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왕’ 김상욱(52)이 수의를 입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였던 전종남의 얼굴이 보였다. 두 사람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초췌한 얼굴로 재판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 대충 얘기했지? 우리나라 큰손이라고.”(김상욱, 2023. 7. 25. 통화 녹음)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입수한 900여 건의 통화 녹음파일에 드러난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지난해 3월부터 9월까지 김상욱은 공범 김재민(32) 당시 무궁화신탁 대리와 대출사기를 공모하는 내용의 통화를 주고 받았다.

공범과의 통화에서 김상욱은 스스로를 ‘회장님’이라 부르며, 검찰과 경찰은 물론 정치권마저 손아귀에 넣고 주무른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기고만장한 모습은 법정에서는 온데간데없었다.

“무죄를 선고해주시길 바랍니다.”(김상욱 변호인)

지난 5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김상욱과 전종남의 첫 공판이 열렸다. 이들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김상욱 측 변호인은 약 20분에 걸쳐 공소사실을 반박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김상욱 일당은 피해자들을 속여 명의를 빌린 뒤, 중고차 매매상가 경남 창원시 ‘KC월드카프라자’ 상가를 담보로 최대한도의 대출을 받았다 ⓒ셜록

“우리나라에서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칭)이 제일 큰 사채업자거든. 이제까지 음지에 있다가 내가 양지로 나오면서 KC월드카(프라자) 때문에 지금 이런 현상이 생긴단 말야.”(김상욱, 2023. 7. 27. 통화 녹음)

지난해 공범과의 통화에서 ‘자백’처럼 했던 말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김상욱 측은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셜록이 입수한 통화 녹음파일 안에서는 자신이 ‘용의 머리’인 것처럼 우쭐대던 김상욱. 하지만 판사 앞에서는 ‘뱀의 꼬리’인 양 자신을 낮추려고 애썼다.

김상욱과 전종남은 총액 1500억 원대로 알려진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 사건의 공범. 그 여파로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인근 새마을금고로 합병됐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을 속여 명의를 빌린 뒤, 상가 매매를 담보로 최대한도의 대출을 받았다.

그들이 ‘작업’한 대표적인 현장은 경남 창원시에 있는 중고차 매매상가 ‘KC월드카프라자’. 김상욱 일당은 약 800억 원의 불법대출을 KC월드카프라자 한 곳에서 만들어냈다. 전체 150여 곳 중 약 80여 곳의 상가가 불법대출에 활용됐다. ‘부산·경남 최대 규모의 자동차 문화 복합쇼핑몰’을 표방한 이곳은, 지금도 3분의 2에 가까운 상가들이 텅텅 비어 있다.

법정에서 검찰이 밝힌 공소사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상욱은 대출 모집책들을 통해 명의 대여자를 구하고 서류를 꾸며 당시 전종남에게 전달했다. 전종남은 그 서류를 기반으로 미리 섭외한 감정평가사를 이용해 부동산 담보 감정평가액을 부풀려 대출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대출금 일부는 김상욱, 김상욱의 아내, 모집책 등의 계좌로 송금되거나, 전종남이 직접 현금으로 챙겨 쇼핑백에 넣어 들고 나갔다는 것이다.

전종남 당시 상무가 2023년 3월 14일 밤 12시 10분경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대출금을 현금으로 반출하는 모습 ⓒ경기북부경찰청

“김상욱은 내부적인 일(청구동새마을금고 내 대출 업무)을 전혀 모릅니다.”(김상욱 변호인)

법정에서 확인된 김상욱 측의 입장은 한마디로 ‘억울하다’였다. 김상욱은 대출 과정에서 수수료만 일부 받았을 뿐이라는 것. 셜록이 반론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와 똑같은 태도였다.

