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대법원까지 간다. 16년간의 투병. 이제 온몸이 굳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신호영(가명, 48) 씨의 사정은 얼마나 고려됐을까. 두 차례 패소 판결에도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은 뜻을 꺾지 않았다.
공단은 지난 13일 법원에 상고했다. 결국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 신 씨의 파킨슨병에 대해 ‘일터에서 생긴 병’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공단이 신 씨에게 내린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소송을 시작한 지 4년째, 산재 승인을 신청한 지는 7년째다. 희망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금세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신 씨에게 이번 여름도 그랬다. 그는 과거 LED 개발과 생산 업무를 하다가 파킨슨병을 얻어 16년간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두 번째 승소 판결은 지난달 25일 있었다. 거듭되는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 여기에 마음 편히 웃지 못하는 사람은 있었다. 다름 아닌 신 씨의 모친 김정혜(가명, 72) 씨였다.
“대법원까지 안 갈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데인 적이 있으니까….”
‘한 번 데인 적’이 있다는 건, 공단이 1심 패소 이후 사건을 고등법원까지 끌고 간 일을 말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에도 공단은 상고 기한인 2주일에 거의 맞춰 13일 만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공단이 2019년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린 것까지 포함하면 세 차례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셈. 사건을 담당한 문은영 변호사는 지난 14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소든 상고든 무조건 하는 게 아니라, 이유가 명확하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원고(신 씨)가 1심, 2심을 다 이겼는데, (공단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예측하기가 어렵네요.”
공단 측 입장이 궁금했다. 지난 14일 문자메시지로 받은 답변.
“유기화합물과 파킨슨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특히 LED제조업, 반도체 등에서 파킨슨병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선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규범적 법리적 추가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됨.”
공단은 계속해서 이러한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법원은 ‘발병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 전반에 대해 상당인과관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명확한 인과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못했어도 상당성이 있다면 산재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긴 세월 재판에 정신적으로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제 몸도 병이 많이 진행되어 저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 상태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간병하고 계신데,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어머니도 한계점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실 같은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 저의 삶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신호영 씨는 지난 13일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더 이상 산재 소송을 지연시키지 말아달라는 호소. 산재 신청 → 공단의 불승인 결정 → 신 씨, 행정소송 제기 → 1심 신 씨 승소 → 공단 항소 → 2심 신 씨 승소 → 공단 상고까지, 이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는 ‘근로자를 위한 신속한 보상’이라는 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단은 거듭 항소와 상고를 결정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이번에 공단이 밝힌 입장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법무부의 지휘를 받아” 상고를 제기했다는 부분이다.
1심 패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결정했던 배경에도 ‘법무부의 지휘’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공단 관계자는 항소 결정의 배경에 대해 “행정소송의 최종 결정 권한을 지닌 법무부로부터 ‘의학적 판단을 다시 받아보자’며 항소를 제기해보라는 권고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고객의 눈높이에 맞게 공정, 적시,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넓고, 더 두터운, 더 누리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나누는 일하는 모든 사람의 행복파트너가 되도록 전 임직원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서는 공단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2017년 시작된 산재 싸움. 그리고 2020년부터 이미 4년간 진행돼온 산재 소송. 공단의 상고 결정은 과연 신 씨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의 행복파트너”로서 “공정, 적시,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 일이었을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신 씨의 건강 상태는 그만큼 악화되고 있다. 그가 처음 소송에 나설 때만 해도 거동이 조금 불편했을 뿐, 소통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수십 년간 같이 살아온 어머니조차 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대법원까지 간 산재 소송.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