”

소곤거리는 목소리, 두 사람의 험담은 사내 메신저에서도 계속되고 내가 출근한 시간과 퇴근한 시간은 두 사람의 노트에도 기록된다. ‘앉아 있으면 앉아 있다고, 키보드를 치면 키보드를 친다고 욕’을 했다. ‘내가 숨 쉬는 것조차도’ 욕을 들어야 하나,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다.

김정민(39, 가명) 씨가 삼성SDI 울산사업장 기술팀에 입사한 건 2011년,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첫 직장이 삼성이라는 뿌듯함에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말하고 다녔다. 삼성의 상징색이 파란색인 까닭이다.

울산의 한 카페에서 삼성SDI 정신질병 산재 피해자 김정민(가명) 씨를 만났다 ⓒ셜록

기술팀에서 6년을 근무하다 보건팀으로 이동한 건 2016년 7월, 배치전환명령 때문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보건관리자의 선임 방법과 관련한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보건팀 관리자는 간호학과를 졸업한 정민 씨에게 배치전환을 제안했다.

평소에도 ‘회사를 위해서 일한다’ 생각한 그였다. 회사가 원한다는데 당연히 따라야 했다. 그가 먼저 원해서 간 건 아니었지만, 막상 보건팀에 가보니 하는 일이 잘 맞았다.

보건팀은 ▲화학물질 위험성 평가 ▲MSDS(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 ▲건강 증진 업무 등을 한다. 법령이나 규정이 명확했고 성과가 분명했다. 무엇보다 타인을 돌보는 일이라는 사실에 정민 씨는 만족도가 높았다.

일을 해보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일이 재밌었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일했다. 아이디어가 넘쳤고, 일을 잘한다는 칭찬도 기분 좋았다.

뭔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건 같은 부서 A가 복귀하면서부터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A의 업무는 정민 씨가 맡아왔다. 정민 씨는 진행하던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았고, A는 원래 자기 업무를 하겠다면서 충돌이 생겼다.

회사에서 합리적으로 업무분장을 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부서에 남은 한 사람, B가 개입하면서 괴롭힘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유치한 수준이었다.

“인신공격하거나, 저를 위아래로 훑어본다거나, 제가 외부업체랑 같이 일을 하면 ‘업자’라고 부르면서 비하하는 말들을 하고. 뭐, 신발 안에 물을 부어놓는다거나, 제 PC 모니터 케이블을 잘라버린다거나, 아니면 안전화 끈을 자르거나, 이런 식이에요. 사실 타격은 없었어요. 좀 놀라고 마는 거지.”

‘사소하고 자잘한’ 괴롭힘이 이어졌고 업무는 더 뒤죽박죽이 됐다.

“신발 안에 물을 부어놓는다거나, 제 PC 모니터 케이블을 잘라버린다거나, 이런 식이에요”. 자료사진 ⓒpixabay

괴롭힘은 유치한 장난에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당사자끼리 해결할 수 있을 상황도 아니었다. 상급 관리자 C를 찾아가 상황을 보고했다. 그는 과거 정민 씨를 보건팀으로 부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C의 대답은 정민 씨가 상상 못한 거였다. 그는 “증거도 없이 그런 말 하지 말라”더니, “너 그러다 트러블메이커 된다”고 덧붙였다. 그 한마디가 정민 씨 가슴에 내리꽂혔다.

“‘트러블메이커? 내가 분란을 조장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이 지났는데도 저는 그 단어가 안 잊혀요. 부서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조치를 취하지도 않으면서, 일하기 힘들다는 고충을 얘기하는 사람한테 트러블메이커 되지 말라니….”

정민 씨는 사내 심리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정신과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정말 못 살겠으니까’ 살려고 병원에 갔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민 씨가 처음 받은 진단은 ‘적응장애와 우울 에피소드’였다. “직장환경 스트레스로 불안, 불면, 우울 등의 증상이 있으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의사는 진단했다.

