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과외생은 ‘부정입학자’가 됐다. 현직 음대 교수한테 불법 성악 과외를 받았고, 그 교수한테 대입 실기시험도 치뤘다. 숙명여자대학교 성악과 부정입학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숙명여대는 부정입학자들을 입학 취소하지 않았다. 입학취소 근거가 숙명여대 학칙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지난해 경찰 수사부터 올해 1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숙명여대가 부정입학자들 상대로 진행한 후속 조치는 없다.
교육부도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면” “모니터링할 예정”이라는 소극적인 입장. 교육부와 대학 본부의 방치에, 심사위원을 매수했던 ‘부정입학자’들만 멀쩡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입시비리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이들은 형사 처벌도 받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6월, 음대 입시비리 혐의로 17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17명 중 현직 교수인 ‘입시 브로커’를 포함해 대학 교수가 15명이다. 이들은 청탁을 받아 대학 입학 실기평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자신이 과외해준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걸로 드러났다.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학부모 2명도 함께 송치됐다.
이 중 한 명이 추○○ 안양대학교 음악과(성악 전공) 교수다. 추 교수는 숙명여대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본인의 과외생들에게 최고점을 주는 등 부정 입학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추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월까지 총 5885만 원의 현금을 챙겼다. 이번 음대 입시비리 사건에서 유일하게 구속 기소됐다.(관련기사 : <심사위원 매수해도… 숙대, 부정입학자들 취소 안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인 부정입학자들은 피의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최용문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부정입학자를 형사 처벌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정입학자도 같이 처벌이 되려면 ‘공동정범’(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하는 것)으로 인정돼야 해요. 그러려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요. 첫 번째로 실행자와 부정입학자가 같이 공모를 하고, 두 번째로 실행 행위를 분담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부정입학자들이 부정행위나 청탁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면, 수사기관에선 입증하기 곤란할 겁니다.”
지난 2020년부터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보도한 은행권 채용비리 사건에서도 부정입사자는 형사 책임을 지지 않았다. 채용비리로 논란이 됐던 은행들(우리·신한·국민·하나·대구·광주·부산은행) 중 형사 처벌을 받은 부정입사자는 단 한 명도 없다.(관련기사 : <8개월 취재, 보도로 부정입사자 23명 정리했습니다>)
실제 셜록이 보도한 ‘가짜 고대생’이 형사 책임을 진 게 이례적일 정도다. 이해슬(가명)은 ‘교수 엄마’의 권위로 대학원생 제자들을 동원해 만든 ‘가짜 스펙’을 이용해 고려대와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1심 법원은 올해 7월 업무방해 혐의로 이해슬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관련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딸 조민 씨의 경우 역시 이례적이다. 검찰은 조민 씨를 입시비리 주도자로 봤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보름 앞두고 조민 씨를 뒤늦게 기소했다. 올해 3월, 조민 씨는 서울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려고 거짓 서류를 제출한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위 사례들처럼, 수사기관이 의지만 있다면 부정입학자의 공모 혐의를 밝혀내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 이번 음대 입시비리 사건에서도 부정입학자의 공모를 의심할 만한 증거는 이미 나왔다. 경찰은 불법 과외생이 교습비를 교수에게 직접 지급한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공개했다. 불법 과외생 A는 2022년 11월 25일 B 교수에게 교습비로 41만 원을 보냈다. 학생이 불법과외 사실을 알고 적극 관여한 걸로 볼 수 있는 증거.
그럼에도 경찰은 부정입학자들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보고 검찰로 송치하지 않았다.
교육부도 이번 음대 입시비리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부정입학생 입학 취소 근거를 마련했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2조의4(입학허가의 취소)에선 ▲거짓 자료 제출 ▲대리 응시 ▲학칙으로 정하는 부정행위에 대한 입학허가를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이 중 학칙으로 정하는 부정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실효성을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부정입사자에 대한 형사 처벌 근거는 마련하지 않았다.
“입시 부정에 연루된 교원은 강하게 처벌하고, 예체능 실기고사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입시비리를 근절하겠습니다.”(오석환 교육부 차관, 2024. 6. 18.)
형사 처벌은 ‘입학사정관’에 한정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현행법은 입학사정관이 과외 교습 등을 통해 평가 대상 학생과 특수한 관계를 형성한 경우 그 사실을 대학의 장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위반 시 이에 대한 처벌 근거가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교육부는 입학사정관이 해당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5년 이하 징역, 5000만 원 이하 벌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추 교수 역시 숙명여대 실기시험에서, 심사위원들이 써야 하는 ‘사실확인 및 서약서’를 거짓으로 작성했다. 추 교수는 “직계자녀, 친인척, 지인이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음악계도 부정입학자 형사 처벌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소재 사립대 성악과 소속 C 교수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사기관은 부정입학자들은 불법행위를 한 게 아니라고 보고 수사를 안 했을 수 있습니다. 교수들이나 학부모들이 입시비리에 관여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입시 비리로) 혜택을 받은 건 부정입학자들이잖아요. 불법 과외를 하고 (대입 실기) 심사를 한 교수가 구속돼 (1심에서) 유죄를 받았는데, 그러면 확실하게 부정입학자로 인해 불법 행위를 저지른 걸로 볼 수 있죠.”
추 교수의 불법 과외를 받은 학생 2명은 숙명여대 성악과에 합격했다. 배진명(가명)은 2022학년도에, 홍진명(가명)은 2023학년도에 각각 합격했다. 당시 추 교수가 숙명여대 성악과 입시 외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이들에게 응시자 중 최고점을 각각 부여했다.
‘부정입학자’ 배진명은 2022년 2월 한 클래식 공연에 소프라노로 참여했다. 해당 공연을 주최한 공연기획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배진명의 프로필에는 “2022학년도 숙명여대 성악과 합격”이란 문구가 여전히 적혀 있다.
1심 법원은 올해 8월 학원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추 교수에 대해 징역 3년과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했다. 추 교수는 1심 판결의 양형에 불복해 항소했다. 추 교수의 항소심 선고기일은 이달 29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장차 예술계에서 재능을 꽃피우겠다는 희망과 열정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과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학부모들로서는, 피고인의 이와 같은 각 범으로 인하여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돈과 인맥 없이는 대학교 입학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또한 예술가로서 제대로 성장해 나가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극도의 불신과 회의감, 깊은 좌절감과 허탈감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심 판결문 양형이유)
훌륭한 실력을 갖추더라도 “돈과 인맥이 없어” 음대 입학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피해자들. 배진명과 홍진명과 같은 부정입학자들은 이들이 정당하게 누려야 했던 혜택과 기회를 가로챘다. 이 뒤바뀐 인생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