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참해서 기사에 넣지 못한 초등학교 6학년의 멘트가 있다.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취재하던 지난 4월, 충북 청주시 유흥가에서 만난 열세 살 원복이(가명)의 이야기다.

당시 기사에서 밝힌 대로 원복이 부모님은 ‘사채왕’ 김상욱 일당에 속아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약 9억 원을 대출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의만 빌려줬다. 대출금 전부는 김상욱 일당이 가져갔으니까. 그 일로 원복이 부모님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9억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학원에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원복이는 부모님이 일하는 유흥주점 끄트머리에 설치된 작은 텐트에서 밤을 보낸다. 부모님이 일을 마치는 새벽에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관련기사 : <유흥주점 텐트에서 잠드는 아이.. “사채왕이 망친 삶”>)

지난 4월 15일 새벽 2시, 여느 때처럼 원복이는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취재하는 나의 존재를 원복이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초등학교 6학년 원복이(오른쪽)와 엄마. 새벽 2시 즈음에야 원복이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셜록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왜 우리 뒤에서 따라오는 거야?”
“서울에서 온 기자님이야. 엄마한테 취재할 게 있어서 왔어.”

원복이는 작게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저 기자님한테 불쌍하게 보여야 엄마한테 좋은 거지?”

당시 기사에 차마 넣을 수 없던 멘트와 원복이의 마음이 다시 생각난 건, 문해력이 의심되는 감사원의 짧은 통보문 때문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4월부터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새마을금고의 불법·부실 대출과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기획이다. 특히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 통폐합을 부른 ‘2023년 1500억 원대 불법대출’ 문제를 자세히 보도했다. 해당 불법대출의 규모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것으로, 2023년 ‘뱅크런’ 사태의 시발점이기도 했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셜록 보도 직후인 지난 4월 23일, ‘행정안전부의 새마을금고 관리·감독 책임에 대한 감사를 촉구‘하는 공익감사 청구서를 감사원에 접수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7월 9일, 감사원은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지 않고 종결 처리한다“는 취지의 통보문을 보내왔다. 한 대목은 이렇다.

“행정안정부와 새마을금고중앙회는 상기감시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회피하는 조직적·지능적 비위에 대해서는 2024년부터 종전에 비해 감사체계를 강화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4년부터 새마을금고에 대한 감시 체계가 강화됐으니 감사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게 왜 엉뚱한 답변인지, 민변과 참여연대가 공익감사를 청구한 4월 23일로 돌아가 살펴보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는 지난 4월 23일 사채왕 김상욱의 구 청구동새마을금고 불법대출 관련 행정안전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감사원 앞에서 열었다 ⓒ셜록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그날 감사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공익감사청구 이유를 밝혔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자산은 1800억 원입니다. 1500억 원이 불법 대출됐으면 사실상 자산의 거의 대부분을 사채왕(김상욱)에게 갖다 바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 와중에도 (새마을금고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행정안전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청구동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2023년 6월 이전에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는 그때 뭘 했는지, 혹시 직무유기는 없었는지 등을 살펴봐달라는 게 민변과 참여연대의 감사청구 취지다. 그런데 감사원은 “2024년부터 감사가 강화됐다“는, 핵심에서 벗어난 근거를 대며 감사를 거부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새마을금고의 불법대출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며 “감사원은 스스로 본연의 책무를 버렸고, 행정안전부에게 책임 모면의 길을 열어줬다“고 반발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불법·비리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1500억 원대 불법 대출과 뱅크런 사태에 이어, 올 4월 총선 때는 양문석 후보(현 경기 안산시갑 국회의원)의 편법 대출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8일에도 대구 지역 새마을금고 지점 세 곳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역시 불법·부실 대출 의혹이 불거진 곳이다.

이쯤 되면 ‘비리의 온상 새마을금고‘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굴욕적인 지적이 거의 해마다 나왔다는 점이다. 아래의 기사 제목과 발행 날짜를 보자.

