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 결정은 아쉽지만, 유의미한 의견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책임은 피하고 체면은 지키는 판단으로 이름값을 지켰다.
인권위는 지난달 30일, 대통령경호처와 국토교통부, 그리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의견을 밝혔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시 이용객 소지품 검사를 최소한으로 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내부 기준을 마련하라는 것.
다만 인권위는 소지품 검사 자체가 인권침해나 차별행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해 8월, 용산어린이정원 측의 과도한 이용객 소지품 검사에 관해 진정을 넣은 결과다.
먼저, 위 영상부터 보자.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 측으로부터 소지품 검사를 당하는 영상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13일과 22일 두 차례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했다.
당시 김 대표는 보통의 이용객들처럼 엑스레이 보안 검색대를 아무 문제 없이 통과했다. 하지만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김 대표의 가방 지퍼를 직접 열고, 소지품을 하나씩 살폈다. 서류 파일까지 꺼내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서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내용을 확인했다. 소지품 검사를 진행한 보안 검색대 직원의 목에는 “대통령실 경호부대” 신분증이 걸려 있었다.
상식을 벗어나는 수위 높은 ‘가방 뒤지기’는 1분 가까이 진행됐다. 김 대표와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한 용산 주민 5명 역시 똑같은 수위로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관련기사 : <경찰은 왜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 뒤를 쫓아갔을까>)
김 대표와 용산 주민들은 “용산어린이정원 측의 보안 검색은 통상적인 검색 수준을 넘어서는 행위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셜록은 지난해 8월 25일, 이 사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 침해구제2위원회(이충상 위원장)는 진정 이후 약 1년 1개월간의 검토 끝에 결과를 내놨다. 대통령경호처 처장, 국토교통부 장관, LH 사장을 상대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안 검색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실시하고, 구체적인 내부 기준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어린이정원을 포함한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은 주체다. 또 “용산어린이정원은 대통령 경호구역”이라는 이유로 대통령경호처도 관여돼 있다.
인권위는 “대통령실 인접 구역 출입자에 대한 보안검색 등 경호활동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명백히 위해물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물품까지 검색하고 그 내용까지 확인하는 행위는 경호에 필요한 통상적인 보안 검색 수준을 넘어서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이어 인권위는 대통령경호처 등 기관들의 행위가 기본권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용산어린이정원의 보안 검색대 직원들이 진정인들이 보유한 문서의 내용까지 열람한 사실이 인정되는데, 육안으로 보더라도 단순 서류에 불과하여 위해물품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도 굳이 열람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이러한 검색 관행이 지속되는 경우 헌법 제17조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소지가 없지 않다.”
다만, 인권위는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진정 자체에 대해서는 ‘기각’을 결정했다.
인권위는 “용산어린이정원은 국가중요시설인 대통령실과 인접한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대통령경호법에 따른 경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보안 검색은 법률상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분단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안보적 특수성이 있고 국제적 테러의 증가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점, 최근 발생한 국회의원 등을 표적으로 하는 피습사건 등을 고려할 때 경호활동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점” 등을 언급하며 기각 결정 사유를 설명했다.
피해 당사자인 용산 주민 김교영 씨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겉으로 봐도 위해성이나 규정에 위배될 만한 사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방에서) 서류까지 (꺼내) 뒤져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조치“라면서, “그럼에도 인권위가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건 아쉽다”고 말했다.
김은희 대표는 이번 인권위 결정을, 아쉬움 속에서도 다행스럽게 여겼다.
“정부 기관이 국민들의 인권 또는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 조심해서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시정해야한다고 (인권위가) 의견을 말한 거지 않겠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들 편으로 보이진 않지만, 일정 정도 국민들의 분위기와 눈치를 보고 이런 의견을 (표명)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은희 대표는 지난해 8월,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사람이다. 셜록은 김 대표와, 그와 함께 동행한 용산 주민 5명이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사실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대통령 부부 우상화’ 논란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후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이 최소 23명이 추가로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관련기사 : <최소 23명 더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블랙리스트’>) 이들 모두 용산어린이정원 토양오염 문제 등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비판해온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출입금지를 당한 시민들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무효 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오는 17일에도 서울행정법원에서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