누가 피해자입니까? 저도 피해자입니다. (…) 저는 1500억 원 불법대출 한 적도 없고요.”(김상욱, 2024. 4. 16. 셜록과 통화)

김상욱은 공범들에게 책임을 미뤘다. 공범들의 뒤에 숨어, 자신은 모든 사건의 ‘몸통’이 아니라 ‘깃털’임을 거듭 강조했다. KC월드카프라자 시행사 대표 A와 모집책 B가 모든 일을 주도했고, 자신은 대출브로커 역할만 했다고 항변했다. 대출 업무는 전종남이 알아서 한 일이지, 자신이 가담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을 뺐다.

“실제 이 사건을 주도했던 사람은 시행사 대표 A와 모집책 B인데, 이런 사람들은 (구속되지 않고)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김상욱 변호인)

김상욱이 한때 “내 새끼”라고 부르며, 자신의 부하처럼 묘사하던 모집책 B. 하지만 김상욱은 이제 그를 ‘몸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B는 한때 내 새끼잖아. B는 억지로 잡으러 안 간다고 하니까 무서워서 카톡만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답장이) 와.” (김상욱, 2023. 7. 13. 통화 녹음)

그러면서 김상욱은 보석 신청을 냈다.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구속 상태를 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상욱은 공범들에게 책임을 미뤘다. 자신은 대출사기 사건의 몸통이 아니라 고작 ‘깃털’이라고 주장했다. ⓒ셜록

“김상욱은 수사 과정에서 허위신고나 허위제보로 인해 피해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김상욱 변호인)

김상욱 측은 대출사기 피해자들의 제보도 ‘허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에서는 김상욱과의 관련성이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명의대여자 모집책은 “1년간 명의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매달 대출 이자와 200만 원의 임대수익을 보장하겠다”는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꼬여냈다. 불법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모집책들은 ‘김상욱 회장이 본인 돈 800억 원을 청구동새마을금고에 예금하면 그 돈으로 대출을 해주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사는 피해자들은 한 차를 타고 서울 신설동에 있는 카페 하타○○으로 향했다. 김상욱 일당이 아지트처럼 쓰는 곳. 김상욱 아들이 운영하는 그곳에서 김상욱은 마치 ‘지정석’과 같은 안쪽 자리에 앉아서 손님(?)들을 맞았다. 모집책의 손에 이끌려 카페로 간 피해자들은 그곳에서 ‘당연히’ 김상욱을 만났다.

그리고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직원들은 카페로 출장(?)을 나와 대출 작업을 했다. 피해자들은 그곳에서 대출 서류에 자필 서명을 했다. 김상욱 일당이 섭외한 부동산을 담보로 약 10억 원의 대출을 받겠다는 서류였다.

김상욱 일당은 피해자의 통장에서 대출금 일부를 현금으로 빼갔다. 피해자들은 하루아침에 10억 원에 가까운 빚을 모조리 떠안게 됐다. 대출금을 해결해준다는 말은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금 신발하고 옷 다 에르메스거든. (…) 에르메스 가방 3억 원짜리 있는 거 아냐? 우리 와이프가 3억짜리 들고 있는 거야. 회장님 티셔츠도 에르메스야. 280만 원짜리.” (김상욱, 2023. 7. 25. 통화 녹음)

김상욱이 명품 옷을 사 입고, 공범과 시그니엘서울 레스토랑에서 비싼 밥을 먹는 동안, 빚에 짓눌린 피해자들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돈이 없어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세금도 내지 못해 부동산은 압류됐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자를 갚고 있었다.

피해자 일부는 김상욱을 직접 고소하거나, 새마을금고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호소했다.(관련기사 : <“저 혼자 죽으란 말입니까”… ‘공범’이 된 사기피해자>)

“저에게 죄가 없다는 게 아니에요. 명의를 빌려준 책임을 묻는다면 (벌을) 달게 받을 수 있어요. 근데, 8억 7000만 원 대출이 온전히 제 잘못이라고 하면 억울해요. 새마을금고는 명의도용이란 걸 알면서 대출을 해줬고, 계좌 주인인 저도 모르게 돈을 빼갔잖아요! 자기들은 사기꾼 김상욱이랑 공모했으면서, 나한테 돈을 다 갚으라는 게 말이 됩니까?”(대출사기 피해자 인터뷰)

법정에서 김상욱이 부인하지 못한 단 한 가지 사실은 전종남에게 수억 원대의 ‘금품’을 건넸다는 것.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2022년 김상욱은 전종남에게 불법대출을 청탁하는 대가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권리금 1300만 원을 대신 내줬다. 커피전문점은 전종남 아내 이름으로 운영됐다.

