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을 만났다. 지난 30일 이 회장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에 관한 업무상횡령, 강요죄 등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서는 이 회장에게 물었다.
“회장님이 고소하신 내용 무혐의 나온 거 알고 계시죠? 스마트스쿨 비리 보도한 기자들 계속 고소하시는데, 이유가 뭔가요?”
“….”
“반론 취재에 응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까?”
“….”
회장님은 침묵을 지켰다. 법원 건물을 나서자, 한 남자는 이 회장의 머리 위로 우산을 펼쳐 그늘을 만들었다. 회장님은 기자의 연이은 질문에도 오직 앞만 보고 걸었다. 회장님은 의전을 받으며 벤츠 마이바흐 차량에 탈 때까지, 기자의 질문에는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이 회장이 늘 이렇게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역시 서울북부지법에서 만난 나에게 경고했다.
“(도를) 지나치지 마세요. 후회하지 마시고.”
그의 경고는 빈말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나를 경찰에 고소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하지만 사건은 지난달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으로 끝났다. 고소장을 받은 지 4개월 만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이 회장의 악연(?)은 지난 1월 시작됐다. 셜록은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프로젝트를 통해 이 회장의 비리 의혹을 보도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을 설립하고 우촌초등학교를 인수한 이 회장. 그는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미리 섭외된 업체가 입찰되도록 ‘옥중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19년 교직원 6명이 서울시교육청에 비리를 제보하면서 사업은 무산됐다.
하지만 제보자들은 보복성 징계를 받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지난한 소송 끝에 유일하게 복직한 이양기 전 교감은, 복직 이후에도 크고 작은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 공익제보자들을 향한 불이익은 5년째 지속되는 중이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은 자신들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고소 공격’을 퍼부었다. 공익제보자들은 물론, 스마트스쿨 의혹을 보도한 방송사 기자들도 고소장을 피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서울시교육청 감사관도 고소한 바 있다.
이른바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법을 무기 삼아 휘두르는 모습. 언론 보도에서 비일비재하게 접하는 소식이다. 내게도 법을 들먹이며 경고를 날리던 ‘회장님’, ‘대표님’들은 이규태 회장 말고 더 있었다.
지난 4월 보도한 ‘사채왕과 새마을금고’의 주인공 김상욱.(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지난 7월 그의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 법정 밖에서 만난 그의 변호인은 말했다.
“셜록 기자들, 고소했습니다!”
김상욱이 구속되기 전, 그는 셜록에게 “나도 피해자”라며 언성을 높이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내왔다. 김상욱 일당의 ‘아지트’이자, 자기 아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상가분양 피해 문제를 알린 ‘유령타운의 비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역시나 비슷한 일이 있었다.(관련기사 : <‘축구장 4배’ 유령타운… “어시장에 바닷물도 안 나왔다”>) 인천국제수산물타운 시행사 대표의 입장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첫 번째 기사가 보도된 뒤, 시행사 대표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언론중재위원회나,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운운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규태 회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 반론을 듣기 위해 우편∙전화∙문자 메시지∙방문 등 23차례나 접촉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 회장은 내내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보도가 시작되니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했다.
혹시라도 조사 결과 기소라도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고, 이번처럼 ‘혐의 없음’으로 끝난다 해도 이들에게는 손해볼 게 없는 장사다.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를 오고 가면서 ‘피의자’들이 받을 심리적인 압박만으로도 상대를 충분히 괴롭힐 수 있으니까.
“일광학원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반복적인 부당징계를 내리고 민·형사고소를 진행했으며, 우촌초등학교를 감사한 서울특별시교육청 측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일광학원의 비리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집요한 보복행위를 반복해 왔다. 이번 고소 역시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행위 및 입막음 소송의 일환으로 판단된다.”(지난 7월 10일 참여연대 논평)
다시 8월 30일 서울북부지법 법정 앞. 이규태 회장은 재판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회장과 함께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우촌초 교직원이 말했다.
“회장님, 어디로 가세요? 저 학교 갈 거니까 이렇게 같이 (가시죠).”
이 회장은 현재 일광학원이나 우촌초에 아무 직책이 없다. 2015년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되면서 이사장직을 박탈당했다. 공식적으로 학교와 아무 관련 없는 ‘외부인’인 이 회장이 여전히 우촌초에 드나드는 걸로 짐작할 수 있는 대화다.
이 회장은 드나드는 학교에, 정작 ‘들어가야 할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바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다. 최은석 전 교장, 이양기 전 교감, 전 교직원 유현주, 박선유 씨. 이 중 지금 학교로 복직한 사람은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행정소송이 진행되는 등, 다른 이들도 복직을 바라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시사저널은 이규태 회장을 인터뷰하고, <[단독인터뷰] 사학비리로 낙인찍힌 ‘클라라 회장’…”혐의 벗을 근거 있다”> 기사를 보도했다. “2018년 11월 출소 후 언론과 공식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해당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학교를 믿고 따르는 구성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억울한 부분을 소명하고 싶습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누구를 향한 사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회장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면, 그 말을 제일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아직도 온갖 소송과 재판으로 법원을 드나들며, 학교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공익제보자들.
오늘(4일)은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스마트스쿨 비리를 폭로한 지 1947일째 되는 날이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