직장 밖으로 눈을 돌려볼 심산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업무와 관련된 산업보건대학원에 진학한 것마저도 비난의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비난에 상급 관리자들까지 합세할 줄도 정말 몰랐다.

“저는 울산에서 딱 벗어나는 순간, 그러니까 회사 문을 벗어나는 순간이 (필요했어요). 저한테 학교는 숨통이었거든요. (가해자들은) ‘야! 우리 회사에 학벌이 뭐가 필요하냐?’라고 비아냥거리면서 이걸 또 뒷담화 소재로 사용하셨어요.

그런데 그걸 누구한테 들었나 했더니, 사내 심리상담사한테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상담 내용이 이렇게 보호도 안 되나 싶었죠.”

정민 씨는 공장장을 찾았다. 공장장은 괴롭힘이 분명하니 가해자 두 사람을 취업규칙에 따라 징계하겠다고 답했다.

오히려 정민 씨가 두 사람의 징계를 미루자고 했다. 일단은 ‘사는 게’ 먼저였다. 징계위원회가 열리면 그동안의 일을 복기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게 의사의 조언이었다. A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솔직히 마음에 걸렸다. 징계보다 가해자와 분리 조치가 빨리 됐으면 했다.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인사팀으로 부서를 옮기기로 했다.

피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은 오직 피해자인 정민 씨에게만 주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의 기록도 두꺼워졌다. ⓒ셜록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두세 달 치료를 받으니 좀 살 것 같았다. ‘급한 불’을 끄고 다시 보건팀으로 돌아오자 관리자 C의 첫 마디는 ‘왜 돌아오냐?’였다. 또 다른 관리자 D도 ‘왜 공장장에게 보고했냐’며 정민 씨를 나무랐다. 두 사람의 비난은 비난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민 씨는 ‘직급이 깡패’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 진짜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업무가 수시로 바뀌었다. 정민 씨는 보건팀으로 복귀할 때 보건관리자로 선임됐지만, 보건 업무는 할 수가 없었다. 안전부서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업무 변경과 관련한 모든 결재는 파트장과 부서장의 권한. 새로운 전문용어들을 익히고 업무를 파악할 만하면 또 업무가 바뀌었다. 자꾸만 업무에서 배제된다는 의심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가해자) A와 B가 나눈 메시지에 ‘쟤(정민 씨) 빼고 업무 메일 보냈다’라고 적혀 있어요. 제 업무가 이렇게 수시로 바뀌는 건 조직에서 이뤄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개인이 할 수가 없어요. 관리자들은 제도와 권한을 이용해서 괴롭히니까 그때부터 못 견디는 거예요. 이제 개인으로서 대응할 수 있는 게 사실은 없고, 엄청 무력감이 들죠.”

조직적으로 괴롭힌다는 건 관리자의 권한으로 한 사람을 찍어누른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가해자들끼리 똘똘 뭉친다는 뜻이기도 했다.

“제가 괴롭힘에 대해서 조치를 좀 취해달라고 했을 때, 관리자 C는 가해자들한테 메일을 보냈어요. 앞으로 사내 메신저 말고 개인 카톡으로 하라고.

조직의 섭리가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괴롭힘을) 얘기하면 누군가는, 어른들은 해결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기들이 피해 안 보려고 (문제를) 은폐하고, 같이 가해자가 되는 꼴이에요. 점점 가해자가 다수가 돼가고, 그리고 그들은 권력을 갖고 있으니까 은폐하기 더 쉬운 것 같아요.”

공장 전체에 ‘내부고발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정민 씨가 여러 번 지적했던 문제, 보건관리자 업무 미수행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일이 계기였다. 보건팀 관리자들은 물론, 인사팀 직원까지 공장 전체 회의에서 정민 씨를 낙인찍었다.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정민 씨는 견디기 어려웠다.

