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등반가 두 명이 죽었다. 높이 4800m를 넘는 알프스산맥의 최고봉, 프랑스 몽블랑을 등반하다 조난당했다. 지난 10일의 일이다.

프랑스 샤모니 산악구조대(PGHM)는 구조 헬기를 띄워 이들 시신을 수습했다. 이틀 전(8일)엔 한국인 두 명으로 구성된 다른 등반팀을 헬기에 태워 구조하기도 했다.

이 사고를 보면, 떠오르는 소송이 있다. ‘김홍빈 원정대’의 구조비용 책임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원정대에 제기한 소송.

연합뉴스는 지난 10일, 프랑스 산악구조대가 몽블랑에서 조난당한 한국인 등반가 두 명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캡쳐

고(故) 김홍빈 대장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하지만 약 10개월 뒤인 2022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정부는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을 상대로 약 6800만 원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최초의 기록을 만들고 하산하던 도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은,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워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1심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1심 법원의 판결대로 약 3600만 원을 돌려받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구조비용 약 6800만 원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다시 항소했다.

최근 2심도 ‘김홍빈 원정대’의 완패로 끝났다. 지난 24일 2심 법원은 김홍빈 대장을 구조하는 데 든 비용 전체(약 6800만 원)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가 갚아야 한다고 봤다.(관련기사 : <김홍빈 구조비 소송 2심 완패… “7천만원 전액 갚아라”>)

고(故) 김홍빈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대한산악연맹

그렇다면 이번 ‘몽블랑 조난 사고’에도 정부의 소송은 예고된 일인 걸까. 김홍빈 구조비용 청구 소송처럼. 기자는 지난 24일 외교부에 질의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도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주프랑스대사관이 지난 27일 답변을 보내왔다.

“모든 비용은 주재국 정부(프랑스)의 부담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외교부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없습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는 소송 계획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 이러한 외교부의 대응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와 달리, 개인에게 구조비용 책임을 지우지 않으니까.

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구조비 청구 소송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외교부가 직접 증명한 꼴이 아닌가.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그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을까.

기자가 만났던 재외국민 보호 분야의 전문가도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구조헬기 띄운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구상권 청구를 하고… 매우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 가장 훌륭한 모습은 외교력으로 해결해내는 것이죠. 휴머니티를 서로 공감하는 두 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문현철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외교부는 이번 몽블랑 조난 사고를 통해 소송 말고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직접 증명했다 ⓒ셜록

김홍빈 대장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구조비 책임을 원정대에게 돌리려는 정부의 소송은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소송의 끝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현충원에 그의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 그리고 김홍빈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 수천만 원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건 대한민국. 두 얼굴의 대한민국은 모순의 가면 뒤에 숨어 있다. 개인이 성취한 명예는 나눠 갖고, 비용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순 말이다.

몽블랑 사고에서는 발휘될 수 있었던 지혜로운 외교적 해결이,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이뤄지지 못했을까. “매우 지혜롭지 못한” 소송을 여기서 멈추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그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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