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몇 사람의 신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먼저 A 신부는 2014년 자신이 근무하던 성당에서 만 9세 미성년 신자를 두 차례 추행했다. 미성년 신자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며, 성당 사제관으로 데려가 범행을 저질렀다. A 신부는 미성년 신자의 입을 막기 위해 간식이나 선물 등을 따로 챙겨주는 등 거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2021년 4월 법원은 A 신부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A 신부에게 5년 정직 처분을 내렸다.
현재 A 신부는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상태다. 하지만 사제직은 유지되고 있다. 교구는 2026년 4월에 정직 처분이 종료되면 A 신부를 은퇴시키겠다고 밝혀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은퇴하는 경우, 사제 신분이 유지돼 사실상 명예퇴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5월 1일 대구신문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다음은 “나도 여자 좋아해”라는 말로 유명한 B 신부 이야기다. 2023년 2월 21일 대구MBC가 보도한 내용. 2018년 9월 대구교구 산하 사회복지법인 대표 B 신부가 신입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
B 신부는 법인 교육관 식당 옆자리에 앉은 20대 여직원의 신체를 만졌다. 해당 직원이 놀라서 밖으로 나가자, 다시 불러 양팔로 껴안고 술을 따라줬다. 또 다른 20대 여직원도 성추행했다. 그러면서 “나도 여자 좋아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B 신부는 지난해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사건 보도 이후, 대구교구는 B 신부를 대기발령 처분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취재 결과, B 신부는 최근 한 공동사제관 관장으로 부임했다.
‘여성 도우미’를 데리고 술판을 벌였다는 논란을 일으킨 C 신부도 있다. 2019년 7월 10일 대구MBC는 대구교구에 속한 경산성당 주임신부가 경산시 한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 3명을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2018년 해당 술자리 참석자는 인터뷰에서 “신부님이 아가씨 2명 끼고 돈 5만 원 붙이고 놀고 (하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C 신부는 “앉아서 있었을 뿐”이라 반론했다.
논란의 주임신부 역시 사제직을 잃지 않았다. 셜록은 C 신부가 다른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것을 확인했다.
2016년 대구교구가 ‘대구희망원’을 운영하던 당시, 시설 내 생활인을 상대로 체벌, 폭행, 폭언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내부규정을 어긴 생활인을 길게는 47일까지 ‘심리안정실’에 불법으로 감금하기도 했다.
당시 총괄원장이던 D 신부는 2017년 7월 감금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신부로서 두 번째 구속된 사례였다. D 신부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 역시 사제 신분을 빼앗기지 않았다. 대구교구는 D 신부가 구속되자 ‘안식년’ 처분을 내렸다. 김 신부가 풀려나자,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본당 주임으로 임명해 시민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2018년 1월 뉴스민의 보도다. 셜록이 확인한 결과, 현재 D 신부는 원로사목자로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네 신부들의 공통점은 모두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 중 단 한 명도 사제복을 벗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신부들을 그대로 두고, 이 사람에겐 ‘면직’ 처분이 내려졌다. 바로 심기열 신부(34)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다시는 성직자로 살아갈 수 없는 최후의 형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해고된다고 해도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부는 면직되면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심 신부는 2022년 12월 면직 통보를 받았다.
그는 면직 1년 전, 자신의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청에 고발했다. 주임신부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자주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때문에 미사 일정을 변경하고,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을 하거나, 당구 약속으로 주일(일요일)에도 본당을 비우는 행동을 문제제기했다.
하지만 교구는 주임신부가 아니라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을 내렸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 즉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몰아갔다. 심 신부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은 의문의 ‘자문단’이 내린 결정이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며 싸워야 했다. 그 시간이 무려 8개월.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심리상담센터 등에서 거듭 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교구가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나 치료가 필요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구는 심 신부가 ‘시키는 대로’ 지정된 정신과의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지 않았다며, 이를 ‘불순명’이라 간주해 면직했다. 순명(順命)은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심 신부는 2023년 2월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교구의 내부 문건과 교구 관계자의 법정 증언 녹취록 등이 확인됐다.
교구 성직자국장은 법원에서, 이른바 ‘골프신부’를 고발한 심 신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성직자국장의 증언처럼, 면직 처분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기사 서두에 나열한 것처럼, 아동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3년간 감옥살이를 한 A 신부도,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해 재판에 넘겨진 B 신부도, 여성 도우미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C 신부도, 감금 혐의와 인권침해로 법정구속된 D 신부도 사제직을 유지했다.
아동성추행이라니. 교구는 사제의 자격은커녕 인간의 자격마저 의심되는 신부도 너그럽게(?) 품어줬다. 다른 신부들 역시 면직 처분을 받지 않았다. 대구대교구의 면직 기준이 무엇인지, 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사제직을 포기할 정도가 아닌 경우 자숙 기간을 갖게 하고 다시 기회를 준다”며, “면직은 다시 사제로 살기에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를 경우에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심 신부에 대해 정직의 벌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지만, 면직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어차피 심 신부의 고소가 이어질 것이므로 정직보다는 바로 면직을 내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정직을 내렸다가 면직이 이루어지려면 그 절차상 근거를 대기가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참사회의 회의록, 2022. 11. 22.)
대구교구는 사제의 인사를 논의하는 참사회의에서 심 신부의 ‘면직’을 전략적으로 모의했다. ‘면직’이라는 결론을 이미 정해두고, 무엇 무엇을 문제 삼고 어떤 절차로 처리할지 그 명분을 찾고 방식을 논의한 정황이 있다.(관련기사 : <‘신부 해고’ 교구 회의록 입수 “바로 면직부터 내리자”>)
몇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취재 과정에서 교구 성직자국장은 기자에게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한 바 있다. 혹시 교구가 밝히지 못한 면직 처분의 진짜 이유가 ‘괘씸죄’는 아니었을까.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신부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왜 심 신부에게는 돌아가지 않았을까. 과연 심 신부에게 그들보다 “치명적인 잘못”이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