“내부통제 어쩌나..뿔뿌리 금융이 비리백화점 된 이유” – <아주경제> 2023년 12월 6일
정부, ‘비리온상’ 새마을금고 감독 강화한다지만… – <한국경제> 2022년 2월 27일
새마을금고는 어쩌다 비리의 온상이 됐나 – <이데일리> 2020년 11월 10일

구글, 포털사이트에서 ‘새마을금고 비리‘를 검색하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관련 기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불법 대출부터 성추행, 임직원 비리, 횡령은 물론 ‘카드깡’ 내용도 나온다. 이중 위에서 언급한 2020년 11월 10일 자 <이데일리> 기사 한 대목을 보자.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에서도 전·현직 임원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면서 담보에 대한 감정평가도 하지 않고 정상금리보다 0.6%포인트 가량 낮은 이율로 대출을 해줬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전국 1300개 새마을금고에서 일어난 이 같은 특혜 대출은 최근 3년간 700억 원을 넘어선다.”

이 기사는 새마을금고의 수백억 원대 특혜·불법 대출이 작년에만 벌어진 특별한 일이 아니란 걸 말해준다. 담보물 감정평가를 생략하거나 부풀리는 수법은 김상욱 일당이 했던 것과 동일하다. 이번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2013년으로 가보자.

2013년 YTN의 새마을금고 불법-비리 관련 보도. 약 10년이 흘렀지만, 비슷한 보도는 2024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YTN 뉴스 화면 캡처

2013년 6월 5일 자 YTN 보도의 제목은 ‘끊이지 않는 새마을금고 불법대출비리’.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담보물 감정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백억여 원을 불법 대출한 새마을금고 간부가 구속됐습니다. 다른 새마을 금고에서는 간부가 수년간 고객 돈 수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 등 새마을금고 비리가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면, 2023년 서울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비리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담겼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불법 대출과 고객 돈 횡령이 발생하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새마을금고 중앙회 관계자는 재발 방지책이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상 감사 상시 시스템을 고도화 시스템으로 개발해서 최근에 있는 감정사례라든가 공시지가에 의한 대비 과다감정이 되었다든가 그런 부분까지 같이 조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원이 최근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면서 밝힌 이유와 흡사한 내용이 이미 2013년도 등장한 셈이다. 그럼에도 새마을금고의 불법과 비리는 이어졌고, 이번에도 행정안전부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새마을금고 중앙회 정문 ⓒ셜록

새마을금고가 ‘비리의 온상’, ‘불법 백화점’이 된 배경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지적된다. 새마을금고는 제1금융권은 물론이고 상호금융기관 중에서도 유일하게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1960년대 서민들의 상호부조 형태로 출발한 새마을금고의 상위기관은 금융위원회가 아니라 금융과 거리가 먼 행정안전부(당시 총무처)다. 그때로부터 60년이 지나 새마을금고는 전국에 약 4000개 지점을 거느리고, 전체 예수금 295조 9000억 원(올해 5월 말 기준)을 가진 금융기관으로 성장했음에도 관리·감독 주체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는 사이 새마을금고의 부정과 비리는 해마다 반복됐고, ‘사채왕’ 김상욱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마치 개인 금고 이용하듯 돈을 빼갔다.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이 원복이 부모님이고, 더 큰 피해자는 기꺼이 비참함을 연기하겠다는 초등학교 6학년 원복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행정안전부에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감사원은 아예 감사를 포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원복이는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왜 자기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갈 수 없는지, 기자가 왜 자신을 따라오는지,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 보탬이 될까 싶어, 자신이 훨씬 비참하게 그려지길 바라기도 했다.

청주시 한 라이브주점에 설치된 흰색 텐트. 초등학교 6학년 원복이(가명)는 이 공간에서 저녁과 밤을 보낸다. ⓒ셜록

초등학교 6학년의 이런 상상력에 행정안전부는 정말 책임이 없을까? 감사원은 정말 행정안전부를 감사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제1금융권처럼, 아니 최소한 농협, 수협, 신협처럼만 새마을금고가 관리·감독이 됐어도 원복이 부모님은 불법대출 피해자가 되지 않았을 거다. 책임자들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별일 없이 살아가는 지금, 원복이 부모님은 오늘도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원복이는 올 여름도 유흥주점 텐트에서 보내는 중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