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표절 검사’를 찾는 정보공개 항소심 재판에서 반전의 기류가 흘렀다. 법원이 ‘검사들이 쓴 논문 중 일부를 협의를 통해 공개해달라’고 법무부에 제안한 것.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해 6월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를 공개하라며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 제6-3행정부(백승엽, 황의동, 위광하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정보공개 소송 항소심 첫 재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장은 피고 법무부 측에 “수사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논문에 대해서는 공개하는 방안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재판장은 “(재판부가) 논문을 일일이 보고 공개 대상 여부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원고와 피고가) 서로 협의될 수 있으면 부분 공개가 가능한 논문에 대해서는 공개를 하는 걸로 진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셜록의 정보공개 청구 기간(2016년 1월~2022년 10월)에 해당하는 논문 전체 수는 약 500편. 법무부 측은 이중 절반 이상을 비공개하고 있다. 그동안 법무부는 “논문을 통해 수사기관의 수사방법이나 관행 등을 유추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범죄자가 수사를 회피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외훈련 연구논문 전체 공개를 거부해왔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1심 소송 당시,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연구논문’ 전체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연구논문’ 목록은 서면으로, 논문 전체는 USB에 담아 전자파일로 제출했다. 해당 자료는 그대로 항소심 재판부로 넘어갔다.
이날 재판에서 주심판사도 발언을 했다. 판결문을 직접 작성해야 하는 주심판사는 “1심에서 비공개 열람 (심사를 요청한) 자료가 항소심으로 넘어와 (대략적으로) 살펴봤다”고 밝히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검사 국외훈련 연구) 논문이 이미 많은 부분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공개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공개된 논문은 어떤 심사를 거쳐서 비공개 결정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논문 제목과 일부 목차만 보고도 공개 여부를 (원고-피고) 쌍방 협의 하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피고 법무부 측 소송대리인은 “수사와 관련이 돼 있으면 비공개 하고, 예외적으로 (관련성이) 적다고 하면 우수한 논문을 공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피고 측은 재판부의 일부 논문 공개 제안에 대해 “즉답을 하긴 어렵다”면서 “검찰과 법무연수원 쪽과 협의를 해보겠다“고 답변했다.
원고 셜록 측 소송대리인 박지환 변호사(법무법인 혁신)는 재판부의 제안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피고 측이 제출한) 논문 제목만으로도 (수사와 관련이 없는) 정책적인 내용인지 일부 확인은 가능합니다. 제목에서 난민, 감찰 등 (내용을) 알 수 있어, 전체 내용을 보지 않더라도 대강의 목차만으로도 (논문 일부 공개 여부)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고는 피고 측과 협의를 통해 원하는 정보들이 공개된다면 이의 없습니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측의 협의를 고려해 넉넉히 시간을 두고 다음 재판기일을 잡았다. 다음 재판 기일은 내년 3월 12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셜록은 2022년 12월부터 프로젝트 ‘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을 집중보도했다.(관련기사 : <유학은 공짜, 논문은 표절… ‘검사’를 고발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표절로 의심되는 부정·부실 논문을 쓴 검사들의 문제를 기사 22편을 통해 보도했다.
셜록은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에서 부정·부실 의심 논문 5건을 확인했다. 5건의 부정·부실 의심 논문에 지원된 세금은 총 1억 9040만 원에 달한다.
취재 과정에서 법무연수원 사이트에 올라온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이 원본 전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개되지 않은 연구논문에는 얼마나 더 많은 문제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이에 셜록은 지난해 6월 또 다른 ‘표절 검사’를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관련기사 : <[액션] 셜록이 소송을 시작한다… 검사들 ‘표절논문’ 잡으러>) 셜록이 요구한 정보공개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2016년~2022년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가 작성한 연구논문 중 법무연수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논문 전체
② 해당 기간 동안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들의 학위취득 현황
③ 검사국외훈련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성명, 소속 등
지난 3월, 1심 법원은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1심 법원은 “(학위정보는)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공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국외훈련 운영성과의 투명성 제고, 국가 예산의 재정 건선성 확보 등의 공익이 보다 크고 중하다“고 봤다.
다만, 1심 법원은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 이에 원고 셜록과 피고 법무부 측은 각각의 패소 부분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
한편, 셜록은 5명의 전·현직 ‘표절 검사’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직접 신고해, 국외훈련비 일부 환수를 이끌어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검사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지난달 셜록은 또 한 건의 표절 의심 연구논문을 발견해, 부패행위 및 공익침해행위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