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눈이 달려서 자기 자리를 알아서 찾아간다는 돈. 그 종착지는 언제나 건물주의 주머니였다. 서울 동대문・남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며 30대를 보낸 김용균(48) 씨의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건물주 되는 게 어렵다면, 점포 주인이라도 되자!’
김 씨는 자영업을 접고 발전소 협력업체에서 석탄관리 일을 하면서도 ‘점포 주인’이란 꿈을 접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부동산경매 학원에 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저금리 시대에 서울 아파트 값이 폭등하는 등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던 2017년. 직장 동료가 “상가 분양을 알아본다”며 김 씨에게 함께 임장(현장방문)을 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아파트형 공장, 지식산업센터 등 상가 분양이 유행을 타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분양사무실이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사업지는 인천 서쪽 끄트머리, 중구 연안부두에 위치했다. 소월미도로 가는 항구 근처 공단 밀집 지역이다. 축구장 4개 크기로 지어진다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4개동 802개 호실의 대규모 상가였다.
“압도적인 빅 체인지가 시작된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희소가치가 높은 공실률 없는 특수상가”
“인천구도심 재생사업 등 다양한 대규모 개발비전의 중심”
“연 수익률 12.44%”
분양사무실에 놓인 홍보 팸플릿 문구가 김 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1.5평(전용면적 4.42㎡)짜리 점포 분양가는 1억 2000만 원. 홍보물에 나온 수익률을 적용하면, 월세로만 100만 원 이상 기대됐다.
‘홍보물이 다소 과장됐더라도, 월세 70~80만 원은 받을 수 있겠는데?’
김 씨는 “꽤 괜찮은 노후 대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쉽게 뛰어들 일은 아니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부지에서 약 800m 떨어진 인천종합어시장이 마음에 걸렸다.
김 씨는 다시 한번 발품을 팔아 인천종합어시장으로 향했다. 1977년에 지어진 어시장은 500개 호실로 규모는 컸으나 낡고 오래돼 이용이 불편했다. 특히 주차 시설이 좋지 않았다. 김 씨는 회를 사먹으며 직접 상인들을 인터뷰했다. 인천종합어시장의 월세는 최소 180만 원.
“우리야 장사 잘되고, 월세 낮으면 얼마든지 가게를 옮길 마음이 있지!”
김 씨는 직접 만든 명함을 상인들에게 건넸다. 그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이 준공되면 다른 곳보다 월세를 싸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쯤 했으면, 현장조사는 끝. 김 씨는 2017년 11월 상가 분양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김 씨는 분양금 1억 2000만 원 중 4900만 원은 대출로 충당했다. 수산물타운 준공이 끝나면, 드디어 월세 내던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전환. 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동대문시장에서 도매 경험이 없었다면 상가 분양을 안 받았을 텐데… 이제 와서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802개 호실 중에서 512개만 분양됐다. 미분양률은 약 36%.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상가 대부분은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텅 빈 상태다. 상인도 없고 손님도 없고 물고기도 없으니, 그야말로 이름만 ‘수산물타운’인 셈이다.(관련기사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임차인 구해달라고 해도 저희가 중개를 안 해요. 이미 분양 단계부터 망한 자리예요.”
지난 6월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에 오래된 인천종합어시장이 있잖아요.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잖아요. 누가 차 타고 거기(인천국제수산물타운)까지 나가겠어요.”
김용균의 현장조사와 예측이 크게 빗나간 상황. 인천종합어시장은 지은 지 5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재개발 계획은 정해진 바가 없다. 설령 재개발한다 해도 그쪽 상인들이 모두 인천국제수산물타운으로 이전한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김 씨가 분양사무실에서 들었던 “예상 수익률 12%”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시행사는 예상 수익률을 지나치게 부풀려 2017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한마디로 허위・과장광고였다.
건물의 준공 예정일은 2019년 10월이었다. 하지만 건물 사용승인은 5개월이 더 지난 2020년 3월 27일에야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도 장사는 불가능했다. 어시장에 바닷물(해수)이 나오지 않았다. 바닷물 공급 펌프에 모터가 설치되지 않은 채 준공이 떨어진 거였다.
시설 공사는 2020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처음 약속한 준공 예정일에서 1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나서였다.
