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국방부 후문 앞에 모였다. 그곳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검은 제복의 사내들. 소총을 메고 무장한 모습이었다. 삼엄한 경계 너머 외딴 섬 같은 건물이 서 있다. 청년들은 그날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을 작정이었다.
백륭(22, 남) 씨 등 네 명의 청년은 지난 4일 대통령 집무실로 향했다. 대통령에게 면담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발걸음을 떼자마자, 그들의 계획은 금세 좌절됐다. 양손이 뒤로 꺾이고 케이블타이에 묶인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
청년들 중 가장 선두에서 달린 백 씨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군사경찰로 추정되는 사람이 총을 (몸) 앞으로 갖다 대면서 옆으로 확 쳤어요. 그러니까 옆에 주차돼 있던 차에 부딪혀서 앞으로 넘어졌어요.”
그는 후문으로부터 약 70m 떨어진 곳에서 붙잡혔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얼굴이 뭉개졌다. 까만 제복에 검은 조끼를 입은 남자는 단숨에 백 씨의 등에 올라타 팔을 뒤로 꺾고, 머리와 등을 짓눌렀다. 남자는 “왜 왔냐”며 윽박질렀다.
“케이블타이 꺼내!”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 옆에 있던 소총을 멘 사내가 손목을 뒤로 고정했다. 케이블타이였다. 저항할수록 통증이 느껴졌다. 백 씨는 그때부터 구호를 외쳤다.
“김건희를 특검하라! 거부권 남발 중단하라!”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눈앞에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내들이 달라붙었다. 장갑차 여러 대가 도착하더니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네 명의 사내들은 그를 일으켜 세워 후문을 빠져나갔다.
“그때 양복 입은 사람들(경호원으로 추정)한테 저를 넘겼거든요. 그러면서 ‘테이저건 준비해. 얘(백 씨) 뒤로 뛰어가면 쏴라.’ 이런 식으로 지시하더라고요.”
문을 통과하자 발길질이 쏟아졌다. 벽을 보고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것. 위에서 체중으로 짓누르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쪼그려 앉았다. 양복 입은 남자들은 백 씨의 사지를 들어 스타렉스 승합차에 태웠다.
차 안에는 구한이(29, 여) 씨가 먼저 타고 있었다. 옷이 벗겨져 한쪽 팔에 걸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후문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제압됐다. 그를 붙잡고 끌고 가는 과정에서 구 씨는 속옷이 그대로 노출된 채 차에 태워졌다. 현장에는 지나가는 시민들, 군인, 경호원, 경찰들이 있었다.
윤겨레(20, 여) 씨는 진압 과정에서 다리에 멍이 들었다. 그 역시 무릎에 등이 눌리고, 머리가 바닥에 짓눌렸다. 말이 안 나올 정도의 무게였다. 윤 씨의 손목에도 케이블타이가 채워졌다. 이들은 그 상태로 용산경찰서로 끌려갔다.
“윤석열 대통령이 24번째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김건희 특검법이랑 채상병 특검법이 통과 안 됐어요. 2년 반 동안 (거부권) 24번이라는 숫자가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면담 요청 하려고 간 거죠.”
이들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김건희특별검사법을 비롯한 3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24차례 거부권이 발동됐다.
지난달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조사기관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김건희 특검법’에 65%가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6월 여론조사꽃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62.1%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계획대로라면 면담요청서 전달하면서 면담하고 싶다 요구하는 거였죠. 그런데 몇 발 떼지도 못하고 붙잡혀서 바로 끌려간 거예요. 달렸다는 이유로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국방부 영내는 ‘경호구역’에 해당한다. 당시 국방부 후문은 서울경찰청 202경비단과 국방부 근무지원단 50군사경찰대 소속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케이블타이로 청년들의 손목을 결박한 건 군사경찰이었다.
이날의 진압에 대해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제압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졌는가.
대통령실 진입을 시도했던 이들은 총 4명. 각 서너 명의 병력들이 달라붙어 청년들을 끌어냈다. 현수막을 펼치거나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니었다. 국방부 영내에 뛰어들었다는 이유로 아스팔트에 얼굴이 짓눌리고, 팔이 뒤로 꺾이고, 손목이 케이블타이에 묶였다. 백 씨는 포박 과정에서 “계엄군이 떠오르기도 했다”며 분노했다.
최석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는 과정상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맨몸으로 들어가 아무 폭력행위도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물리적으로 제압한 상황이 의문스럽다”며, 특히 “어떠한 장구로 사람들을 무조건 묶어도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둘째는 ‘케이블타이’가 군사경찰장비로 구분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는 군사경찰장구가 명시돼 있다. 수갑, 포승, 경찰봉, 전자충격기, 전자충격총, 방패, 헬멧 등 보호장구 및 고무탄총까지. 여기에서 케이블타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과잉진압’ 논란을 피하려고 수갑 등의 장구가 아닌 케이블타이라는 ‘비공식 장구’를 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못 들어가게 제지를 할 수는 있는데, 수단이 과도했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본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장구들이 있을 텐데, 케이블타이로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죠.”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도 같은 지적이다. 그는 “케이블타이는 일할 때 사용되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사람한테 쓰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후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 병력의 수가 (청년들보다) 더 많았을 텐데, 상식적이지 않은 도구로 사람을 묶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비상식적인 도구로 사람을 묶은 사건. 몇 해 전 크게 이슈가 됐던 이른바 ‘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2021년 모로코 난민 A 씨는 외국인보호소에서 손발이 뒤로 묶인 채 독방에 갇혀 있었다. 이 사실이 논란이 되자 법무부는 “법령에 근거 없는 방식(‘새우꺾기’)의 보호장비 사용행위, 법령에 근거 없는 종류의 장비 사용 행위 등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A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5월 “강제력을 행사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보호장비로 케이블타이나 발목 수갑, 박스테이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법령에 근거가 없는 방식으로 장비를 사용한 행위는 위법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이날 국가가 1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02년 헌법재판소도 “과도한 계구사용은 신체의 자유,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의 침해가 될 수 있다”며,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反)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계구(戒具)란 ‘피고인이나 죄인이 도주, 폭행, 소요 또는 자살을 할 우려가 있을 때에 이를 억제하기 위하여 쓰는 기구’를 통틀어 말한다.
“포승, 수갑 등을 사용한 신체의 결박은 자연스러운 거동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매우 불편하게 만들 뿐 아니라 종종 심리적 위축까지 수반하며 장시간 계속될 경우 심신에 고통을 주거나 나아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는 인간으로서의 품위에까지 손상을 줄 수도 있다.”(헌법재판소 2004헌마49 판결 2005. 5. 26. 일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진짜 갈 데까지 갔다, 이 정권은 정치적인 목소리 내는 국민들을 무차별하게 탄압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입틀막’은 윤석열 정부의 상징이 됐다. 강성희 당시 국회의원(진보당, 전주을)은 지난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에 의해 입이 틀어막힌 채 들려 나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생 신민기 씨도 지난 2월 학위 수여식에서 R&D(연구개발) 예산 관련 구호를 외치다가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지난해 대통령 경호처가 용산어린이정원에 일부 시민의 출입을 제한하고, 압수수색에 가까운 과도한 소지품 검사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관련기사 : <대통령경호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우리가 요청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단체는 오늘(17일)로 27일째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백 씨는 “윤석열 정권이 위기를 느끼고 대학생들의 목소리까지 틀어막은 게 아니냐”며,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될 때까지 농성장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절차에 따랐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지난 8일, “경계 근무자가 폭력을 가했다는 대학생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케이블타이 사용 근거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용산경찰서 역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