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들어가기 전 김희수(가명, 46세) 씨는 밀짚 챙모자를 챙겨 썼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 민지유(가명, 15세)을 데리러 온 하굣길.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오늘은 희수 씨가 병원에 가는 날이다.
“애가 혼자 못 다니니까 항상 보호자 동행하에 등하교해요.“
희수 씨는 1층 복도 끝 ‘도담반’으로 걸어갔다. 지유는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었다. 희수 씨는 문 밖에 서서 여러 번 지유의 이름을 불렀다.
“지유야, 가자!”
지유를 기다리던 희수 씨는 힘에 부치는지 잠시 기둥 벽에 몸을 기댔다. 한참 기다린 끝에, 지유가 걸어 나왔다. 한눈에도 지유는 또래보다 체격이 커 보였다. 키는 170cm 정도. 지유는 신발장에서 신발부터 꺼내, 발을 집어넣었다.
희수 씨가 지유를 불렀다.
“지유야, 선생님께 인사부터 해야지.”
지유는 시선을 맞추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
지유는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엄마 희수 씨는 한 번 더 지유를 불러세웠다.
“기자님한테도 인사했어, 지유야? 처음 뵀으니까 인사해야지.”
지유의 시선은 다시 땅바닥으로 향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곤 학교 밖으로 뛰어나갔다. 지난 9월 26일 경기 화성시의 한 중학교에서 지유 양의 가족을 만났다.
희수 씨는 대장암 4기 환자다. 2021년 12월 먼저 난소암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다. 다음 해 1월에는 대장암(구불결장암)을 진단받았다. 대장에서 발병한 암이 난소로 전이된 거였다.
지유에게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고,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4년 지유는 만 세 살 나이에 자폐증을 진단받았다.
지유는 특수학급(종일반)에서 공부한다. 평일에는 학교를 마치면 언어·인지치료가 이어진다. 평소에는 복지관과 사설 치료센터로 가 수업을 받는데, 이날은 엄마 희수 씨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제가 ‘병원 간다’고 말해도, 지유는 잘 몰랐거든요. 한 달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하면 며칠씩 집을 못 가요. 제가 집에 없는데 지유가 자꾸 찾으니까… 이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병원으로 가는 거예요.
제가 환자복 입고 나오는 걸 보여주면, 지유도 엄마가 아프다는 걸 깨닫지 않을까 싶어서요. ‘엄마 병원 가’, ‘엄마 배 아파’, ‘엄마 주사 맞아’ 이걸 반복해서 알려주는 거죠.”
오후 3시 30분경, 경기 수원시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암병원에 도착했다. 이날은 X-ray, 심전도 검사와 같은 간단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희수 씨는 3박 4일 동안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는다.
희수 씨가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러 간 사이, 지유는 의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지유는 희수 씨 핸드폰으로 영상을 봤다. 화면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등장해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불렀다. 유튜브 검색 리스트를 보니, ‘모여라 딩동댕’, ‘짱구는 못 말려’, ‘뽀로로’ 등 어린이 프로그램 제목이 줄지어 있었다.
“지유한테 핸드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안 알려줬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아요. (지유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직 말하는 게 어려워서 그런 걸까. 지유는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나란히 대기 의자에 앉아 엄마 손을 포개어 잡았다. 엄마의 등을 오른손으로 쓸어내리며 엄마 어깨에 얼굴을 기대기도 했다. 말로 표현하진 못해도 마치 엄마를 위로하려는 듯했다.
“지유는 거리낌이 없어요. (엄마 아빠한테) 막 비비고 그래요.(웃음)”
엄마 김희수 씨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였다. 1997년 기흥사업장에 입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0세. 약 19년을 일하고 2016년 명예퇴직했다.
희수 씨는 ‘3라인’에서 오퍼레이터(8년)와 현장관리자(4년)로 약 12년을, LED 생산라인에서 현장관리자로 약 7년을 일했다. 2009년 당시 삼성반도체는 기흥사업장 ‘3라인’을 LED 생산라인으로 전환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2014년)의 모티브가 된 실제 주인공 고 황유미 씨 역시 삼성 반도체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만 21세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졌다.
