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이성훈에게 ‘롯데맨’이란 이름은 자부심이었다. 20년 넘는 세월 청춘을 바친 롯데백화점. 하지만 회사는 그런 직원들을 베테랑이 아니라 ‘정리 대상’으로 여겼다. 신동빈 회장이 재벌 총수 ‘연봉킹’에 오르던 그때, 직원들은 ‘신연봉제’란 이름으로 일자리를 위협받았다. 이성훈은 노조를 만들고, 롯데백화점 창사 이래 최초의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난 2월 4일. 그들이 일하는 지점의 지원팀장들이 와서 ‘연차 휴가 변경 요청’ 공문을 전달했다. 이미 승인했던 연차 휴가를 2월 8일까지로 변경하라는 내용이었다. 휴가를 변경하지 않고 출근하지 않을 경우 무단결근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협박성’ 멘트도 달려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은 ‘사용자는 규정에 따른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회사가 마음대로 연차 휴가를 변경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회사가 보낸 공문은 두 사람에게 큰 심적 부담을 줬다.

“너무 큰 압박을 느꼈습니다. 천막농성을 하면 기본적으로 긴장된 상태인데 거기에 관리자까지 와서 압박을 하는 거 아닙니까? ‘위에서 보냈구나,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더 심각해지겠네, 잘못하면 징계 받아서 해고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죠.

길거리 천막에서 자면서 몸도 피로하고 심적으로도 힘든 상태에서 그런 공문을 받으니까 호흡곤란도 오고 그랬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26년차 ‘롯데맨’ 이성훈과의 인터뷰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세 차례 이뤄졌다 ⓒ셜록

두 지점 점장 명의의 공문은 내용이 똑같았다. 공문을 전달한 다음 날부터 각 지점의 관리자는 이틀 간격으로 두 차례에 걸쳐, 복귀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복귀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담당자한테 전화를 해서, 계속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니까, 자신도 위에서 시키는 거여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며칠 뒤 집에도 내용증명이 도착했다. 내용은 천막에서 받은 공문과 비슷했다.

“내용증명까지 받으니까 아내도 걱정이 되는 거죠.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데 굳이 왜 노조를 하려고 하느냐. 다른 사람들은 몰라서 안 하겠나. 당신만 왜 계속 하려고 하느냐. 이러다가 지방으로 전출이라도 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까 심적으로 더 힘들어졌죠.

아내와 부모님께도 많이 미안했다. 스트레스를 계속 받자 점점 더 ‘안 좋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울화가 병이 된 겁니다. 노동조합이 회사와 소통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멸시만 당하는 거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면 굉장히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사람들이 왜 분신을 하는지 이해를 못했거든요. 근데 (저도 천막농성을 하고 나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울분을 해소 못한 사람들은 생각이 극단으로 흘러요. ‘회사가 듣는 척이라도, 그런 성의라도 보여줘야지, 어찌 이리 꿈쩍도 안 할 수가 있나. 분신이라도 해야 회사가 변할까. 롯데타워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나….’”

메아리 없는 외로운 싸움. 이성훈의 마음은 우울에 점점 잠식돼갔다. ⓒ이성훈 제공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면 이성훈은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딸을 떠올렸다. 마흔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해, 유산의 아픔을 겪은 뒤에 얻은 귀한 딸이었다.

유공 표창과 상위 인사고과를 받고서도 승진이 안 돼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르자, 그는 가정이라도 튼튼히 하자며 2015년 9월, 1년 동안 무급 안식년 휴직을 했다.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니며 정성을 다한 끝에, 안식년 휴직 마지막 달에 딸을 임신한 터였다.

안식년이 끝나고 직장에 복귀해, 그동안 그의 빈자리 때문에 힘들었을 동료들이 고마워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혼자 육아를 하던 아내가 너무 힘들어했다.

마침 롯데그룹이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첫해였다. 동료들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2017년 5월, 6개월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 중에도 중국어 공부만큼은 계속했다. 중국 지점으로 갈 수도 있을 거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사고과에 영향이 있었겠죠. 위에서는 ‘안식년도 쓰고 육아휴직도 썼네, 승진도 안 됐는데 쓸 거 다 쓰네’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육아휴직 직전에는 인사고과가 평균으로 나왔어요. 복직 후에는 하위 고과가 나오더라고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하위 인사고과를 받았다. 그때는 그 사실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정도로 딸은 그에게 큰 기쁨이었다. 천막농성으로 힘들 때도 딸을 생각하면서 버텼다.