정민 씨는 약을 먹으며, 상담사를 찾아다니며 2년을 버텼다. 2019년 1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고 6개월 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개정된 근로기준법 제76조의 별칭. 직장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타인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정민 씨는 그해 11월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다. 산재 신청을 위해 노무사와 수임 계약을 하고, 산재지정병원으로 병원도 옮겼다.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상급 관리자에게 말했지만, 그는 가해자들에게 ‘회사 채널을 이용하지 말고 회사 외적 채널을 이용하라’고 안내(?)했다 ⓒ김정민(가명) 제공

# 나는 ‘핵인싸’다.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고, 그래서 누구와도 쉽게 친해진다. 누군가에게 크게 미움을 받아본 기억은 없다. 친구들은 나를 ‘밝고 성실한’ 사람으로 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회사를 사랑했다. 사내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우리 회사를 홍보했고, 동료들과 소모임을 만들어 ‘분위기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내 삶을 사랑했다.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 생애주기에 따라 과업들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게 즐거웠다. 대기업 입사를 꿈꾸며 삼성에 들어갔고,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30대 중반쯤에는 연애하던 사람과 결혼할 계획이었다.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 꿈처럼 쌓였고, 머릿속에는 꿈들이 계획표처럼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민 씨는 다른 사람이 돼갔다. 어디서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던 정민 씨. 동료들과 허물없이 지내던 모습이 사라졌다. 밝고 명랑했던 표정은 지쳐 보였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렸다. 잠을 자지 못했다. 밤이면 친구에게 ‘너무너무 자고 싶다’며 울며 전화를 걸었다.

하루 두세 번,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두 알에서 시작했다. 약을 바꾸고 복용량을 늘려봐도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니 가해자가 늘어나면서 복용하는 약의 종류와 가짓수가 늘어났다. 수면제로도 쉽게 잠들지 못했고 잠들지 못하는 밤은 온갖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고 잠에 빠지게 했다. 깨어 있으면 위험한 생각을 하고 그걸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정민 씨는 자기에게 상처 입히지 못하도록 ‘더 자게 해달라고’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정민 씨가 살아온 세계는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세계. 관리자들은 자신의 괴롭힘을 외면했지만, 대기업인 회사는, 또 법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정민 씨는 자신이 아는 세계가 작동할 거라 확신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증거자료를 제출하려고 인사부서에 갔을 때, 정민 씨는 직감했다. ‘조사가 제대로 안 되겠구나.’ 인사 담당자가 가해자에게, 정민 씨가 진술한 내용들을 보여주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자를 비웃는 소리가 사무실 밖에까지 들렸다.

삼성 직원이라는 자부심에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말하던 정민 씨. 하지만 회사는 그가 알던 ‘상식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셜록

배신감과 무력감은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공장 난간에 기대서 ‘여기 매달리면 떨어질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 A·B에 대한 신고 내용은 ‘일부 사실로 확인이 되나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및 취업규칙 개정 이전에 발생한 사안으로,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관리자에 대해서는 ‘조직관리가 미흡했으나 업무적합성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로 아무 처분도 이뤄지지 않았다.

“저는 (괴롭힘 사실들이) 다 기억나요. 그런데 가해자들은 기억을 못하는 거예요. 그냥 심심해서 던진 돌이었기 때문인지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 뭐 일부러 얘기를 안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제출한 증거들은 사진을 찍은 것만 이 정도고, 기록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괴롭힘은 매일매일 있었으니까요.

인간적으로, 당연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해줄) 기대가 있잖아요. 그런데 조직은, 물론 조직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여기는 희생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도 없다고 느꼈어요.”

정민 씨는 자신이 아는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말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한 얘기를 전하며, 그는 못 버티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버틸 수 없다는 것, 그건 자기가 자기를 파괴하기도 한다는 걸 뜻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 죽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민 씨는 기억을 잃었다.

☞ 다음 이야기 <괴롭힘 피해자 일터에 CCTV… 회사는 희망퇴직을 권했다>로 이어집니다.

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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