“종남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냐? 종남이 이렇게 챙긴 사람 없어. 다들 돌아서버리지. 지금도 1000만 원씩 그놈 챙겨줘. 다음 주 일주일간 회장님(김상욱 본인)이 (여행) 다 보내줬잖아. 방 어렵게 잡았잖아. 일주일 방값만 스위트니까 1000만 원인데.”(김상욱, 2023. 7. 13. 통화 녹음)

또한 전종남에게 벤츠 차량도 건넸다. 경찰은 김상욱이 모두 7회에 걸쳐 3억 4000만 원가량의 뇌물을 전종남에게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상욱 일당은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받은 뒤, 대출금 일부를 피해자 계좌에서 몰래 빼냈다 ⓒ셜록

“벤츠 차량, 커피전문점 명의를 바꿔준 것이 죄가 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사정을 참작해서 법률상 과연 죄가 되는지 검토돼야 합니다.”(김상욱 변호인)

김상욱 측은 전종남에게 금품을 준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커피전문점 권리금은 지난 4월 다시 회수했다고 밝혔다. 셜록이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보도하기 시작한 것도 4월이다.

그리고 김상욱 측은 ‘전종남 부부가 워낙 벤츠를 좋아해서’ 벤츠 차량을 대신 구매해준 뒤 1년 뒤에 돈을 갚으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벤츠를 ‘워낙’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벤츠를 덜컥 선물로 안겨줄 정도의 관계라니.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관계다. 김상욱 측은 ‘죄’는 맞지만 ‘법률상 죄’는 아니라는, 역시나 쉽게 납득되지 않는 논리로 항변했다.

“(뇌물을) 주려면 몰래 현금을 주지 왜 다 드러나게 줬겠습니까?”(김상욱 변호인)

변호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김상욱 본인이 이미 한 바 있다. 지난해 김상욱이 김재민 당시 무궁화신탁 대리와, 불법대출 ‘작업’을 함께할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 포섭을 모의하며 한 얘기다.

“이거(현금)를 줘버리면 일 터질 때 수습이 안 돼. 커피숍이나 이런 걸 사줘야 해.”(김상욱, 2023. 7. 25. 통화 녹음)

김상욱과 함께 법정에서 선 전종남 측은 자신의 범죄 혐의에 관해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대출”이었다며, 김상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행위도 직무 관련성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출사기 피해자 앞으로 새마을금고중앙회의 대출금 상환 독촉장이 날아들었다 ⓒ셜록

피고인석에 앉은 김상욱 옆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김상욱과 그의 공범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의 통화 녹음파일에서 자주 등장했던 “검사 출신 고문변호사” C였다. 셜록이 지난 3월 카페 하타○○를 찾아갔을 때, 테라스에서 김상욱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 법정에서 ‘피고인’ 김상욱을 대리하는 변호사 C가 바로 그였다.

셜록과 C 변호사는 인연(?)이 깊다. 올 초 셜록이 보도한 또 다른 ‘회장님’이 있다. 공익제보자들에게 보복성 소송을 남발한다고 비판받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지난 4월 이 회장 측이 셜록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을 때, 그 자리에 나온 변호사도 C였다.(관련기사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보통 사기꾼들이 노리는 게 피해자들이 사기 때문에 자살하거나 포기하는 겁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든 말든, 그건 사기꾼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피해자들이 포기하면 (사기꾼들은) 은닉재산 잘 갖고 있다가, 나중에 감옥에 다녀오면 흥청망청 써버리는 겁니다.”(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2024. 5. 13. 인터뷰)

한편, 김상욱의 또 다른 공범인 김재민 전 무궁화신탁 대리는 지난달 26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