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정민 씨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다. 가해자들은 그의 신발에 물을 부어놓거나 컴퓨터 선을 잘라버리고, 그의 안전화 끈을 잘라놓기도 했다. 회사에 말했지만 ‘트러블메이커 되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다. 가해자들은 똘똘 뭉쳤고, 정민 씨의 마음은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모든 걸 끝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기억을 잃었다.
약을 먹고 누워 있는 정민 씨의 집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를 걱정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병원에 갈 수 있었지만, 그 뒤 병원에 있던 며칠의 기억은 통째로 사라졌다.
병원에서 돌아왔지만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휴직을 하고 본격적으로 산재 신청을 준비했다. 2020년 7월 산재를 신청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 심의가 열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이때도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불승인’. 질판위는 대인관계에 대한 스트레스와 잦은 업무 변경 등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의견이 있었다면서도, ‘심리적 불편감을 주관적으로 호소’하고 있으며, 가족 상실로 인한 개인적인 우울증이라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질판위 결과에 정민 씨는 할 말이 많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두세 번 (정신과) 병원에 갔어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처음 병원에 가기 1년 4개월 전이거든요. 그 기록을 가지고 와서, 그때 발병한 우울증이 이후에 재발한 거라고 (산재) 승인이 안 난 거예요. 그리고 산재 승인률이 지역별로 너무 다르거든요. 경상권이 너무 낮아요. 부산이 특히 그렇고요.”
정민 씨 말대로 근로복지공단 산하 질판위의 지역별 판정현황을 보면, 같은 질병이어도 지역별 편차가 크다. 2022년 기준 전체 업무상질병에 대한 인정률은, 부산 질판위가 전국 평균보다 8.9%p 낮았다. 정신질병에 대해서도 격차가 컸는데, 2022년 4분기 기준 전국 평균 인정률은 64.4%였지만 부산 질판위 인정률은 58.1%였다.(경향신문 <서울에선 ‘산재’인데 부산에선 ‘불인정’…“지역별 편차 심각”> 김지환 기자, 2023. 3. 24.)
정민 씨는 곧바로 재심을 청구했다. 청구서는 222페이지에 달했다. 일곱 명의 위원이 판정서에 쓴 판단이 얼마나 부실한지 하나씩 모두 반박했다.
‘2년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적응장애와 기타 우울병 에피소드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당’해 보이며 업무관련성 평가는 ‘확정적’이라고 쓴 대학병원의 직업환경의학과 소견서를 추가했다. 지역도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판정을 받았다.
피해자인 자신이 피해 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건 어려웠다. 게다가 증거자료는 녹음이나 영상 파일이어야 했다. 증거가 될 수 있는 순간들을 미리 녹음하거나 촬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든 사람을 의심부터 하게 되는 거죠.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수집, 저것도 캡처. 이러고 있는 게 너무 좀… 불행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렵게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는 것 역시 스트레스였다. 정민 씨가 가지고 있는 녹음 파일만 200여 개. 그중에 확인한 건 10개도 채 되지 않는다. 괴롭힘 당시 녹음 파일을 여는 건, 그 상황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공간과 냄새와 사람들의 눈빛, 그 사람이 어떻게 앉아 있었고 펜을 어떻게 잡고 있었는지 다 생각이 나거든요. 기억을 떠올려서 괴롭힘의 증거를 찾아야 되는데 그걸(녹음 파일을) 듣는 게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렇게 증거를 제출해도 인정이 잘 안 되고….”
승인을 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도 문제였다. 2023년 기준 정신질환 산재 판정을 받는 기간은 최소 205일(경향신문 <‘산재 카르텔’감사, 다친 노동자 마음만 더 아프게 했다> 권동희 기고, 2024. 2. 27.). 정민 씨는 최초 산재 신청 때 6개월, 재심 때는 또 8개월이 걸렸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과정 하나하나를 거칠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행히 재심 끝에 산재는 인정됐다. 2021년 11월의 일. 최초 신청으로부터 1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 가방 두 개를 가지고 나왔다. 가방 안에는 종이 서류 수백 장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서류에는 괴롭힘에 얽힌 인물들과 사건이 날짜별로 빽빽하게 기록돼 있었다. 그가 적은 문장에는 날짜들 사이에 새겨진 수많은 사건과 수고와 불행이 녹아 있었다.
“재심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산재 결과문을 많이 봤단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겪으니까, 서류를 작성하고 또 사람들에게 자료를 받아내는 게 정말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어요.
이게 자살을 하거나 그래야 이슈가 되지, 살아 있으면 오히려 뉴스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극단적인 이슈가 있어야지, 저처럼 이렇게 버티는 사람들은 부각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산재 승인을 받고도 정민 씨가 그렇게 탄식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산재의 원인이 됐던 직장 내 괴롭힘은 정작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민 씨는 2022년 9월 회사로 복귀했다. 3년 7개월. 산재 요양기간이 길었던 만큼 회사에 빨리 적응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매일 가해자와 마주 앉아야 했다. 가해자와 분리조치를 요구한 정민 씨에게 회사는 안전체험관에서 혼자 일할 것을 지시했다. 새로운 관리자는 정민 씨에게 ‘혼자 있으니까 좋겠다, 왜 여기 싫어하냐?’고 물었다.
“저는 지금 이렇게 혼자 있을 게 아니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조직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렇게 단독으로 놔두시면 안 되지 않냐고 반문했어요. 이게 적응하라는 거라기보다는 오히려 배척하기 위한 거 아니냐고 했죠.”