2006년 울산점 근무 당시 사내 산악회에서 활동하던 모습 ⓒ이성훈 제공

연차휴가가 소진되자 두 사람은 회사로 복귀해 근무를 하면서 천막농성을 이어갔다. 퇴근 후와 휴무일에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6개월 동안 천막을 지켰다. 끝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회사를 보면서 울분과 걱정, 무기력 등 정의하기 힘든 기분들에 휩싸였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죠. (천막) 주위에선 맨날 보안요원이 보고 있고, ‘사유지를 점거하고 있다, 영업방해로 고소하겠다’ 하지…. 손배‧가압류 뉴스 보면 그 금액이 엄청나던데… 불안감이 말도 못하죠.”

밤에 잠이라도 제대로 자고 싶다는 마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2022년 3월 ‘기타 미분류형 우울장애’ 진단을 받았다. 산재 신청을 떠올렸다. 상담을 한 법무법인에서는 산재 승인 확률이 20%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두 사람은 산재를 신청했다.

결과는 해를 넘겨 나왔다. 2023년 7월과 11월, 이성훈과 최영철은 각각 산재를 인정받았다. 노조활동 과정에서 얻은 정신질병을 산재로 인정받은, 흔치 않은 사례였다.

“노사분쟁 문제해결 과정에서의 진정절차, 천막농성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회사와 갈등관계에 노출되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 인사평가를 통한 수당 삭감, 익명게시판을 통한 비난과 노조탄압, 천막농성 철거와 관련된 심리적 압박 및 사업장에서 연차휴가 신청 관련 공문을 자택으로 보내는 등의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불안, 우울,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난 점 (…)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이성훈 요양보험급여결정통지서, 근로복지공단, 2023. 7. 24.)

이선규 서비스일반노조 위원장이 그 의미를 설명했다.

산재 심사하는 사람들이 (이성훈과 최영철) 두 사람이 좋아서 그렇게 결정했겠습니까? 아니면 민주노조에 무슨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여기를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이었겠습니까? (산재가 인정됐다는 건) 심각한 정도가 그들도 인정할 정도로 심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죠.”(이선규)

노조활동 과정에서 얻은 정신질병을 산재로 인정받은, 흔치 않은 사례였다 ⓒ셜록

이성훈은 지난해 9월 심리검사를 다시 했다. 우울, 불안, 자살사고, 사회적 불편감 등 모든 항목에서 정상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산재 승인을 받고 2개월이 지났지만 그의 심리상태는 여전히 불안했다.

올해 초 80일 정도 산재 요양을 신청해, 자연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연봉이 줄어든 상태에서 병가까지 내니 생활이 안 돼, 예정보다 빨리 회사에 복귀했다.

이성훈의 산재 인정 기간은 올해 5월로 끝이 났다. 이제 산재보험을 통해 병원비를 지원받는 건 불가능하다. 이성훈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산재 승인받는 데 1년 4개월이 걸렸습니다. 비용 생각하는 사람은 병원 상담이나 요양 같은 걸 잘 못해요. 돈을 미리 끌어다 쓰는 건데, 나중에 산재가 나오면(승인되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어떻게 합니까? 산재 인정(기간)도 1년 6개월로 짧고요.”

노조 활동도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다. 최영철이 지난해 명예퇴직을 받아들여 회사를 떠난 뒤, 이성훈이 지회장을 맡았다. 1인시위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사측과의 논의 테이블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냥 (회사를) 나가라는 건데, 나이 들어서 나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신연봉제 전에도 고과 따라서 성과급 깎고 그랬거든요. (저희 입장은) 그 정도로 하자는 겁니다. 기본급 깎고 수당을 전액 삭감하는 건 너무하다는 거죠.

젊은 직원들도 의욕이 없어요. 우리들을 보면 자신들 미래가 보이겠죠.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될 거야. 기회 있을 때 빨리 이 회사에서 탈출해야 돼.’ 이렇게 기업문화도 망가지고 있으니 함께 논의해보자는 겁니다.”