희수 씨는 근무 당시 화학물질을 다뤘다. 재작업을 위해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에서 감광액(PR)을 벗겨내는 일을 했다. 감광액은 빛에 노출되면 화학적 성질이 변해 웨이퍼에 원하는 회로 패턴을 보일 수 있게 하는 화학물질이다. 희수 씨는 일할 때 감광액이 방진복에 묻고, 자주 매캐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있다.
“PR은 뚜껑을 따는 순간 냄새가 확 올라와요. 악취는 아니지만 그 특유의 화학물질 냄새가 있어요. 또 방진복에 튀면 안 지워지는 그런 물질이니까 되도록 안 만져야 하는데, 뚜껑이 안 열리면 억지로 따야 하잖아요. 다리 사이에 병 끼고 이렇게(손으로 뚜껑을 힘껏 따서) 여는 거죠. 그 과정에서 묻기도 하고 그랬던 거죠.”
희수 씨는 2009년 지유를 임신했다. 회사에서 나눠준 임부용 방진복을 입고, LED 생산라인의 ‘EDS 공정’에서 일했다.
‘EDS 공정’은 공정이 완료된 웨이퍼를 테스트해서 불량을 선별하는 과정이다. 해당 공정에서 설비 세척 용도로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에틸렌글리콜)에 노동자가 노출될 수 있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있다.(반도체 노동자 김○○ 산재 역학조사 보고서, 2016년)
에틸렌글리콜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상 ‘건강손상자녀 관련 유해인자’에 포함된 물질이다. 미국과 대만에서 생식독성 피해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물질이기도 하다.
이미 학계에선 발달장애가 업무상 유해요인 노출로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Parental Occupational Exposure and Neurodevelopmental Disorders in Offspring: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Maryam Bemanalizadeh, 2022년) 해당 연구는 유기용제(시너·솔벤트 등) 노출 시 자녀의 발달장애 발생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반도체 칩이 오픈돼 있는 상태에서 현미경으로 불량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해야 되는 거니깐요. 장갑을 꼈지만 직접 만진다거나 무언가를 덜거나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비 문을 닫고 (측정용) 레이저를 쏴도 빛이 새어 나오기도 하고.
100대 넘는 설비들이 다 붙어 있는 데여서 미로처럼 골목 골목을 엄청나게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설비이다 보니 소음이 너무 커서 귀마개를 해야 할 정도입니다. 물론, 현장에서 귀마개는 쓰지 않았죠.”
희수 씨는 이런 업무를 출산 30일 전까지 했다. 육아휴직도 90일만 쓰고 바로 복귀했다.
지유의 발달지연은 서서히 발견됐다. 아이는 생후 23개월까지 아예 말을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수 씨는 자신의 업무와 자녀의 아픈 몸을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지유가 ‘엄마’ 소리를 안 했어요. 그래서 주위에 ‘엄마’ 소리 듣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당시만 해도 아이가 아픈 걸 회사 안에서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주위에서 ‘치료실 다녀라’ 조언이라도 해줬으면, 더 어렸을 때부터 다니는 건데… 참 많이 아쉬워요.”
희수 씨는 2016년 일을 그만두고, 퇴사자 모임을 꾸렸다. 1990년대부터 함께 일한 여직원 네 명의 모임이었다. 주로 안부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씩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느슨한’ 모임을 이어왔다.
그러던 지난해, 이들은 그동안 서로 ‘말하지 못한 비밀’을 알게 됐다. 네 명의 자녀가 모두 선천적인 질병이나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세 명의 자녀에겐 지적장애가 있었고, 한 명의 자녀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다.