정민 씨가 혼자 일하는 공간에는 전에 없던 CCTV가 새로 달렸다. CCTV를 단 관리자는 이전 관리자의 퇴직 후 새로 선임된 사람이었다. 새 관리자는 정민 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접수하겠다고 했을 때 접수를 안 받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리자가 바뀌면서 가해자가 또 늘었다.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 담당자는 정민 씨에게 희망퇴직을 권유했다.
“저한테만 특별히 희망퇴직 대상자에 넣어주겠다고, 예외로 위로금도 더 주겠다고 했어요. 산재를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고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한데, 회사는 그냥 퇴사하길 바란다는 신호를 계속 보여주고 있거든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기기 전에는 취업규칙에 따라 가해자 A와 B 두 사람을 징계하겠다던 공장장은, 이제는 괴롭힘이 아니라고 말하는 ‘웃긴 상황’이 됐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직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인정받아 산재는 승인됐지만,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라는 사실도 우스웠다.
심지어 회사는 산업재해 조사표를 제출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사망 또는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산업재해 발생 시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산업재해 조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므로 산업재해 조사표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며 과태료를 내지 않다가, 몇 달이 지나서야 납부했다.
복직 한 달 만에 입원을 해야 했다. 또 다시 입원과 퇴원,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쉬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돼 어쩔 수 없이 휴직했지만, 어쩐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빨리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병원에서 괜찮아졌다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복직했다. 사람들은 건강이 악화돼 휴직하는 정민 씨에게 ‘왜 그걸 못 이겨내냐’고 물었다가, 복직하는 정민 씨에게 ‘그냥 딴 데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요. 제가 퇴사를 하는 순간, 이 사건은 그냥 끝나버리는 거거든요. 저는 사과도 받지 못하고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결혼도 하고, 자식들 결혼도 시키고, 인센티브 받아서 해외여행도 가고 그렇게 산다는 게 너무 화가 나요.”
반복되는 휴직과 복직에 정민 씨 자리는 계약직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그 자리는 최근 정규직으로 채용공고가 났다.
“채용공고를 볼 때마다 배척당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내 쓸모가 없어지는구나, 나는 대체될 수 있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요. 회사는 피해자가 퇴사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아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회사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을 재조사하겠다던 회사의 약속은 흐지부지돼버렸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프로세스 ‘점검’으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A의 가해사실만 인정돼 경고 처분을 받고 끝났다. A는 휴직했고, 정민 씨는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했다. 조직은 개인만 잘라낼 뿐, 조직이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해야 했다. 2023년 9월, 이번에는 회사가 아니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조사를 앞두고 A는 퇴사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가해자들의 행위는 모두 ‘불인정’. 회사가 자체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신뢰할 수 없어 노동부에 신고했는데, 노동부는 회사의 판단을 그대로 따랐다.
회사는 더 아쉬울 게 없어 보였다. 정민 씨를 전처럼 ‘투명인간’ 취급해도 ‘경영상의 이유’가 될 터였고, 휴직 중인 정민 씨의 급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줄 테니 회사는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저를 괴롭혔던 개인보다 이 조직이 더 싫어요. 왜 이렇게 했을까 싶고요. 삼성이라는 큰 조직이 이렇게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는 걸 겪으면서, 삼성이 대단한 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어휴, 이제 (삼성의 파란 피가 아니라) 빨간 피예요.”
회사에도, 노동부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관리자들에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여러 번 메일을 보냈다. 그 어렵다는 산재 승인도 받았다. ‘사실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산재 노동자에게 중요한 건 재활과 복귀다. 회사에 복귀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업무 관련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도 회사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정민 씨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지금으로선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몇 번이나 겪은 그 험난했던 과정을 또 반복하려니 숨이 막힌다. 괴롭힘이 또 묻힐까 두렵고, 언젠가 복직을 했을 때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두렵다. 괴롭힘이 정민 씨의 모든 삶을 삼켜버린 것 같았다.
‘내가 왜?’
정민 씨는 이 모든 일들을 ‘담금질당했다’고 표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제 인생의 30대에는 직장 내 괴롭힘 이 사건밖에 없어요. 지금 7년째잖아요. 저도 이제 끝내고 싶어요. 시간을 보상받고 싶지만, 감수하고 살아가야 하는 수밖에 없죠.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억울함을 풀고 끝내고 싶거든요.”
정민 씨는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볕이 좋은 날에는 밖에 나가고 싶고, 건강을 챙기는 또래들처럼 운동도 하고 싶다.
보통 사람처럼 살기를 바라지만 잘 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우연히 들은 단어 하나에 여전히 쭈뼛거린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멈춰 있는 자신이 답답했고 삶이 아까웠다. 그 사실이 자신을 갉아먹었고, ‘내 인생은 알게 모르게 더 고달파’졌다고 느낀다.
그래도 정민 씨는 다시 직장에 나갈 것이다. 여전히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직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삼성을 그만두고 나온다면, 그건 ‘자신이 원할 때’ ‘제 발로 나올 것’이다.
아마 그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고 난 뒤가 아닐까. 그제야 정민 씨는 ‘괴롭힘에 파묻혀서 보낸’ 7년을 ‘털어낼 것’이다. 그러고 나면 ‘어두웠던 7년’마저 삶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마무리 짓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 17일 삼성SDI 홍보 담당부서의 공식 이메일을 통해 반론 취재를 요청하고 질문지를 보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난 27일 현재까지 답변은 오지 않았다. <끝>
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