산재 승인까지 1년 4개월이 걸렸다. 사측과의 논의 테이블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셜록

이성훈의 정신질병 산재와 노사관계 전반에 관해 롯데백화점 측에 반론을 구했다. 지난달 3일 이메일 회신을 보내왔다.

기본급까지 삭감하는 신연봉제를 실시한 배경에 대해 사측은 “신연봉제는 저성과자 관리보다 고성과자 보상 확대로 인한 인재 관리 및 직원 동기부여에 초점을 맞춘 제도로서 고과 상위자 비율이 하위자 비율보다 3배나 많게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아휴직 사용 사실이 고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한 고과 불이익은 없다”면서, “매년 300여 명의 직원들이 자유롭게 육아휴직과 출산휴직을 사용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성훈이 노조 간부가 된 뒤 품질평가사로서 식품안전평가 등에서 중상위 평가를 받고도 인사고과상 하위평가가 이뤄진 부분에 대해서는 “단순한 위생 적발 건수 외에도 품질평가사로서 업무성과 및 역량(위생 법규 이해, 관련 업무계획 수립 및 구조화, 식품안전 시스템관리, 정보 수집 및 활용, 업무 완결성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롯데백화점지회와의 노사관계 개선 계획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을 해왔다.

특별히 대립하는 등의 갈등관계 없이 적법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 대표노조인 롯데쇼핑노동조합과 교섭파트너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복수노조 사업장이 준수해야 할 교섭 원칙 및 공정대표의무와 같은 노동법령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사측의 답변을 다시 읽으면서, 롯데백화점 본점 건물에 붙어 있던 팻말이 떠올랐다. ‘2023 노사문화우수기업.’ 사측도 갈등 없이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고, 나라에서 상도 탔다는데, 왜 이성훈과 최영철은 “회사와 갈등관계에 노출되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 때문에 정신질병 산재를 인정받은 걸까.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노사문화우수기업.’ 그런데 왜 이성훈과 최영철은 “회사와 갈등관계에 노출되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 때문에 정신질병 산재를 인정받은 걸까. ⓒ신정임

이성훈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고 약을 처방받는다. 그리고 매주 가는 등산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학교 때 산악부였거든요. 젊었을 때부터 좋아했던 게 등산이고, 또 지금 돈이 없잖아요. 비용도 안 드니까 좋죠. 처음엔 동네 야산도 못 올랐어요. ‘예전에 암벽등반까지 하고 아마추어 전문가 소리도 들었는데 이걸 못할까.’ 악착같이 달려들었습니다.

한번 안 좋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엄청나게 나요. 그게 그냥 지워지겠어요? 등산은 매주 다른 산을 가면서 다른 도전을 하잖아요. 늘 110%, 120%에 도전하는 거죠. 힘든 산을 오르고 도전하면서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은 겁니다. ‘지금 사회에선 거의 쓸모없는 존재가 됐지만, 아직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 위로 같은 거요.

등산을 갈 때면 기본 6시간 이상 걸리는 아주 힘든 코스를 택한단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도록. 또, 돌아오면 쓰러져서 자기 때문에 2·3일은 수면제 없이도 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최소한 성년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줄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그가 의지를 다졌다.

지난 6월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곧 설악산에 도전한다고 했다.

“(정상까지) 가긴 가겠죠. 중간에 포기할 것 같진 않아요. 얼마나 힘들게 가느냐, 그런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가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대청봉’이라고 쓰인 바위 뒤에서 주먹을 불끈 쥔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상까지 내리 11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포기할 것 같진 않아요.” 그는 11시간 30분 만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성훈 제공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최규석의 웹툰 <송곳>에 나오는 대사를 빌려왔단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국어사전은 ‘존중’을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이라고 정의한다. 강자가 시혜를 베풀 듯이 말하는 존중은 언제든 철회될 수 있고, 기울어진 권력관계는 변하기 힘들다. 하지만 약자를 두려워할 정도로 힘을 갖는다면, 그렇게 제도와 구조를 바꾼다면 말 그대로 ‘높이어 귀중하게 대해’질 터이다. 이성훈은 거대한 재벌에 맞서 작지만 큰 힘, 두려움을 조직하고 있었다. <끝>

취재 신정임 르포작가 jjung9110@naver.com
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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