“네 명 모두 3라인에서 일했단 말이에요. 작년에 저희 아이가 특수학급에 간다는 사실을 말했더니, 다른 언니도 아이가 복지카드를 받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하나둘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모두 애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희수 씨는 아이의 아픔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이가 아픈 게 회사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가 ‘왜 유독 우리 애들만 아플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죠. ‘우리 (태아산재 신청) 한번 참여해볼래? 우리 일이잖아. 우리 아이의 일이잖아.’ 이렇게 된 거예요.“
삼성 반도체 공장을 떠난 지 7년 만에, 희수 씨는 삼성지원보상위원회에 ‘자녀질환’ 보상을 신청하려 했다. 하지만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지원보상위원회는 자녀질환 지원 대상 질병을 선천성 기형, 희귀질환 정도로 한정하고 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발달장애 특성상 성장 도중 뒤늦게 발견되는 특징 때문. 이에 따라 질병분류도 ‘선천성 기형 코드’(Q코드)가 아니라 ‘정신 및 행동 장애 코드’(F코드)로 분류된다.
더 큰 문제는 ‘태아산재’ 신청도 난망하다는 점이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상법)은 임신 중 업무상 유해환경에 의해 태어난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건강질환에 대한 산재보상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적용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태아산재 법안이 시행된 ‘2023년 1월 12일 이후 태어난 아이들에게만’ 적용된다.
이 때문에 태아산재법은 한시적으로 소급 적용을 인정했다. 기간은 1년. 법 시행일 1년 전인 2022년 1월 11일부터 2023년 1월 11일 사이 태아산재를 신청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희수 씨가 딸 지유의 태아산재를 의심하기 시작했을 당시(2023년)엔, 이미 소급적용 기한마저 지나 있었다.
희수 씨처럼 뒤늦게 태아산재 가능성을 인지한 경우에는 아예 산재 신청조차 못하는 것.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 소속 조승규 노무사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태아산재 소급 적용을 인정한 1년은 과거 피해자들에게 너무나도 짧은 시간입니다. 태아산재에 대해서 현재도 전혀 모르는 분들도 많고, 알더라도 산재 신청을 하기까지 가족 내에서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간 산재 신청을 할 수 없었던 과거 피해자에게 신청기간의 제한을 둘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독일과 같이 그간 억울하게 신청하지 못했던 과거 피해자들이 모두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열어둬야 합니다.”
지난 3월 22일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출신 노동자 3명이 신청한 태아산재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반도체 직무에서 태아산재를 인정받은 첫 번째 사례였다.(관련기사 : <“이름없는 재해”… 삼성 반도체 태아산재 최초 인정>)
엄마 희수 씨는 본인의 산재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도 준비 중이다. 엄마는 암, 아이는 자폐. 업무상 유해환경에 의해 모녀가 둘 다 아픈 ‘이중산재’다.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성 암’으로 백혈병 등 혈액암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외에 다른 암들도 발생하고 있다. 반올림이 지원한 ‘직업성 암’ 피해 사례는 다양하다. 이중 유방암(16명), 폐암(6명), 난소암(3명), 췌장암(1명) 등이 산재로 인정됐다.(2024. 10. 24. 기준)
“배가 아프고 생리통이 있을 때 항상 이를 악무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파서 이를 악물고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큰 수술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아플 때마다 이를 악물었는데, 그게 미련하게 참고 이겨내고 있었던 거구나 싶더라고요…. 배가 아프고 열이 나면 119를 불러야 했는데, 혼자 가라앉히려고 진통제 먹고….“
오후 4시 30분경, 희수 씨와 지유는 병원 1층 로비에서 인사를 나눴다. 지유는 손을 짧게 흔들고 뒤돌아 아빠 손을 잡았다. 그리고 뚜벅뚜벅 병원 밖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가 엄마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하니까, 천진난만하니까, 오히려 그게 나쁘지 않다. 엄마의 병에 대해서 슬퍼하고 속상해 하지 않고…. 보호자가 있어야 아이가 생활이 되는데, 아빠, 고모, 이모, 사촌언니, 복지관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아이 혼자 있지는 않겠구나…. 그래, 지금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지유가 혼자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가 (병을) 이겨낼 거지만, 상황이 그렇게 안 된다고 해도, 최대한 제가 이렇게 걸어다니고 할 수 있을 때 (아이한테 지원을) 해주고 싶어요.”
엄마 희수 씨만 병원 안에 남았다. 희수 씨는 멀어지는 지유의 뒷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바라봤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