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열(34, 야고보) 신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길이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제가 강에 뛰어들면 다 괜찮아질까요? 그동안 생각했던 사회 정의와 다른 모습입니다. 다들 너무 비겁해요.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줬습니다.”
심 신부는 2022년 12월 26일자로 면직됐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같은 해 4월부터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며 휴양 명령을 내렸다. 심 신부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누군지 밝힐 수도 없다는 비밀(?) ‘자문단’의 판단이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종합병원,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어디에서도 교구가 주장하는 정신질환이나, 치료가 필요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심 신부의 노력에도, 교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면직 사유도 알려주지 않고 심 신부를 ‘해고’했다. 신학생 10년, 사제 생활 4년. 신의 아들이 되기 위해 14년간 걸어온 여정은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었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대구교구 안에서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어서, 다른 지역 교구에 제 사정을 말해봤지만 ‘타 교구 일에 간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천주교 내부에서 그 누구도 심 신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심 신부는 2023년 2월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암담했다. 1심, 2심 재판부 모두 사건을 ‘각하’했다. 종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심 신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자신이 교구 안에서 괴롭힘과 인권침해 행위를 당했다고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 소견, 심리상담센터 검사 결과) 아무런 정신질환 병명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제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꾸며서 계속해서 정신질환 치료를 강요당했습니다.”
12일 만에 ‘초고속’으로 인권위의 회신이 왔다. ’각하’ 결정이었다. 인권위는 단 여섯 줄로 각하 이유를 설명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및 사인(私人)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 위원회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30조 제1항과 제2항에는 ‘조사대상’을 구분하고 있다. ‘인권침해 행위’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공직유관단체, 구금・보호시설 등에서 당한 경우에 조사한다는 게 제1항. 천주교 대구대교구처럼 단체, 재단, 사인 간의 ‘차별 행위’를 조사한다는 게 제2항의 요지다.
인권위는 국가기관에서 당한 피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1항을 비껴가고, 차별 행위가 아니라 인권침해 행위라는 이유로 제2항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인권 이슈에, 매우 엄격하게, 일을 안 하는 방향으로만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결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권위에 부족한 건 법령과 규정이 아니라, 인권침해 피해자를 돕겠다는 의지”라며, “인권위가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부정한 것”이라고 봤다.
“권한과 법적 근거를 다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인권침해 피해자가 어떤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는가, 어떻게 그 고통과 연대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태도입니다.”
오 사무국장이 인권위의 이번 결정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30조 제1항과 제2항’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의견을 표명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14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CCTV 사찰 사건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2014년 4월부터 2개월간 원정 숙소의 CCTV 자료를 받아, 소속 선수들의 사생활을 감시해 논란이 됐다. ‘불법 사찰’ 논란이 커지자 인권위는 조사에 착수했다. 2015년 인권위는 해당 사안을 ‘인권침해’라 판단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롯데 자이언츠 CCTV 사건도 인권위가 조사에 나서지 않을 ‘명분’은 있었다. 심 신부 사례와 같이, 국가기관에 의한 피해도 아니고 차별행위도 아니라는 이유를 댈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시 인권위는 의견 표명을 결정했다.
인권위가 종교단체를 상대로 권고를 내린 사례도 여럿이다. 일례로, 2022년 인권위는 한 불교 종단이 음력 2월 초하루에 여성의 사찰 입장을 제한하는 관행을 ‘성차별’이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해당 종단은 ‘전통’이라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보아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남녀평등 이념을 실현하려는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는 조치”라고 보고, 관행을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만약 인권위가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도, 의견 표명은 유의미한 일입니다.”
명숙 인권위바로잡기공동행동 활동가는 “사건 조사도 안 하고 진정 내용만 보고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바로 각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인권위가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면직된 신부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면직 처분은 자주 내려지지 않는다. 심 신부와 같은 대구대교구의 징계 사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동성추행 범죄를 저질러 감옥살이를 한 신부도,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여성 도우미와 함께 술판을 벌였다는 신부도, 감금 혐의와 인권침해로 법정구속된 신부도 면직되지 않고 사제직을 유지했다.
심 신부는 면직 1년 전, 자신의 주임신부를 교구청에 고발한 적이 있다. 주임신부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 때문에 미사 일정을 변경하는 등 행동을 문제제기했다. ‘아동성추행’ 신부에게도 내려지지 않은 면직 처분이 심 신부에게만 내려진 이유를, ‘괘씸죄’가 아닐까 의심하는 이유다.(관련기사 : <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
하지만 교구에도, 대한민국 법에도, 국가 인권기구에도 그의 억울함을 말할 길은 없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