김용균 씨는 임차인을 못 구해 골머리를 앓았다. 월세 수입은커녕 매달 대출금 이자만 내고 있다. 이른 시일 내 시장 정상화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때 시행사 대표가 김 씨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분양받은 상가를 저한테 임대해주십시오. 제가 상가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임대 조건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4만 원. 첫 3개월 무상임차 단서가 있었지만, 김 씨에겐 거부할 일이 아니었다. 김 씨는 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임대차 기간은 2020년 8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시행사 대표는 법인 ‘인천연안수산시장농축산복합’을 만들어 4개 동 1층 수분양자들에게 점포를 빌렸다. 월세만 들어온다면 점포 주인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월세요? 지금까지 밀린 거 다 필요 없으니까, 시행사 대표가 빨리 (상가에서) 나가면 좋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김 씨가 분양받은 상가가 있는 인천국제수산물타운 A동으로 가봤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유일한 수산물 판매업체가 영업 중이었다. 손님은 나 한 명이었다. 점심 때 한 번, 다른 날 저녁 때 또 한 번 방문했지만 사정은 똑같았다. 어쨌든 영업 중이니 분명 임대료를 낼 터. 하지만 여기에도 꼼수가 있었다.
수산물 판매업체는 시행사 대표와 임의로 이중 임대차계약을 맺고 들어왔다. 김 씨를 비롯해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지금까지 2개월 치 임대료밖에 받지 못했다. 시행사 대표에게 임대료를 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상가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 등이 전부였다.
김 씨를 포함 상가분양 피해자 68명은 법원으로 향했다. 이들은 2021년 9월 시행사 대표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밀린 임대료를 지급하고 상가를 비워달라는 요구다.
“(시행사 대표는) 이 사건 각 상가를 해당 원고들(상가분양 피해자)에게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는 외에 미납 차임 및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있으므로 (…)” (건물 인도 소송 1심 판결문, 2022. 10. 14.)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지난 5월 결국 승소했다. 대법원까지 2년 4개월이나 걸린 긴 싸움이었다.
하지만 시행사 대표는 여전히 임대료를 주지 않고 있다. A동 1층 수산물 판매업체는 지금도 영업 중이다.
허위・과장광고에 당한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시행사 대표에게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시행사 대표가 ‘알 박기’ 식으로 버티는 동안, 그의 아들은 시행사 명의 A동 4층 상가에 대형 카페를 차려 장사를 하고 있다.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법원에 수산물 판매업체 카드 매출채권 가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은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시행사 대표는 수산물 판매업체의 카드 단말기를 자기 아들 사업자 명의 기계로 바꿔치기했다.
상가분양 피해자들은 시행사 대표와 그의 아들을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2022년 고소했다. 강제집행면탈이란, 강제집행을 피하고자 고의로 재산을 숨기는 등 행위를 말한다. 경찰 수사 결과는 2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게, 상가주인이 되겠다는 김 씨의 꿈은 인천 연안부두 바닷가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 노후를 생각해서 시작한 일인데, 제 공부가 부족했나 봅니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은 해결이 난망한 ‘부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현장이다. 대규모 미분양과 공실 사태, 물고기와 비린내 없는 축구장 4개 규모의 ‘유령타운’이 그걸 증명한다.
시행사는 2020년 인천국제수산물타운 미분양 상가 등을 담보로 제2금융권에서 약 480억 원을 대출받았다. 건축 과정에서 받은 PF 대금을 갚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출금은 2022년 3월부터 연체됐다. 시행사는 지방세 등 6억 원가량을 체납했다. 시행사 소유의 일부 상가는 압류된 상태다.
하지만 시행사 대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김 씨 등이 제기한 소송 외에도, 분양대금반환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가 더 있다. 그 소송 역시 시행사 측이 패소했지만, 위약금은커녕 분양대금 원금조차 갚지 않고 버티고 있다. 현행법상 분양 과정에서 허위・과장광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연안부두 국제수산물타운 소유자 모임’ 커뮤니티에 가입한 피해자만 340여 명. 피해자는 이들만이 아니다. 세금 체납은 공공의 피해로 이어진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을 담보로 수백억 원의 돈을 댄 금융권 역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 중구청은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구청 관계자는 “손님이 없어 공실 상가가 된 건 소비자 선택의 영역이다, 관에서 공실 상가에 대해 지원하거나 해결해줄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과 16일 시행사 대표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의 준공 인허가 과정의 문제와 예상 수익률 과대광고 등에 관해 묻고자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신 역시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